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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7월호

머무르는 것이 아닌 도약을 향한

무용가를 위한 해외 레지던시

춤추고 누빌 수 있는 공간, 해외 교류를 꿈꾸는 단체와 축제가 전 세계 무용가들을 불러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머무르는 것이 아닌, 한 단계 높이 나아가기 위한 구름판이 되어주는 레지던시 사례를 살펴봤다.

1964년 설립돼 루아요몽 수도원 부지를 토대로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는 루아요몽 재단은 2008년부터 안무 창작에 관한 레지던시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으며, 에르메스 재단이 이를 후원하고 있다 ⓒFondation Royaumont

지난해 창단 20주년을 맞이한 리케이댄스의 예술감독 이경은은 본격적인 안무 활동을 뉴욕에서 시작했다. 대학원을 막 졸업한 2000년, 6개월간 뉴욕 댄스 스페이스 센터Dance Space Center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해 발표한 작품 <모모와 함께>로 미국 신인 안무가들의 꿈의 무대 ‘Raw Material’에 초청됐다. 2001년 프랑스 안무경연대회인 바뇰레 서울 안무대회(한국 예선)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다음 해에는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벌Montpellier Danse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안무 구성 워크숍에 초청돼 한 달간 참여했다. 이경은은 이를 계기로 2003년 일본 아오야마극장Aoyama Theatre 제작의 한·중·일 공동 작업 <HIMIKO>, 2003년 일본 무용가와의 공동 작업 <Between>에 이어, 2005년 프랑스 루아요몽 재단Royaumont, abbaye et fondation에서 기획한 ‘그랑 아틀리에’라는 레지던시에 초청돼 사이프러스 작곡가와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2017년에는 미국 아메리칸 댄스 페스티벌American Dance Festival, ADF(1934년 출범) 주최 국제 안무가 레지던시인 ICR 프로그램 International Choreographers Residency에 6주간 초청돼 현지 무용수를 대상으로 안무작을 발표하고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대에 우연히 참가한 레지던시가 이후 20여 년간 다양한 국제 협업으로 이어지며 창작 역량의 발판이 돼주었고, 이경은을 국제적 안무가로 성장시킨 것이다.

루아요몽 재단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중 워크숍 현장 ⓒFondation Royaumont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예술가에게 일정 기간 거주, 작업, 공연 등 창작·생활 공간을 지원해 작품 활동을 돕는 사업을 말한다. 레지던시residency라는 말뜻처럼 예술가는 특정 공간에 거주하면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다른 예술가나 관련 인사와 교류하며 창작 활동에 간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무용예술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시각예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연극이나 문학보다는 언어의 제약을 적게 받는 이유로 국제 장벽이 낮은 편이다. 최근에는 K-컬처의 바람으로 한국 안무가의 레지던시 초청에 많은 나라가 호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문성을 가진 국제적인 무용 레지던시 프로그램 가운데 한국 무용가들과 좋은 성과를 내는 대표적 사례로 미국 뉴욕의 무브먼트 리서치Movement Research와 독일 K3 안무센터 탄츠플란 함부르크Tanzplan Hamburg를 꼽을 수 있다.

뉴욕의 무브먼트 리서치는 교환 프로그램Exchange Artist, 2년 지원 레지던시 등 안무가를 위한 다양한 레지던시를 진행하고 있으며, 소매틱, 즉흥, 테크닉 등 다양한 수업이 1년 내내 운영되고 있다. 서울무용센터와 협약을 맺어 매년 1명씩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6주간의 안무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는 안무가를 위한 안무 워크숍MELT Class이 진행되며, 1960년대 포스트모던댄스 발생에 역사적 거점이 된 저드슨 메모리얼 처치Judson Memorial Church에서 공연을 열게 된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K3 안무센터의 레지던시는 2006년 독일의 탄츠플란 도이칠란트Tanzplan Deutschland라는 기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됐고, 현재는 함부르크시와 함부르크 문화부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K3는 100년이 넘은 기계 공장을 개조한 공연장 캄프나겔Kampnagel에 있으며, 다양한 구조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젊은 안무가들이 제약 없이 안무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단기(3개월)와 장기(8개월)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고, 1년에 1회씩 각 3명의 참가자를 선정해 ‘탄츠호흐드라이TanzHochDrei’라는 제목으로 캄프나겔 공연장에서 결과물을 선보이게 한다. 한국 안무가로는 2012년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지애를 시작으로 김이슬·권령은·정다슬·서영란 등이 참가했다.

예술가 레지던시로 사용되는 루아요몽 수도원 전경 ⓒFondation Royaumont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력 기관으로 공식적 지원을 받아 참가할 수 있는 레지던시도 있다. 문예위는 국제교류 지원사업 중 해외 레지던시 참가를 지정형과 비지정형으로 나누고 있는데, 이 중 지정형이 문예위와 직접 협약을 맺은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이다. 2023년 지정형 레지던시 경우 영국 더 플레이스The Place ‘코레오드롬Choreodrome’ 프로그램과 오스트리아 ‘댄스웹danceWEB’이 운영되고 있다. 코레오드롬은 더 플레이스 극장의 리서치 및 작품 개발 프로그램으로, 선정자는 여름 동안 더 플레이스에 2주 이내 체류하면서 쇼케이스, 티칭, 워크숍, 멘토링 및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리서치 프로그램 진행 등 안무가로서 새로운 작업을 개발할 기회를 제공받는다. 2018년 김이슬, 2019년 도황주가 참가했으며 2020~2022년은 코로나로 미운영했고, 올해 운영을 재개해 정지혜가 9월에 참가를 앞두고 있다. 한국에서 후보 5명을 선정해 추천하면 더 플레이스에서 최종 1명을 선발하는 시스템이다.

