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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김리호

시각예술/디자인
@kimliho
신당창작아케이드 14·15기
입주작가(2023-2024)

저는 컨셉추얼 디자이너이자, 시각예술 작가 리호라고 합니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컨셉추얼 디자인Conceptual design을 공부하고, 지금은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입주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컨셉추얼 디자인은 순수예술과 디자인이 중첩되는 분야로, 그래픽·제품·패션·인테리어 등 전통적인 디자인 분야를 넘어 소재와 매체의 제한 없는 디자이너의 메시지 전달을 중요시합니다. 순수예술의 형식을 빌리지만 사용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경험을 좀 더 일상적인 영역에서의 디자인을 통해 경험하게 합니다. 저는 이를 바탕으로 배설의 순간을 유머러스하게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아트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원단과 종이같이 부드러운 재료를 좋아하긴 하지만, 장르와 소재, 매체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예술가가 되고자 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못 그린다’, ‘소질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 늘 스스로 미술에 재능이 없고 순수예술은 타고난 천재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도 직업을 가진다면 꼭 시각예술 분야이길 바라서, 디자인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학교에서는 아름답고 완성도 있는 결과물보다 생각하는 과정을 더 중요시했고 과정 없는 결과물은 그것이 얼마나 예쁘게 만들어지든 평가해주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은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던 ‘잘 만든 작품’과 ‘잘 그린 그림’에 대한 생각을 부쉈습니다. 그럼에도 예술은 타고난 사람만 할 수 있다는 제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저의 이상하고 못 그린 그림들을 진심으로 잘 그렸다고 하고, 저만의 표현 방식과 관점을 검열하지 말고 자유롭고 당당하게 표출한다면 분명히 멋진 예술가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계속해주자, 저 또한 자신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고 그때부터 진정한 예술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출입국신고서와 코로나19 검사 신청서 직업란에 예술가라고 썼을 때, 예술활동증명 완료 후 ‘예술인패스’를 발급받았을 때, 주변에서 저를 ‘작가님’이라고 부를 때 예술가라고 느낍니다. 사실 졸업 후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됐을 때는 직업란에 ‘무직’이라고 썼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작업을 한다고 말하곤 했지만, 작품을 팔아서 돈은 버는지, 이걸로 뭘 하는지 물어보면 할 말이 없었습니다. 판매는커녕 발표도 해 본 적이 없으니, 스스로도 예술가보다는 ‘예술가 지망생’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작업을 꾸준히 하는 데도 무직이라고 쓰는 게 마음이 아파 그다음부터는 그냥 예술가라고 썼는데, 그 순간 나도 예술가구나 싶었습니다.

대표 작품은 ‘유머 오브 언캐니Humor of Uncanny’ 시리즈입니다. 저는 항상 사람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건 저만의 경험일 수도 있는데요, 몸에 큰 상처가 나면 징그럽고 끔찍하면서도 동시에 계속 보고 싶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유튜브의 피지 짜기 콘텐츠 역시 지저분하다고 생각해도 저도 모르게 끝까지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쾌한 것들이 순식간에 신선하고 이끌리는 것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양가적 감정의 스펙트럼을 사람들이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언캐니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중 <유머 오브 언캐니>는 배설의 순간을 다룬 작품입니다. 코딱지 파기는 지저분하고 남들 앞에서 보여주기 힘든 모습이지만 막상 굉장히 시원하고 즐겁습니다. 어른들은 똥, 코딱지 같은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어린이들은 똥이라는 말만 들어도 굉장히 즐거워합니다. 저는 지저분하면서도 즐거운 배설의 순간이 선사하는 양가적 감정을 사람들이 직접 체험해 보기를 바랍니다. 이 작품은 입체 조형, 페인팅, 애니메이션 비디오, 체험형 워크숍 등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입체 조형 작품들은 코딱지를 숨기고, 코털을 뽑고, 피지를 짜고, 변기에 앉아 보는 등 배설의 순간을 직접 만져보고 착용하며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체험을 통해 관람객과 상호작용하고 주제를 직관적으로 전달함과 동시에 즐거운 예술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유머 오브 언캐니: 귀지와 코딱지》 전시 전경

제한된 조건이나 강제적인 상황에 부닥쳤을 때 영감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언가 너무 하기 싫지만 꼭 해야만 할 때,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꿔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것도 출발점에 관한 영감일 뿐이라, 작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인터뷰·드로잉·콜라주 등 방법을 사용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5월 1일부터 두 달간 DDP 갤러리문에서 진행한 《유머 오브 언캐니: 귀지와 코딱지》 전시가 앞으로의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전시실에서의 경험, 입장과 참여를 유도하는 것에서 배운 점이 많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만지는 것과 사람들이 실제로 만지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고, 그래서 작품의 내구성과 재료 연구의 방향도 달라질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관객, 특히 어린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더 안전하고, 재미있고, 망가질까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되는 전시를 기획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공부와 연구를 통해 주제를 발전시키고 작품에 또 다른 관점을 반영하고 싶습니다. 최근 사람들에게 작품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 ‘언캐니’라는 단어로만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많이 연구해 이 복잡한 감정이 혼재된 개념을 창조해 사람들이 특수한 경험을 하게 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반대로 아무 개념과 생각과 연구가 필요 없는 단순히 손으로 만드는 창작 활동도 하고 싶습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내용이 창작물을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동안 보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는데 한번쯤 왜 이걸 만들었냐는 물음에 ‘그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리 [문화+서울] 편집위원 전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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