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울타리
청년예술청 거버넌스를 말하다‘거버넌스’는 눈에 보이는 외부 변화보다도 조직 내부와 구성원에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치는, 자가 변화의 방식을 띤다. 태생부터 거버넌스와 공존하며 ‘청년(예술)’을 위한 매개가 되고자 한 청년예술청의 지난 시간을 짚어본다.
김민정은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팀에서 청년예술청 거버넌스 커뮤니티 통합 운영을 맡고 있다.
김정엽은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문화예술정책을 연구하는 독립연구자다. 2021년부터 서울청년예술인회의에 함께하며 연구릴레이·문답연구단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는 라운드 SAPY ‘라운드 더 테이블’을 공동 기획하고 참여해 문화예술계의 담론 형성에 함께했다.
서울청년예술인회의 1차 오픈토크 ‘숨은참조’
김민정 새롭게 탄생하는 공공 공간이
관 주도의 기획 방향이나 활용 방향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라 선언하고
계획한 만큼 청년 예술인이 직접 이 공간을 어떻게
꾸미고 무엇을 담을지 논의하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당사자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어요.
청년예술청의 초기 단계부터 함께한 정엽 님은
이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정엽 ‘당사자 중심’이라는 키워드는
안티테제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문화예술 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되는 과정에
청년들이 부재한 것이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이 정책과 제도의 혜택을 받게 될 청년이자
예술인이 당사자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고 관심이
결여되던 존재에서 벗어나 청년이 주인이 돼
공간을 이끌어가고, 이곳에서 발생할 여러 제도에
대해 주인공이 돼 직접 실행하고, 피드백할 수
있겠다는 이상을 꿈꾸게 한 단어이지 않나 싶어요.
사실은 마음이 좀 아프기도 했어요. 청년 예술인이
얼마나 기성의 여러 가지 바람과 권력, 위계에
휩쓸렸기에 ‘당사자 중심’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나
싶은 거죠. 사실은 당연한 건데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오히려 제도와 정책이 팽배하면서
정말로 청년 예술인이 당사자성을 가지고 자신을
성찰했는가 하는 물음도 갖게 되고요.
김민정 청년예술청이라는 공간의
설립 목적과도 부합하는 부분이 있죠. ‘청년’과
‘예술’이라는 단어에 대해 기성세대가 정의하는
기존 개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화예술 사업과
지원 제도 같은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자는 거예요.
그리고 그 판은 이곳 청년예술청 공간을 토대로
펼쳐지는 거고요. 이러한 과정을 행정 용어로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고민이 많았고, 취사
선택된 방식이 ‘거버넌스’라는 의사 결정·조직
방식이었어요. 청년예술청은 공간을 특정 목적으로
규정하거나 정의를 두지 않거든요. 화이트룸은 전시를 열기에 좋은 공간이지만 전시 목적으로만
대관하지 않는 것처럼요. 청년예술청이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판’으로서 역할을 하고,
그 위에서 청년 예술 활동이 활발히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김민정 당초 2020년 초 개관을 목표로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개관이 4분기로
미뤄졌어요. 그 과정에서 공동운영단을 선정해
이들과 5~6개월 정도 시범 운영 기간을 가졌습니다.
새롭게 문을 여는 문화예술 공간이니 홍보도
하고, 실제로 각각의 공간을 사용해보면서 사용자
친화적인 매뉴얼의 초안을 만드는 작업을 했고요.
청년예술청이 ‘플랫폼’을 표방하는 만큼 많은
시간 비어 있는 상태일 텐데, 이 공간 안에서 어떤
것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했죠. 당사자
주도의 협치 모델을 만들자는 데 모두 공감하고
이곳에 모였지만, 거버넌스마다 특색이 있기 때문에
재단에서 운영하는 다른 공간의 거버넌스 모델을
그대로 이식하는 건 불가능했어요. 당연히 어려움도
있었지만, 민관이 협의해 이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효능감을 느낀 분들도 계실 거에요.
이제 청년예술청이 문을 연 지 4년 차인데요.
공동운영단은 애초에 기획한 것처럼 거버넌스가
청년예술청 운영의 중심 역할을 맡고, 여전히 당사자
주도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든든한 시발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엽 대부분 거버넌스가 민관 협치로
이뤄지고, 소수의 운영단을 중심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치를 이루는 과정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예술청의
개관은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이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예술인들의 기대와 관심이 많이 쏟아졌고,
그 과정에 함께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김민정 2020년에 열린 프로그램이 258개,
참여한 사람이 1,981명이었네요.
김정엽 기존 민간 거버넌스보다 더 넓은
범주의 사람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시간 자체가
특별했고, 그게 엇비슷한 거버넌스와의 큰 차이점인 것 같아요.
김정엽 예술인이나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느끼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학교나 직장처럼 누구나 한 번씩
거쳤을 소속은 있지만, 자기 작업을 하는
이들이 소속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죠. 저는
서울청년예술인회의라는 거버넌스에 참여했는데,
건강하고 안전한 문화예술 활동을 하기에
좋은 거버넌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속을
갖고 예술계 안에서 활동할 수도 있고요. 당시
서울청년예술인회의 내에 ‘연구릴레이’라는 연구자
모임이 있었는데, 저 역시 문화정책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직무에 관한 연대감을 느끼고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실제
거버넌스의 흐름도 느껴보고 싶었고요.
김정엽 정말 오랫동안 고민한 부분인데요.
