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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2월호

취향을 공유하다
세대 불문 함께할 수 있는 문화공간

‘취향’이 두 세대를 잇는 다리 구실을 할 때가 있다. 오늘날 이야기다. 5060 세대가 유유자적 쉴 수 있는 휴양지나 평생교육원 등의 배움터에만 익숙하리란 편견, 2030 세대가 마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유행만 좇으리란 편견을 뒤로한다면, 세대가 만나는 곳이 참 가까운 곳에 있다. 흑맥주 한잔 홀짝이며 명작이 된 노래를 듣는 LP바, 머무름이 곧 예술이 되는 숙소, 향기로 시간을 잇는 공방과 취미를 공유하는 문구점 등 실제로 밀레니얼과 오팔 세대가 스스럼없이 뒤섞인 문화공간들을 소개한다. 언제든 가볍게 떠나볼 수 있는 곳이다.

바람 청명한 1월의 어느 주말. 엄마와 서울 여행을 계획해 떠났다. 서울로7017을 가로질러 중림동과 남대문을 오가며, 새해 속셈을 공유하고 배를 채울 심산이었다. 필자가 ‘어르신’을 위해 미리 골라둔 곳들이 그이를 지루하게 만든 건 금방이었다. “내 취향은 아냐.” 엄마가 말했다. 이른바 ‘오팔 세대’인 엄마는 뉴발란스를 신고 있었다. 쉼이 있어 여유로운 호텔 라운지보다 약동하는 골목을 걷고 신문화를 영유하며 무언가 피부로 배우길 원했다. 밀레니얼 세대에 살포시 속하는 필자는 지도를 급히 수정했다. 가끔 들락거리는 맥주바와 복합문화공간, 독립서점으로 향했다. 취향합일. 비로소 모녀의 발길에 가속도가 붙었다.

압구정동의 오랜 LP바 피터 폴 앤드 메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몸집보다 큰 스피커가 사람을 맞는다. 층고 높은 벽면은 총천연색 레이블과 LP로 빼곡하게 채웠다. 모두 압구정동 LP바 ‘피터 폴 앤드 메리’의 상징이다.
양쪽 귀에 꼭 붙은 에어팟으로 듣는 음악은 편리한 맛이 있지만, 턴테이블에서 진공관을 거쳐 공간과 고막을 감싸는 음악은 편안한 멋이 있다. 현장에서 주목받는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에 JBL 파라곤 음향 시스템 등은 ‘덕후’들에게 이미 유명한 모델들인 한편, 지나간 명곡을 현대로 소환하는 데도 최적이라서 ‘부모님과 가기 좋은 곳’으로 종종 거론되는 곳이다.
서울에서 드문 ‘기네스 마스터 퀄리티’를 보유한 집이기도 하다. 여유롭게 기네스 한잔 홀짝이며, 어느덧 고전이 된 노래들을 신청해보면 어떨까. 듣고 싶은 곡을 종이에 적어 내면 실시간으로 LP를 올려준다. 신사동 가로수길과 5분 거리로 압구정성당 바로 옆에 있다. 매일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문을 연다. (강남구 압구정로28길 22-9)

추억과 환대의 복합문화공간 통의동 보안여관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도 시대별 안목과 유행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안여관’은 수많은 여관이 개발 논리에 밀려 지도에서 삭제되는 동안 복합예술공간으로 성장한 유서 깊은 곳이다.
보안여관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문을 열어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 문인들이 다녀간 여관으로도 유명하다. 2004년까지도 손님을 받다가 문을 닫았는데, 현 최성우 보안여관 대표가 보안여관의 정신을 이어받아 옛 골조를 살려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2017년 복합문화예술공간 ‘보안1942’를 나란히 신축해 카페, 책방, 게스트하우스를 층별로 마련했다.
모든 여행자들은 ‘환대’받을 자격이 있다. “박제된 역사 속 방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숨 쉬는 방”을 운영하고자 하는 최 대표의 의도대로 객실마다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예술가들이 짐을 풀고 숙박계를 써왔다. ‘호캉스’를 즐기는 도시 여행객들이라면 세대를 막론하고 머물러볼 만하다. (종로구 효자로 33)

