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 김태호(서울교통공사 사장)
- 이나미(우이신설선 문화철도 프로젝트 마스터플래너)
- 일시 |
- 2017년 7월 4일 오후 2시
- 장소 |
- 서울교통공사 사장실
김태호 우이신설선과 서울메트로(현재 서울교통공사로 통합)는 발상이 다릅니다. 역만 생각했고 수익을 내야 한다고 해서 광고든 임대든 뭐든 집어넣으려 했던 게 지난 10여 년입니다. 이제 와서 들어내자고 하면 어려움이 있죠. 광고만 해도 1년에 수백 억 원 이익이 나는데, 4,000억 원이 적자인 상황에서 광고를 안 한다고 하면 그 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방향은 좋지만 수익손실 부담은 어떻게 해결할지 답이 없습니다. 기존 광고사업자들과의 계약도 존재하고요. 물론 우리가 흑자에다 돈이 많으면 계약 종료하고 보상해주고 말 테지만 그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까다롭습니다.
이나미 역사의 공간이 문화적으로 인식되고 광고매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상업 광고를 받지 않고 분위기에 맞는 광고로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김태호 어떤 매체를 어떻게 하기보다는 역사와 지하철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종래에는 타고 내리는 것으로만 인식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많으니 상업적인 목적으로 변했습니다. 지금 누차 강조하는 것이 지역 커뮤니티 허브 개념입니다. 역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야 문화예술이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이나미 우이신설선은 문화소외 지역을 통과합니다. 지역과의 연계도 매우 중요합니다. 일단 우이신설선 구간 안에서 역별 특성을 생각하고 환승을 통해 이을 곳이 어디인지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태호 홍콩에 4~5개 자동화 라인이 새로 생겼는데 역마다 색깔이 다릅니다. 졸다가 전동차 바깥으로 노란색이 보이면 ‘우리 역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마다 똑같은 색이니까 역명을 봐야 하고 허겁지겁 내려야 합니다. 굉장히 천편일률적입니다.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문화만이 아니라 안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편의성과 수익성을 어디까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천천히 걸어가는 것과 시의 정책이 갈라집니다. 출구마다 에스컬레이터를 놓으라고 기계를 들여오고, 편의성도 좋긴 하지만… 정책도 일관되게 가야겠지요.
이나미 파리는 가방을 들고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게 일상입니다. 우리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시민의 생각도 다양합니다.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만 우이신설선의 경우 문화철도의 의미를 확실히 부여해서 가자는 서울시의 의지가 있습니다.
김태호 기존 1~8호선까지 산만하고 저급한 상업시설을 걷어내기로 했습니다. 시장님에게도 광고 없는 역 40개를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다 걷어내고 공간을 문화예술적 요소로 채우겠다고요. 공사,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디자인재단 등 몇 개 기관과 협약도 맺고 투자출연기관과의 협력활동을 강화할 것입니다.
이나미 광고라고 해서 상업광고를 전부 배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중문화 안에서 텔레비전이나 영화광고도 필요로 하고 또 그 자체가 문화예술 아니겠습니까.
김태호 문화예술 관련 광고나 표준화된 디자인을 서울시와 같이했으면 좋겠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런던입니다. 역마다 통일성이 있고 광고별 크기와 색상이 똑같으니까 모든 상업광고가 예술적으로 보입니다.
이나미 어떻게 가능할까요?
김태호 예술가가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니 광고심의위원회는 유해성이 있나 없나만 보면 됩니다. 기본적인 수준에서 더 올라가서 에이전시에게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는 문화예술적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어떤 법률과 관련한 유해성과 공익성 심사를 마쳤어도 그다음 수준에 대한 지침을 줄 수 있는 그런 것들이요.
이나미 이 밖에도 지하철역에 문화예술 공간이나 공연장 등이 있나요?
김태호 역마다 공간이 있으면 공연장을 만들어줍니다. 시민들과 지역단체에게 무료로 제공해주고요. 관련 대학생들이나 시니어 연주가들, 초·중·고 학생들이 와서 연주하기도 합니다.
