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표지 작가김하경
1 <기록된 변화 시리즈> 도자 | 가변 설치 | 2021
2 <기록된 변화> 디테일 컷
3 <Canvas on the Table> 도자 | 44×46×12cm, 41×32×15cm | 2020
하나의 현상은 독립적으로 발현되고 소멸되지 않는다. 한 현상은 여러 원인에 의해 파생되고 또 다른 현상을 일으키는 근원이 된다. 삶 역시 현상의 일부이다. 하나의 삶은 수많은 삶과 관련돼 있고, 시작되는 순간과 끝나는 순간이 가위로 자르듯 분리·구분되지 않는다. 단순히 무에서 유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 또한 유가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은 끊임없이 얽혀 있고 만물은 연결돼 하나의 큰 유기체처럼 존재한다. 생명체같이 촉촉하고 유연한 흙을 가마에 구우면, 생명의 시간이 멈춘 듯 단단하게 굳어 지난 움직임의 발자취만 남는다. 각기 다른 장소와 시간을 거친 유약 원료들이 불과 만나 작용하던 흐름도 멈춘다. 생명의 움직임을 간직한 흙은 다양한 형태의 도자 캔버스로 표현되고, 그 위에 물감처럼 얹혀 흐르는 유약은 현상의 정지된 모습을 보여준다. 원료의 종류와 혼합 비율, 가마 속 산소량, 가마가 도달하는 온도, 온도에 도달하기까지의 소성燒成 과정에 따라 흙과 유약은 다른 색·질감·빛깔로 발현된다.
도자를 구성하는 물질을 연구하고 결합 비율과 소성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에 집중한다. 각각의 원료가 가마에서 화학 작용하는 현상을 만물의 상호작용과 비유하며, 순환하는 삶의 찰나를 흙과 유약으로 나타낸다. 가시적으로 봤을 때 만물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듯하지만 비가시적 영역에서 모든 것은 연결된 하나의 존재이다. 작업을 통해 이런 비가시적 영역을 가시적으로 표현한다. 다양한 색과 질감으로 형상화된 세상 만물은 서로 얽혀 있기도 하고 같은 내면의 모습을 공유해 내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우리는 개별적 존재가 아닌 큰 순환의 움직임을 구성하는 구성 요소로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