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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지구와 예술의 유연한 관계 맺기 지구와 예술_handshaking

5월 16일부터 29일까지 윈드밀에서 열린 〈2021-2022 공동창작 워크숍: 지구와 예술_handshaking〉(이하 〈지구와 예술_handshaking〉)은 ‘지구와 예술’이라는 열쇠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태어나는 순간 지구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 예술을 통해 지구와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는지 질문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대화의 장’ 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필자는 이 전시를 반드시 관람해야 한다고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전시가 미래 시점에서 오늘날의 지구를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정원 <섬의 지도> 섬으로 가는 길과 섬에서 채집한 먼지, 가로수 낙엽, 이끼, 나무껍질, 잡초, 빗물, 모래, 어망, 낚싯줄, 고무조각, 장갑, 비닐, 뉴락, 병뚜껑, 플라스틱 조각, 새우 껍데기, 게 껍데기, 조개, 해삼 조각, 바닷물, 해초, 녹조, 홍조, 우뭇가사리, 가변 크기 | 2022

〈2021-2022 공동창작 워크숍〉은 서울문화재단 4개 창작공간(잠실창작스튜디오·금천예술공장·서울무용센터·신당창작아케이드)의 전·현 입주 예술가들이 참여한 공동 창작 프로젝트이다. ‘지구와 예술’을 키워드로 1차년도(2021)에는 공동 창작을 위한 연구 및 작품 개발, 2차년도(2022)에는 작품 제작 및 발표 활동을 했다.

참여 팀(참여 작가)

움닷김현진, 문서진, 송주원, 이우주, 장해림, 전보경

비둘기들김은설, 김하경, 이민희, 정원, 정혜정

뷰티풀 플랜김영미, 손상우, 이선근

김영미, 손상우, 이선근 <B.P field> 복합 매체, 가변 크기 | 2022

예술과 지구가 관계 맺는 방법

‘비둘기들(김은설, 김하경, 이민희, 정원, 정혜정)’의 작업은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날갯짓이다. 이들은 ‘섬’이라는 키워드를 손에 쥐고 각자의 방법론으로 작업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만난 정혜정의 <X의 유령들>(2022)은 우주 속 지구, 지구 속 ‘나’의 관계를 복합 연동체로 이해한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지속되는 우주적·자연적 활동을 목소리, 사운드, 2D 화면 속 3D로 구현하며 혼합·교차·공존의 짧은 픽션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그 옆에 배열된 원통과 사각뿔 모양의 조각인 김은설의 <숨> (2022)은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낮은 소리의 근원을 향해 쪼그려 앉아 조각 가까이 귀를 대는 순간, 우리는 멀리에서 봤을 때는 단단한 것이라 믿었던 조각이 사실 종이로 만들어진 유약한 상태라는 사실을 깨닫게된다. 김은설의 이 작업은 ‘섬’을 미술의 문법인 조각으로 시각화한다. 그리고 소리라는 비물질적 요소를 매개로 관객에게 지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김하경은 ‘섬’이라는 지형지물에 필연적으로 전제되는 해변의 흙을 작업과 연계한다. 오랜 시간 침식과 풍화를 거쳐 땅으로부터 나온 부스러기가 흙이라면, 흙이 품고 있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쓰다듬으며 작가는 토기를 만든다. 그리고 이를 매개로 과거의 시간을 떠올린다.
개별 작가의 다양한 화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서로 다른 감각을 건드리며 전시를 한결 다층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물과 모래의 마찰, 마주침을 인간 존재에 덧대어 바라보는 이민희의 사진 작업 <詩, 그리고 멜로디>(2022)가 다소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면, ‘섬’에서 주워 온 재료(우뭇가사리, 녹조, 조개, 이끼 그리고 각종 바다 쓰레기까지)를 전시장에 끌어들여 관객이 현장과 직접적으로 관계 맺게 하는 정원의 <섬의 지도>(2022)는 실재적 감각을 적나라하게 건드리는 작업이었다.

