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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5월호

공연창작집단 ‘사람’ 서상현 연출가 겸 퍼포머
밧줄에게 말을 걸다 밧줄이 말하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넓고 깊게 뚫려 있는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의 메인홀. 어떤 이는 줄을 타고 있고, 어떤 이는 봉에 오르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공중에 매단 후프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이곳은 서커스 퍼포머들의 연습 공간. 신기하고 진귀한 광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공연창작집단 ‘사람’의 연출가 겸 퍼포머 서상현이 줄에 매달려 있다.

관련사진

1, 2 <우주고래> 공연 모습.
3 연습 중인 서상현 퍼포머.

<우주고래>의 진심

높이 솟은 기둥, 랩으로 감싸 만든 희미한 벽, 밧줄에 의지해 공중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퍼포머. 서상현은 5월에 열리는 서커스 페스티벌을 위해 연습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쇼케이스에서 선보였던 <나는 왕따였다>를 발전시켜, 올해에는 <우주고래>라는 제목으로 공연할 계획이다. 그는 이 작품을 “트라우마 또는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겪은 이의 갈등 해소 과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밧줄이라는 주요 오브제는 주인공과 동일시한 요소. 밧줄은 투명한 벽에 갇혀 있고, 주인공은 작은 종이봉투를 뒤 집어쓴 채 스스로 갇힌다. 도망치듯 벽 안으로 들어온 주인공은, 역시 갇혀 있는 밧줄을 만난다. 어두운 곳에 갇힌 자기 자신을 만난 터라 괴로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지를 드러내는 주인공. 랩으로 싸인 벽을 거칠게 뚫고 나와서, 그를 뒤덮은 종이봉투는 물론 옷가지도 다 벗어젖힌다. 어떤 속박도 편견도 없이, 맨몸으로 밧줄과 다시 만난 주인공. 그제야 주인공은 조심스럽지만 느리고 편안하게 밧줄과 하나가 된다. 이 작품을 창작한 서상현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담아냈다. “트라우마를 겪을 때,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고 멍한 상태가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때 마치 우주 속을 외롭게 헤엄치는 고래가 된 것 같았어요.” 이렇듯 <우주고래>에는 그의 진심과 노력이 담겨 있다.

시작은 달콤하게

서상현은 대학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했으나, 졸업할 때쯤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화술 위주의 연극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그때 우연히 극단 ‘배낭 속 사람들’을 만나고, 거리예술과 신체연극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를 통해 신체 움직임을 확장한 서커스 교육을 받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골목길에 흥미를 느끼고 마치 여행하듯 그곳을 누볐던 그가 “우리 삶의 공간인 거리를 무대로 공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얼마나 기뻤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학교에서는 제대로 접하지 못했던 신체 연극을 만났을 때 정말 놀라고 감동했으며,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그는 “말보다 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몸의 언어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이런 작업에 대한 희열은 서커스에 대한 관심 으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작품을 선보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창작 열정은 가득한데 지식이나 능력은 부족하고 기회도 없어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누가 시켜주거나 이끌어주지 않더라도 직접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 첫 공연을 올렸어요.” 그렇게, 청량리역 광장에서 행인과 노숙자들을 앞에 두고 비공식적으로 발표한 그의 첫 작품.
가방을 든 청년이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는 바닥에 그려진 사각형 안에서만 움직일 뿐이다. 그 안에 갇힌 그가 의아해하며 여행 가방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쓰레기만 가득하다. 그가 기대하고 알던 것과는 한참 다른, 뭔가 잘못된 여행. 내적인 갈등과 해방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서상현이 선택한 방식은 핸드 밸런싱이었다. 한참 동안 물구나무서서 다리를 모으기도 하고 벌리기도 하는 고난이도 기술. “세상에 제대로 서고 싶지만 서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 거꾸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홀로 놀이터에서 연습하고 정식 공연장에서 공연을 펼치지도 못했지만, 직접 쓰고 연출한 첫 작품에서 받은 강렬한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훈련은 고되게

