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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D

9월호

세계 무대에 통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현장 취재기

8월 11일 어셔홀 무대에 오른 KBS교향악단
ⓒAndrew Perry/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8월 영국 에든버러에선 지금 가장 주목받는 클래식 음악·무용·연극 등 공연이 거의 한 달 내내 이어진다. 내한하면 순식간에 표가 동나버릴 이름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그런 와중에 에든버러의 관객들이 K-팝이 아닌 한국 공연을 보러 올까?
사실 그다지 걱정은 안 했다. 올해 4월 에든버러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프로그램 발표회에 참석하고 니컬라 베네데티Nicola Benedetti 총감독과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행사를 76회째 치르는데, 자신 있으니 이렇게 밀어붙이겠지.’
에든버러 출장에서 첫 취재는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이었다. 이 공연은 8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열렸는데 그중 이틀차에 보러 갔다. 페스티벌의 주요 공연장인 페스티벌극장Festival Theatre에 들어섰는데, 빈자리가 별로 없었다. 1층 객석 주변을 보니 백발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백인 관객이 많았고 2층과 3층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이날 1,200석 중 1,000석가량 찼다고 들었다.

페스티벌 메인 프로그램인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
ⓒJess Shurte/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그제야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 많은 사람이 ‘한국’과 ‘창극’에 관심이 있어서 왔다고? 앞자리 남성 관객에게 물어봤다. 그는 “오늘 공연에 관해 아는 건 방금 여기서 읽은 게 전부”라며 프로그램 책자를 흔들었다. 답을 못 찾고 궁금증이 더 커졌다. 그는 매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오는데, 올해는 한국의 창극이라는 새로운 공연이 있어서 정가 약 8만 원인 티켓을 사는 시도를 해 봤다고 설명했다.
관객의 정체를 알고 나자 이제 반응이 신경쓰였다. 첫 공연 때 눈물을 보인 이들이 있었다지만, 자막을 보고 낯선 발성의 소리를 들으며 극에 집중하는 것이 잘 될지 미심쩍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고, 마지막엔 대부분 기립했다. 아까 그 관객에게 공연이 어땠냐고 물었다. 그는 목이 멘다며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야 “감동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열정적이었고 헬레네(김준수 분)의 소리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스타 김준수를 콕 찝는 대목에서 여러 차이를 뛰어넘는 공통된 안목이 있음을 새삼 느꼈다.)
다음 날은 KBS교향악단과 10대 첼로 연주자 한재민의 협연이었다. 창극에는 ‘신기함’이란 치트키가 있다지만, 클래식 오케스트라 연주는 진검승부다. 이날 2,200석 규모 어셔홀Usher Hall의 3개 층 가운데 1·2층의 주요석은 다 찼다. 올해 페스티벌 프로그램에 사이먼 래틀 지휘 런던 심포니, 이반 피셰르 지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클라우스 메켈레 지휘 오슬로 필하모닉-피아니스트 유자 왕 협연도 있는데 (날짜는 다르지만) 이들은 왜 여기 왔을까.
1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협연이 끝나자, 옆에 앉은 두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오케스트라와 연주자가 아주 잘하는데, 이들에 관해 아는 게 있느냐고. 무대 위 연주자와 단원들과 같은 까만 머리니까 뭐라도 더 알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친구 사이인 그들은 부부 동반으로 왔으며, 아무런 정보 없이 낯선 교향악단이란 점 때문에 (정가 약 9만 원인) 티켓을 샀다고 했다. 전날 들은 얘기와 똑같았다. 한재민이 2006년생이라고 알려주자 깜짝 놀라고선, 전문적인 표현을 사용해가며 극찬했다.
이들은 1층을 내려다보며 대부분 관객이 자기들처럼 에든버러 지역 사람들일 것이라고 했다. 세계 최고 수준 공연을 꾸준히 들어온 이들이니 어지간한 소리에는 만족하지 못할 수 있겠다 싶지만, 2부에 KBS교향악단이 혼신의 힘을 쏟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가 끝나자 “브라보”가 나왔다. 옆 관객들도 “낭만적인 해석”이었다고 평하며 즐거워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음악 담당 대표Head of Music 앤드루 무어Andrew Moore도 KBS교향악단과 한재민을 선택한 것에 관해 “관객들은 새로운 오케스트라의 해석, 콩쿠르에서 수상한 신예 음악가의 연주를 궁금해한다”고 설명했다.
두 공연은 올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한·영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한국 공연을 5편 소개하는 ‘포커스 온 코리아Focus on Korea’의 일부다. 현악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도 초청받았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주영한국문화원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공동 주관하는 ‘2023 코리아 시즌’의 주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이번 페스티벌이 한국 공연을 초청할 만하다고 평가한 가운데 한국 측 후원이 더해지면서 10년 만이자, 역대 최대 규모 한국 특집 프로그램이 기획된 것이다. 올해 페스티벌엔 한국 외에도 몇몇 유럽 국가가 스폰서 명단에 포함됐다.
영국에선 이 밖에도 바비컨·더 플레이스와 같은 주요 대형 문화예술기관들이 공연 기획 단계서부터 한국과 협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단순 대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후원을 받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해당 공연 표가 팔릴 것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정하기 직전이나 이미 정한 후에 후원을 타진하는 경우도 있다. 런던 공연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후원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조금이라도 유리할 것으로 짐작되는 상황이다. 이는 세계 무대에 통하는 한국 예술가가 늘어나고 국가의 위상이 높아진 결과다. 그렇다면 후원의 기대 효과는 한국 공연 무대가 확대되고 이것이 다시 한국 공연계를 발전시키는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겠다.

최윤정 연합뉴스 런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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