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이면의 소리,
사운즈 온 쇼케이스 2023
‘사운드아트’는 아직 다소 생소한
예술 장르의 하나다. 음악이면 음악, 예술이면
예술이지, 대체 ‘사운드아트’는 무엇이란 말인가.
사운드아트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소리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인간의 여타 감각보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청각적 자극에 주목해 표현을 전달하는
예술 영역이다. 사운드아트는 지난 세기 처음 등장한
이후 때로 시각예술을 비롯한 다른 장르와 조응하며,
때로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발전해왔다.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한 국제사운드아트창작워크숍 <문래 공진Mullae Resonance>에 이어 2020년부터는 음악·사운드아트 특화 사업 <사운즈 온Sounds On>을 운영해오고 있다. 리서치·창작·쇼케이스 발표 지원을 아우르는 <사운즈 온>은 지난 4년간 총 53팀의 실험음악 및 사운드아트 창작 활동을 독려해왔다. 올해는 2022년 <사운즈 온> 리서치 공모 선정작을 기반으로 발전시킨 신작 3편 을 쇼케이스로 선보인다. 1년이 넘는 시간 세 명의 아티스트가 끈질기게 발전시켜온 사운드 아트 작품을 오는 8월, 문래예술공장에서 만나보자.
조은혜, <위대한 독재자>, 2019,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감시카메라 , 스테레오 사운드, 12×14.5×4m
<사이렌의 침묵The Silence of the Sirens>은
앰비언스를 통해 언어 소통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 또는 감추어진 것에 주목한다.
앰비언스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소리지만
좀처럼 인식되지 않거나 단순 소음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하나 분명 존재하고 미세하게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앰비언스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공간에 구현된 반응형 앰비언스는
관람객의 움직임을 유발해 미세한 차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탐험하게 한다.
전시의 제목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소설 『사이렌의 침묵The Silence of the Sirens』에서
가져왔다. 사이렌의 침묵은 그들의 노래보다
더 강력한 무기다. 침묵은 노래(언어)와는 달리
듣기와 이해의 방향을 고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침묵과 앰비언스처럼 표면적으로
들리는 것 너머의 무엇을 상상해보기를 바란다.
들리지 않는 것을 듣기.
사운드가 가진 두드러진 특성, 예컨대 시간성·현장성·비물질성·비시각성 등을 각 작업의 메시지에 맞게 활용하려고 한다.
누군가 전달했지만 전해지지 못한 것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동일하다. 다만 작품에서 표현하는 방식엔 변화가 생겼다. 2022년 리서치 단계에서 ‘오디오 레터 교환 워크숍’을 진행했고, 여기서 참여자들은 언어 없이 사운드를 교환하며 소통을 시도했다. 사운드 소통은 정서나 분위기를 교환하기 때문에 모호한 의사소통 방법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문득 이 모호함이 사운드 소통뿐만 아니라 언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에도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2023년 쇼케이스에서는 언어 소통에서의 모호함, 즉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나 소통의 과정에서 생기는 어긋남을 앰비언스로 표현해보고자 했다.
일상에 편재해 있으나 보이지 않는 사회 권력을 감각화해 주로 시각예술로 표현해왔다. 언어 역시 일종의 사회적 권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즘은 우리가 언어에 갖고 있는 믿음과 언어가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미학적으로 풀어내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김수아와 이번 작업 역시 함께했다.
좀 처럼 귀 기울이지 않았던 소리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사운드 간 미묘한 어긋남에 주목해주시기를.
8월 18일부터 27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래예술공장 1F 갤러리M30
게임 콘셉트 스틸컷 ⓒ김혜령
<Ate>는 서바이벌 호러 게임을 라이브
퍼포먼스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 속
불공평한 경쟁 구도에 놓인 아테나와 아라크네의
관계에서 플롯을 가져와 비틀었다. 가상의
시공간에서 아라크네는 직조에 대한 집착과 인정
욕구로 인해 섭식장애와 만성 소화불량을 갖게 된
인간으로, 아테나는 거대한 슈퍼컴퓨터와 같은 베틀
기계로 분해 그런 아라크네를 먹기 위해 소리로
유혹하는 역할로 설정했다. 플레이어는 물리적
실체가 없는 파동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감각에 기반해 게임을 컨트롤해야 한다.
