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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연극으로 아시아 한 바퀴
서울연극센터 ‘아시아 플레이’

이르게 뜨거웠던 지난 6월,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서울연극센터 1층 라운지는 새로운 희곡을 읽는 청년예술가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아시아 희곡 낭독공연 ‘아시아 플레이Asia Play’가 아시아 4개국의 희곡을 경유해 한국의 연극 창작 현장으로 연착륙하는 새로운 가능성의 순간이었다.

‘아시아 플레이’는 연극 장르 청년예술가 모임 청년예술가네트워크가 올해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한 워크숍 ‘프로젝트 3일’을 계기로 시작됐다. 만 39세 이하 연극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 3일’은 신진 배우 100여 명이 6명의 연출가를 만나 연습과 토론 등을 거쳐 공연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서울연극센터는 프로젝트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참여 연출가들과 함께 이번 무대를 마련했다. 서울연극센터가 이번에 처음 시작한 ‘아시아 플레이’는 청년예술가 8개 팀이 일본·태국·베트남·중국 등 아시아 권역의 작품을 매주 국가별 2편씩 낭독공연으로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어졌다.

일본, 블랙코미디의 순간
6월 6일, 일본 희곡으로 ‘아시아 플레이’ 여정의 첫 출발을 알렸다. 100여 명 관객이 1층 라운지를 가득 채운 가운데 시작된 첫 번째 작품은 일본 근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아리시마 타케오有島武郎의 ‘도모마타의 죽음’. 아틀리에에 모인 가난한 화가 다섯 명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전략을 세운다.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모델이 고른 한 사람을 요절한 천재 화가로 만들고, 그 그림을 그림상에 비싸게 팔기로 한다. 조민영 연출과 여섯 배우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낼수록 객석에서도 웃음소리가 커졌다. 모델이 칭찬인 듯 아닌 듯 요절한 화가 역할을 하게 될 한 사람을 고를 때는 관객도 함께 죽음이 누구의 것이 될지 점쳐보게 됐다.

다음으로 이어진 작품은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돋보인 ‘컨트롤 오피서’. 현대 일본연극의 대표 주자로 소개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의 단편 희곡으로, 올림픽 수영 출전권을 다투는 시합이 끝난 후 선수들의 대기 장소를 그렸다. 도핑 테스트를 앞둔 선수들과 도핑 검사원(컨트롤 오피서control officer)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일본 원자력발전소 이름을 선수 이름으로 사용해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은유를 그리는 이 희곡은 선수와 검사원 역할을 나눠 가진 배우들과 연출가 오세혁이 블랙코미디로 풀어내 객석의 분위기를 흔들었다.

태국, 아름답고 슬픈 청춘의 면면
조금 더 더워진 2주 차 6월 13일에는, 한국의 날씨가 태국 날씨와 비슷할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로 관객을 맞이했다. 첫 주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1층 라운지의 주황빛 소파를 활용해 무대를 꾸몄다. ‘사랑’을 주제로 한 연작을 집필하고 있는 태국의 극작가 숫카능 분나랏차다Sudkanueng Buranarachada의 희곡 ‘=3/4’가 더운 날씨와는 상반되는 풋풋한 커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1=1’이라는 수학 공식이 사랑의 수식에서는 빈자리로 완성되지 않기도 한다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엇갈린 사랑의 방정식을 다뤘다. 연출가 원지영과 배우들 덕에 태국 청년들의 연애 고민에 잠시나마 귀 기울이고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객석이 청춘의 사랑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말캉해지고, 태국의 사랑노래가 배경으로 흘렀다.

이어진 작품 ‘아무데도 없는 곳Nowhere Place’은 이런 분위기를 단숨에 무겁게 전환했다. 태국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담은 연극을 만드는 태국의 ‘국민 예술가’ 프라딧 프라사통Pradit Prasartthong이 태국 탐마삿 학살 40주기를 맞아 쓴 고발성 희곡이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신랑과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신부의 이야기가 교차해 1976년 10월 방콕 탐마삿 대학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으로 관객들을 이끌어간다. 중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대학을 에워싸고, 교정에 난입해 시위대를 무작위로 때리고 죽이고 고문하는 것을 고발하는 장면에 이르러 객석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리며 국가에 의한 학살을 다시 기억하게 됐다. 연출가 강훈구와 네 명의 배우,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전광판을 통해 영사된 사건의 기록사진이 관객을 한국과 태국, 더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사회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안내했다.

