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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0월호

소설가 박상영 단어의 온전한 무게와 온도를 되찾다

박상영의 소설은 언제나 너무 가벼워진 단어들이 자신의 무게감을 되찾게 만든다.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단편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서는 예술이라는 단어가
비로소 제 무게를 찾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박상영의 소설이 그 무게감을 위해
굳이 엄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은 오히려 유머와 말장난, 빈틈없이 주고받는 대사로 가득하다.
그와 오랜 시간 친구로 지냈지만 이번엔 독자로서 묻고 싶은 게 가득했다.
꼭 쓰고 싶던 이야기

10월에 출간하는 박상영의 첫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만 요약할 수 있을까? 소설에 비해 너무 가벼운 요약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다가 알아차렸다. 필자 스스로가 청소년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음을. ‘청소년’을 단순한 우울과 무한한 기쁨으로 대치하고 있음을.
필자의 10대는 분명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무한한 우울과 단순한 기쁨만이 가득했던 시기였는데도, 그럼에도, 어느 순간 잊고 있었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지난 두 권의 책이 필요했다고 할 만큼, 저에게는 작가가 되고 나서부터 쓰고 싶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청소년기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드는데요. 제게는 암흑 같은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그 시기의 명암에 대해서 제대로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첫 번째 장편소설은 반드시 10대 얘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쭉 해왔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고요.” 박상영 소설가는 2016년 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 신인상 소설 부문에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로 젊은 작가상을, 2019년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으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같은 해에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로 허균문학상을 받았다. 올해, 그러니까 2021년에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신동엽문학상까지 수상했다고 하니 등단 후 정말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써왔지만 이제야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니. 그토록 오래 묵힌 이야기인 만큼 왜 10대 청소년의 이야기여야만 했는지가 더욱 궁금해졌다. 박상영 소설가에게 청소년기엔 어떤 아이였는지 스스로를 묘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평범한 아이였어요. 남 웃기는 걸 좋아하고 날씬한(강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이. 결석이나 지각은 정규 교과과정 12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죠. 잠도 없는 편이었어요. 무조건 알람 울리기 전에 일어나는 애 있죠? 수업 시간에도 안 졸고요. 수업 시간을 충실히 보내서인지 성적은 중상위권이었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모범생. 아, 고3 때 처음으로 가출한 적이 있어요. 그때 무작정 포항에 있는 민박집에서 하루 자고 돌아왔죠. 그때 할 것도 없어서 혼자 영화를 보면서 울던 기억이 나요. 또 사람들 앞에선 잘 웃고 놀고는 싸이월드엔 매일 우울한 이야기만 줄곧 썼어요. 집에선 우울한 음악을 틀어놓고 채팅을 엄청 했는데 세이클럽 타키·msn·네이트온 등 온갖 메신저를 다 켜고 친구들과 대화하느라 정신없었죠.”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학창 시절의 추억으로 빨려 들어갔다. 특히 2000년대 초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싸이월드, 각종 메신저, 캔모아, 《호텔 아프리카》를 비롯한 순정만화들은 《1차원이 되고 싶어》 속에서도 청소년의 감정적 매개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제 박상영 소설가는 1988년생으로, 2000년대 초반을 관통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에게 2000년대 초반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었다.

언젠가 청소년기의 명암에 대해서 제대로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첫 번째 장편소설은 반드시
10대 얘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쭉 해왔습니다.

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 표지

한국의 2000년대를 응시하다

“한국의 2000년대는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되진 않았지만 굉장한 격동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후반에 IMF 외환위기가 일어났고, 그 여파를 온몸으로 겪은 아이들이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자신이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그런 첫걸음을 내디디는 때였던 것 같고요. 그 시대 배경이 지금 사회에 진출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 정신문화의 바탕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시기에 우리가 왜 그렇게 불안했고, 또 경쟁으로 내몰리면서도 그 모든 야만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였는지 다시 한번 성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더불어 그 시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2002년 월드컵을 꼽았다. 2002년 월드컵 중 16강전을 치르던 날은 《1차원이 되고 싶어》 소설의 주인공이 사랑의 대상인 윤도를 처음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2002년 월드컵 때 전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한마음 한 뜻으로 응원하면서 그전까지 젖어 있던 어떤 패배감을 회복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많은 정치적 의제에서나 여러 사회적 일이 일어날 때마다 국민이 광장으로 나와서 더욱더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요. 그 과정을 지켜보며 저는 지금 한국 사회를 결정짓는 많은 부분, 이른바 한국이라는 나라의 민족성이라는 것을 만들어낸 많은 계기가 2002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그 시기를 이 소설의 시작점으로 잡았고요.”
그러면서 그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2002년을 더욱 주목했다고 덧붙였다.
“흔히들 2002년 월드컵을 4강까지 진출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월드컵으로 기억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큰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는 자부심을 지니게 된, 선진국으로 향하는 축포를 알리는 계기의 월드컵뿐만 아니라, 이전까지의 경제 발전 단계와는 조금 다른 방식의 발전을 지향하게 된 계기로 2002년을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가 10대에서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는 너무 다른 사회가 돼버렸거든요. 우리가 꿈꿔 왔던 발전도 이뤘지만 동시에 정신문화적으로는 더 퇴보한 것도 분명히 있고요. 그런 생각을 총체적으로 하면서 이번 소설을 썼고, 그때의 문제를 되짚어 보며 현재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지금 우리가 격동 속에서 열정적으로 문제를 헤치면서 온 현주소가 과연 올바른 곳인지에 대한 의문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에 소설의 첫 부분을 다시 한번 펼쳐 봤다. 과연 그의 말대로 뜨거웠던 2000년대가 서늘한 유머와 함께 묘사됐다. 한없이 가볍다가도 한없이 무거워지는, 그러다가 이내 제 무게를 찾고 마는 그런 문장들이, 남 웃기는 것을 좋아하면서 또 사람들 앞에서 잘 웃다가도, 집에 돌아와서는 우울한 일기를 써 내려 가던 박상영 소설가와 꼭 닮았다. 박상영 소설가의 첫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문학동네에서 10월 출간 예정이다.

