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문화+서울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테마토크

6월호

공연 브랜드 신뢰의 원천, 스테디셀러
스테디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베스트셀러가 짧은 시간에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는 책이라면 스테디셀러는 꾸준히 팔리는 책이다.
베스트셀러는 스테디셀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를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수세기 동안 읽혀온 시간의 무게 때문이다.

뮤지컬 <빨래>. (씨에이치수박 제공)

스테디셀러라 불리는 공연들

공연이 꾸준히 팔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캣츠>나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시 수십 년째 극장을 지키며 공연된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쥐덫>은 1952년 런던 앰배서더 극장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67년째 공연되며 최장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한국 공연의 최장 스테디셀러를 이야기하라면 주저 없이 사뮈엘 베케트 작,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들 것이다. 1969년 초연되어 올해까지 50년간 공연해왔으니 한국 연극사와 궤를 같이한 프로덕션이다. 창작 뮤지컬로는 25년 역사의 <명성황후>를 비롯하여 <영웅>과 같은 대극장 뮤지컬과 <지하철 1호선>, <빨래>, <김종욱 찾기> 등이 스테디셀러의 대표선수들이다. 최근 창작 뮤지컬 흥행작들이 이어지면서 <그날들>, <프랑켄슈타인>, <웃는 남자> 등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프로덕션 자체가 스테디셀러라면 클래식 연주회나 오페라는 작품 자체, 곡 자체가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나 오페라 <라보엠>이 대표격이다.

스테디셀러 탄생의 조건

세계적인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조차 “흥행 결과는 누구도 모른다”고 하는 위험한 공연시장에서 스테디셀러의 존재는 제작자에게는 재정적인 안정을 담보하는 든든한 자원이며, 관객에게는 작품을 제작한 제작사나 극장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는 원천이다.
그렇다면 스테디셀러를 만들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우선 작품성이다. 단기간의 베스트셀러는 스타 캐스팅이나 시의성이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만 스테디셀러는 공연 작품의 안정성과 예술적인 완성도가 필수적이다. 고전을 원작으로 하고 검증된 창작진으로 팀을 꾸리는 방식이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작일수록 만듦새에 신경을 써야 한다.
두 번째는 흥행을 위한 대중성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나누는 일은 언제나 논란이지만 표적관객층이 넓고 주제가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면에서 대중성은 중요한 요소이다. 마니아 중심의 공연은 스테디셀러로서 긴 시간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시작할 때는 마니아이거나 스타 캐스팅에 이끌려 극장에 왔다고 하더라도 작품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추면 결국 이는 스테디셀러로 성장한다. 연령이나 성별을 폭넓게 아우르는 보편성이라는 차원에서의 대중적인 코드는 스테디셀러의 중요한 요소이다. 예술성은 높으나 관객에게 낯선 작품을 스테디셀러로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스타 캐스팅 전략을 통하여 초기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안정된 극장 환경의 보장이다. 공연은 무대화되는 모든 요소들이 갖추어진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담는 베뉴가 불안정하다면 성립할 수 없다. 브로드웨이식 커머셜 스테디셀러는 모두 자신의 전용극장에서 나왔으며 <호두까기 인형>이나 <라보엠>이 시즌 프로그램으로 늘 오페라하우스에 올라가는 것은 자신들의 전용극장을 가진 공공단체들의 여건 때문이다. 물론 한국형 스테디셀러는 수십 년간 한 극장에서 같은 작품이 무대에 올라간다는 뜻은 아니지만 안정된 제작 여건을 위해서 극장의 보장은 중요하다. <프랑켄슈타인> 등 최근에 나온 뮤지컬 스테디셀러는 공공극장과의 협업에서 탄생한 작품이 적지 않다. 민간과 공공의 경계는 이제 안정된 작품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더 과감하게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 <캣츠>로부터 <워호스>, <마틸다>에 이르는 글로벌 스테디셀러들은 영국의 상업 프로듀서와 공공극장의 협력 작품이다.
네 번째는 공공극장과 단체의 스테디셀러를 위한 과감한 투자이다.
국공립단체의 신작은 레퍼토리 구축, 즉 스테디셀러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위한 투자여야 한다. 예술감독이 바뀔 때마다 ‘시도’ 해보고 세트 보관소에 방치되는 일회용 작품이어서는 안 된다. 예술성은 있지만 민간에서 투자할 수 없는 규모나 위험성이 있는 작품을 세심하게 제작하고 이것이 시장에 안착되도록 전략적인 마케팅도 꾸준히 시도해야 한다. 예술감독이나 거버넌스의 변화에도 관객으로부터 인정받은 레퍼토리는 자신이 창작한 작품이 아니라 하더라도 단체의 대표상품으로 안착할 수 있는 세심한 배려를 통하여 긴 시간을 견디는 스테디셀러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자 여건이다. 위험을 감수하되 이에 대한 안전장치가 있다면 새로운 스테디셀러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 공공과 민간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신작 창작의 실패와 성공을 투자사와 공유하며, 투자 결과 역시 일회에 머물지 않고 장기적인 상환이 보장될 수 있는 환경은 새로운 스테디셀러 탄생의 중요한 토양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당시 베케트의 희곡은 그해 노벨상을 받은 당대 작품이었으며 서사가 완벽하지도 않은 부조리극이었고 우리의 공연 환경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제작자는 공연을 한결같이 매만지며 생명력을 키워왔고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긴 호흡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결과이다.

글 고희경_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