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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상담소

10월호

별자리 운세도 신통치 않을 때예술적으로 상담해드립니다
“똑똑똑… 여기가 ‘예술적 상담소’ 맞나요?”여러분의 어떤 고민도 예술적으로 상담해드리는 ‘예술적 상담소’. 온라인으로 별도 공간을 마련해 고민 상담을 위한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올려주신 고민에 대한 예술적 대책을 찾아 답변을 달아드립니다. 서울문화재단 페이스북 탭에서 ‘예술적 상담소’를 찾아주세요! 다른 사람의 고민에 댓글을 달 수도 있답니다. 채택된 질문은 [문화+서울]에 게재되며, [문화+서울]을 1년 동안 보내드립니다.

좋은 읽을거리를 추천해주세요.

계절 변화가 뚜렷해지는 달이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며, 나 역시 변화가 필요하진 않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는 이 시기를 계절이 내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이라 여기며 늘 새로운 경험을 하려고 하는데요. 올해는 일이 너무 바빠 독서로 갈음해보려 합니다. 외서도 좋고 번역서도 좋고 장르도 관계없습니다. 좋은 읽을거리를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을에 읽기 좋은 책, <시절일기>

안녕하세요. 저는 ‘마음산책’ 대표 정은숙입니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에 들어선 이후, 꽃그늘이 짙고 햇살은 밝고 강해서 뭔가 살아 있다는 강력한 자극이 있을 때 몰랐던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날들이 늘었습니다. 뭐랄까요. 삶의 소강상태라고나 할까요. 잠시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습니다. 왜 사는지 스스로 묻기도 하고요. 상담 질문의 첫 문장 “계절 변화가 뚜렷해지는 달이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가 가장 적확한 표현일 듯합니다.
“이 계절에 새로운 경험을 독서로 해보고 싶다”는 말씀은 책을 만드는 제게 그런 싱숭생숭함을 희석시키는 마법을 부렸어요. 요즘 사람들이 책을 영상이나 다른 라이브 무대 체험에 비해 문화생활의 뒷자리에 놓는 상황을 다소 시무룩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요. 책으로 새로운 경험을 갈음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신선한 각오이고 의지인지요. 덥석 “고맙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입니다. 마침 제가 읽고 있는 책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작가 김연수의 산문집 <시절일기>입니다. 산문은 시나 소설보다 창작자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숨길 수 없는 자기표현의 민낯 미학을 보여주죠. 작가가 어떤 삶의 철학으로 일상을 마주하고 있는가를 산문은 잘 보여줍니다. 산문 잘 쓰기로 유명한 김연수 작가가 10여 년 동안 써온 글을 묶은 <시절일기>는 가을에 읽기 참 좋은 책입니다.
작가는 개인이 겪은 일이자 동시대 우리 모두에게도 침투한 사회적 사건과 단상을 깊이 있고 품위 있는 글로 써내려갔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또 흔들리며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지하게 묻는 힘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시절일기>를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러 권을 입체적으로 실감나게 읽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에요. 산문집 말미에 참고문헌을 따로 표기할 정도로 많은 책이 인용되는데 그 100여 권의 책들은 김연수 작가와 서로 화답하며 글로서 어우러집니다. <시절일기>의 프롤로그인 ‘내가 쓴 글, 저절로 쓰여진 글’에서 불교 경전 <로히땃사경>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시인 백석의 시를 지나 영미권의 주요 소설과 인문 서적들이 계속 호출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 순간마다 계절마다 막막한 인생에 작가는 책을 읽고 쓰는 삶,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납득하기 위해 기록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빛을 찾아가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둠만을 볼 뿐이다. 그게 바로 인간의 슬픔과 절망이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 이 세계를 다르게 보려면 빛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 이 세계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온 동네 꽃들이 모두 피어나던, 내 고향의 부활절 풍경이 그런 새로운 빛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 94쪽의 이 단락이 <시절일기>의 암중모색에 대한 아름다운 결의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살아보지 않아 새것인 가을을 위해

김연수 작가는 영문 번역, 한시 번역에 능숙합니다. 손에서 원서를 놓지 않고 끊임없이 읽는 삶을 살고 있지요. 작가가 번역한 세계적인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수작 단편집 <대성당>도 읽으면 좋겠습니다. 리얼리즘의 대가인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들은 소시민들이 주인공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듯하지만 어딘가 조금 어긋나 있고 삶의 방향도 모호한 이들을 간결한 문체와 일상적인 대화로 묘사합니다. 그런 묘사를 통해 처음에 보이지 않던 삶의 진짜 모습이 담담하게 드러나는데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인생의 비밀이랄까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을 이야기하는 뛰어난 작품들입니다.
특히나 수록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읽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던 빵집에서 연락이 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먹먹하고 뭉클한 작품을 읽고 나면 싱숭생숭한 가을날의 정서가 새로운 햇살에 말린 듯이 환기될 것입니다.
김연수 작가가 쓴 <시절일기>와 그가 번역한 <대성당>을 읽는 동안, 아직 살아보지 못해 새것 같은 올해 가을은 빛이 되어 우리 삶에 스며들 것이라고 마음 다독입니다. 저의 답을 마칩니다.

답변 정은숙_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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