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대학 시절을
돌아보며
졸업을 앞둔 이들에게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대체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나와 동기들, 그리고 무엇보다 선배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보수적인 발레 전공인 우리는 그저 그런 '예쁜 발레리나'는 거부했다. 쇼트커트에 이상한 옷을 입고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우리 학교는 한 학기에 한 번씩 창작발표회가 있었는데, 우리는 마치 창작 발표회를 하기 위해서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처럼 열정을 불태웠다. (원래 이상한 애들일수록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외부 공연이 금지된 대학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너지를 쏟아낼 거의 유일한 기회였으니까.
한 번은 동기들과 당시 베스트셀러이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작품화하기로 했다. 극 중 사람들이 하얗게 눈이 멀어가는 장면을 밀가루로 표현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곧 교수님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거, 청소는 누가 하느냐." (사실 밀가루는 지금도 무대에서 사용하면 안 되는 소품이다. 하지만 무지했던 우리는 교수님들이 우리를 억압하기 위해 일부러 못 쓰게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탈의실에서 나누고 있는데 한 선배가 다가와 "그냥 해. 우리는 무대에서 식칼도 들었어." 이러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힘을 얻은 우리는 리허설 때는 조용히 있다가 공연 무대에서 밀가루를 투척했다. 막이 내려가기도 전에 교수님들의 웅성거림이 들렸고, 결국 불려 가 크게 혼났지만, 속으로는 어딘가 의기양양하기도 했다.
별거 아닌 에피소드지만 나는 오래 그 기억을 품고 있다. 투쟁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자신에게 도취한, 20대의 들끓는 에너지를 수렴하는 하나의 사건. 돌이켜 보건대 어쩌면 그 힘으로 아직도 창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지금은 반항하지 않고 온갖 규칙에 얽매여 있으니 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시절, 에너지 넘치던 우리에게 대학이 조금만 더 너그러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품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 연결해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 공모에 참여해보라는 말조차 듣지 못했다.
사실 우리 예술교육 시스템에서 대학은 예술계 진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이후의 창작 또한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학을 졸업한 예술가의 선택이 동 대학원 입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 그 때문이다. 대학 외에는 활로가 너무 적은 것이다. 사실 심각한 문제다. 특히 자기 작업인 창작에 있어서는 위계를 형성하는 교수와 학생, 선후배 관계 안에서 제대로 뜻을 펼치기 어렵다.
그렇다보니 나를 비롯한 '이상한' 발레 전공 학생들은 졸업 후 갈 곳이 없었다. 졸업 전 나는 대학에서 배운 것이 다 쓸모없다며 울었고,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아노미 상태였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진부하고 촌스럽다고 생각되는 것은 버리면서 살아왔다. 내 몸에 남아 있는 발레 근육까지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를 외쳤다. 그중에는 좋은 것도 있었을 텐데, 그것을 가리는 부조리와 억압만 생각났다. 좋은 부분을 남길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이 뒷받침됐다면 달랐을까? 그런데 지금 와서 깨달은 것은, 엄밀하게는 처음부터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경험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애써 돌아보기만 한다면 모든 경험에 건질 것이 있다. 내가 인제 와 발레를 돌아본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가끔 대학 창작발표회에서 선보인 우리의 작품을 생각해본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만 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 너무 멀리 왔고, 함께한 대학 동기들과는 뿔뿔이 흩어졌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 옆에 사람들이 남아 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대학이라는 굴레 속에서 갑자기 묶인 인연이었을 뿐 각자의 길은 또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때 서로가 주고받은 에너지는 인생에 다시는 없을 큰 정동情動이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졸업 예정자들이 있다면,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열정을 불태우시라 권하고 싶다. 거기서 답을 찾아보고, 안 되면 나중에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된다. 단지 쉽게 버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윤상은 안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