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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10월호

공연장의 조명이 도시를 밝힐 때

악명 높은 물가에도 사람들이 뉴욕을 떠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문화예술의 수도’답게 다양한 문화 행사가 곳곳에서 무료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로벌 도시의 성장에는 언제나 문화예술이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아웃 오브 도어스’에 이어 링컨센터가 2022년 새롭게 시작한 ‘서머 포 더 시티’
ⓒSachyn Mital/Lincoln Center

“베토벤이 비틀스를 앞지른 밤”, “풀밭 위의 베토벤” ….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찾은 1965년 ‘콘서트 인 더 파크Concerts in the Parks’(이하 파크 콘서트) 관련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지금도 뉴요커의 사랑을 받는 뉴욕 필 파크 콘서트는 1965년 8월 10일부터 28일까지 뉴욕시의 5개 행정구인 맨해튼·브루클린·퀸스·브롱크스·스태튼 아일랜드에서 12회 야외 공연을 펼치며 시작됐다. 당시 윌리엄 스타인버그·오자와 세이지·알프레드 월렌스타인이 각각 지휘를 맡은 3개 프로그램이 4회씩 공연됐다.

뉴욕 필의 파크 콘서트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본사를 둔 맥주회사 슐리츠의 초청으로 뉴욕 필이 1964년 밀워키에서 공연한 데서 영향을 받았다. 당시 밀워키에는 오케스트라가 있었지만, 경음악단에 가까웠다. 그래서 슐리츠는 지역사회 공헌 차원에서 뉴욕 필을 초청해 밀워키 시민을 위한 무료 콘서트를 열었다. 밀워키의 워싱턴 파크에서 열린 콘서트는 3만 명이 관람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에 뉴욕필이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에서 무료 콘서트를 개최하는 아이디어를 뉴욕시에 전달했다. 그러자 뉴욕시가 한발 더 나아가 이를 5개 구의 공원으로 확대할 것을 요청했다.

1965년 8월 10일 ‘뉴욕의 심장’으로 불리는 센트럴 파크 내 대형 잔디밭 ‘시프 메도Sheep Meadow’에서 마침내 뉴욕 필의 파크 콘서트가 막을 열었다.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공연됐다. ‘합창’은 음악사에서 교향곡에 처음으로 성악이 동반된 작품이다. 이날 뉴욕 필과 함께 성악가 4명과 합창단이 등장했다.

놀라운 것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듣기 위해 시프 메도에 7만 명이 운집한 것이다. 며칠 뒤 뉴욕 셰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인기 밴드 비틀스 공연에 모인 5만 5천 명보다 많은 수치였다. 뉴욕의 링컨센터 같은 콘서트홀에 한 번도 가지 않았을 수 있는 관객이 센트럴 파크에 교향곡을 들으러 온 것이다. 물론 무료 공연이었지만, 뉴욕 필과 뉴욕시 모두 이렇게 많은 시민이 클래식 음악 공연을 보러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첫날 공연을 시작으로 제1회 뉴욕 필 파크 콘서트가 대성공을 거두자 매년 열리는 것으로 정례화됐다. 1966년에도 5개 구에서 12회가 열렸는데, 첫날 센트럴 파크에서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로 연주된 베토벤 교향곡 3번과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공연에는 7만 5천 명이 운집해 전년도 기록을 깼다. 이후에도 매년 관객 기록을 경신하더니 알도 체카토 지휘로 차이콥스키의 곡만 연주한 1973년 센트럴 파크 공연 첫날에는 역대 최다인 11만 명이 운집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타 야외 무료 공연이 증가하자 뉴욕 필의 파크 콘서트는 횟수를 줄여 지금은 5개 구에서 1회씩만 한다. 하지만 아직도 뉴욕 필이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는 공연이며, 1965년 이후 누적 관객은 1,500만 명을 넘어섰다.

뉴욕 필의 파크 콘서트가 성공한 데는 뉴욕시의 적극적인 지원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센트럴 파크에서 열린 야외 공연이 뉴욕 필 파크 콘서트가 처음은 아니다. 1853년 센트럴 파크가 조성되기 시작한 이후 꾸준히 크고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뉴욕시 공원관리국은 이런 콘서트가 시민에게 휴식과 예술을 제공한다는 공원의 목표에 부합한다고 봤다.

