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지 않는 진솔의 지휘봉
이름은 첫인상에 영향을 미친다. 지휘자
진솔을 처음 알았을 때, 그의 이름이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왠지 솔직할 것 같은 사람. 언젠가
그는 자기 자신을 두고 “무엇이든 해 보고자 하는
모험심에 약간의 반골 기질이 곁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본인을 이렇게 표현하는 솔직함이
멋있어 보였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그의 서초동
작업실을 찾았다. 만나자마자, 궁금했던 이름의
뜻을 물었다.
“부모님이 음악을 하셔서 계이름 ‘솔’을
이름에 넣은 거예요. 저는 사람이 이름 따라간다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해요. 음악에서는 ‘솔’ 음이
가운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진솔하고
깨끗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고요. 사전을
찾아보니 한 번도 빨지 않은 새 옷이라는 뜻도
있더군요. 진솔이라는 이름의 뜻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솔의 아버지는 작곡가 진규영, 어머니는
소프라노 이병렬이다. 아버지는 외동딸이 음악가가
되는 걸 반대하면서도 취미로 피아노와 작곡
이론을 배우게 했다. 불안정한 음악가의 길을 걷지
않았으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을 평생 곁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던 것이다. 그런 딸이
지금은 어엿한 프로 지휘자가 되어 바쁘게 포디엄에
오르고 있다. 음악가로 대성한 그를 보며 부모님은
어떤 조언을 해줄까.
“아무 말도 안 하세요. 그게 긍정의
뜻인가 싶기도 하고요. 이제는 저를 음악가로
존중해주시는 것 같아요. 아버지의 작품을
여러 번 지휘했는데, 리허설 때마다 늘 저에게
존댓말을 쓰세요. 제가 하는 작품 해석도
프로페셔널한 영역으로 받아들이시고요.”
진솔은 언론에 자신이 학교폭력
피해자였음을 밝힌 바 있다. 어두웠던 학창 시절,
친구가 되어준 건 게임과 독서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롤플레잉이나 육성 시물레이션 게임을
즐겼다. 주인공이 탐험하며 레벨을 높이고, 동료와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과정이 좋았다. 지독히
외롭던 때에 게임을 통해 타인과 나누는 소통은
위안이 돼주었다. 실제로 만나진 않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여러 캐릭터와 함께 있는 그 느낌이
좋았던 것이다. 마치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듯 소속감이 느껴지며 마음이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고.
“지금 다 극복하고 잘 지낸다고 해서
그때의 상황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당시에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거든요. 하루하루
별 의미가 없었는데, 책이나 게임마저 없었다면
아마 더 방황했을 것 같아요. 혼자서 무엇이라도
해 보려고 노력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게임을 즐긴다. 다만 바쁜
일정 속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건 힘들어서,
여유가 생기면 모바일 게임에 종종 접속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덕후’의 숨겨진 힘이 주목받고
있다. 한 분야에 푹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바꾼 ‘덕후’는 이전까지는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쓰였다. 특정 관심사에
깊이 빠져 고립된 생활을 하는 이들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특한 취향이 존중되는
오늘날에는 덕후가 트렌드를 이끌며 그 가치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 진솔은 스스로 ‘덕후’ 기질이
있다고 시원스레 인정한다.
“사실 지금 이 방(작업실)도 핑크색
인형으로 가득했어요. 오늘 인터뷰가 있어서
급하게 치워 놓은 거에요.(웃음) 저는 좋아하는
걸 모으는 게 부끄럽지 않았어요. 진짜 덕후는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거든요. 주변에 클래식
음악 덕후가 정말 많아요. 그분들을 보면 악기도
꽤 잘하고 음악적 지식도 상당해요. 현직으로
활동하는 클래식 음악 평론가들도 대학 때
음악 관련 동아리를 거친 분들이 많더라고요.
예전에는 음대를 나온 것도 아닌데 음악비평을
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갔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분들이 ‘진짜’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어느
분야에서나 덕후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솔은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은 지휘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만하임음대를 졸업한 그는 2015년 독일 바덴바덴
필하모니Philharmonie Baden-Baden를 지휘하며 정식
데뷔했다. 2017년에는 국내 최초로 게임음악
플랫폼 플래직FLASIC을 설립했고, 2016년에는
말러리안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가 ‘지휘’라는 꿈을 꾸게 된 건 10대 후반이었다. 결정적 계기는 일본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おざわ せいじ가 지휘하는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영상을 보고 나서부터다. 교회 성가대에서
지휘자를 종종 보긴 했지만, 전문 지휘자의
앞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때 지휘자가 하는
일이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정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연주자와 소통하며 방향성을 제시하는
오자와 세이지의 모습이 강렬하게 와닿았다.
