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문화+서울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테마토크

7월호

예술은 나의 힘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김형희 대표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림으로 장애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넘어 그들이 새로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섰다. 장애인의 삶에 예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맞은 새 인생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계기치고는 너무나 끔찍하고 불행한 사건이었다. 무용학도였던 그가 화가이자 임상미술치료사, 공연 기획자 등 다양한 직함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은 교통사고 때문이다.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김형희 대표는 무용학과에 재학 중이던 23살에 교통사고로 중추신경이 절단돼 전신마비를 겪게 됐다. 춤은커녕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수술 후 재활치료에 몰두했다. 굳은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 운동을 하던 중, 그림을 만났다. 병원에서 만난 지인과 가족이 팔의 힘을 키우고 정서에도 도움이 된다며, 그림 그리기를 권했다. “어려서부터 무용만 해서 그림에 대해서는 몰랐어요. 그래서 많이 망설였죠. 처음 장애를 얻었을 때는 이 세상에 이런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춤만 추며 화려하게 지냈고, 장애인을 접해본 적도 없었죠. 그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병원에서 다른 장애인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정보도 얻게 됐죠. 그중 하나가 그림이었어요.”
시작할 때는 철저히 재활이 목적이었다. 재활치료를 계속하다 보면 다시 일어나서 춤을 출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학원이나 화실을 다니자니 휠체어를 타고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집에서 작은 방에 이젤과 스케치북을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에 힘이 없어서 붕대로 붓을 손에 감고 매일 10분씩 시간을 늘려가며 그렸다. “처음엔 초등학생 수준이었죠. 그림의 재료나 스케치 방법 같은 건 전혀 모르고 그냥 그렸어요. 조금씩 팔에 힘이 생기면서 집중력이 늘었어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음악을 들으며 그림 그리는 동안만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죠.” 하지만 시작할 때의 마음과는 달리, 하나의 절망과 또 다른 하나의 희망을 얻었다. 다시 일어나 걷기는 어렵다는 가슴 아픈 현실을 마주하고, 그래도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누드화를 그렸다. 인체 비율에 대한 공부 없이 보이는 대로 그렸다. 그러다가 주변에 무용 잡지가 많아서 무용수 사진을 찢어놓고 따라 그리다 보니, 어느새 방이 무용수들로 가득 찼다. “처음에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이었어요. 무용수의 얼굴이 어두운 초록색이라든지 보라색이라든지. 이후에는 남편을 만난 영향인지 좀 더 밝아졌죠. 제가 춤추는 상상을 하며 그려서인지 작업하는 게 행복했어요. 과거에는 무대에서 춤을 췄다면, 지금은 캔버스 위에서 또 다른 춤을 춘다고 느꼈죠. 그림을 하나둘 완성하는 게 안무를 하는 것 같았어요. 무용수의 손끝과 발끝을 신경 쓰며 그리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완성된 그림을 보면, 제 주위에 무용하는 친구들이 생기는 것만 같았고요.” 그렇게 그림을 그리며 비슷한 관심사의 사람들을 만나고 미술 대회에도 참여했으며, 시작한 지 10년이 됐을 때는 개인전을 열기에 이르렀다.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돼 단절된 생활을 하던 그에게 그림은 세상 밖으로 나올 힘을 주었다.

1 장애인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비상>.