공동 기획과 연출을 맡은 김혜령과
함께 각각 게임의 사운드와 비주얼을 조작하며
신(포식자)과 인간(피식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조이스틱을 밀고 당기거나 페달을 밟는 등 게임
컨트롤 인터페이스를 구동하는 행위는 신화 속
아테나와 아라크네의 직조 경쟁, 게임 속 플레이어의
공수 전환을 위한 경쟁 또는 두 퍼포머 간
매체 경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마침내
세 개의 레벨을 통과하며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의 근원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신적인 위장술의
베일은 점점 벗겨지고, 그제야 관객은 자신들이
무대의 배 속에 들어와 있음을 직감한다.
욕지기 또는 토할 것 같은 메스꺼운 느낌.
대학 졸업 후 영상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구조화된 형식에 맞춘 영상을 제작하는 곳이었고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자유로운 스토리텔링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 코로나 이후 유럽에서 현대미술·퍼포먼스·음악·클럽문화 등을 경계 없이 넘나드는 많은 작품을 보며 충격을 받았던 것이 나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사운드 디자인 레슨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음악·사운드아트·공연 기획 일을 시작했다. 사운드아트 작업에서는 과정 자체에 몰입하는 경험이 제일 즐겁다. 결과물도 물론 중요하지만, 소리를 직접 만들고 가공하는 과정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크게 바뀐 점 하나를 꼽자면 매체를 웹에서 게임으로 옮겨온 것. 매체가 바뀌면서 기존의 논리적이고 직설적인 내러티브를 현재 버전의 은유적이고 시적인 내러티브로 바꿨다.
신체적 트라우마를 동물적으로, 페티시즘으로 혹은 사변적 픽션과 내러티브로 표현하는 것. 트라우마를 욕망과 엮어 도덕적 판단이 불가능하게끔 플롯을 비튼 후 자극적인 방식으로 재현했을 때 오는 해방감이나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유해한 경험과 닮았지만 동시에 현실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가짜, 허구의 시공간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치유적인 힘이 있다. 어떻게 하면 음악·사운드와 공연으로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잘 먹었습니다.
8월 18일과 19일 오후 8시
문래예술공장 2층 박스씨어터
ⓒ이영
ⓒ이강혁
2021년 난치성 통증증후군을 진단받았다.
아픈 여성으로 살아가며 병원에서조차도 고통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일이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느낀 이 답답함이 어쩌면 괴물이 느끼는 마음과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은 언어가 아닌
신음과 울음소리로, 비명과 침묵으로 대체돼왔다.
앞선 세대의 여성들도 내가 ‘괴물소리’라는 새로운
언어를 떠올린 것 같이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라도
본인의 고통을 언어화하려는 시도를 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시도를 계승하며 이 작품을 통해서
아픈 여성 집단에 새로운 소통 수단을 제안한다.
<괴물소리: 갈라진 혀>는 ‘자음+모음’
형태의 기존 언어 체계를 해체하고 ‘사운드+모음’
형식의 새로운 언어로 선대 여성들의 텍스트를
독해한다. 또한 자체 제작한 악기를 통해 새로운
언어 ‘괴물소리’를 신체적으로 번역함으로써
선대 여성들과 내가 느낀 고통의 잃어버린 의미를
되살리고자 했다. 한 여성 괴물이 자신의 언어를
주체적으로 만들면서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발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소리언어 낭독극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사운드를 중심에 놓는 것. 기발한 아이디어나 형식이 포함되더라도 작업의 ‘사운드’가 좋을 때까지 다듬는 편이다.
‘괴물소리’라는 언어 형식이나 큰 주제는 바뀌지 않았다. 2022년에는 리서치를 통해 괴물들을 위한 언어를 만드는 오디오비주얼 작업을 했다면, 2023년에는 직접 제작한 웨어러블 악기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며, ‘고통의 불가능성’에 대해 좀 더 폭넓게 이야기해보고자 했다. 또한 쇼케이스를 선보이면서 분야별 전문가들과 협업하게 된 것도 큰 차이점이다. 텍스트 에디터 김동휘, 비주얼 총괄 록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불쾌, 불소통의 주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괴물’의 개념이나 추함, 사회의 터부, 사람들이 보기 꺼리는 것들이나 매끄러움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로 구체화하게 됐다. 내가 다룰 수 있는 툴의 범위를 넓혀서 궁극적으론 다층적인 감상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현재 테크노 프로듀서·디제이 ‘amu(아무)’로 활동하고 있는데, 새로운 전자음악 앨범을 내려는 바람도 있다.
퍼포머가 내는 ‘괴물소리’가 무슨 뜻인지 열린 마음으로 느껴주시길.
8월 25일 오후 8시와 26일 오후 5시
문래예술공장 2층 박스씨어터
글 연재인 서울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