“음악은 시간예술이잖아요. 무대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걸 해야 하죠. 오자와
세이지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의 모든 몸을
활용해 연주자들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더라고요. 영상으로 보니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어요. 눈빛으로 지시해서 음악을 만드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어요. 연주자들과 에너지를
교환하는 느낌이었죠. 자신의 기를 던져서
연주자의 기를 끌어내고, 그걸 다시 청중에게
보내는 시스템이 흥미로웠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합창지휘과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지휘를 배우며
처음 포디엄에 선 때 상상과 다른, 아주 이상한
느낌에 휩싸였다. 지휘하는 동작 자체가 어색하게
다가왔고, 뭔가를 지시하는 것도 애매했다. 이후
지휘에 필요한 동작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는데
그 느낌은 독일로 유학 가서도 이어졌다. 그는
최근에서야 지휘 동작에 관한 개념이 잡히기 시작한
것 같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지휘는 평생 연구해야
하는 분야”라고 진솔은 힘주어 덧붙였다.
“저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과 테오도르 쿠렌치스Teodor Currentzis를
좋아해요.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독특한 자세가 있는데, 처음엔 그 동작들이
이해가 잘 안 됐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느
순간 저도 그렇게 지휘하고 있고요. 그 동작들은
누군가를 모방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제가
원하는 음악을 위한 움직임이에요. 번스타인을
보면 자유로우면서도 분명한 음악을 제시해요.
쿠렌치스는 방향성이 마음에 들고요. 보통
쿠렌치스를 두고 무대 위 모습보다는 녹음이나
연주의 방향성을 논하는데, 음악이 독특하다는
평이 많죠. 물론 개성이 강해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특별한 걸 뽑아내는 도전적인
모습이 흥미로워요. 너무 눈치를 많이 보는 리더는
리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중심을 바로
세우고 도전적으로 단체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매력 있죠.”
대학에서 진솔은 지휘 외에도 대위법과
화성 공부에 푹 빠져 지냈다. 당시 음악 구조를
분석한 시간들은 지금 지휘하는 데 있어 자양분이
됐다. 그는 지휘 공부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 보면 좋겠고, 특히 샬랑Henri
Challan 화성학을 추천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푸가에 재미를 느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많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곡에서 힘주고
싶은 부분에서 푸가를 넣어요. 고전 작곡가들을
보면 뭔가를 주장하고 싶은 부분에서 푸가를 쓴
경우가 많죠. 푸가를 파고들면 지휘나 작곡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만하임음대 입학
시험 때도 클라우스 아르프Klaus Arp 교수님 앞에서
피아노로 푸가를 열심히 쳤던 기억이 나네요.
푸가를 좋아한다면서 어필했죠.(웃음)”
그는 만하임음대 오케스트라지휘과에
진학한 후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
처음 독일에 갔을 때, 한국에서 익힌 느낌대로
리허설에 임했더니 클라우스 아르프 교수에게
꾸중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수님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모두
동료라고 했어요. 그런데 ‘너는 수직 관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시더군요.
은연중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있었나 봐요.
독일에서는 수평적인 문화를 배웠습니다.”
현재 유럽과 미국 음악계에서는 ‘여성
지휘자’가 이슈다. 그동안 클래식 음악 장르 중
여성의 진입 장벽이 가장 높았던 분야는 지휘였다.
여성 지휘자의 역사는 천천히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 몇 년간 유럽과 미국의 주요 음악단체에서
여성 지휘자를 적극 등용하면서 새 시대를 열었다.
아울러 올해 개봉한 영화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수석 지휘자 리디아 타르라는 가상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개봉
이후 오히려 반여성적 영화라는 이야기가 나오며,
여성 권력에 대해 여러 논점을 던졌다.
“저도 그 영화를 봤어요. <타르>의
영화감독이 예술과 인성은 별개라고 생각한다더군요.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인성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음악이 완성된다고 봐요. 음악이
사회에 많은 도움을 주면 좋겠어요. 저 역시 그런
음악가가 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죠.”