향으로 시간을 잇는 향수공방
프루스트

‘향기가 기억을 이끌어낸다’는 프루스트 현상을 아는가. 하나의 작은 감각이 연결된 전체 기억을 재생시킨다는 내용이다.
명륜동 향수공방 ‘프루스트’는 우연히 맡은 향기가 무의식의 기억을 찾아가며, 이 순간의 향을 ‘캡처’하듯 조제해 미래로 이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손으로 무언가 창조하고 싶은 사람들, 과거부터 미래를 직관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손님들이 세대 불문하고 찾아온다.
낡은 한옥을 개조한 공방은 한적한 골목 깊숙이 위치해 있다. 중정엔 그림 같은 조형물이, 안채엔 향수병들이 일렬로 놓여 있어 작은 실험실이나 소박한 박물관 같다. 내게 맞는 향을 직관적으로 찾아 시향하고 계량하며 조향사의 지시를 따라가는 동안 향은 물론 나에 대한 이해도 조금 깊어진다. 직접 조제해보려면 방문 전 예약이 필요하다. (종로구 창경궁로26길 38-3)

필기 덕후들의 문화공간
포인트 오브 뷰

문진, 연필, 지우개, 책갈피 등 디지털 기기에 한동안 밀려난 필기구들이 책상으로 하나둘 회귀 중이다. 과거 문구점들이 ‘지는 업종’의 대표주자로 꼽혀왔던 사실이 무색하게, 오늘날 문구점들은 이른바 ‘힙한 것’을 찾는 젊은 손님들에게 호평받으며 덩달아 남녀노소 문구 덕후들을 불러 모은다.
성수동에 있는 문구점 ‘포인트 오브 뷰’는 평일에도 주말 같은 인기를 누릴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잦다. 어린 시절부터 문구 덕후로 자랐다는 김재원 대표가 직접 큐레이팅하며 문구 장인들의 ‘작품’을 전 세계에서 수집했다. ‘큐레이션 노트’를 따로 두어 물건의 뒷얘기를 전한다.
시필지에 사각사각 소리 내며 연필을 써보고, 서지 향을 재현한 양초도 구경해보자. 노트 등 필기구부터 수첩까지 감각적인 도구들, 옛 추억 물씬 풍기는 스티커와 사무용품 구경에 눈이 즐겁다. 문구류 외에 디자이너들과 협업으로 만든 문진, 도장, 모빌 등 다양한 제품을 보는 재미도 있다. (성동구 연무장길 18 2층)

헌책부터 독립출판물까지
서울책보고

걷다가 마주친 헌책 앞에서 ‘아!’라는 감탄사를 내뿜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가라시 유미코의 만화 <캔디 캔디>나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 등 추억과 고전을 대표하는 헌책들이 상자째 또는 노끈에 묶여 팔려나가는 이곳. 지난해 3월 송파구에 개관한 ‘서울책보고’다.
1,465㎡(443평)의 공간에 헌책과 독립출판물 등 13만여 권을 가득 채웠다. 헌책 경매가 열리면 절판 잡지, 만화, 동화와 1700~1800년대 조선시대 고서 및 일제강점기 도서까지 구경할 수 있다. 방대한 서적도 볼거리지만 꿈틀꿈틀 움직이는 애벌레를 형상화한 실내 디자인도 독특하다.
29개 헌책방이 위탁한 책을 한곳에서 보고 살 수 있어 기존 헌책방과 독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구실을 한다. 배움에 목마른 오팔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물론 유아부터 70세 이상 어르신까지 무난하게 머물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매달 열리는 문화·전시 프로그램도 유용하다. ‘서울책보고 어린이 동화전-<상상의 나라>’가 3월 1일까지 열린다. (송파구 오금로1)

멋을 만드는 남성들의 공간
트루핏앤힐

‘바버’란 이발사를 말한다. 포마드로 한껏 멋들어지게 올린 머리, 가위질로 재단한 듯 살린 두상. ‘바버’들이 만든 스타일은 할리우드 흑백영화 속 배우들처럼 멋을 한층 끌어올린다.
바버숍 ‘트루핏앤힐’을 찾는 남성 손님들은 단정한 머리스타일을 추구하는 30대부터 나를 가꾸는 데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70대까지 다양하다. 브랜드는 영국에서 왔다. 1805년 런던에서 시작해 200년 넘은 역사를 가진 영국 왕실 전담 바버숍에서 출발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버숍’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본사에서 교육받은 바버들이 한국에 1호점을 낸 건 2017년이다. 바버숍이란 개념보다 미용실이나 이발소의 정서가 익숙하던 터에 ‘영국 상류층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콘셉트, 1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공들인 스타일링 등이 화제를 모았다. 멋을 만드는 문화공간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머리스타일 외에도 향수나 셰이빙 등 남성 꾸밈에 대한 조언과 제품을 구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오면 15% 할인해준다. (강남구 선릉로158길 5)

글·사진 전유안_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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