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ASSOCIATED

10월호

거대한 비둘기가 도로 위에서
우리를 바라본다면

이반 아르고트, <공룡>, 렌더링 이미지, 작가 제공

7년 전, 노후한 서울역 고가차도를 보행로로 바꾸는 프로젝트로 떠들썩했던 서울을 기억하는지. 시민들은 이 고가가 제2의 하이라인High Line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도시 재생의 세계적인 선례, 뉴욕의 하이라인은 2009년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의 고가 철길을 자연 친화적인 공중 보행로로 탈바꿈한 1.6킬로미터 길이의 공원이다. 조경 및 공공미술로 꾸민 철로는 당시 ‘서울로7017’ 프로젝트의 이상적인 모델로 한국에 크게 각인됐다.

하이라인 파크의 보행자와 휴식하는 시민의 모습 ⓒTimothy Schenck/Friends of the High Line

대화를 끌어내는 하이라인의 작품들
하이라인의 연간 방문객 수는 무려 700만여 명이다. 시민의 쉼터이자 필수 관광 명소인 만큼, 이곳에 설치되는 예술 작품은 뉴욕시가 추구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창이기도 하다. 하이라인은 ‘대화’를 도시 생활의 필수 요소로 꼽고, 시민의 대화를 끌어낼 작품을 주기적으로 설치·교체한다.

2019년엔 대형 공공미술 작품을 위한 광장도 조성했다. 30번가와 10번가 교차로 위의 하이라인 플린스High Line Plinth다. 한 작품이 1년 6개월씩 전시되며, 이곳의 작품은 보행자 외에도 10번가 도로를 지나는 이들이 매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10번가의 일일 통행 차량이 4~5만 대 정도라 하니,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만큼이나 수많은 시야에 노출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이곳에 오르는 작품의 위력은 대단할 수밖에.

2023년과 2024년 여름 플린스를 장식한 파멜라 로젠크란츠 <올드 트리> 설치 전경 ⓒTimothy Schenck/Friends of the High Line

그동안 플린스엔 공공 작품의 주제가 되지 않던 흑인 여성의 형상을 표현한 시몬 리Simone Leigh의 <브릭 하우스Brick House>(2019년 6월부터 2021년 5월 설치), 미국의 드론 전쟁을 비판한 샘 듀랜트Sam Durant의 <무제(드론)Untitled (drone)>(2021년 5월부터 2022년 10월 설치), 나무의 모습을 인체의 혈관처럼 묘사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한 파멜라 로젠크란츠Pamela Rosenkranz의 <올드 트리Old Tree>(2023년 5월부터 2024년 여름 설치)가 올랐다.

10월부터는 네 번째 작품인 <공룡Dinosaur>(2024년 10월부터 2026년 봄 예정)이 설치된다. 이 작품은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비둘기 조각이다. 아주 현실적으로 묘사된 이 거대 비둘기는 교차로 위에서 10번가를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게 된다. 작품의 렌더링 이미지는 대중에 충격과 흥미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제목은 작품의 크기와 비둘기의 조상인 공룡을 직접적으로 의미한다. 작가 이반 아르고트Iván Argote는 한때 지구의 주인이었지만 멸종된 공룡처럼, 언젠가 인간도 사라지거나 인류의 후손이 비둘기처럼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이 작은 비둘기를 바라보듯 비둘기가 우리를 바라보는 풍경은 기괴하지만, 한편 작은 존재에 대해 재고하게 만든다. 19세기 유럽으로부터 들어온 비둘기는 미국의 이민사를 상징하기도 한다.

다만 이 작품이 시각적 흥미를 넘어 내포된 의미를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뉴욕 시민은 과연 자신과 비둘기를 동일시할 수 있을까. 비둘기를 해로운 존재로 여기는 이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또 인구의 3퍼센트가 앓고 있는 조류공포증Ornithophobia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논란의 공공예술 작품들
공공예술은 한 예술가의 개념을 펼치는 팔레트이기 전에, 공공이 삶을 영유하는 장소에 세워지는 작품이다. 다양한 계층과 출신이 접하는 만큼 역사·문화적 맥락에 민감해야 한다. 이러한 민감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후 식민 지배와 인종 차별 관련한 기념물과 공공 조각품이 연쇄적으로 파괴됐으며, 미술관과 박물관에선 식민주의 역사관이 깃든 작품이 재논의되고 있다. 공공에 전시할 대상과 내용에 관한 의사 결정에 시민들이 더 많은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예로 19세기 브리스틀에 세워진 에드워드 콜스턴Edward Colston 동상은 그가 노예무역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2020년 강물로 던져진 바 있다.

플로리다 사라소타를 장식한 대형 조각 <무조건 항복>(2005) ⓒThe City of Sarasota

플로리다 사라소타에 설치된 7.6미터 높이의 조각 <무조건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 역시 이 현상을 잘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날의 키스를 담은 사진을 재현했는데, 사진 속 인물이 연인이 아니며 키스 역시 동의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져 일순간 성적 폭력을 담은 작품으로 전락했고, 이후 테러를 당했다.

장소와 조화를 고려하지 않아 논란이 된 작품도 있다. 1980년대 뉴욕 폴리스퀘어Foley Square에 설치된 강철 벽 <기울어진 호Tilted Arc>는 행인과 장소 간 상호작용을 변화시키는 설치 작품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접근은 신선했지만 실제로는 작품이 시민의 통행을 방해하고, 광장의 경관을 가리는 장애물이 되는 바람에 소송을 거쳐 결국 철거됐다.

대중의 눈길을 끌되 설치된 장소와 역사·문화적 맥락을 존중하고, 공공의 미적 욕구를 충족하면서 내재한 의미를 궁금하게 만드는 일. 또 그것을 사회적 담론으로 확장까지 해야 하는 공공예술. 그 과정이 지난함에도 불구하고 울림을 줄 대상의 범위도, 사회적 파급력도 커 예술가에겐 늘 매력적이다. 올가을 설치되는 아르고트의 <공룡>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공공의 미적 욕구를 100퍼센트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이외의 면에선 꽤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소통, 뉴욕이 바라는 대화의 불씨를 지필 것이란 점은 확실하다. 이 비둘기는 ‘바이럴의 시대’를 간파하고 있다.

글 전윤혜 음악평론가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