도구보다는 맨몸을 이용한 서커스에 더욱 관심이 많은 서상현은 현재 공중 밧줄과 핸드 밸런싱에 집중해 훈련 중이다. 코어를 강화하고 테라 밴드를 이용하는 근력 운동, 유연성을 향상하는 스트레칭, 줄넘기와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 등으로 기초 트레이닝을 마친 후에야 밧줄을 잡는다. 부상을 막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무조건 오르기부터 한다. 오르내리며 밧줄과 호흡을 맞추고 지구력을 기르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기초적인 기술은 계속 발전시키고, 새롭게 시도하는 기술도 연습한다. “힘을 위주로 하는 기술이 있고, 유연성 위주의 기술이 있으며, 탄력을 이용한 기술, 떨어지는 힘을 이용하는 기술 등이 있어요. 지금까지는 일단 인터넷을 이용해 연습하고요. 영어로 된 책을 구해서,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해석해가며 배우고 있어요. 좀 더 전문성을 키우고 싶어서, 오는 8월에는 2주 정도 스페인에 머물며 배우려고 해요.” 아직 한국에서는 서커스 훈련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 한발 앞선 유럽과 미국에는 전문가가 많기에, 그에게 이번 여행은 제대로 몸을 이해하고 기술에 접근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배우는 것도 쉽지 않지만, 실행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단련한 서상현에게도 높은 곳에 오르는 일은 무섭다. “이제 5, 6m 정도는 익숙하지만, 저도 그보다 높은 곳에 오르면 무서워요. 무서워도 침착하게 밧줄을 다스리고 다독이며 해야하는데, 악력이 빠지는 걸 느끼는 순간 두려움과 함께 조급함이 밀려와요. 그래서 동작을 빨리 마무리하려고 하죠. 요즘에는 그런 순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감정을 이어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있어요.” 어려운 기술을 선보이는 퍼포머에게 부상 또한 힘든 일이다. 그 역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신체와 정신이 같이 가야 하는데, 의지가 앞서고 몸이 그걸 못 쫓아가면 부상을 입어요. 부상을 겪으면 몸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마음도 힘듭니다.
좌절감과 허무함을 느끼죠. 부상을 입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과 부상을 잘 극복하는 것, 이게 신체연극을 하는 내내 안고 가야 할 숙제예요.”

꿈은 아름답게

서상현의 목표는 기술적으로는 공중 밧줄 기술을 연마해서 국내 최고의 퍼포머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그의 꿈을 이룰 수 없다. 창작 열정이 큰 그는 틈틈이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정리하며,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그걸 표현 할 수단은 뭘까.” 이걸 파헤치고 돌아보는 작업에 집중한다. “작품을 올리려면 시기와 예산, 실력 등이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때 정말 후회 없이 힘을 쏟기 위해 평소에는 너무 욕심 부리지 않으려 합니다.” 내년쯤에는 워크숍을 열 계획도 있다. 많지 않더라도 밧줄 타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흡수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처음 서커스를 시작했을 때는 시각적, 육체적 자극에 혹했어요.”
하지만 자극은 무뎌지기 마련. 어느 순간 권태를 느꼈고, 의미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서커스를 하고 있을까.
“밧줄과 서커스는 저 자신에 대한 고찰의 매개체예요. 제가 누군지 고민하고 관찰하게 만들죠. 인간적으로든 예술적으로든, 더 성장하고 싶은 욕구와 의지가 강해지도록 만들어요.”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서커스는 아직 국내에서 관람하기도 배우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많은 대중들은 서커스를 기묘한 기술을 선보이는 장르로, 편협하고 제한적으로만 알고 있다. 서커스 퍼포머로서 그런 시선에 대한 아쉬움도 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의연하게 말한다. “큰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그 안에서 노력하면서 작은 파동을 만들고 있죠. 하지만 큰 흐름을 뒤집을 수도, 엎을 수도 없어요. 큰 흐름이 더 커질 수도 있고, 어쩌면 사라질 수도 있어요. 이 흐름을 인정하는 마음이 필요해요. 제가 할 일은 그 안에서 꾸준히 제 몫을 해나가는 거예요. 관객들이 제 작품을 궁금해해도 좋고, ‘저게 뭐야’라고 해도 좋아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관객들에게 바라는 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면, 직접 찾아와서 제가 뭘 하는지 봐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에요.”
상대도 적도 없지만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극복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5월 서울 서커스 페스티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이민선_자유기고가
사진 손홍주
사진 제공 공연창작집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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