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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2월호

춤을 보고 싶고, 추고 싶은 사람들
입문자를 위한 무용 이야기

춤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빠져 있는 왕이 있었다. 보는 데만 만족한 게 아니라 춤 연습을 부지런히 했고 무대에 오르기를 즐겼다. 자신의 춤 선생에게 발동작과 춤 테크닉을 정리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왕이 이러니 귀족들은 너도나도 춤을 배웠고, 왕궁에서는 종종 춤 공연이 펼쳐졌다. 어느 날, 공연 도중 왕이 실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상심한 왕은 평생 무대에 서지 않았다.

신의 춤에서 사람의 춤으로

왕의 일화는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다. 프랑스 루이 14세(1638~1715)의 이야기이다. 루이 14세가 정립한 춤이 바로 ‘발레’이다. 이탈리아에서 일종의 놀이와 사교댄스로 시작된 발레는 프랑스로 건너와 우리가 아는 발레로 발전했다. 하지만 그의 춤에 대한 열정은 예술혼에만 기인한 건 아니다. 그는 다섯 살에 왕위에 앉았기 때문에 귀족들과 꿈틀거리는 반역 세력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을 무엇이 필요했다. 춤은 최적의 도구였다. 무대 위에서 온몸에 금칠을 하고 춤을 추는 루이 14세는 사람이 아니라 아폴론처럼 빛났다. 태양왕이란 칭호도 그 덕분이었다. 춤을 통해 완벽한 정치 마케팅을 한 셈이다. 그런 루이 14세가 1670년,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때 춤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애호가와 아마추어의 시대는 종지부를 찍고 전문 무용수 시대로 들어섰다. 이제 사람들은 객석에 앉아 ‘보는 자’가 됐고, 춤은 예술로 자리 잡는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춤은 어떤 입지에 있었을까. 고대 그리스 시절, 춤은 종교적 제의의 일부였다. 당시 춤은 신을 찬양하거나 신에 대한 공포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후에 귀족 애호가들의 기분 전환과 사교의 용도로 변화하면서 궁중무용이 발전했고, 서민 사이에서는 다양한 민속무용이 생겨났다. 서민들은 공동체의 우의와 결속을 다지기 위해, 혹은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춤을 췄고, 때로는 오락거리로 춤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렇게 춤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몸과 혼에 기록돼 내려왔다. 그런 춤이 루이 14세 시대를 거치면서 발레로 정립됐고, 18세기에 전문 무용수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이후 러시아로 전파된 발레는 완벽한 정형미를 추구하는 19세기 고전발레로 기틀을 잡는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등이 대표 고전발레 작품으로, 이제 발레는 춤 테크닉뿐 아니라 규격화된 몸도 중시하게 됐다.

이사도라 던컨. ‘맨발의 이사도라’로 불렸다.

보는 춤에서 추는 춤으로

우리는 춤을 빼앗긴 것인가. 발레에서 요구하는 형식과 조건은 무용수를 곡예사로 만들고, 춤과 몸의 자유를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대표적 인물이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이다. 그녀는 몸을 조이는 발레 의상 대신 흐르는 듯 몸을 감싸는 그리스풍의 옷을 입고, 토슈즈 대신 맨발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고, 그에 의해 춤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담는 그릇이 됐다. 그렇게 ‘모던댄스’가 탄생한다. 한번 자유를 맛본 무용수들은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고 자신의 예술혼을 표현할 다양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무용수들은 움직임을 넘어서서 대사를 하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춤은 연극과 만나 새로운 무대를 완성했다. 독일의 전설적 안무가, 피나 바우슈Pina Bausch를 통해 발전된 이런 동향을 ‘탄츠시어터Tanz Theater’라고 한다. 그사이 발레도 변화를 맞았다. 19세기 고전발레는 군무·마임·줄거리가 반드시 있어야 했지만, 이 형식을 탈피한 작품이 등장했다. 모던댄스는 발레에 반기를 들고 생겨났지만 그 둘은 화해한다. 모두가 ‘춤’이란 이름으로 다시 만났다. 최근에는 미디어아트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과 협업하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이것이 21세기의 양상이다. 이 춤들은 ‘현재 추어지는 춤’이란 의미에서 ‘현대무용’ ‘컨템퍼러리댄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춤은 하나의 언어이다. 어눌한 말을 하는 사람이라도 표정이나 눈빛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정교한 움직임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꺼내놓는 그것이 누군가의 가슴에 와닿을 수 있다. 무대 위에서 가만히 서 있어도 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춤을 추는 ‘몸’은 자신과 외부를 잇는 통로이자 자신의 내면을 담아놓은 그릇이다. 그 몸이 병들거나 늙거나 혹은 시대의 미적 기준에서 멀리 있다고 춤을 출 수 없는 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이 춤이고, 우리는 왜 춤을 추는가. 각자가 자신만의 춤을 만들어가는 동안 그 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생애 처음으로 듣는 음악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것이 엄마의 심장 뛰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 소리에 맞춰 힘찬 발차기를 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엄마의 모습은 아기의 첫 춤사위와 첫 관객맞이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춤추는 자이다. 앞으로 커뮤니티 댄스도 점점 더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제의에서 애호가의 취미로, 전문 무용수의 예술로, 계속 변화해 온 춤은 다시 우리 안으로 돌아오고 있다. 인간의 몸에는 이미 춤이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피나>의 한 장면

이단비 방송작가·무용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주)영화사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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