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FOCUS

6월호

클래식은 영원하다
한국 스테디셀러 공연들

시대를 초월한 명작의 감동은 영원하다. 출판뿐만 아니라 공연계에도 유행과 상관없이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작품들이 있다. 연극과 뮤지컬, 그리고 오페라·발레로 나누어 한국 공연계 스테디셀러를 살펴본다.

1 연극 <에쿠우스> 공연 모습. (극단 실험극장 제공)

‘스테디셀러’라는 말은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팔리는 상품을 가리킨다. 공연과 관련해 해외에선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자주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흔히 사용된다. 다만 상당히 모호하고 부정확한 표현이다.
실례로 셰익스피어나 체호프 등의 작품들, 소위 ‘고전’ 희곡들은 거의 매년 무대화된다. 하지만 무대 위 공연으로 볼 때 같은 희곡으로 만들었더라도 창작진과 출연진이 다른 별개의 작품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체호프의 <갈매기>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매년 2편 정도 올라가지만 연출가부터 늘 다르다. 희곡 <갈매기>는 스테디셀러지만 공연 <갈매기>는 그렇지 않은 셈이다. 또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은 매년 무대화되지만 희곡에 충실한 경우는 드물고 다양하게 변주된 공연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서구 공연계에서 상업극장은 종영일을 정하지 않은 오픈런이 기본이며, 전속 단체의 프로덕션 중심인 오페라하우스 같은 공공극장은 레퍼토리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전속 단체를 거느린 공공극장이 레퍼토리 시스템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으며, 대학로를 점령한 오픈런 공연들은 소수의 작품을 빼면 저가의 코미디이다 보니 비주류라 논외 대상으로 치부된다. 또 <난타>, <점프> 등 넌버벌(비언어) 퍼포먼스들이 오픈런 공연 중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상품이라 역시 논외다.
요컨대, 현재 우리나라에서 스테디셀러 공연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하면서 자주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라는 단순한 전제에서 통용되는 셈이다. 게다가 작품 외적으로 한국 공연계의 독특한 속성 그리고 극단이나 제작사의 상황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연극, 영원한 스테디셀러는 없다

