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니는 ‘세계 최고 낙찰가 작품’의 현존 작가로 유명하다. 2018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호크니가 35살 때 그린 1972년 작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이 9,030만 달러(한화 약 1,019억 원)에 팔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병기 화백은 국내 최고령이자, 세계 최초로 100세가 넘어서도 개인전을 연 화가로 기록됐다. 20세기 세계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도 92세까지밖에 살지 못했다. 김 화백은 지난 2016년 100세에 개인전을 열어 화제를 모았는데, 이번에도 정정한 모습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두 화가는 ‘그린다는 것’으로 승부를 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본다는 것’은 두 화가의 평생 화두다. 호크니의 삶과 예술에서 기쁨의 원천은 ‘오랫동안 열심히 바라보는 것’이며, 김병기 화백도 100세가 넘어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 그린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두 화가의 그림은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수영장, 숲속, 풍경, 감나무 등 우리가 잃어버린 흔한 장면을 붓질로 살려냈다. 예술은 ‘지금, 여기’에서 보고, 본다는 것을 연결하며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봄, 그 생생한 ‘삶의 기쁨’을 함께 누려보면 어떨까.
1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 Presented by the artist, 2007.
2 김병기 <산의 동쪽-서사시>(Mountain East?Epic), Oil on canvas, 162.2x130.3cm, 2019.
현존하는 전설, 호크니의 아시아 첫 개인전 <데이비드 호크니展> 3. 22~8. 4,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고 평가받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영웅은 피카소다. 입체파의 아버지 피카소처럼 그도 3차원 세상을 2차원 캔버스에 담기 위해 소재와 표현 방식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약 12m의 폭에 50개의 캔버스로 조합된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 대표적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30여 년간 거주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다 2000년대에 고향인 요크셔로 돌아온 후, 야외에서 직접 보고 그린 풍경화 작업이다. 동양화의 다시점(이동시점)으로 오랫동안 ‘바라보기와 열심히 바라보기’를 자신의 눈으로 실천한 이 작품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번 전시는 영국 테이트미술관을 비롯한 총 8개의 해외 기관으로부터 작품을 대여해 회화, 드로잉, 판화 등 133점을 선보인다. 대표작인 <더 큰 첨벙>, <클라크 부부와 퍼시>를 비롯해 <움직이는 초점>시리즈, <더 큰 그랜드 캐니언>과 최근작인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 등 시기별 주요 작품을 국내 최초로 전시한다. 호크니의 80세 생일에 맞춰 2017년 기획된 이 순회전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미국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도 열렸다. 전시는 동성애자로서의 무수한 고민과 번민을 담아낸 수많은 드로잉으로 시작한다.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예술가의 초상>은 볼 수 없지만, 대신 그 그림과 비슷하지만 사람은 없는 <더 큰 첨벙>을 만날 수 있다.
103세 화백의 무한한 가능성 &김병기 <여기, 지금(Here and Now)> 4. 10~5. 12, 서울 가나아트센터
1916년 평양에서 출생한 김병기 화백은 2019년 4월 10일 103세 생일을 맞았다. 그날 신작 개인전을 연 그는 “나는 추상을 통과하고, 오브제를 통과해 원초적인 상태에서 그린다. 그것을 내 자신이 하고 있다”며 ‘지금 여기 살아 있는 화가’라는 자부심을 전했다. 그동안 무엇을 그렸는지 모를 정도로 아리송했던 그의 추상화는 100세가 넘어 형상과 정신의 교감이 합체된 그림으로 나타났다. 이번 전시에서 새로 선보인 신작은 누드화와 <다섯개의 감의 공간>, 노란색이 돋보이는 추상회화 등이다. 특히 역삼각형 속에 담은 소녀 (같은) 누드화는 3년 전 진짜 누드를 보고 그린 작품으로 순수의 세계를 보여준다. 질곡의 삶을 살아온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의 할머니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추상화가지만, 본다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최고령 화가에게 추상이냐 형상이냐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프랑스 미술가 마르셀 뒤샹을 롤모델로 해 혁신을 화두로 삼았던 김 화백은 ‘무엇이든 다 되는 세계,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유’를 획득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현역 화가인 그는 “우리나라는 단색이 아닌 오방색의 컬러풀한 나라다. 색채에 대한 욕망이 일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령의 화가와 작품은 일심동체다. 103세의 화백은 “그림이 다 됐다 싶으면 코끝이 찌릿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그때 손을 뗀다”고 한다. 그렇게 완성한 무한한 가능성의 시간, ‘지금’을 볼 수 있는 기회다.
- 글 박현주_뉴시스 기자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가나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