베트남, 현실보다 리얼한 인간 군상
6월 20일, ‘베트남 단편 소설의 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베트남의 희곡 작가 응우옌후이티엡Nguyen Huy Thiep의 희곡을 연달아 두 편 만났다. 응우옌후이티엡은 서른여섯의 나이에 첫 단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퇴역 장군’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이른바 ‘응우옌후이티엡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3주 차는 응우옌후이티엡의 ‘왕은 없다’로 문을 열었다. 베트남 개혁·개방 시대를 거치며 흔들리는 사회 구조를 응우옌시 가족의 일상을 통해 매끈하게 보여준다. 응우옌시 가문의 장남 껀과 결혼한 싱에게는 시아버지인 끼엔 영감과 네 명의 시동생이 생겨버렸다. 툭하면 욕을 하는 시아버지, 대놓고 이성적으로 들이대는 첫째 시동생, 집안일을 전적으로 도와주는 막내 시동생까지 가지각색 인물들이 막무가내로 드나든다. 시아버지가 노환으로 죽고 딸을 낳을 때까지 이어지는 시집살이를 희극적으로 묘사하면서 베트남의 전통적 가족 개념이 붕괴하고 인간이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연출가 김남언과 배우들이 그려내는 생생한 묘사와 연기에 객석에서는 ‘어, 저거 진심 아냐?’ 하는 웃음마저 터져 나왔다.

두 번째 작품 ‘강 건너기’는 관객들을 강가로 데려다 놓았다. 나룻배로 설정된 무대 위에는 더 다양한 인물이 등장했다. 스님, 시인, 교사, 도둑, 골동품 장수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루터에 도착한 배에 하나둘 올라타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제 한배에 올라타게 된 인물들은 도자기 병 하나를 놓고 옥신각신하면서 인간의 이중성과 복잡한 내면을 폭로한다. 연출가 연지아와 함께한 배우들은 인물의 내밀한 표현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작가의 의도를 탁월하게 구성해냈다.

중국, 젊은 예술가의 현주소
아직 초여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뜨거운 날씨, 6월 27일 일본과 태국·베트남을 거쳐 중국 희곡으로 ‘아시아 플레이’의 마지막 문을 열었다. 4주 차의 첫 낭독공연은 상하이희극학원 연출과를 졸업하고 연출과 작가·배우로 다재다능하게 활동하고 있는 리진웨이李金薇의 작품 ‘회장님의 일생’. 궁핍함에 몰려 해체 지경까지 내몰린 극단 ‘X화’가 해체를 결심한 날, 갑자기 한 억만장자가 연습실을 방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억만장자는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인생의 순간을 진실하게 연출해 준다면 고액의 사례를 지급하겠노라고 약속하고, 이를 듣고 있던 이들이 한바탕 아수라장을 연출한다. 연출가 이준우와 세 배우가 마치 현상금을 따내기 위한 현장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감칠맛나게 풀어냈다.

이어지는 마지막 공연은 ‘당신의 발톱’.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중국 차세대 배우이자 작가·작곡가인 장웨이룬???의 작품이다. 일생을 완벽, 정확, 엄격, 규율 속에 살아온 주인공이 ‘얼굴’에 열등감을 느끼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자는 급기야 성형외과 의사가 돼 인생의 모든 단계를 성형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인생은 어떤 선택을 하든 같은 길을 가게 되지 않는가. 연출가 정철과 배우들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되는 ‘인생의 갈림길’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 객석으로 전달했다. 특히 ‘당신의 발톱’은 작가가 ‘아시아 플레이’를 위해 쓴 신작으로, 작가도 직접 서울연극센터를 찾아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창작진과 관객을 만났다.

4주간 8개 팀의 낭독공연을 거치며 연출가와 배우들은 저마다 아시아 희곡을 통해 무대에서 대본의 확장성과 아시아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애썼다. 가깝지만 멀고, 멀지만 가까운 아시아 국가의 희곡을 펼쳐놓고 읽으며 자본주의의 첨병이자 식민 통치와 냉전으로 얼룩진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아시아의 현재를 두루 돌아보는 짧은 연극 여행이 됐다.

서울연극센터는 2014년부터 웹진 [연극in]에 게재되는 ‘10분 희곡’을 낭독공연으로 발전시켜 ‘10분희곡페스티벌’이나 ‘희곡제’로 무대화하는 등 창작 희곡 인프라를 확장하는 데 힘써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신진 극작가를 발굴하고 젊은 창작자의 네트워킹 플랫폼 역할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지난 5년간 운영한 10분희곡페스티벌의 뒤를 잇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서울연극센터는 이번 ‘아시아 플레이’를 통해 연극 장르 진입 단계 청년예술가를 뜻하는 ‘첫 배우’가 국내 미발표된 텍스트인 ‘첫 희곡’을 만나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앞으로도 ‘아시아 플레이’를 경유해 희곡과 연극의 새로운 목소리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글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팀 송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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