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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이지혜

연극/연출, 프로덕션 무대감독
@24_blank_hamlet
2024 유망예술지원사업 선정 <_____ blank 햄릿>
2019 삼일로창고극장 기획공연 퍼포논문 <셀프-리서치그라피>

<안티고네, 나는 영웅이 아니다>(2023) ⓒ이좋은

연극 창작자 이지혜입니다. 연극을 만드는 일만큼 보는 일 역시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 년 중 대부분을 극장에서 머무는 편입니다.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연출 작업을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연이어 연출을 하고 있습니다.

삼일로창고극장 퍼포논문 <셀프-리서치그라피>(2019) ⓒ박태양

스스로 ‘예술 창작’이라고 할 만한 활동은 2019년 삼일로창고극장 기획공연 퍼포논문 <셀프-리서치그라피>를 통해서인 것 같습니다. 해당 기획 프로그램의 취지가 연극 분야의 창작자이면서 학위논문이 있는 사람의 논문에서 출발하는 공연이다보니 공연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논문에 바탕을 둔 작업이라 창작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당시 작업이 제가 이해하고 좋아하는 연극의 순간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 처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해당 작업을 창작 활동으로서 ‘처음’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예술가는 스스로 말하기보다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을 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라고 확정해서 자각하기보다는 ‘예술가에 가까워지고 있는 건가?’ 하고 느낀 순간이 생각납니다. 2023년 본격적인 연출 작업을 시작한 계기이기도 한데요. 당시 그리스비극 중 하나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재창작한 <안티고네, 나는 영웅이 아니다>2023를 기획하면서 ‘꺼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다,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닿을지 궁금하다, 그런 생각들이 곧 예술가로 향해가는 출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은 12월 4일부터 청년예술청SAPY 그레이룸에서 공연할 연극 <______ blank 햄릿>을 연습 중입니다. 2023년 공연한 <안티고네, 나는 영웅이 아니다>와 비슷하게 고전 희곡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다시 쓰고자 시도한 작품입니다. 처음 공연을 기획했던 2023년 연말만 해도 또 고전을 다루는 것이 나만 궁금한 일은 아닌가 생각했는데, 2024년에 여러 <햄릿>이 공연되는 걸 보면서 역시 이야기에 대한 신뢰는 여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 역시 원작을 토대로 새롭게 쓴 이야기입니다. 원작이 ‘햄릿’이라는 인물의 복수와 고뇌, 비극적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______ blank 햄릿>은 모든 사건을 ‘목격’하고 살아남은 사람 호레이쇼를 통해 ‘죽음 이후’에 대해 고민합니다. 오늘날 고전 희곡을 무대화한다는 것은 그 이야기가 ‘지금의 나’에게 의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왕자로서 고민하고 죽음을 맞는 햄릿보다는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고, 전달하고, 애도하는 호레이쇼가 오늘날의 관객이 더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햄릿의 죽음 이후 10년이 흐른 뒤를 배경으로 호레이쇼가 자신이 경험한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려보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죽음’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공연은 고전 희곡에 대한 애정보다는 현실에 너무나 많은 죽음이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여기저기서 계속되는 죽음(들)을 마주하면서, 살아 있다는 건 결국 지나간 죽음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애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가 충분한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람 사는 이야기를 창작하는 이상, 한 번은 마주해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의 저는 연극을 통해 ‘인간’에 관해 고민했습니다. 인상적인 사건이나 치밀하게 구성된 흥미진진한 갈등 같은 것도 좋지만, 결국 그 가운데 어떤 인간이 있는지를 훨씬 더 궁금해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일상에서 사람 만나기를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희곡이나 소설·드라마·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여러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면서 작업에 필요한 감각을 만들어가는 편입니다. 그러다가 더 알고 싶은 인간을 만나면 그때 작업을 고민하게 되는 거 같아요.

몇 달 전에 본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의 일상을 담은 영화인데요. 한 사람의 일상을 가만히 따라가는 이야기 자체도 좋았지만, 극 중 히라야마라는 인물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삶에 다정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어요. 물론 그만한 다정함을 얻게 되기까지 얼마나 복잡하고 지난한 삶이었을까 하는 상상이 가능했던 덕분이겠지만요.

특별히 모난 데 없는 인간이 무언가를 지나치게 사랑하지도 않지만, 대단히 미워하지도 않는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인간이 나오는 연극이 과연 재미있을까’ 생각도 드는데요. 어쩌면 연극이니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아무리 작은 순간도 극장이나 무대, 관객을 만나면서 ‘다른 순간’으로 변하니까요. 다만 제 경험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존 희곡은 사건이나 갈등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다보니, 그런 이야기를 찾기가 조금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현대소설을 많이 살펴보는 중입니다. 빼곡한 글자들 틈에서 사소하고 귀여운 순간들을 찾아서 장면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리 전민정 [문화+서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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