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환경의 난맥상을 돌파하기 위해, ‘연극의 공공성’이란 근본적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올해 몇몇 사건은 연극 창작의 열악한 현실을 민낯 그대로 보여주었다. 대학로극장 폐관에 즈음해 대학로 민간 소극장이 고사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알리는 ‘상여퍼포먼스’와 6월 김운하 배우의 죽음은 ‘가난한 연극인’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연극에 대한 낭만주의적 시선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문자적인, 아니 문자적 의미보다도 더 참혹한 상황임을 드러내주었다.
지난해 말 불거져 나온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 사건은 서울연극협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의 타협으로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축제 개막 직전 아르코대극장의 안전점검을 이유로 극장 사용이 결국 불허되었다.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 사건의 와중에는 ‘대학로 엑스(X) 포럼’이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100여명이 넘는 연극인이 모여 극장의 공공성과 서울연극제를 주제로 장시간의 포럼을 자발적으로 개최했다. 올여름 개막한 변방연극제는 ‘예술의 자율성’을 위해 공적 지원 ‘0’원으로 축제를 치르면서 크라우드 펀딩을 기획했고, 연극 및 예술계의 적극적인 지지로 4900만 원이라는, 그동안 변방 연극제가 공적 지원을 받았던 것과 똑같은 규모의 민간 모금을 성공시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온 이러한 사건들이 보여 주는 것은 무엇인가. 한편에는 연극인들의 열악한 생존 현실이, 다른 한편에는 지원기관과의 타협점 없는 대립이,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공적 지원에 대한 불신이 놓여 있다. 지원의 사각지대를 찾아내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대안인가. 그런데 지원기관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실에서 누가 그 대책을 만들어갈 것인가. 또 재원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정신승리법’으로 견뎌내야 하는 것인가.
지원 분야는 확대되었지만
연극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은 작지 않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간접 지원이라는 정책 방향에 따라 극장(예술전용공간 지원사업), 기획과 유통(한국문예회관연합회의 사업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제교류), 관객 개발 혹은 관객 지원(찾아가는 공연, ‘천원의 행복’류의 관람비 보조 사업) 등 지원 분야도 꾸준히 확대되어왔다. 기획인력에 대한 지원(예술경영지원센터)이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연극센터 등도 연극에 대한 공적 지원이다.
올 하반기에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타격을 입은 공연계에 긴급지원금이 투여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공공제작극장이 등장하면서 연극에 대한 공적 지원의 획기적인 변화가 왔다. 지원기관과 사업이 다양하고, 없어졌다 다시 생겨나는 등 사업의 지속성이 없는 데다가 사업의 미션과 운영 방식이 자주 변경되다보니 예술의 공적 지원에 대한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연극 창작과 창작자에게 지원이 한정되어 있던 것에 비하면 지원 분야와 규모는 확대되어온 셈이다.
반면 창작에 대한 직접 지원은 계속 축소되고 있다. 2006년 시작된 공연단체집중육성사업은 예의 간접 지원 방향에 따라 2009년 극장과 예술단체를 매칭하는 상주단체지원사업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7년차를 맞은 지금도 이 사업이 기초지자체의 문예회관 프로그램 공급사업인지, 예술단체육성사업인지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창작지원사업이 지자체 문화재단으로 이관되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직접 운영하는 유일한 창작지원사업이던 사후지원사업은 민간 극단의 높은 호응과 사업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이유나 설명 없이 폐지되었다.
‘창작산실’이 지원 규모와 편수를 확대하고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한 해 민간 극단이 연극제작에 대해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규모는 2000만~3000만 원 내외다.
대학로의 분화, 연극의 분화
공적 지원 방식의 변화와 더불어 대학로의 변화 또한 창작 중심 민간 극단의 제작 토대를 잠식하고있다. 지금도 여전히 ‘대학로’는 곧 ‘연극’을 의미할 만큼 확고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2007년 이미 소극장 100개를 넘어선 이후 극장은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대학로의 확장 (소극장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혜화역 주변으로 한정되어 있던 대학로는 이제 방송통신대 뒤편부터 혜화로터리 건너편까지 공간적으로도 확장되었다) 속에서 대학로 연극이 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신촌 등지에 흩어져 있던 민간 극단 운영 극장들이 대학로로 모여들면서 ‘대학로=연극의 거리’가 형성되었다면 2000년대 중반 이후 극장의 가파른 증가를 이끈 것은 개그 전용홀과 상업극이다. 그 과정에서 이미 대학로의 지형도는 변화되었다.
아르코예술극장 주변 대학로 중심부에 상업제작사의 뮤지컬이나 규모 있는 상업연극 혹은 오픈런 로맨틱코미디가 포진해 있다면 선돌극장, 연우무대, 게릴라극장, 혜화동1번지 등 극단이 운영하는 창작 중심 민간 소극장은 혜화동로터리 건너편으로 옮겨가 있다.
