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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1월호

우리 시대의
공예를 보여주는 창

‘공예’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이렇다. “기능과 장식의 양면을 조화시켜 직물, 염직, 칠기, 도자기 따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 ‘실용성’과 ‘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공예의 역사는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이어져왔다. 그만큼 걸작도 많아서, 고려 나전칠기의 디테일이나 조선 백자의 기품은 실로 감탄을 자아낸다. 시대의 생활상, 미의 기준에 따라 공예 역시 나아가고 변화하며 각기 다른 형태의 꽃을 피워왔다. 이는 다시 말해 공예를 통해 한 시대의 모습과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공예는 어떤 모습이며, 무엇을 추구할까?

공예의 현재를 마주할 수 있는 다채로운 공간이 서울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장인’이 운영하는 ‘공방’에 가야만 살펴보고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던 공예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조명하는 박물관과 갤러리가 늘고 있는 것. 대표적인 장소가 안국동에 위치한 서울공예박물관(종로구 율곡로3길 4)이다. 옛 풍문여고 건물 5개 동을 리모델링해 2021년 문을 연 이곳은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으로 손꼽힌다. 전통부터 현대까지 시대와 분야를 아우르는 약 1만여 점의 방대한 공예품과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단순히 공예품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주변 요소를 두루 아울러 연구하고, 이를 통해 공예가 지닌 가치를 전하는 역동적인 플랫폼을 지향하는 것이 특징. 현재 상설전으로 조선 시대 장인과 그들의 활동 방식, 제도 등에 대해 소개하는 상설전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회화적 관점에서 자수 병풍을 재조명하고 문양·기법 등을 살펴보는 《자수, 꽃이 피다》, 궁중부터 민간까지 다양한 곳에서 쓰인 보자기의 다채로움을 조명하는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가 진행 중이어서 언제든 수준 높은 공예 전시를 접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적 관점으로 공예에 접근하는 기획전도 수시로 열리고 있다.

KCDF 갤러리(종로구 인사동11길 8)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인사동에 위치한 공예 전시 전문 공간으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운영하고 있다. 공예 산업의 진흥을 도모하는 장소인 만큼, 국내 대표 작가부터 라이징 스타까지 한국의 공예 신scene을 이끄는 이들의 수준 높은 작업을 두루 접할 수 있는 것이 장점. 특히 갤러리 1층 외부에 설치된 ‘윈도 갤러리’를 활용해 경쟁력 있는 신진 작가를 소개하는 소규모 전시를 자주 여는데, 작지만 공간이 눈에 잘 띄는 데다 흥미로운 기획이 많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예?디자인 관련 서적과 연구 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KCDF 도서관, 작품을 직접 구입할 수 있는 갤러리숍도 함께 있으니 알찬 시간을 보내기 좋다.

또 한 곳, 주목할 공간은 올해 2월 문을 연 공예 갤러리 ‘모순’(중구 정동길 33)이다. 공간부터 남다른데, 붉은 벽돌과 근대 건축 기법을 고스란히 간직한 100여 년 역사의 정동길 신아기념관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이끄는 김예빈 대표는 부암동에 위치한 젓가락 갤러리 ‘저집’의 매니저, 아트먼트뎁의 아트디렉터, 매거진 ‘B’의 브랜드 마케터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인물. 한국 공예가 지닌 아름다움을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큐레이션해 소개한다는 포부다. 각기 다른 분청 기법을 사용하는 도예 작가 세 명의 단체전 《Covered in Fog》를 시작으로 유려하고 자유분방한 도예 작품을 전개하는 박지원 작가의 개인전 《Natural Forms》, 가죽에 한 땀 한 땀 실을 꿰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형상화하는 문순원 작가의 《Stitched Together》 등 전시를 선보였다. 또한 갤러리 곳곳에는 김예빈 대표가 수집한 고가구와 빈티지 스피커·도자기 등을 배치해 일반 가정집 같은 아늑함을 더했다. 2~3만 원대의 컵부터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달항아리까지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2024년 첫 전시로는 목공예 작가인 박경윤의 전시를 준비 중이라고.

2023년 10월 서촌에 들어선 신생 공예 갤러리 ‘모시’(종로구 자하문로 60)도 눈여겨볼 만하다.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요리와 일상을 선보여온 나나테이블 이나경 대표의 공간으로, 한국과 일본의 도자기 작품을 소개한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가는 도자기를 보면 우리 시공간 속에서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어우러지는 과정이 떠오른다”는 그는 아담한 갤러리를 통해 정성으로 빚은 공예품과 함께하는 의미 있는 일상을 제안한다. 이진선·홍선희·고바야시 테츠야·카루가네 아카리 같은 작가들의 담백하고 우아한 작업이 주를 이룬다.

이 외에도 2008년부터 공예와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 현대미술 작품을 두루 선보이며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해온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강남구 압구정로 80길 37), 생활 공예 작품의 ‘우아한 쓰임’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기획전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갤러리로얄(강남구 논현로 709),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장인의 협업 전시에 강한 북촌의 크래프트 온 더 힐(종로구 북촌로7길 20), 젊은 공예 작가의 작업 위주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큐레이션을 전개하는 일상여백(종로구 자하문로17길 12-15) 등 저마다의 개성과 감도를 지닌 공예 갤러리가 상당히 많다. 이들의 안목과 감각이 동시대의 공예 신을 형성하고,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삶의 연결고리를 완성해주는 것 아닐까? 지금 시대의 공예가 궁금하다면, 한 번쯤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글 피처에디터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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