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배기 쿼드의 기억
2022년 7월 개관해 꼬박 2년을 보낸 대학로극장 쿼드. 모두에게 열려 있는, 무대만큼이나 무궁무진한 다양성을 지닌 이 블랙박스 극장의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자 ‘쿼드’ 식구들이 모여 수다회를 열었다. 7월이면 3년 차에 들어서는 쿼드의 성장 과정을 빛낸 몇 가지 공연과 사건들!
관객 수, 객석 점유율은 물론, 연이은 티켓 매진과 화제성 등 대학로극장 쿼드 2023년 공연 가운데 단연코 명불허전 1위를 기록한 작품이다. 연극 무대에서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특수분장에 도전한 찰리 역의 백석광 배우가 보여준 살신성인의 실험정신, 무게만 20킬로그램에 달하는 특수분장 의상을 뚫고 나오는 엄청난 연기력에 경의를 표하게 되는 공연이기도 했다. 하지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특수분장, 무대에 올려진 음식 소품들로 인한 벌레 출몰 등…. 매회 제작진이 경험한 조마조마한 마음 또한 명불허전이었다는 후문. 좋은 작품을 많은 관객이 찾아주셔서 행복하면서도 아찔한 2023년 추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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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신유청, 작 사무엘 D. 헌터
2023년 9월 22일부터 30일까지.
ⓒStudioAL
관객 참여형 공연이면서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고, 스크린으로 전달되는 최소한의 텍스트로 관객이 이동하는 형태를 추구하면서, 일반적으로 공연 중에 허용되지 않는 것들도 허용하게 하는 파격까지! 그야말로 제작 PD로서는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들게 하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그 실험을 위한 모두의 용기는, 정형화된 무대가 주는 안정감보다 극장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계기가 됐다. 적극 연출의 신선한 시각적 시도로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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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연출·무대미술 적극
2023년 3월 28일부터 4월 16일까지
쿼드의 블랙박스 공간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연으로 단연 2023 쿼드여름페스타를 꼽는다. 이 공연은 중앙에 무대를 두고 관객이 360도 모든 방향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형태로 기획했다. (사실 턴테이블을 활용해 중앙 무대를 회전하려고도 했으나, 제작 예산과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무산돼 조금은 아쉬운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좋았다!) 관객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관람할 수 있는 공연 환경으로, 관객은 이곳저곳 이동하며 아티스트의 공연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만날 수 있는 깜짝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담당 PD 왈, 초기 단계에서부터 출연 아티스트와 여러 차례의 기획 회의를 거쳐 함께 만든 무대이기에 아티스트와 관객 모두 반응이 뜨거워서 타오를 지경으로 뿌듯한 공연 중 하나라고 한다.
사실 이 공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다. 대학로극장 쿼드에 300명 넘는 관객이 입장하는 스탠딩 공연은 모두에게 처음이라, 관객이 동시에 뛰면 위험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고. 또한 부대 행사까지 준비됐기에 관객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제작팀에겐 다양한 염려와 걱정이 동시에 있었다. 팬층이 두터운, 그래서 소위 ‘핫’하다는 아티스트가 출연하면서 전 직원이 모여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과 스탠딩 면적을 계산하는 등 공연이 진행되는 하루하루가 엄청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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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씨피카 · 이디오테잎 · 실리카겔 · TRPP · ADG7
2023년 8월 24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가 착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던 김우옥 연출은 이 아름다운 블랙박스 공간을 보고는 23년 만에 처음으로, <겹괴기담>의 검은 샤막 세트를 이 무대에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바람이 계기가 되고 운명이 돼 1970년대 뉴욕에서 선보인 구조주의 연극 작품을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선보일 수 있게 성사한 것이라 이 공연은 매우 의미가 있다. 초연 후 약 50년이 지난 시점이지만 관객 역시나 새롭고 신선한 공연에 놀란 모양이다. 90대 거장 연출가의 열정, 녹슬지 않는 치밀한 연출력.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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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김우옥, 작 마이클 커비