전보경 <murmur> 16mm 필름, 2채널 영상, 라이트박스, 가변 크기 | 3분 | 2022 | 도움: 이우주

문서진, 송주원 <말문이 막힐 때, 옥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 | 2채널 영상과 옥수수 가면 오브제, 가변 설치 | 2022

인간과 지구의 관계에 대한 성찰

‘뷰티풀 플랜(김영미, 손상우, 이선근)’의 작업 (2022) 역시 다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창작 활동에서 필연적으로 배출되는 전시 폐기물이 지구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하면서 출발한 이들의 작업은 그 끝에 예지된 디스토피아적 결말을 가시화한다. 버려진 페트병 더미 너머로 흐릿하게 흘러가는 영상, 무력 전쟁이 발발한 2022년의 뉴스 조각, 썩지 않는 공산품과 라벨이 구성하는 종말의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책임져야 할 과거와 살아내고 있는 오늘의 미시적 모습과 다름없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인간은 계속해서 지구에 빚지고 있음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김현진, 문서진, 송주원, 이우주, 장해림, 전보경으로 구성된 ‘움닷’은 인간 존재를 ‘지구 방문자’로 전제하며 비인간적 관점에서 감각하기를 시도한다. ‘(인간이 아닌) 실체 없는 존재가 되어 지구를 바라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자문하는 순간 문서진, 송주원 작가의 <말문이 막힐 때, 옥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수>(2022)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알려준 작업이었다.
옥수수 껍질로 만든 탈을 쓴 퍼포머의 신체 움직임과 소리를 전면에 내세운 이 작업은 약 3800만 년간 인류와 땅으로 묶여 있는 옥수수를 소재로 과거, 현재, 미래를 엮는다. 퍼포머는 이리저리 몸을 가볍게 흔들며 리듬을 타거나 나른하게 소리 내 하품을 하며 눕는 한편 갑자기 미친 듯 질주하며 절규한다. ‘본능에 가까운 소리와 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이 미지의 멜로디는 고대의 언어일까? 미래의 언어일까?’ 고민하며 말라빠진 허수아비를 살피던 필자는 사라져 버린 인류의 흔적을 보는 기분을 느꼈다. 이 낯선 감각은 아마도 미래 시점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감각과 닮아 있을 것이다.
이 기분은 김현진의 (2022)을 보면서도 이어졌다. 이 작품은 풀과 나무보다 먼저 지구에 등장해 5억 년 동안 자연과 생명을 견인해 온 이끼의 근원과 모양을 탐구하며 대화를 나눈 일종의 기록 일지였다.
한편, 하늘 높이 공중에 매달린 장해림의 작업 <너와나는> (2022)은 흡사 유전자 지도와 같은 구조로, 모든 (비)생명체가 결국에는 하나의 덩어리임을 은유하는 듯 느껴졌다. 열화상 카메라로 비추는 색으로 구성된 세상의 모습을 회화적으로 풀어낸 이우주의 <온도색>(2022)은 영원불멸의 심상을 담아온 문인화 ‘괴석도’를 재해석한다. 그가 그리는 괴석도는 개별자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각자의 파동을 존중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필름과 무빙 이미지로 구성된 전보경의 작업 <murmur>(2022)를 살펴보자. 빠르게 돌아가는 무빙 이미지는 관람자가 객체가 되어 속도를 쫓아 대상을 강제로 응시하게 했다면, 필름은 관람자가 주체가 되어 각자의 속도와 걸음으로 이미지를 관찰하고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척점에 서 있다. 그의 작업은 인간과 기술의 맞물림과 어긋남 사이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놓치는 것, 진짜와 흉내 낸 것, 몸의 속도와 기계의 속도 사이의 균형을 가늠하게 했다.
전시 〈지구와 예술_handshaking〉의 작업은 다종다양한 방법으로 예술가가 지구에 말을 건네는 장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거리를 두고 작업을 바라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눈과 귀,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고 감각하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 나는 이것이 전시, 그리고 기획자가 관람자에게 제안하는 지구와 관계 맺는 또 다른 방법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지구, 예술, 전시의 삼각관계를 떠올리며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신지현_큐레이터 | 사진 이의록, 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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