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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교통복지를 넘어 문화복지로 달리면 달리 보이는 ‘달리는 문화철도’가 온다
베이비붐 세대 중에는 “우리 어릴 적엔 전기도 안 들어왔어”라며 호롱불 추억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신세대 중에서도 버스가 하루에 서너 번밖에 들어오지 않는 ‘깡촌’에 살았다며 고백하는 친구들이 있다. 도시 교통수단으로 만원버스가 일반적이던 60~70년대 초를 지나 지하철 1호선이 1974년에 개통된 지 43년이 지났다. 이용률이 1%에 불과했던 지하철은 서울시민의 68%가 이용할 만큼 대중적인 이동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

그 많은 유동인구를 따라 지하철 안으로 상업광고와 상가라는 자본이 들어왔다. 해외에선 깨끗한 지하철, 와이파이 잘 터지는 지하철로 명성이 높지만 정작 시민들은 성형외과 광고, 대출광고 등 무질서한 광고의 범람과 체계적이지 못한 정보 디자인으로 피로도가 높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정책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지하철 및 역사 내의 상업광고와 인도를 침범한 상가들을 점차 비워내고 보다 쾌적한 지하철, 걷기에 좋은 ‘지하 보행 도시 서울’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외곽의 지하철역은 물론 시청역이나 을지로 같은 중심가의 지하철 광고까지 텅텅 비어 있는 걸 보면 이런 변화는 필연적이지 않나 싶다. 2호선 지하철 광고의 유료 게첨률이 45% 수준이고 문화예술 광고 비중이 6.7% 수준이라면 공공선을 추구하는 캠페인이나 문화예술 콘텐츠 광고의 대상으로 다양한 파트너와 협업하는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13개의 문화예술 테마 역사

마침 동대문, 성북, 강북을 잇는 서울도시철도 지선 1호 우이신설선 은 13개의 역사를 문화예술 테마로 특화한다는 소식이다. 특히 종 점인 북한산우이역을 비롯, 북한산보국문역, 화계역 등 북한산으로 바로 이어지는 역들이 있으니 우이신설선은 도심에서 23분이면 북 한산 입구에 닿을 수 있는 자연 도시철도로 제격이다.
기존 지하철이 10량인 데 반해 우이신설선은 달랑 전동차 2량으로 이루어진 ‘꼬마 전철’이다. 지하철 역사도 보도에서 바로 연결되고,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오래 걷지 않아도 바로 탈 수 있다. 열차 안 은 복도가 좁아서 마주 보는 이가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우이신설선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기존의 지하철에서 만나 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동네 골목 귀퉁이의 세탁소 아저 씨일 수 있고, 옆집 다세대 빌라에 사는 아주머니일 수도 있다. 그동 안 삶의 현장을 오가며 허겁지겁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면 우리는 이 제 동네 꼬마 전철에서 “이게 누구야?”, “안녕하세요?”, “하하~ 너 어느 집의 누구 아니니?”라는 반가운 인사를 나눌지도 모를 일이다.
기존 광고판이 상업광고 일색이었다면 여기에는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 혹은 새로 생긴 ‘힙한’ 가게가 소개될 수 있다. 미처 몰랐던 우리 동네의 미래유산 이야기, 촛불시위의 역사를 찾아가는 민주화 둘레길, 독립운동가 16인의 묘소 지도도 와이드 광고판에서 만날 수 있다.
지하철역에 동네 예술가들이 마실 가듯 나가 공연을 하고, 사계절의 북한산 나뭇잎들을 찍어내는 판화 놀이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역사 안에는 고액의 임대료를 내고 들어오는 프랜차이즈 매장 대신 퀼트 동아리의 어머니 회원이 주인장인 부엉이 공예품 가게가 들어선다. 대학과 가까운 솔밭공원역이나 정릉역, 성신여대입구역에서는 대학생들이 졸업 전시 쇼 케이스를 비롯해 자신들의 역량을 펼쳐 보이는 무대를 올린다. 북한산보국문역 박경리 가옥, 가오리역 윤극영 가옥, 문익환 목사 생가 등 곳곳에 인생 문구를 새겨 놓아 보물찾기 놀이하듯 명언 명구를 찾아볼 수도 있다.

바삐 지나치던 장소가 머무는 장소로

이렇게 달리면 달리 보이는 ‘달리는 문화철도’ 프로젝트는 기존 광고판의 변화에 머물지 않고 지하철 역사(驛舍)가 그 지역의 생활문화 플랫폼이 되고, 지역 주민이 지하철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문화민주주의의 역사(歷史)를 만들어나간다.
물론 필자의 상상이다. 모바일로 신청한 책을 출근길 지하철 무인도서관에서 받고, 지하철 안에서 전자책을 내려받아 읽는다. 하루에 516회나 운행하는 지하철은 저마다 주제가 달라서 조금만 기다리면 ‘달리는 도서관’, ‘달리는 미술관’, ‘달리는 뮤지컬’, ‘달리는 그린 캔버스’ 등 취향 따라 골라 탈 수도 있다.
무인 운행으로 역무원은 없지만 마을공동체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문화역장이 따로 있다. 솔샘역은 문학 테마의 도서관 특화역으로, 4.19민주묘지역은 역사 테마의 민주시민 역사로, 북한산우이역은 자연 테마 역사로 거듭난다. 신설동역의 아트스테이션, 성신여대입구역의 우잉아트(놀라움을 표현하는 ‘우잉?’에서 착안한 ‘왜상아트’(Anamorphosis)) 등 지하철역마다 사진을 찍고 싶은 포토 존이 탄생하고, 명절 무렵에는 동네 VJ와 DJ가 지하철 스튜디오에서 특집방송도 꾸려나간다.
‘달리는 문화철도’란 ‘이동한다’는 뜻의 달린다와 함께 ‘달리’ 보는, ‘달리’ 생각하는, ‘달리’ 여기는, ‘달리’ 인정하는 등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을 포함한다. ‘오래된 미래’ 같은 강북 문화에 자부심을 갖도록 다양한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삶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리하여 지하철이 스치고 지나가는 ‘비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시민들의 ‘서로 다른 뻘짓’으로 발길을 멈추고, 머물고, 다시 또 모이는 ‘장소’로 진화한다. “지하철을 탔는데 우잉? 지하철이 아니고 미술관이네?”, “지하철을 탔는데 우잉? 도서관이네?” 하는 시민들의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9월, 놀라움과 새로움이 가득 찬 달리면 달리 보이는 ‘달리는 문화철도’가 온다.

글 오진이_ 서울문화재단 전문위원, 문화철도TFT팀장
그림 최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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