한국 연극계에서 스테디셀러 공연으로 첫손에 꼽히는 것은 단연 올해 한국 초연 50주년을 맞은 임영웅의 <고도를 기다리며>다. 사뮈엘 베케트가 썼지만 연출가 임영웅이 극단 산울림에서 1969년 초연 이후 40차례나 공연했다. 1, 2년에 한 번꼴로 리바이벌된 셈이다.
영국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각색한 연극 <쥐덫>이 1952년 10월 초연 이후 지금까지 공연되며 세계 최장기 공연 기록을 매일 경신하고 있지만, 임영웅의 <고도를 기다리며>도 세계 연극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일본 제작사 도호가 1981년 초연 이후 2009년까지 모리 미쓰코를 주인공으로 평균 2년마다 공연한 연극 <방랑기>와 견줄 만하다. 하지만 <방랑기>는 2010년 모리가 타계한 이후 2015년 새로운 배우로 리바이벌됐지만 관객의 반응이 차가워 더 이상 공연되지 않고 있다.
임영웅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1969년 초연 당시 베케트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맞물려 큰 주목을 모았다. 초연 흥행을 계기로 이듬해 극단 산울림도 창단됐다. 1990년엔 베케트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더블린 페스티벌에 초청돼 호평받기도 했다. 리얼리즘 연극의 충실한 계승자였던 임영웅은 이 작품을 통해 한국에서 부조리극의 개척자가 됐다. 임영웅이 애착을 가지고 자주 공연한 덕분에 <고도를 기다리며>는 한국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연극 관계자는 물론이고 연극 팬에게도 한 번은 꼭 봐야 할 작품이 된 것이다.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잇는 스테디셀러는 극단 실험극장의 <에쿠우스>다. 피터 셰퍼의 대표작으로 1975년 한국 초연 이후 2년에 한 번꼴로 공연되고 있다. 초연 당시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지만 지금도 공연을 올릴 때마다 관객을 끌어 모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임영웅의 <고도를 기다리며>도 50년간 몇 차례 크지 않은 무대 위 변화가 있었지만, 실험극장의 <에쿠우스>는 여러 연출가를 거친 만큼 변화의 폭이 컸다. 우선 1990년 이후엔 말의 의상이 전신 털옷에서 가죽 팬티로 바뀌면서 좀 더 에로틱해졌다. 연출가 김아라와 한태숙은 각각 원작 속 회전하는 사각무대를 없애거나 성별을 바꿔 캐스팅을 시도하기도 했다. 2004년 말 광란 장면을 역동적으로 부각하고 극 중 상징적인 신비로움을 드러낸 김광보의 연출은 이후 공연되는 <에쿠우스>의 근간이 됐다.
파파프로덕션의 <라이어>는 가벼운 코미디들의 오픈런 공연 붐을 대학로에 일으킨 작품이다. 레이 쿠니의 <당신의 부인을 위해 달려라>가 원작으로 1993~1996년 극단 한양레퍼토리시어터에서 <심바새메(심야에는 바바라, 새벽에는 메리)>라는 제목으로 매년 공연돼 인기를 끌었다. 이후 파파프로덕션이 1998년 <라이어>로 제목을 바꾸고 프로덕션을 새롭게 제작했으며, 2000년부터 오픈런 공연에 들어갔다. 인기가 가장 높았을 때는 하루에 3회 공연되기도 했다.
비록 주류 연극계에서 외면받고 있지만 지금은 스타가 된 수많은 배우들이 거쳤으며 연극 초심자들이 여전히 즐겨 찾는 작품이다.
창작극 가운데는 극작가 이상우의 <늘근 도둑 이야기>가 올해 30주년을 맞이했다. 두 늙은 도둑이 잠입한 곳이 하필 높으신 ‘그분’의 미술관이어서 한탕에 실패하는 이야기가 핵심 뼈대다. 이 작품은 1989년 초연 당시 권력자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풍자한 코미디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96년과 1997년의 두 차례 리바이벌 외에 그다지 무대에 오르지 않던 이 작품은 2003년 이상우가 이끌던 극단 차이무가 다시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시사풍자보다는 중견 배우들의 입담이 웃음을 자아냈던 이 작품은 2008년 연극열전 시즌 2로 다시 선보인 뒤 지금까지 계속 공연되고 있다. 사회적 이슈보다는 박철민 등 배우들의 애드리브가 전면에 부각됐지만 요즘 관객들에겐 지지를 받고 있다.
사실 한국 연극계의 스테디셀러는 대학로의 근간을 이루는 민간 극단 및 제작사를 둘러싼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여성 연극의 산실’이었던 극단 산울림은 박정자, 손숙, 윤석화 등을 주인공으로 한 서구 작품들을 자주 무대에 올렸다. 스타 여배우의 모노드라마가 유난히 많았던 ‘여성 연극’은 당시엔 스테디셀러로 언급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공연되지 않는다.
이윤택의 성폭행 파문으로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해체되면서 스테디셀러에 가까웠던 작품들이 여럿 사라졌다. 예를 들어 극단의 인기 레퍼토리 <오구>, <햄릿>, <어머니>는 각각 1989년, 1996년, 1999년 초연된 이래 꾸준히 공연돼왔다. 그러나 이제 이들 작품의 리바이벌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사실 지금 한국 연극계에는 초연 이후 10년 넘게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이 여럿이다. 극단 골목길의 <청춘예찬>(1999),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2002), 유순웅의 모노드라마 <염쟁이 유씨)(2004), 제작사 레드앤블루(옛 악어컴퍼니)의 <나쁜 자석>(2005), 김성녀의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2005), 김태형이 연출한 <모범생들>(2007), 배우 강부자의 <친정엄마와 2박3일>(2009) 등이 대표적이다. 각각 극단, 제작사, 극작가, 연출가, 배우의 시그너처이자 캐시카우 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 작품들이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미래에도 스테디셀러로 남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소위 여성 연극에 대해 예전 관객들이 점점 식상함을 느꼈던 것처럼 요즘 관객들은 젠더 감수성 부재에 거부감을 느끼는 등 작품의 인기나 위상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앞서 30~50년 공연되어온 <고도를 기다리며>, <에쿠우스>, <늘근 도둑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극단이나 배우를 둘러싼 변화가 공연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연극계의 베스트셀러 공연은 정답이 없어 보인다. ‘Now And Forever’(지금도 그리고 영원히)를 누가 담보할 수 있겠는가.