서울청년예술인회의는 오랫동안 위계를
탈피하려는 가치관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운영그룹, 준비그룹, 책임그룹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무척 고민이었죠. 하지만
그간의 청년예술청 거버넌스를 살펴보면
그 구조와 방식이 꾸준히 변화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2020년까지는 소수의 공동운영단으로,
2021년부터는 다수의 구성원 체제로…
그 과정에서 각각의 장단점을 발견했고, 그렇다면
또 다른 모델에는 어떤 장점이 있는지 실험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지금까지 운영해온 모델을 정답으로
여기지 않아요. ‘운영그룹’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저희는 여전히 모두가 동일한 권한과 참여를
보장하고 있죠.
서울청년예술인회의 2022년 8월 공유모임
김민정 라운드 SAPY는 공간을 중심으로
창작 활동을 전개하는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어요.
다수 중심의 커뮤니티형 거버넌스로 운영되면서,
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청년예술청이 예술 창작의 매개가 되기도 하고,
네트워킹을 제공하거나 때때로 그저 온전히 어떤
작품의 실현을 위한 무대가 되기도 해요. 다양성과
확장성이 열려 있는 거버넌스고요.
김정엽 청년예술청 공동운영단이 ‘라운드
SAPY’로 명칭을 변경했는데, 이 거버넌스가
추구하는 가장 큰 모델은 운영 멤버만 아니라 사업
참여자도 거버넌스의 운영과 기획, 참여에 동등한
권한과 입장을 가진다는 점이에요.
김민정 2022년에는 지역에 기반을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라운드 충정로’,
장애예술에 관한 현장의 경험을 모으고 매뉴얼을
다시 써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라운드 장애예술’,
테이블에 모여 예술 현장의 이슈를 나누고
담론을 확산하는 ‘라운드 더 테이블’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두고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그리고 서울청년예술인회의는 연구와
담론 중심의, 이름 그대로 수많은 회의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아카이빙하는 거버넌스고요.
마지막으로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플랫폼
‘NONE: 넌’은 공간 기반의 창작 기획 활동과
포럼·릴레이 토론과 같은 담론 확산 작업을 결합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요. 문화예술계 안에서
어떻게 안전망을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사적 발화를 공적 발화로 이어 나가는 좋은
방법을 찾은 거죠. ‘성평등’, ‘탈위계’라는 주제를
연간으로 가져간다는 점이 다른 거버넌스와 가장
차별되는 부분입니다. 담당자로서 거버넌스를
운영하며 가장 유의미하다고 느낀 지점은,
청년예술청 관계자의 기획 의도나 필요에 의해
특정 거버넌스가 구성된 것이 아니라, 당초 운영
예산부터 청년자율예산에서 비롯해 청년예술청
공간은 베이스캠프가 되어 거버넌스의 운영을
촉진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은
서울문화재단의 자체 예산으로 편성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김민정 지난해까지는 물리적으로 공간을
운영하는 것, 세 가지 거버넌스를 운영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가 주요 흐름이었는데, 올해부터
청년예술을 직접 지원하는 사업을 설계하고
있어요. 유망예술 지원사업이나 청년예술 지원사업도 이곳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있죠. 청년예술청 거버넌스에서는
청년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지속해 오고 있어요. 청년예술과
관련해 담론을 재생산하고 있는 청년예술청이
앞으로 지원사업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기존에 문제로 지적된 부분을 실제
지원 정책 설계까지 반영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이제는 팀 내부에서 선순환할 수 있으니
긍정적인 변화로 봅니다.
2022년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플랫폼 [NONE: 넌]
김정엽 청년예술청이 잘 발전하고
확장해나가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참 감사한
부분이 많아요. 이 공간을 매개로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유의미하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공간만큼은 권력화되지 않아야
한다는 경각심이 듭니다. 워낙 청년과 예술에
관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공간 지원이나 지원사업을 넘어서 점점 ‘청년’과
‘예술’에 관련한 갖가지 것들이 모이는 느낌이
들거든요. 청년예술청이 행정적으로 편리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으나, 권력화된
예술공간이 매우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는 전례를
생각하면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잘 분별하고
배분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김정엽 ‘거버넌스’라는 이론에 관해
지식 면에서 공부는 많이 했어도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거버넌스는 그렇지 않다는 걸
많이 느껴요. 그래서 저는 거버넌스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협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다양하다보니 정답을
내리기가 어려워지거든요. 거버넌스의 주체가
많아질수록 혼란이 심해지죠. 명확한 질문과
답변은 온데간데없고, 모호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의 집합만 남아요. 그래서 거버넌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버넌스라는 것이 계속 부상하고
주목받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기구이자 장이기 때문이죠. 눈에 보이지
않아야 그 의미가 계속 유지되니까요.
김민정 종종 ‘학습의 장’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교육과정에서 체험하지 못한 경청의 장,
숙의의 장이 바로 거버넌스인 거죠. 효율주의가
만연하고 빨리빨리가 만능인 사회에서 거버넌스는
아주 귀한 경험이에요. 누군가는 거버넌스의
어원을 조정 경기에서 노를 잡는 것으로
비유하더라고요. 재단 안에서 거버넌스가
잘 나아가기 위해서 함께, 미리 항로를 그리는
중장기 계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정엽 거버넌스가 과정만 아니라
결과까지 좋고 발전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저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대면하길 바라요. 거버넌스
안에 형식적으로 존재하거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많아서
아쉬운데, 거버넌스가 발전하고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잘
설정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2021년 성평등·탈위계 문화조성 사업 아카이브북
글 김태희 [문화+서울]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