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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1월호

모두를 환대하는 무용예술가의 집에서

서울무용센터 남궁태윤

당신을 소개해주세요. 2020년 7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 서울문화재단에 입사해 이제 3년을 넘긴 남궁태윤입니다. 이례적으로 저는 매년 부서를 옮겼는데요. 서울예술치유허브에서 시작해 예술교육팀을 거쳐 현재는 서울무용센터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입사 동기들에 비해 부서 이동이 잦았지만, 개인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좋아해서인지 이런 상황에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이력은 재단 안에서도 좀 독특한 것 같은데, 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뒤에는 삼성SDS 인사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삼성에 뼈를 묻고 임원 딱지 달고 나올 거라며 당차게 입사 면접을 봤는데, 어쩐 일인지 지금 서울무용센터에 와 있네요.(웃음) 당시 대기업의 위계와 숨 쉴 틈 없이 경쟁하는 치열한 조직 생활이 잘 맞지 않아 퇴사를 결정했죠.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해 보고 싶어서 박물관에 단기 해설 업무에 지원했고, 이후 전시 현장운영 매니저까지 맡게 됐어요. 좀 더 전문적으로 문화예술 업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문화예술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학위 과정이 끝날 무렵 재단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서울무용센터에서 국내외 교류·협력 사업을 담당하고 계세요. 팬데믹 여파로 인해 지난 시기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제가 이곳에서 근무를 시작한 때가 코로나19로부터 일상으로의 회복을 조금씩 준비하던 시기였어요. 서울무용센터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에도 해외 무용계와의 교류를 이어가기 위해 호주·캐나다·한국의 무용예술가가 협업하는 버추얼virtual 레지던시를 진행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며 통합형 해외 초청 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충족되지 않는, 무용예술만의 물리적 교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엔데믹에 접어들면서부터 기존의 만남을 복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싱가포르, 올해는 홍콩 예술단체를 초청해 토크·워크숍·공유회 등 만남의 장을 열었고요. 그리고 저는 이러한 소중한 만남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운이 좀 더 짙게 남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워크숍이나 공유회가 끝나고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공간을 개방하거나, 긍정적인 분위기가 지속될 수 있게 시간을 충분히 들여 이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댄스포피디Dance for PD’라는 특별한 사업도 운영하고 있네요 2022년부터 전문무용수지원센터와 협업하고 있는 ‘댄스포피디’는 미국 마크 모리스 무용단Mark Morris Dance Group에서 파킨슨 환우를 위해 고안한 전문 무용예술 프로그램이에요. 주로 노년기에 발생하는 파킨슨병은 근육이 강직되고 떨림이 발생하는 등 운동장애를 일으키는데, ‘댄스포피디’는 쉽고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이러한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죠.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이 프로그램의 전문 강사를 양성해 무용예술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서울문화재단은 서울무용센터 공간과 강사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횟수를 늘려 상·하반기 각 10회씩 연간 20회 운영하고 있어요.

서울무용센터의 연간 대관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압니다. 인기 비결이 뭘까요. 그만큼 무용예술가에게 서울무용센터가 편안한 장소라는 것 아닐까요? 사실 교통이 편리한 위치가 아니라 오가기에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곤 합니다. 또 어떤 분은 홍대 앞 같은 번화가 한복판에 서울무용센터가 있었다면 창작에 몰입하기 어려울 거라고 하고요. 무엇보다 저희 공간은 아주 아름다워요. 백련산 자락에 자리를 잡아 늘 푸릇푸릇한 풍경을 자랑하고요. 1층 연습실에선 크게 난 창을 통해 야외 정원의 나무가 한 아름 보이기 때문에 휴식과 연습이 공존하는 정말 매력적인 공간이죠. 온몸으로 햇빛을 받으며 연습 혹은 사유하는 무용예술가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돼요. 편안한 분위기,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고요함이 인기 요인 아닐까 싶습니다.

근무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예술가들과 자주 마주치겠네요. 서울무용센터는 상·하반기 각각 5개월씩 입주예술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센터에는 언제나 입주예술가들이 지내고 있죠. 어떻게 보면 센터 직원들이 입주예술가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구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때로는 커피도 같이 마시고, 점심도 함께 먹곤 해요. 최근에는 안무가 교환 프로그램으로 입주한 예술가와 함께 고사리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어요. 이런 시간을 저희끼리는 ‘예술가의 식탁’이라 불러요. 맛있는 걸 나눠 먹으면서 업무 외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죠. 담당자와 예술가라는 딱딱한 관계가 아니라, 조금 더 말랑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저희 센터만의 장점입니다. 물론 장단점을 다 떠나서 예술가와의 수다는 늘 즐겁기도 하고요.(웃음) 저뿐만 아니라 서울무용센터의 모든 직원은 이곳이 모두를 ‘환대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요. 일방적으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거쳐 가는 모든 이들이 서로를 반갑게 맞이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해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편안한 의자와 휴식 공간을 조성하고 직접 정원 관리도 하면서,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정겨운 공간으로 쭉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최근 관심을 두는 주제가 있나요. 레지던시의 접근성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장애 접근성만 아니라 안전한 창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전반에 관해서요. 최근 들어 ‘돌봄’이 큰 화두가 되고 있죠. 예술가와 예술가의 가족을 더 이상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장기 거주형 레지던시에 입주하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면 지원하기를 주저하는 예술가도 있겠죠. 반드시 거주하지 않더라도 작업을 위해 오가는 공간으로서 서울무용센터가 현시점에서 얼마나 예술가의 가족을 환대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돼요. 그리고 최근 예술계 전반에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관한 논의가 침체하는 분위기라, 예술가를 위한 실질적 지원으로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심도 있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제 자신에게 계속해서 와닿는 건 기후 변화인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당시 하늘이 정말 맑았잖아요. 최근 들어 공기가 안 좋아지고 갑작스런 기후 현상도 잦아지면서 그 변화를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어요. 이제는 ‘글로벌 워밍global warming’(지구 온난화)이 아니라 ‘보일링boiling’이라고 하잖아요. 단적으로, 올해만 해도 당일에 날씨가 급격하게 바뀌어 야외 행사가 취소된 경우가 정말 많았어요. 너무 춥고 너무 더운 탓에 서울무용센터의 냉난방비를 비롯한 유지비도 상당히 증가했고요. 기후 변화가 문화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고, 개인적으로라도 할 수 있는 실천이 있을지 찾아보게 됩니다.

김태희 [문화+서울]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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