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아카이브
조우정
문학/시
연희문학창작촌 2024년 입주작가
청년예비작가로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한 조우정입니다. 등단하거나 개인 창작집을 발간한 적은 없지만 시 학회에서 문집을 제작한 경험, 문예지나 신춘문예 등 여러 곳에 시를 투고한 경험을 토대로 이곳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뜨거운 여름을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보내며 그동안 읽어본 적 없는 많은 글을 읽고, 써본 적 없는 많은 글을 쓰겠다는 당찬 포부로 입주했는데요, 현재 직장 생활과 창작을 병행하고 있어 침대에 누워 체력을 회복하는 시간이 많아 아쉬운 마음입니다. 아침마다 연희문학창작촌에 사는 수많은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출근하는 시간이 앞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계속 읽고 쓰고 싶습니다.
‘쓰기’와 ‘처음’에 대해 떠올리면 9살 무렵 일기장을 펼쳐두고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손에 쥔 채 울었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속상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꾸지람을 들은 것도 아니고 단지 일기 쓰기 숙제를 하기 싫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무언가 들통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감정이 아니었을지 추측해봅니다. 이후 일기장에 그림을 그려도 되고 시를 써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매일 일기를 쓸 정도로 좋아하게 됐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형식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해방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쓰기 힘들다는 마음이 다시 들면 무언가 들통날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닌지 되물어봅니다. 어디에서 시작돼 자꾸만 반복되는 불안인지 알고 싶습니다.
연희문학창작촌 입주작가로 선정됐을 때, (스스로 예술가가 됐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 연희문학창작촌 소셜미디어 계정에 작업이 소개되고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목소리가 전해지는 경험을 하면서 작가라는 자각은 외부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거창하고 비장할수록 예술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을지, 조금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이 과정은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도움이 됩니다. 혼자 동떨어져 숨어 있는 글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질문을 건네는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연희문학창작촌 소셜미디어에 시가 소개됐는데요. 방울토마토와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한 ‘작은 죽음 면담’은 비슷한 이유로 반복되는 죽음의 순간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가장 내밀한 곳에서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순간을 앞에 두고 면담하는 것처럼 질문을 건네고, 대답을 기다리는 화자가 그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시 학회에서 활동할 때는 각자 골라 온 문장이나 단어 중 하나를 놓고 시를 창작하곤 했습니다. 같은 단어에서 시작해도 전혀 다른 시가 되는 경험이 재미있어 열심히 시를 썼습니다. 혼자 시를 쓸 때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둔 문장이나 일상을 살아가며 생겨난 질문에서 주로 시작합니다. 전시를 관람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업 방식을 보고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문집을 준비한 작년 하반기에는 혼자 있는 공간에서만 글을 쓰는 오래된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사람들로 웅성거리는 환경 속에 저를 두고 글을 써봤습니다. 어떤 공간에서 쓰는지에 따라 또 다른 글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창작하고 퇴고했습니다. 균형을 맞추는 일은 매번 어려운 것 같습니다. 혼자 있거나 함께 있거나 비슷한 속도로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올해 만난 책 중에서 에스텔 비용 스파뇰Estelle Billion Spagnol의 『똑, 딱』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느 봄날 아침,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 태어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똑이와 딱이가 등장합니다.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던 둘은 잠시 떨어지게 되는데요. 서로의 부재 속에서 똑이와 딱이가 보낸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잠시 떨어져 있을 때 불안하고 외롭고 속상한 마음이 드는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책입니다.
현재 실감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기획자로 근무하며 다양한 기술을 접하고 있는데요. 이런 기술을 활용한 창작 작업 혹은 기술을 활용한 작업을 하는 작가와 협업해보고 싶습니다. 작년부터는 소리를 활용해 오디오 비주얼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관심을 두게 됐는데요. 이런 작업에 관한 프로그램을 가볍게 배우는 수업을 수강하며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 프로그램을 배우며 적합한 방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정리 전민정 [문화+서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