이나미 공연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우이신설선에 조언해줄 말씀이 있으신가요?
김태호 관객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이동 중이니까 지하철 공연장에서 오랫동안 보게 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특별한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은 오래 머물 수 있겠죠. 목적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나미 ‘우리 역’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커뮤니티 허브가 될 것이고요.
김태호 포털이잖아요. 역을 그렇게 인식하도록 만들어주는 과정이 바로 문화예술이 점점 성숙해지는 과정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나미 원래의 기능에 충실해야 하고 안전도 중요하죠. 공연으로 인해 지하철 운행이 방해되거나 하진 않나요?
김태호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연장 조성은 안전한 구역에 했고요. 스피커 소음 정도로 안전 운행을 방해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지속적으로 공연하는 건 좀 안 맞아요. 지하철역이 연주자들에게 썩 좋은 공간은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공간의 특성에 맞게 해야 합니다. 공연도 좋지만 가끔 지하철역에서 연습공간을 제공해주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연습할 공간이 없는 비보이들에게 지하철역은 넓고 좋은 장소가 되겠죠.
이나미 객차 안에서 고정적이진 않더라도 공연을 할 수 있나요?
김태호 가끔 객차 안에서 가수가 노래하고 1년에 한두 번 이벤트도 하는데 소음이나 진동 때문에 수준 높은 공연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아는 가수가 와서 하는 이벤트 정도인데 지하철 법규와는 상관없습니다.
이나미 객차 안에 모퉁이 광고 자리가 정해져 있다고 하는데요. 그걸 확장할 수 있나요?
김태호 래핑해서 내관과 외관을 전부 다 꾸밀 수 있어요. 우리도 테마 열차를 꾸민 적이 있습니다. 칸마다 도시별, 나라별로 테마를 꾸몄고 또 어디는 세계 관광열차로 꾸몄습니다. 마찬가지로 우이신설 전동차 안쪽을 어떤 음악 장르나 악기, 영화의 한 장면처럼 꾸미면 어떨까요? 재질만 불연으로 하면 아무 상관없습니다.
이나미 인상 깊었던 외국의 사례가 있었나요?
김태호 파리의 사례가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도 지하철에 시를 크게 써 붙이지 않나요? 파리의 지하철 바닥과 스크린도어에 뭐가 붙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유명한 시인들의 시구절이더라고요. 왜 작게 붙였나 했더니, 안 볼 자유도 있다는 겁니다. 서울과 대비되더군요. 우리는 안 보면 안 되게 크게 써놓았는데 파리는 더 작게 써놓아서 유심히 봐야 합니다. 결국 안 보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안 들어오는 거죠. 문화예술이 시민에게 다가갈 때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 안 볼 자유도 있다, 라는 걸 바탕으로 하는 게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이나미 테마 중 피해야 할 것이 있을까요? 혹은 이런 것이 효과적이었다든가.
김태호 유지 보수가 그렇습니다. 열차를 꾸미는 건 쉽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태를 유지하는 건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스치고 밟으며 재질이 변질됩니다. 훼손되는 부분이 크다면 무엇을 하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흉하게 변할 것입니다.
이나미 우이신설선이 하나의 브랜드로, 문화철도의 개념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요?
김태호 가능하다고 봅니다. 라인에 별명을 붙일 수도 있고 동물 이름이나 애칭을 만들 수도 있고, 색깔별로 꾸밀 수도 있겠죠.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역명 위에 심벌을 표시해놓았더라고요. 약방, 꽃 등 지역의 특색을 노선도 위에 그려넣은 거지요. 독일에서도 20~30년 전의 도시 모습을 승강장 벽에 붙이고 이곳이 어떤 곳이다, 라는 걸 알려줍니다. 역마다의 특색을 살려 큐레이션하면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철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겁니다.
- 진행 이규승_ 서울문화재단 IT홍보팀장
- 정리 이준걸_ 서울문화재단 IT홍보팀
- 사진 조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