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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 2023연출가 고선웅은
여전히 연극이
재밌다
2011년 초연하고 2015년에는 명실상부 남산예술센터 대표 레퍼토리로 불린 <푸르른 날에>를 처음 본 관객들은 좀 낯설기도 했다. ‘이 장면에서 웃어도 되는 건가’ 고민하다가도 ‘큭큭’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을 맞닥뜨렸기 때문. ‘농담 같은 진담’, ‘슬픈 농담’, 연출가 고선웅을 수식하는 말 가운데 ‘농담’이라는 단어가 많은 이유다.
2015 연극의 본질은 농담이에요. 진담은 없어요. 농담을 통해서 그 진실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연극을 하다 보면 ‘이건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야’ 하면서 얘기하는 데, 자기가 직접 겪은 것이 무대에 들어왔을 때 정확한 에너지를 갖지 못하면 그건 겪은 게 아니에요. 연극은 철저하게 허구화되어 있지만, 그것을 보면서 그 누구도 ‘그건 허구잖아’ 이런 얘기를 할 수 없게 만들죠. (…) 제가 수원에서 세월호 이야기로 만든 연극을 올렸는데, 그때도 단원들한테 그랬어요.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우린 행복하게 연극을 해야 한다’라고요. 가슴 아픈 이야기를 가슴 아파하면서는 연극을 할 수가 없어요. 거기서 어떻게 말을 해요. 가슴이 아프고, 뼈가 저린데. 그것을 뛰어넘는 연극적인 접근이 필요하죠. 그렇게 슬픈 연극이라고 할지라도 연습하다가 재미없으면 말아야죠. 슬퍼도 재미있어야죠.
2023 연극의 본질은 오락성이죠. 더해서 교훈이나 감동도 있으면 보람이 더욱 크고요. 무대에서 배우가 노는데 관객이 보기에 좋다면 어느 정도 연극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최근의 작업에서도 그런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나름대로 재미와 오락성을 놓고 싶지 않았고, 가능하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제가 시사하는 바도 있기를 바랐습니다. 작품성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중성이 연극의 기본 전제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어려운 연극을 가급적 쉽게 하려고 노력하고, 선과 악처럼 주제도 될 수 있으면 보편타당한 것에서 찾으려고 하고요.
2011년 대한민국연극대상, 2015년 동아연극상을 받은 이래 꾸준히 주요 연극상에 이름을 올린 그는 단연 우리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다. 그러나 정점에 올랐을 때, 도리어 ‘아무 느낌이 없다’고 이야기할만큼 담담하고 겸손한 사람이기도 하다.
2015 저는 동아연극상을 받았을 때 가장 흥분했는데, 그 이후로 경기도립극단에서 예술감독을 하면서 철이 좀 들었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제 감정에 빠져 연극을 즐기기만 했는데, 도립극단에 있으면서 연극의 사회적 책무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관객과의 접점을 찾아 서로 ‘상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겸손이 아니라 그냥 사실이에요. 늘 ‘이 작품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 속에 있기 때문에 도도해지려야 도도해질 수가 없어요. 매 순간 잘해야겠다는 압박이 있을 뿐이죠. 제가 작년에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란 작품으로 차범석 희곡상을 받을 때 ‘별로 감흥이 없다’는 말을 했어요. 수상 소감을 준비하지 말고 그냥 느낀 대로 얘기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상을 받고 나니 정말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거예요. 누군가는 시건방진 자식이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원하던 어떤 것을 이루었을 때, 잠깐은 행복해도 금방 잊어버리고 곧 또 다른 고민이 채워지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2023 ‘지금 연극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해봤는데, 나이가 더 든 것 말고는 그대로인 것 같아요. 연극도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풍경이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관객의 인내심이 예전보다 줄었고, 볼거리와 즐길 거리는 너무 많아졌죠. 그래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점점 위축되고 작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위기의식이랄지, 조바심이 많아졌어요. 예전에도 연극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끈을 붙잡고 버티는 느낌이에요. 격변의 파고 속에서 어떤 연극을 해야 바람직할지 늘 고민합니다. 일단은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에서 찾아보려고 해요. 어차피 연극은 유행을 따라가기에는 발이 꽤 느린 장르거든요. 다소 진부하더라도 연극의 가치를 잘 구현하는 서사와 연극성에서 해법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연극의 원형을 다시 찾고 싶어요. 비관하지는 않습니다. 연극은 늘 어려운 와중에도 질긴 생명력으로 인간의 삶을 통찰해왔으니까요. 기술의 놀라운 발전이 숭배된다는 건 그만큼 인간의 가치가 경시되고 있다는 방증일 텐데요. 결국 인류는 여전히 객석에 앉아 물끄러미 자신의 자화상을 보면서 위로받고 싶어 할 것으로 믿어요.
2015년 5월호(vol.99)
화해를 건네는 연출가의 가장 ‘푸르른 날에’
글 이정연(서울문화재단 홍보팀) | 사진 김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