뉴욕 필의 파크콘서트
ⓒChris Lee/New York Philharmonic

특히 연출가 조셉 팹Joseph Papp이 설립한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Shakespeare in the Park’ 관련 논란은 뉴욕시가 공원을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 공간으로 더욱 활발하게 활용하는 전환점이 됐다.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의 대부’로 불리는 팹은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셰익스피어 공연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1954년 센트럴 파크에서 연극을 처음 선보였다. 이후 여름마다 올리는 공연이 큰 인기를 끌자, 뉴욕시 공원관리국은 1959년 팹에게 잔디 관리 비용 부담을 요구하며 시민에게 요금을 받으라고 요구했다. 팹이 거부하자 소송까지 벌어졌지만, 이후 뉴욕시가 태도를 바꿔 센트럴 파크 안에 아예 야외 원형극장을 짓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완성된 1,800석 규모의 델라코트 극장에서는 1962년부터 매년 5월에서 8월 사이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가 열린다. 팹이 이끌던 퍼블릭 시어터가 주관해 매년 2편이 공연되며, 그중 1편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닌 경우도 있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데다 알 파치노·메릴 스트리프·모건 프리먼·덴절 워싱턴·앤 해서웨이·내털리 포트먼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기도 한다. 매년 뉴요커 사이에 무료 티켓을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와 뉴욕 필의 파크 콘서트가 큰 반향을 일으키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브로드웨이 리그Broadway League(브로드웨이 극장 및 제작자 협회) 등 뉴욕의 다양한 예술단체가 앞다퉈 무료 야외 공연에 나섰다. 뉴욕시와 기업의 적극적인 후원도 있지만, 시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다. 링컨센터의 경우 1973년 극장 안팎에서 2~3개월간 수백 편의 공연을 무료로 선보이는 여름 축제 ‘아웃 오브 도어스Out of Doors’를 시작했다. 유서 깊은 이 축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단됐다가 2022년 ‘서머 포 더 시티Summer for the City’라는 이름으로 재출발했다.

뉴욕에서는 5개 행정구의 공공공지open space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독립 비영리 단체 ‘시티 파크 재단City Parks Foundation’이 1989년 설립됐다. 시티 파크 재단은 뉴욕시 공원관리국과 협력해 센트럴 파크처럼 초대형 공원부터 작은 녹지까지 750개 안팎이나 되는 뉴욕의 공공공지에서 광범위한 예술·스포츠·교육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 예술단체들은 시티 파크 재단과 협력해 날짜와 프로그램 등을 조정한다. 그리고 뉴욕의 공공공지에서 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누리집에 통합해 게시돼 있어 시민은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뉴욕시는 높은 생활비로 악명 높지만 ‘문화예술의 수도’답게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문화 행사가 정말 많다. 사람들이 뉴욕을 떠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야외에서 열리는 다양한 공연이 도시의 매력도와 어메니티amenity(쾌적성)를 끌어올리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시티 파크 재단이 운영하는 ‘서머 스테이지’
ⓒMerissa Blitz/City Parks Foundation

일상의 색다른 즐거움, 시민을 위한 야외 공연
시민의 문화 향유에 초점을 둔 무료 야외 공연은 뉴욕 외에 수많은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국제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글로벌 도시일수록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런던 템스강 남부의 복합 문화 공간 사우스뱅크센터는 시민을 위해 일 년 내내 개방돼 있다. 특히 야외 공연장에서는 거의 매일 다양한 무료 공연이 이뤄진다. 또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005년부터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 쇤부른 궁전에서 ‘여름밤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 무료 콘서트에는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와 평소 보기 어려운 빈 필의 선율을 즐긴다.

최근엔 공연 영상화의 발전에 따라 고화질 및 고음질의 공연 실황을 무료로 상영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특히 오페라나 발레 등 라이브로 선보이기에 제작비나 무대 상황 등이 여의찮은 경우에 제격이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영국 로열 오페라와 로열 발레,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 등 기관과 단체가 공원이나 광장에서 공연 실황을 종종 상영하고 있다. 문화예술 접근성이 낮은 지역일수록 이런 공연 실황 상영이 큰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도 많은 지자체와 예술단체가 시민을 위한 무료 야외 공연을 펼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이 꾸준히 공원·광장·박물관·한강공원 등에서 무료 콘서트를 펼치고 있다.
또 세종문화회관은 전속 단체인 서울시예술단을 활용해 다장르의 무료 공연을 광화문광장에서 종종 열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의 ‘한강노들섬클래식’은 서울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야외 무료 공연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구축한 사례다.

한강노들섬클래식은 2022년 엔데믹을 맞이한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와 한강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공간을 형성하는 서울시의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에 발맞춰 열린 공간에서 클래식 공연을 선보인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서울문화재단의 통합 축제 브랜드 ‘아트페스티벌_서울’ 가운데 가을 시즌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선선한 가을 저녁, 노을 지는 한강을 배경으로 오페라와 발레를 관람하는 것은 시민의 일상에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실내 공연장보다 음향은 못 할지 모르지만, 극장의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편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어서다. 겨우 3회째지만 노들섬 잔디마당에 마련한 2천 석 규모의 객석이 예약 시작과 동시에 매진될 만큼 인기가 높다. 이제 브랜드 인지도보다 더 많은 시민이 즐길 수 있도록 공연 횟수의 증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장지영 국민일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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