2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공연 모습. (CJ ENM 제공)

뮤지컬, 영미권의 라이선스 작품이 주류

1960년대 걸음마를 뗀 한국 뮤지컬계는 1980년대 후반 뮤지컬 전문 극단들의 등장과 함께 대중화 및 산업화의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 1990년대 외부 자본의 유입으로 대형 해외 작품들의 공연이 증가하면서 뮤지컬 붐이 일었다.
IMF 외환위기로 잠시 주춤했던 한국 뮤지컬계는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의 장기 공연(7개월간 244회) 성공을 계기로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현재 한국 뮤지컬 생태계는 바로 <오페라의 유령> 이후 구축된 것이다.
뮤지컬은 현재 한국 공연시장을 주도할 만큼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지만 워낙 역사가 짧은 데다 스타 마케팅 위주로 성장한 탓에 불안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몇몇 프로듀서들이 자살하거나 파산 선고 이후 자취를 감춘 사례는 이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몇몇 작품을 스테디셀러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오페라의 유령>이 한국 뮤지컬 역사에 전환점을 이루었지만 스테디셀러로는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첫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1996년 국내 초연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한국 뮤지컬 역사에서 최초로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작품이다. 한국이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가입한 1996년 이전에 국내에서 공연된 해외 뮤지컬은 모두 해적판이었다. <브로드웨이 42번가> 초연 당시 미국 뮤지컬 제작사의 스태프 10여 명이 2개월간 서울에 머무르면서 한국 스태프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한편 미국 현지 무용수들이 군무로 참여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작품과 함께 프로듀서의 역할, 라이선스 계약 등 뮤지컬 제작 시스템이 체계화되기 시작했고 제작 노하우를 습득한 인력들이 대거 배출됐다.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상황에선 드물게 40일 장기 공연에도 흥행에 성공했으며 이듬해 앙코르 공연으로 이어졌다. IMF 외환위기로 삼성영상사업단이 해체됐지만 라이선스 계약 기간이 5년이었던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프로듀서인 설도윤이 제작사를 바꿔 계속 무대에 올렸다. 무려 5년간 꾸준히 공연된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한국 관객들에게 ‘뮤지컬의 바이블’로 브랜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극단 대중이 2004~2005년 이 작품을 리바이벌한 뒤 2008년부터 뮤지컬계 큰손인 CJ ENM과 설앤컴퍼니가 다시 무대에 올리면서 스테디셀러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그동안 숱한 배우들이 거쳤지만 개런티 높은 아이돌스타보다는 안정적인 뮤지컬계 베테랑 배우들로 작품의 완성도를 유지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2014년을 제외하고 매년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2015년부터 CJ ENM이 단독으로 제작하고 있다.
한국 뮤지컬계의 스테디셀러 공연은 설도윤, 박명성, 신춘수, 김영욱, 박용호 등 프로듀서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들 프로듀서들은 주로 영미권 작품의 라이선스를 취득해 공연을 올린다. 설도윤은 설앤컴퍼니와 R&D웍스 등에서 <오페라의 유령>(2001년 초연), <캣츠>(1994년 내한 공연을 빼면 2003년부터 정식 공연)를, 박명성은 신시컴퍼니에서 <시카고>(2000), <맘마미아>(2004)를, 신춘수는 오디컴퍼니에서 <그리스>(2003), <지킬앤하이드>(2004)를, 김영욱은 쇼노트에서 <헤드윅>(2005)을, 박용호는 뮤지컬헤븐과 달컴퍼니에서 <쓰릴미>(2007)를 자주 공연한다. 한국 뮤지컬 역사에서 뮤지컬의 대중화 또는 스타 마케팅 확산이라는 점에서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이자 각각의 제작사를 먹여 살리는 캐시카우다.
참고로 극단 시키, 제작사 도호, 다카라즈카 가극단, 호리프로 등 ‘빅 4’가 뮤지컬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오픈런과 1~4개월 단위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레퍼토리 공연이 혼재돼있다.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미권 뮤지컬의 라이선스 공연이 뮤지컬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4개 메이저 제작사 모두 전용극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국에 전용관 8~9개를 운영하는 시키만 <라이온킹>, <캣츠>, <알라딘> 등 인기작의 경우 오픈런을 채택하고 있다.
뮤지컬의 라이선스 계약은 일반적으로 작품을 공연할 때마다 계약하는 연극과 달리 3~5년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그동안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던 제작사에 우선권을 준다. 그리고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레플리카(복제) 프로덕션인 경우가 많으며 제작사들은 투어 버전을 간간이 선보이기도 한다. <시카고>의 경우 초연 이후 지금까지 레플리카 라이선스 공연과 내한 공연을 포함해 18회 무대에 올랐다. 또 <캣츠>와 <맘마미아>는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돌파했다.
영미권 작품이 대다수인 가운데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2005), 체코 뮤지컬 <삼총사>(2008), <잭 더 리퍼>(2009)도 제작사가 바뀌긴 했지만 10년을 넘겨 꾸준히 라이선스로 공연되고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레플리카 프로덕션이며, <잭 더 리퍼>는 대본과 음악만을 사온 스몰 라이선스 가운데서도 각색이 많이 이뤄진 사례다.
창작 뮤지컬로는 연출가 겸 프로듀서인 윤호진의 <명성황후>(1995)와 <영웅>(2009)이 10년 넘게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두 작품은 대극장용 창작 뮤지컬로는 드물게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안중근 열사를 다룬 <영웅>은 한국 창작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뮤지컬 영화로 제작 중이다.
소극장용 창작 뮤지컬로는 <사랑은 비를 타고>(1995), <빨래>(2005)와 <김종욱 찾기>(2006)가 대학로에서 오픈런 공연 중이다.
앞서 독일 뮤지컬을 번안한 극단 학전의 <지하철 1호선>이 1994년 초연 이후 2008년 4,000회를 끝으로 공연을 중단했다가 지난해 10년 만에 리바이벌됐다. 올해 6월 독일 그립스 극단의 <지하철 1호선> 50주년 특별 공연에 초청된 것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서울에서 4개월간 100회 공연을 마친 뒤 올해 지방 투어를 돌고 있는데, 관객들의 요청이 많아 독일 공연 이후 서울에서 다시 무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3 오페라 <마술피리> 공연 모습. (국립오페라단 제공)