대학로에 연극 자원이 집중되었지만 상업적 공연물에 견주어 창작 중심 연극이 위기를 느낄 만큼 왜소해져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간 소극장 위기가 이슈로 불거지면서 올해 다시 탈대학로 논의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대학로 문화지구 지정 이후 상업극장의 팽창이 본격화 한 2000년대 중반에도 이미 이러한 논의가 있었다. 2006년 4월 서울연극협회는 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탈대학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의 70%가 탈대학로에 반대했다.
반면 대관료 상승 등 대학로의 여러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대학로를 상업적 공연의 거점으로 한정하고 비상업적 연극 거점을 새롭게 만든다거나 혹은 다거점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답변이 55%에 이른다.([TTIS] 2호)
이러한 상반된 진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듯이 제2의 대학로, 또 다른 극장가를 만든다 해도 현재 대학로의 문제가 다시 반복되리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그렇다고 소극장 밀집 지역을 해체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대학로 민간 소극장들이 엄청난 압박 속에서도 대학로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대학로라는 극장 밀집 지역의 인프라 때문이다. 연극계의 자원이 부족하다보니 대학로 주변으로 밀려나면서도 대학로를 떠나기 어려운 것이다.
‘창작 중심 연극’의 특화, 정책과 현장의 파트너십 회복
상업극과 창작 중심 연극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변화하는 현실에 무기력하다. 공적 지원의 근거라 할 연극의 공공성,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다중’과 ‘형평성’에 머물러 있다보니 공공성과 상업적 성과의 변별력이 없다. 도리어 공공 지원이 상업연극 제작을 부추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연극계의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공공제작극장이 스타 캐스팅 등 상업연극 제작을 모방하고 객석점유율을 성과로 앞세운다. 막대한 공적 지원이 민간 상업 제작과 경쟁하는 셈이다.
공공성에 대한 현장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창작자에게 지원이 돌아갔는지를 두고 ‘공공성’의 충족을 따지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에는 시장에서 실패한 예술에 대한 구휼이 여전히 연극 지원의 근거로 작동한다. 정책은 창작 중심 민간 극단들이 대학로 상업극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현실에는 속수무책인 채 시장에서 실패한 예술에 대한 구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원을 근거로 자생력을 강요한다.
상업적 성공과 구분되지 않는 공공성, 실패한 예술에 대한 구휼. 이 양극단을 근거로 작동하는 연극정책·예술정책은 창작자들을 이러저러한 미션을 내건 공적 사업의 용역사업자로 만들어왔다.
지난 7월 20일 개최된 ‘서울 연극 발전을 위한 열린토론회’ 장면.
상업극과 ‘창작 중심 연극’이 분화되어 있는 현실이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일례로 ‘연극 지원=대학로 지원’이라는 등식을 깨뜨려야 한다. 대학로에는 다양한 연극이 존재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중심을 형성해 대학로를 다양한 중심이 자리 잡은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창작 중심 민간 소극장들은 혜화동로터리 건너편에서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창작 중심 연극 벨트’로 특화함으로써 상업극에 밀려난 대학로 주변이 아닌 대학로의 분화에 따른 새로운 중심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장소적 특화가 비단 대학로라는 공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와 같이 상업극과는 다른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창작행위를 드러낼 수 있다면 창작 중심 연극 벨트는 대학로라는 특정 장소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민간 극단, 민간 소극장에 대한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연극의 다양성을 좀 더 쉽고 명료하게 관객들에게 알림으로써 관객의 선택권을 넓히는 것이 기도 하다.
지난 7월 20일 서울연극센터에서 개최된 ‘서울 연극 발전을 위한 열린 토론회’에서 제안된 서울시연극전용극장이 이 블록에 들어선다면 창작 중심 연극 벨트가 대학로의 또 다른 중심이 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정책과 환경의 난맥상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연극의 공공성’이 무엇인지 근본적 질문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상업적 성공과 공공성이 구별되지 않는 현실, 여전히 시장에서 실패한 예술에 대한 구휼이 완강한 지원 근거로작동하는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연극의 공공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설득해내야 한다.
연극의 공공성이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 등과 같은 이런저런 공공 정책,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연극 그 자체의 공공적 가치로 설득해야 한다. 민간극단의 자생력이든 연극인 복지이든 연극 그자체의 사회적 가치를 제고할 때 해결될 수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연극 지원의 한 극단인 ‘구휼’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연극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예술지원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공공기관과 연극 현장의 파트너십의 회복이 필요하다. 정책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념과 가치부터 미학 그리고 제도 사업의 실행까지 폭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그만큼 공공기관과 현장의 파트너십 없이는 현실에서 작동하는 실천이 불가능하다.
- 글 김소연
-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와 세상이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으로 공연을 보고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든다. - 사진 김창제
- 그림 손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