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묵힌 뉴미디어 예술, 서울의 미래와 융합하다
서울은 분명 15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융합예술의 맛집이다.그렇다면 이제 서울이 선보이는 예술을 맛보기 위해 긴 여행을 감수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그러한 미래를 꿈꿔봐도 좋지 않을까?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흑백요리사>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세 개의 별을 부여받은, 일명 ‘3스타’ 레스토랑의 스타 셰프를 심사위원으로 내세우며 참가자들의 다양한 미식을 평가하는 서바이벌 요리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다양한 음식은 심사위원의 날카롭고 섬세한 맛의 기준에 의해 선별됐고, 시청자들은 지원자의 환희와 좌절, 노력과 실패의 과정을 함께하며 호평 속에 종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소위 ‘맛집’이라고 이름난 다수의 레스토랑·음식점 셰프가 지원해 더욱 화제가 됐다. 서울문화재단의 융합예술에 관한 글에서 뜻밖의 요리 프로그램을 언급하는 이유는, 전 세계의 문화예술 지형도에서도 우리가 ‘맛집’이라고 명명하듯 특정 예술을 대표하는 상징적 도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역시 문화예술을 선도하는 도시 중 하나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수도 서울을 향한 궁금증은 K-팝을 비롯한 대중문화의 힘으로부터 발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서울문화재단은 대중예술 외에도 폭넓은 문화예술의 지형을 형성하고자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드라마를 비롯한 문화 콘텐츠로 아시아 중심의 시장을 구축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반의 시기를 ‘한류 1.0’이라고 가정해보면, 이후 K-팝 열풍을 통해 미국과 유럽으로 지역적 확산을 이뤄낸 2010년대의 시기를 ‘한류 2.0’, 그리고 그러한 흐름을 전 세계로 확장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최근의 ‘한류 3.0’ 시기에 이르기까지,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국내 문화예술 콘텐츠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지속됐다. 특히 2010년대 중반부터는 ‘융합’이라는 화두를 통해 한류 콘텐츠의 지평을 더욱 확대하고자 노력하는 상황이다. 서울문화재단은 다양한 문화예술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흐름을 견인해왔는데, 다양한 부처와 융합예술 및 융복합 콘텐츠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수행하는 동시에 대중에게도 융합적 문화예술 콘텐츠를 전시하고 교육하는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왔다. 이러한 시도 중 가장 핵심적인 사업이 ‘언폴드엑스Unfold X’다.
‘언폴드엑스’는 무엇인가를 ‘열어서 보여준다’라는 프로그램의 타이틀이 지닌 의미처럼 새로운 융합예술을 선보이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서울문화재단의 대표적 행사인 동시에 플랫폼 이름이기도 하다. 이는 동시대 문화예술이 최근의 과학 기술적 상황, 특히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제기되고 있는 이슈와 예민하게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문화예술을 선도하는 수많은 도시는 이러한 진보적 예술의 양태를 지원하고 발굴하는 실험실 혹은 페스티벌 같은 문화적 장을 구축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는 전 세계의 예술 행보를 이끄는 문화적 선구자의 위치를 점유하기 위함이자 예술의 동시대성을 해당 도시의 정체성으로 흡수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서울시는 융합예술이라는 키워드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흡수하며 자신의 예술적 역동성을 담보해왔다. 과학기술 및 예술을 융합하고자 시도하는 창·제작자들을 지원하며 그들과 함께 새로운 예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결과물의 일부를 세상에 내어놓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 그것은 매우 의미 있는 행위이자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조심스럽고 의심 섞인 다수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현재의 ‘언폴드엑스’가 2010년 ‘다빈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해 2014년, ‘다빈치 크리에이티브’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하기까지 행사의 성격과 이름을 바꿔온 지난한 역사를 되돌아보면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의 정체성 변화는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급변하는 문화예술의 흐름을 상기해볼 때 어쩌면 이러한 문화예술 지원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더욱 큰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새로운 융합적 아이디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험 플랫폼인 ‘다빈치 아이디어’가 좀 더 다층적인 수용자에게 전달되고자 프로그램을 확장한 ‘다빈치 크리에이티브’로 변화하며 10년 동안 다양한 실험을 통해 융합예술의 가능성을 지켜봐왔다면, 이제 앞으로의 10년을 미지의 영역을 ‘탐구explore’하고 감각을 ‘확장expand’하며 새로운 예술적 ‘체험experience’을 생성하는 상징적 문자 ‘X’로부터 표상하고자 하는 서울문화재단의 시도는 단순한 변화라기보다는 일종의 진화다.
앞서 요리 프로그램의 비유로 돌아가보자. <흑백요리사>에서도 한국의 ‘장’을 주제로 새로운 요리를 선보인 바 있는데, 서울문화재단은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융합예술, 혹은 뉴미디어 예술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15년 이상 정성스럽게 담가온 셈이다. 오래 묵혀온 품질 좋은 장이 맛집의 보증수표라면, 서울시는 분명 15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융합예술의 맛집이다. 그리고 ‘언폴드엑스’는 서울시·서울문화재단의 대표 메뉴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도 대단한 ‘미슐랭 3스타’라는 표식의 의미는 해당 레스토랑을 방문하기 위해 긴 여행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음식에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서울이 선보이는 예술을 맛보기 위해 긴 여행을 감수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그러한 미래를 꿈꿔봐도 좋지 않을까.
글 유원준 영남대학교 미학미술사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