4 발레 <호두까기 인형> 공연 모습. (국립발레단 제공, 사진 BAKi)

오페라·발레, 전용극장 부재의 한계

해외 오페라극장은 대부분 예전에 제작한 오페라와 발레 프로덕션을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다. 극장은 물론 자국 공연예술 역사의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번 제작하려면 많은 예산이 필요해 실패작이 아니라면 수십 년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로마오페라극장은 1900년 1월 초연된 푸치니의 <토스카> 프로덕션을 아직까지 무대에 올리며 해외에도 대여한다.
물론 무대세트, 의상, 소품 등은 시간이 지나면 낡기 때문에 계속 수리하거나 똑같은 디자인과 재질로 복원한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재정난을 겪는 정부와 지자체가 문화예술지원을 줄이면서 오페라극장들도 시즌 프로그램 가운데 신작의 비율을 줄이고 예전 프로덕션을 늘리고 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의 경우 한 시즌에 25~26개 정도의 레퍼토리를 올리는데, 20개는 기존에 보유한 레퍼토리이고 나머지 5~6개는 MET 프리미어(초연)다. 5~6개 가운데 2개는 다른 오페라극장과의 공동 제작, 1~2개는 다른 오페라극장 프로덕션의 라이선스, 그리고 1~2개는 MET의 단독 제작이다. 오페라극장이 뒤늦게 생긴 아시아에서 1997년 개관한 일본 신국립극장의 오페라 부문은 한 시즌에 9개의 작품을 올린다. 대체로 기존 레퍼토리, 공동 제작, 단독 제작이 30%씩 구성돼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5년 이상 된 프로덕션이 없다. 1962년 창단된 국립오페라단의 경우 전용극장 없이 예술감독 교체에 따른 신작 중심으로 운영하는 데다 프로덕션들의 보관 창고가 턱없이 작기 때문에 5년 이상 된 무대세트와 의상을 정기적으로 소각한다. 또 민간 오페라단들은 해외 프로덕션을 대여한 경우 공연이 끝나면 바로 무대세트와 의상 등을 반납하고, 직접 제작한 프로덕션이라도 보관비 문제 등으로 기껏해야 한두 차례 정도 더 재공연한 뒤 폐기한다.
여기에 무대에 오르는 작품을 놓고 볼 때 한국 오페라계는 레퍼토리의 편중이 유난히 심하다. 해외 오페라극장은 50~100편 정도의 기본 레퍼토리를 보유한 상황에서 신작을 계속 선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이인선의 국제오페라사가 <춘희>(라트라비아타)를 처음 공연한 이후 70년 동안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아이다>, 푸치니의 <토스카>, <라보엠>, <나비부인>,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비제의 <카르멘> 등 20여 편을 반복적으로 올린다.
그나마 국고지원을 받는 국립오페라단은 바그너로 대표되는 독일 오페라, 바로크 오페라 등을 간간이 선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민간 오페라단들의 경우 제작비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낯선 레퍼토리를 선택하면 티켓 판매가 쉽지 않다고 판단해 소위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레퍼토리를 공연한다. 1970~1980년대 한국 성악가들이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것도 이탈리아 오페라 편중을 부채질했던 것으로 보인다.
창작 오페라와 관련해 한국은 1950년 현제명의 <춘향전>을 시작으로 150편이 넘는 작품이 만들어졌다. 21세기 이후 지자체의 대표 문화상품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등의 영향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신작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광개토대왕, 선덕여왕, 정몽주, 이순신, 안중근, 전봉준 등 역사 속 위인이나 백록담, 대장경 등 지역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다 보니 의미만 강조될 뿐 드라마로서는 재미가 없다. 게다가 일부는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지는 바람에 완성도가 낮아서 재공연되는 경우가 극히 적다. 한국 창작 오페라에서 스테디셀러 공연이라고 할 만한 것은 현제명의 <춘향전>과 2001년 초연된 이건용의 <봄봄> 정도다.