오스트리아 댄스웹은 현지 기관이 직접 공모를 받아 선정하고 있다. 22세 이상 30세 이하 전문 무용가·안무가이면서,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자가 지원할 수 있다. 댄스웹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무용 축제 ‘임펄스탄츠ImPulsTanz’의 일환으로 매년 7월에서 8월까지 5주간 진행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50~60여 명을 선정해 집중 트레이닝하고 있으며, 현대무용계의 주요 인사를 코치로 초청해 아이디어와 지식 교류, 지속적인 트레이닝에 중점을 두고 진행한다. ‘임펄스탄츠’는 1984년 시작했으며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문예위 지원과 별개로 매년 많은 한국 무용가들이 참가하고 있다. 1980~90년대 여름마다 한국의 젊은 무용가들이 미국 ADF에 참가하던 것에서 오스트리아 임펄스탄츠로 옮겨간 것은 현대무용의 시류가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겨간 경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레지던시, 공간을 넘어서 플랫폼으로
그 밖에 안무가를 위한 레지던시로 무용 축제, 극장, 무용단체 등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성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정기로 열리는 경우도 있지만, 극장 간의 교류와 협업으로 신작을 제작하기 위해서, 나라 간 국교 수립을 기념하기 위해 일회성으로 설계되기도 한다. 짧게는 1~2주에서 길게는 2~3개월, 때에 따라 수년간 진행되기도 한다. 주로 안무가의 성장을 위한 것보다 작품 제작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 안무가에게 안무를 의뢰하거나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을 연결시켜 공동 창작을 진행하기도 한다. 때에 따라 리서치를 최종 목표로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창작의 준비 과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의미를 둔다.

예술가 레지던시로 사용되는 루아요몽 수도원 전경 ⓒFondation Royaumont

축제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로는 앞서 이경은의 사례에서 언급한 미국 ADF의 ICR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핀란드의 포리 시어터 페스티벌Pori Outlaw§ Theatre Festival은 매년 한국의 무용 작품을 초청하고 있는데, 2018년에는 현대무용가 전혁진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초청해 자신의 무용단을 위한 안무를 의뢰했다. 이는 양국의 교류로 이어져 한국에서 그라운드 제로 프로젝트의 한국&핀란드 공동 창작 프로젝트 <Pathless Wood>, <Intersection>이라는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정다슬은 2014년 우크라이나 젤룐카 현대무용 페스티벌ZelyonkaFest Contemporary dance Festival에서 주관하는 레지던시에 초청받아 우크라이나 무용수들과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축제 무대에 선보였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개최되는 아가베 페스티벌AGAVE Intercambio Escenico의 경우 교육과 네트워킹을 목표로 하는 축제로, 해외 안무가의 레지던시를 통해 현지 무용수를 대상으로 작품을 만들게 한다. 한국의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서울아트마켓 등과 교류를 이어오고 있으며 한국 안무가를 초청하기도 했다. 그 외에 많은 무용축제들이 안무가 초청 프로그램으로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 간의 수교로 이벤트성 레지던시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2018년 한국과 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무용단과 스웨덴 스코네스 댄스시어터Skanes Dansteater의 안무 교류 프로젝트를 위해 레지던시가 진행됐다. 2019년까지 2년에 걸쳐 한국과 스웨덴에서 선정한 두 명의 안무가가 각각 상대 단체의 무용수와 신작을 제작하는 형식이었는데, 2018년 ‘스웨덴 커넥션 I’ 공연에서 스웨덴의 페르난도 멜로Fernando Melo가 국립현대무용단과 작업한 신작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를 선보인 데 이어 2019년에는 한국의 안무가 장혜림를 2개월 동안 스코네스 댄스시어터에 파견해 신작 <제 祭, Burnt Offering>를 제작했다.

오래된 기계공장 부지에 세워진 K3 안무센터 탄츠플란 함부르크 ⓒLisa Strautman/K3 Tanzplan Hamburg

무용단체에서 진행한 레지던시 사례로는 2013년 독일의 시립 무용단 중 하나인 올덴부르크 댄스컴퍼니Tanzcompagnie Oldenburg가 한국 안무가 홍승엽에게 신작 안무를 의뢰하며 진행한 레지던시를 들 수 있다. 3개월간 독일 현지에 머물며 이들과 작품 <…그들을 움직이는 것…was sie bewegt>을 제작했는데, 무용수 10명이 출연하는 75분 길이의 작품으로 완성한 후 3개월간 9회 공연했으며, 한국 주재 독일문화원에서 필름으로 작품을 상영하기도 했다.

대학 산하의 연구센터에서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일본 교토예술대학 산하의 교토무대예술연구센터가 주최한 한·일 공동 제작 프로젝트의 경우 한국 무용가 김성용과 일본 무용가 시라이 츠요시가 2년간 작품 <원색충돌>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됐다. 2013년 기획해 2014년 한국과 일본에서 쇼케이스를 열고 2015년 교토예술대학 내 공연장인 춘추좌에서 2차 쇼케이스와 완성작을 발표했는데, 이 작업은 2016년 도쿄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Setagaya Public Theater에서 재공연되며 일본 무용계에서 김성용의 인지도를 높였다.

몸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무용 장르는 레지던시를 통해 전 세계 무용가들이 교류할 수 있으며, 레지던시는 서로의 안무 기법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예술의 장터가 된다. 더 많은 한국의 안무가들이 해외 진출의 안정적 플랫폼으로써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활용하기를 바라며, 나아가 서울무용센터도 세계적 레지던시 운영기관이 되길 기대한다.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 기념 안무 교류 프로젝트로 스웨덴 안무가 페르난도 멜로가 국립현대무용단과 작업한 <두 점 사이의 가장 긴 거리>는 스코네스 댄스시어터의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Tilo Stengel

김예림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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