근래 들어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게임음악의 예술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흐름을 타고 국내에도 게임음악 공연이 잇따라
개최되고 있는데, 게임음악 공연의 섭외 1순위
지휘자를 꼽으라면 단연 진솔이다. 2017년,
진솔은 게임음악 플랫폼 플래직을 설립했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즐기던 그는 문득 게임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의
주요 게임사에서 게임음악을 녹음할 때 해외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한다는 걸 알게 됐고,
국내에서 그 역할을 소화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예 게임음악을 연주하는 회사를 차린 것이다.
플래직이 하는 일을 간략히 설명하면 게임음악을
녹음·편곡·연주한다. 설립 초기부터 세계적인
게임사 중 하나로 꼽히는 블리자드와 지식재산권
계약을 맺으며 주목을 받았다.
“지휘자와 사업가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사실 플래직은 말이 회사지, 저는 연구소라고
생각해요. 우리 회사는 게임음악 관련 경험을
축적하며 수시로 바뀌는 저작권 상황에 발맞춰
나아가고 있습니다. 플래직을 게임음악 공연을
위한 선진 연구소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진솔은 활동 초창기에
‘게임음악 지휘자’로 명성을 얻었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게임음악 지휘자로만 이미지가
굳혀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이후로는 오히려 게임음악 관련 언론 인터뷰를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배우 이영애가
지휘자로 출연하는 새 드라마 <마에스트라>의
자문을 맡았는데, 그러면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일었다.
“대중이 생각하는 게 저와 참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떤 메시지를 전할 때
너무 전문적으로 하면 오히려 안 되겠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그동안 우리 음악계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압박감이 저에게도 은근 있었던 것
같아요. 융합예술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
이제는 제가 어떤 길로 가더라도 후배들에게 좋은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그가 꼭 지키고 싶은 건
‘지식재산권’이다. 그는 플래직이 “저작권을 완벽히
지키는 공연만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창작자의 권리를 악용해서 사업을 하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도 저작권에 관한 분명한
개념을 갖고 사업을 이어 나가려고 해요. 상업성을
따라가기보다는, 덕후 같은 마음으로 원하는 바를
차근차근 해나가고 싶습니다. 꼭 게임음악뿐만
아니라, 영화나 애니메이션 관련 음악도 깔끔하게
계약해서 정식으로 공연을 올리고 싶어요. 그게
플래직의 단기 목표죠.”
그의 ‘덕질’은 게임, 게임음악만이
아니다. 후기 낭만파 작곡가 말러의 팬덤
이름인 ‘말러리안’을 자청하는 그는 2016년
말러리안 오케스트라를 발족해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말러 교향곡
1·3·5·6·9·10번을 올렸고, 앞으로 5년 내에 모든
곡을 마무리하는 걸 목표로 잡고 있다. 말러리안
오케스트라 초기에는 전공자와 아마추어가
함께하는 방식으로 운영했지만, 7월 30일 열린
말러 교향곡 3번(2023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
선정작)부터는 전공자만으로 구성된 유스
오케스트라 시스템으로 변화를 꾀했다.
“말러리안 오케스트라는 비영리 단체인데
어떻게 운영해야 건강할지 운영진과 많이
고민했어요. 그러다 코로나19가 갑자기 닥쳤죠.
그 여파로 약 3년 동안 음악 전공생들이 오케스트라
경험을 할 수 없었어요. 큰 무대에 서지 못하고
졸업하는 걸 보면서 걱정이 됐어요. 말러리안
오케스트라가 음악 전공생의 교류의 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스 오케스트라 체제로 바꾼
겁니다. 지난 7월 공연의 오디션에서 모든 참가자와
면접을 진행했어요. 말러리안 오케스트라를 꼭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보니 저 역시
사명감이 생기더군요.”
게임을 좋아하던 어린 학생은 자라서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지휘자가 됐다. 그리고 30대 중후반에 들어선 지금,
진솔은 초연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길을 그리고 있다.
“마흔 살까지는 말러리안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싶네요. 이제는 현명한
성장을 고민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지휘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걱정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지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봐요. 앞으로 10년이 더 흐른다고
해도 저는 젊은 나이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열심히
정진하고자 합니다.”
작곡가 말러는 말했다. “중요한 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라고.
또한 “실패로 좌절하거나 세상 칭찬에 으쓱해져
한눈팔지 말고 흔들림 없이,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말러의
음악을 들으면 모든 음악에 자신의 갈등을 담은
것이 느껴진다. 진솔의 지휘에 호소력이 느껴지는
이유도, 그 역시 온몸의 기억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 아닐까.
글 장혜선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Studio Ke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