우리나라의 국립발레단도 국립오페라단처럼 전용극장 없이 운영되고 있다. 가장 큰 차이라면 국립발레단은 단원이 있고 국립오페라단은 단원(합창단이나 전속 솔리스트)이 없다는 점이다. 발레의 경우 전막 작품을 올리려면 정년제든 시즌제든 단원을 보유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전막 발레를 올릴 수 있는 단체는 국립발레단과 통일교 재단이 운영하는 유니버설발레단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막 작품을 올릴 수 있는 발레단의 레퍼토리는 상당히 유사하다. 현존하는 발레의 역사가 19세기 전반 낭만 발레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전 작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데다 발레리나가 토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는 ‘푸앵트’(point) 기법, 남녀 무용수가 추는 2인무인 ‘파드되’(pas de deux) 등이 이때서야 본격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세기 말 러시아에서 낭만 발레의 유산을 토대로 마리우스 프티파가 고전(classic) 발레를 완성한다. 프티파가 안무한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돈키호테>, <라바야데르>, 낭만 발레지만 프티파의 손을 거쳐 지금까지 전해지는 <지젤> 등이 오늘날 발레단의 기본 레퍼토리다.
하지만 전 세계 발레단에서 이들 작품이 프티파의 안무대로 공연되는 경우는 드물다. 프티파의 안무를 바탕으로 후대 안무가들이 재안무한 버전이다. 우리나라에서 <백조의 호수> 초연은 1967년 일본 안무가 고마키 마사히데의 재안무에 한국, 중국, 일본 무용수들이 참가해 이루어졌다. 당시 한국 발레계는 단독으로 <백조의 호수> 전막도 올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전막 발레가 만들어진 것은 1973년 국립발레단이 국립무용단에서 분리된 이후부터다. 특히 임성남 국립발레단장이 1977년 고전 발레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 전막을 재안무한 것은 발레사에서 큰 의미를 띤다.
하지만 현재 국립발레단에서 공연되는 고전 발레는 2000년 이후 레퍼토리로 정착된 버전이다. 1986년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이후 한국 발레는 두 발레단의 경쟁과 함께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두 발레단은 고전 발레 레퍼토리와 관련해 러시아의 양대 발레단인 마린스키발레단과 볼쇼이발레단의 전통을 잇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1992년 마린스키발레단(당시엔 키로프발레단) 예술감독인 올레그 비노그라도프를 초빙해 <백조의 호수> 전막을 공연했다. 비노그라도프는 이후 유니버설발레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1997년 마린스키발레단 예술감독에서 물러난 이듬해에 아예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왔다. 그는 2007년까지 유니버설발레단에 머무르면서 발레단의 기본 클래식 레퍼토리들을 안무했다. 국립발레단의 경우 1996년 최태지 단장이 부임한 이후 적극적으로 해외 발레계와의 교류에 나섰다. 볼쇼이발레단에서 오랫동안 예술감독으로 군림한 유리 그리고로비치를 초청한 것은 오늘날 국립발레단의 토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발레단은 원래 1997년 국립극장 전속 단체 시절에 그리고로비치를 초청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으며, 이후 2000년 재단 법인화로 운영에 자율성이 생기자 마침내 초청에 성공했다. 국립발레단은 2000년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호두까기 인형>을 시작으로 이듬해 <백조의 호수>와 <스파르타쿠스>를 차례로 올렸다. 이후 그리고로비치 안무의 <라바야데르>, <로미오와 줄리엣>, <라이몬다>도 무대에 올렸으며, 국립발레단의 극진한 대우에 감동받은 그리고로비치는 이들 작품의 국내 공연에선 저작권료도 받지 않고 있다.
두 발레단은 고전 발레 이외에 20세기 이후 만들어진, 조지 발란신, 존 크랑코, 케네스 맥밀란 등 유명 안무가의 드라마 발레, 모던 발레 레퍼토리를 선보여왔다. 다만 이들 작품들은 3년 단위로 공연 저작권을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공연될지는 미지수다. 예를 들어 국립발레단은 2000년과 2002년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여 호평받았지만 리바이벌된 것은 새로 계약을 맺은 후인 2011년, 2013년이다.

글 장지영_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