지금 우리가 격동 속에서 열정적으로
문제를 헤치면서 온 현주소가
과연 올바른 곳인지에 대한 의문을 담고 싶었습니다.

ⓒ이관형

작가로서의 삶

“20대 후반에야 작가를 꿈꾼 줄 알았는데, 최근에 생활기록부를 떼어보니 고등학교 3년 내내 제가 장래 희망란에 작가라고 적었더라고요.”
박상영 소설가는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나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설가가 된 것은 2016년. 그에게 습작 기간이 길었는지, 그때 그린 작가로서의 삶과 지금의 삶이 많이 닮았는지 물었다. 그가 특유의 웃음기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습작 기간은 길었고, 그때 그린 삶과는 많이 다르네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2013년에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2015년에 석사를 수료 했고, 2016년이 돼서야 신인상을 받았어요. 작가로서의 삶은…… 등단하고 나서도 꽤 오래 출퇴근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카페에서 소설을 쓰고 출근했어요. 그때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연재도 하고 있었죠. 전업 작가가 된 것은 정말 얼마 안 되네요.”
전업 작가가 돼 좋은 점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훌쩍 떠날 수 있는 점이라며, 요즘 가파도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제주 남단에 있는 섬 하나가 보였다. 그 먼 가파도에는 어떻게 가게 됐는지, 그곳에서의 창작 생활은 어떤지 들었다. “제주문화재단의 초청으로 9월부터 가파도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마침 장편소설을 탈고하느라 내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고, 새로운 환경이 절실했는데 좋은 기회다 싶어서 바로 왔습니다. 기존에 문학동네에 발표한 단편 <동경 너머 하와이>를 경장편 분량으로 고치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11월까지 가파도에 묵는 동안 초고를 얼추 완성하는 것이 목표예요. 이곳에는 사람이 별로 없고 해도 일찍 지고 가게도 일찍 문을 닫는데요. 그래서 고독해지기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또 제가 은근히 평생을 대도시 근처에서만 지내왔더라고요. 여행도 큰 도시 위주로만 다녀서인지 새삼 자연을 실감하고 있어요.”
《대도시의 사랑법》을 쓴 작가다운 대답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침 《대도시의 사랑법》이 2021년 신동엽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에게 살짝 뒤늦은 축하 인사를 건네며 《대도시의 사랑법》의 번역본 출간 일정을 물었다. 그는 9월에 일본어판이 출간된 상태고 10월 말에 영국·미국·독일·벨기에·네덜란드에서 출간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현재 출간된 일본어판의 반응은 어떤지 물었다.
“현지 전문 잡지에서 리뷰를 듣고는 하는데 예상외의 호평이 많아 기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 나라의 제 언어가 아닌지라 뭔가 다른 사람의 작품 얘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 국문학번역원 주최로 일본 독자와 온라인상에서 만났는데, 한국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감을 전해주셨습니다. 몹시 기쁜 기억입니다.”
그가 기쁜 표정으로 대답해 덩달아 마음이 환해졌다. 환한 마음으로 출간이 임박한 지금의 소감을 묻자 그가 금세 우울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상하게 책 나올 때만 되면 우울해져요. 우울에 잠식되지 않으려고 일부러 매일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레지던스에 참여한 작가들과도 교류하며 지내고 있어요.”
어쩌면 책이 출간되는 일은 작가로부터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하나의 이별과도 같은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에게 이번에는 동료로서 위로를 건넸다. 그러자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농담을 건네며 웃었다. 웃을 때면 진해지는 인디언 보조개가 쏙 들어갔다. 그러자 언젠가 그가 쓴 작가의 말이 떠 올랐다.
글을 쓸 때(혹은 일상을 살아갈 때) 홀로 먼지 속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 들 때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손에 뭔가 닿은 것처럼 온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감히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말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금 주먹을 꽉 쥔 채 이 사소한 온기를 껴안을 수밖에 없다.
《대도시의 사랑법》 중
필자는 그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부서지기 쉬운 감정과 단어도, 박상영의 소설에서는 그들만의 온전한 무게와 온도를 갖게 된다고. 그러니 언제든 주먹을 꽉 쥐어보라고. 당신이 되찾은 그 무게가 당신의 손에 오롯이 느껴질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져 필자는 2000년대로 돌아간 청소년처럼 고작 ㅋ 세 개를 타이핑해 그의 메신저로 전송할 따름이었다.

송지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서 <펑크록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2013)로 당선됐다.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에세이집 《동해 생활》을 발간했다. | 사진 제공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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