2023년 10월 6일부터 9일까지
ⓒ오석근
극장에서 잠을 잔다? 극장에 누워서 잠을 경험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작품을 경험한 관객으로부터 이토록 각기 다른 피드백과 흥미로운 해석이 쏟아져나온 공연은 처음이다. 무대 한가운데에, 때로는 한쪽 벽에 기대어 조명과 무용수들의 움직임, 사운드와 텅 빈 극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평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쿼드만의 매력, 극장 본연의 모습을 오롯이 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공연에서는 놀랍고도(?) 익숙하게도 코를 ‘드르렁~’ 골며 잠자는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미간을 찌푸리며 흔들어 깨웠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공연에서는 코 고는 소리마저 공연에 어우러진, 약속된 하나의 사운드 처럼 여겨졌다.(웃음) 지중해 연안 지역의 낮잠 문화인 시에스타Siesta를 콘셉트로 삼아 오후 2시부터 3시간 동안 공연이 진행됐는데, 만약 밤부터 새벽까지 공연을 했더라면 또 다른 상황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극장에서 잠을 자는 것이 공연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라는, 어찌 보면 황당한 이 공연에선 여느 공연보다 관객이 느끼는 것들이 다채로웠을 것 같다. 여담으로 피곤함에 쩌든 모 PD는 러닝타임 3시간 동안 깊은 잠이 들어 공연을 잘 즐겼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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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안무 황수현
2023년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BAKi
“웰컴 투 치르치르” 인사를 나누며 시작한 <신파의 세기>는 쿼드 제작공연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나눈 것이 많아서인지 창작자와 제작진, 배우 등 쿼드의 모든 스태프가 쌓은 추억이 오래도록 남았다. 연습일지, 제작일지, 이메일, 전화, 카카오톡 등을 오가며 수차례 진행된 치열한 논의와 회의, 서로에 대한 기대와 아쉬움, 작품을 위해 달려가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특히 공연 내용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더하기 위한 고증의 방법으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스탄’ 국가들을 만나보는 중앙아시아 워크숍, 극 중 프랑스어 대사를 소화하기 위한 외국어 워크숍, 울참(울음참기) 챌린지, (재활용 취지 또한 담긴) 소품당근위크, 접근성 회차(터치투어, 폐쇄형 음성해설, 한글 자막 및 수어 통역 등) 운영에 관한 숱한 고민과 노력이 더해진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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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연출 정진새
2023년 11월 28일부터 12월 17일까지
ⓒBAKi
공연 자체도 흥행했지만, 관객의 반응까지도 가장 뜨거웠던, 한여름 밤 축제 같은 날이었다. 3회 전석 매진, 시야방해석 추가 오픈까지, 극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즐기고 나가는 순간까지 모든 관객의 흥과 도파민이 폭발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계절은 여름이라 더웠지만 안은미컴퍼니의 파격적인 의상과 움직임에, 서도의 파워풀한 목소리까지 더해지면서 관객은 마치 바닷가 야장에 온 듯한 즐거움과 해방감을 만끽하며 돌아간 공연. 만병통치약처럼 신성한 파워를 가진 즐거움을 관객 모두 한아름 느끼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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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은미, 음악감독 서도
2023년 7월 7일부터 9일까지
추억을 안주 삼아 신나게 이야기했지만,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은 우여곡절을 헤아리기엔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두 살배기 쿼드에게는 매 공연, 모든 상황이 말 그대로 ‘해 봐야’, ‘겪어봐야 아는’ 상황이었던 것. 안전과 소방법 이슈부터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 안에 위치해 있다보니 필요로 하는 여러 부서와의 협조, 소통까지. 되지 않는 것을 되게끔 해결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쿼드의 모든 제작진이 이 극장에서 아무리 힘든 순간을 마주하더라도 결국 다시금 힘을 내는 것은 관객, 그리고 함께하는 아티스트 덕분이다. 대학로 한가운데 자리잡은 극장에서 어느 곳에서보다 실험적인 기획 공연을 진행해보겠다는 PD들의 포부와 꺼지지 않는 용기는, 흥미를 잔뜩 탑재하고 많은 것을 담을 준비를 한 채 이곳을 찾는 열린 관객들과 도전과 실험으로 눈빛을 반짝이는 아티스트들과 만나 오늘도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