예술을 통해 한 걸음 세상 밖으로

그의 도전은 그림에서 멈추지 않았다. 사고 후 10여 년이 그림을 만나 제2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발버둥친 시기였다면, 그 후엔 남편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며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듯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후 심한 우울증이 그를 덮쳤다. 그때 알게 된 것이 임상미술치료였다. “제가 치료받을 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공부하면서 굉장히 많이 치유됐고, 또 과거에 제가 그림을 그렸던 게 미술치료의 일환이었다는 걸 알게 됐죠. 제 경험이 다른 장애인에게도 적용되겠다는 생각에,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임상미술치료를 전공해 자격증을 따고, <임상미술치료가 척수손상 환자의 우울감 감소와 재활 동기 향상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학위도 얻었다. 이후 그는 다양한 병원과 장애 관련 시설에서 미술치료를 진행했다. “저 같은 척수손상 장애인들은 사고 때문에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경우가 많아요. 그들의 절망과 좌절감은 선천적 장애인보다 클 수 있죠. 제게 그림은 교육이라기보다는 치유의 목적이었어요. 저의 경험과 노하우를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면, 다른 장애인들도 힘과 희망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많은 장애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서, 2007년에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를 설립했습니다.”
김형희 대표는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에서 미술치료를 시작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표현미술아카데미’가 대표적. 참가자들이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춤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경험하고 그것을 작품에 반영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마련했다.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비장애인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서 같이 그림을 그렸다. 해마다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치료를 넘어 화가를 양성해보고 싶은 마음에 ‘장애 여성 화가 만들기’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장애인 중에서도 더욱 소외되는 여성 장애인들이 그림을 그리고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집에만 있던 그들이 나들이하듯 화실에 모여 수다를 떨고 그림을 그리고, 여느 화가들처럼 인사동에서 데뷔전도 치렀다. 장애 예술 관련 단체에서 예산을 지원받았고, 신선하고 성실한 활동 덕에 우수 단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점점 더 많은 장애인들을 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김형희 대표의 마음에는 여러 이야기가 쌓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던 그는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비롯해, 시각장애인 시인과 소아마비 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는 뮤지컬에 담았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2017년에 초연한 뮤지컬 <비상>이다. “장애가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가 하나의 오브제가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2 장애인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비상>.

예술로 일어서는 이들을 위해

김형희 대표가 음악극과 무용극을 제작하며 얻은 노하우가 집약된 <비상>의 초연은 3회 모두 매진됐다. “모든 예술 장르가 복합적으로 담긴 공연이었어요. 이야기도 감동적이었지만, 그 공연 한 편을 보면 장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서, 장애인보다 오히려 비장애인 관객에게 유익한 공연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장애인들만의 공연이 아니라 비장애인 전문가들과 함께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고, 비장애인 관객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고려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제작 과정은 무척 힘들었다. 모든 작품을 올리는 과정이 만만치 않지만,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공연이라 더욱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 우선 공연장의 장애인석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공연장 대부분이 법에 맞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 법이 장애인 예술가에게는 맞지 않았다. 무대 역시 장벽이 높았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오르내릴 수 있는 경사로가 설치된 곳이 없었고, 휠체어를 이용하기에 알맞은 무대 바닥을 마련해야 했다.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하는 데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서비스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을 위해, 객석 내에 화면 해설용 부스를 설치하고 별도의 대본 작업도 해야 했다. 안내견과 동행하는 이들을 위한 좌석도 필요했다. 예산은 물론 이해가 부족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공연 후 설문조사를 해서 관객들의 의견을 받았어요. 시각장애인들이 영화는 종종 봤지만 공연 관람은 처음이라며 정말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객석 2층에 화면 해설용 부스를 설치하고 그쪽에 시각장애인 관객들을 모셨는데, 그분들이 앞좌석에 앉고 싶었는데 좌석이 뒤쪽이라 아쉬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분들이 안 보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분들은 좀 더 가까이에서 배우들의 호흡과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거죠. 저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게 됩니다.”
장애인 예술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예산 투자가 필요하다. “장애인과 관련한 정부 예산은 얼마 안 될 것 같지만, 꽤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문제는 제대로 쓰이고 있느냐는 것이죠. 지금까지 제대로 된 자료가 없었는데, 우선 장애인 문화예술과 관련한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알맞은 지원사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업지원이나 평가, 심사 체계가 제대로 세워져야죠. 지금은 그냥 기존의 특정 단체들이 예산을 나눠 갖고,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요. 장애 예술의 특수성과 필요성에 맞는 지원사업이 만들어지고, 좋은 사업은 지속 가능하도록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장애 예술가들 대부분은 장애를 갖고 나서야 예술을 접해요. 이전과 같은 경제 활동을 하기는 힘들거든요. 하지만 예술가로서 새로운 재능을 발휘할 수 있기에, 그들이 세상에 나와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합니다.”

글 이민선_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오계옥
사진 제공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