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한국 여성 미술가들
양혜규·이미래의 전시
《Haegue Yang : Leap Year》 전시 전경, 사진 Mark Blower, Courtesy the artist and the Hayward Gallery
얼마 전까지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에서는 영국 여성 화가의 역사를 정리하는 전시 《Now You Can See Us : Women Artists in Britain 1520-1920》가 열렸다. 왕의 초상을 그린 여인, 남편의 전폭적 지원으로 초상화가로 활동했던 여인들은 남겨진 기록을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되찾았다. 1871년 슬레이드 예술학교Slade School of Fine Art가 문을 열기 전까지 여성의 예술교육 자체가 불가능했고, 20세기에 들어서야 그간의 차별과 설움 속 지난한 수련을 거친 작업이 폭발적으로 등장한다. 2024년 10월의 런던에서 우리는 이제 그녀들을 바로 볼 수 있다.
10월 9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는 한국 여성 작가 양혜규 그리고 이미래의 전시가 동시에 열렸다. 다음 날인 10일, 바부르크 연구소The Warburg Institute에서는 한국 여성 예술가의 작품을 집중 조명한 책 『페미니즘 미술 읽기: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김홍희 저, 열화당)의 영문판 『Korean Feminist Artists : Confront and Deconstruct』의 출간 기념 토론 행사가 열렸다. 이어 13일에는 아시아 여성 문학가로는 최초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이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Hyundai Commission : Mire Lee : Open Wound》 전시 전경 ⓒLarina Fernandes/Tate
양혜규, 보는 만큼의 세상
헤이워드 갤러리에선 양혜규 작가의 개인전 《Leap Year》(2025년 1월 5일까지)가 열렸다. 전시 제목인 ‘Leap Year’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윤년’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날’과 ‘달’, ‘해’의 개념, 그리고 그 개념의 오차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때로는 사라졌다 나타나는 특별한 시간성을 의미한다. 전시 제목은 경계가 없는 ‘개념’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작업과 퍽 잘 어울린다. “딸랑, 딸랑” 방울 소리를 내며 발을 걷어내는 일종의 의식을 치르고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면 공간 가득 작가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양혜규의 조형 언어 ‘블라인드’와 ‘조명’, ‘방울’과 ‘직조된 바구니’ 등이 한꺼번에 눈에 담긴다. 여느 회고전처럼 연대 순이나, 혹은 일련의 주제로 분리해 기획하지 않은 덕분에 작업은 더욱 얽히고설키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연다. 관람객은 이 복잡한 코드를 읽어내기 위해 한껏 집중한 모습이다.
늦여름 밤 평상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보지 않은 이가 그 시공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가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 운동인 ‘시오니즘Zionism’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문화·신앙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전시 설명 문구가 친절하면서도 친절하지 않게 느껴진다. 일상의 재료를 사용하되 세련되고,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작가의 방식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더욱 이질적으로 느끼게 한다. 전시에 대한 영국 언론의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별점 1점을 주며 혹평을, 또 다른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별점 4점을 주며 후한 평을 내렸다.) 우리는 아주 작은 바늘구멍을 통해 내가 보는 만큼의 세상을 본다. 각자의 렌즈를 통해 각자의 해석으로 읽어내면 그만이지만 읽어내려는 노력이 없다면 작가의 작업은 그저 일상적 재료의 조합으로 남을 뿐이다.
이미래, 공간의 무게와 작품의 힘
전시장에 들어서면 으레 시각적 자극에 압도된다. 하지만 테이트 모던 터바인홀에 설치된 이미래의 작업 ‘Open Wound’는 온몸의 감각을 깨운다. 고정되지 않은 비정형의 철사 구조물 위에 텁텁한 색으로 물든, 처참하게 찢긴 천이 주렁주렁 매달려 미세하게 움직인다. 깊이 걸어 들어가보면 이 거대한 생명체의 심장부에 다다른다. 천천히 돌아가는 기계식 회전 장치는 거대한 구조물에 불규칙한 움직임을 만든다. 뚝뚝, 철판 위로 갈색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일은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사람 이면의 감정, 비참하고 슬프고 무섭고 역겨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목표라 하니 성공한 셈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공간은 과거 런던 템스강 남쪽Southwark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던 발전소 Bankside Power Station였다. 2000년 이후 도심 재개발 사업이 시행되며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주변은 빈민가였다. 정수 시스템이 체계화되기 이전 많은 사람들은 오염된 식수를 마시고 병들었고, 1952년 런던 스모그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지역도 발전소 주변이다.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가난, 누군가에게는 그마저도 희망이었을 이곳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 많은 영혼의 감정이 작품의 근원이 된다. 매년 이 공간에 설치된 일련의 작업은 터바인홀이 주는 공간의 무게와 힘을 겨뤘다면, 이미래의 작업은 공간 자체를 산업 구조의 자궁으로 상정하고 그 공간에 기생하며 관람객에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글 이윤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