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예술의 현재와 공진
‘언폴드엑스’로 짚는 동시대 예술의 흐름
다원예술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단일한 장르나 매체에 고정되지 않는
첨예한 실험이자 행정적 필요에 의해 등장한 장르,
그 모든 것이 다원예술의 정체성이라 할 것이다.
예술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 ‘다원多元’은 더 이상 장르의 혼합을 뜻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다원예술은 서로 다른 감각, 기술, 그리고 사회적 관계가 교차하는 플랫폼의 실천에 가깝다. 퍼포먼스, 미디어, 디자인, 사운드, 인공지능, 심지어 도시 데이터까지 하나의 서사적 장 안에 공존하며, 다양한 이들 언어가 하나의 서사 구조 속에서 흔들리고 맞물리고 스며든다. 예술의 ‘결합’은 서로 다른 감각·시간·기술·관계가 공존하고 공진하는 생태로서 작동한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10년간 미디어아트의 전개를 거치며 성숙했다. 2010년대 초반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주로 도구적 실험과 협업 모델에 머물렀다면, 팬데믹 전후 감응 기술emotive technology과 도시·사회적 인터페이스로서의 예술이 등장했고, 그에 대한 관심과 대응이 활발했다.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은 개인의 감정이나 신체, 그리고 도시의 리듬과 연결됐으며, AI의 급진적인 등장과 보급은 새로운 관계에 대한 관심과 실질적으로 당면한 문제로 다루는 것을 가속화했다. 실험과 경계 확장의 최전선이던 미디어아트는 예술 전반에 접점을 형성했으며, 이제 기술의 최전선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는 현실과 감각을 구성하는 하나의 매개로 기능하고 있다.
본격적인 진행에 앞서, 이 글의 중심이 되는 ‘다원예술’의 개념을 먼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다원예술은 단일한 장르나 매체에 고정되지 않는다. 20세기 초 다다Dada와 플럭서스Fluxus의 이벤트 실험, 인터미디어의 감각 실험을 거쳐온 흐름은 ‘매체 결합’보다 ‘감각·매체·관계가 서로 진동하는 장’이라는 이미지를 선사한다.
한국에서 ‘다원예술’이라는 용어는 다른 의미도 지닌다. 이는 제도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행정 카테고리이기도 하다. 즉 기존 장르 체계 안에서 포착하기 어려운 새로운 실험을 포괄하기 위한 분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언폴드엑스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다원예술은 이러한 행정적 분류 차원의 의미를 넘어선다. 감각·기술·도시·신체가 서로 공진하며 생성되는 동시대의 실천, 즉 장르 경계를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의 방식에 훨씬 가깝다. 국내 동시대 예술 현장의 논의에서도 다원예술은 ‘장르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전복과 실험을 지향하며’, ‘다매체성과 동시대적 가치를 탐구하는 창작’으로 이해되고 있다.
제도에서의 맥락을 다시 살피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장르 예술로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접근’을 지원하기 위해 다원예술을 정책 범주로 확립해왔다. 이는 2000년대 이후 미디어아트가 기술매체 기반의 실험으로 자리잡는 동안, 다원예술이 한편으로는 기술을 포함하되 이를 넘어서 감각과 관계의 구조를 탐구하는 장,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장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새로운 예술을 수용하는 장으로 기능해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디어아트가 펼친 ‘새로운’ 기술 중심의 면모와 그에 대한 관점은 다원예술의 영역 안에서 관계적·공진적 실천으로 다시 사유된다. 기술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며, 감각을 매개하고 사람·기계·도시를 잇는 네트워크적 노드로 작동한다. 다원예술은 미디어아트를 포함하는 더 넓은 그릇이 되고, 미디어아트는 그 속에서 자신의 의미와 역할을 재정의할 수 있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언폴드엑스 2024를 둘러보는 관람객의 모습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레 이번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5와 연결된다. 페스티벌의 주제 ‘관계들의 관계’란 단순히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장을 넘어 감각과 매체와 관계가 서로 접히고 펼쳐지는 다원적 장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unfold’라는 이름처럼, 축제는 기술의 결과물보다는 열림과 전개, 생성의 과정process of unfolding에 주목한다. 이곳은 이제 예술가·기술자·시민, 그리고 인공지능이 함께 만드는 실험실이자, 데이터·신체·공간이 서로 접히고 풀리는 현장이다. 또한 올해 축제의 주제는 기술과 예술, 인간과 비인간, 도시와 신체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관계를 ‘제어’하기보다, 그 관계들이 스스로 드러나고 변주되는 과정을 하나의 예술적 장으로 삼겠다는 선언에 가까울 것이다. 여기서 기술은 무언가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관계들이 스스로 얽히고 풀릴 수 있도록 감각을 열어주는 매개로 작동한다.
다원예술의 핵심은 ‘융합’이 아니라 ‘공진’이다. 서로 다른 영역의 언어와 감각이 충돌하며 생겨나는 ‘진동의 미학’. 그 안에서 예술은 기술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사회를 재조직하는 감각적 실험으로 작동한다. 언폴드엑스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비전이다. 기술은 이미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조건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그 조건을 감각화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중요한 활동 중 하나가 오늘의 다원예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기술과 예술의 새로운 관계뿐만 아니라, 관계들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미래의 감각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글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