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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9월호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1 독립예술집담회
11th with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기후 위기 시대의 축제 만들기: 미래를 향해

1998년 ‘독립예술제’로 시작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매년 여름, 연극·무용·음악·퍼포먼스·시각·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참여하는 축제이다. 올해 24회를 맞은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1’은 8월 4일부터 29일까지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 민간 문화예술 공간 10곳에서 열렸으며 80여 개의 문화예술 단체와 개인이 참가했다. 기획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에코 프린지 위크ECO FRINGE WEEK’에는 독립예술의 이슈와 현안을 돌아보는 ‘독립예술집담회’가 8월 17일과 18일 양일간 열렸다. 올해 집담회에서는 기후 위기 시대의 예술과 축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며, 그중 18일 진행된 ‘기후 위기 시대의 축제 만들기: 미래를 향해’를 소개한다.

‘기후 위기 시대의 축제 만들기: 미래를 향해’ 집담회 현장
일시
2021년 8월 18일(수) 오후 3시~5시
장소
  • 신촌문화발전소 스튜디오창, 유튜브 생중계
사회
  • 채민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발제
  • 백교희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
  •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 강수정 서울환경영화제 사무국장
토론
  • 한윤미 바람컴퍼니 창작자
  • 김민수 독립기획자

김민수
독립기획자

한윤미
바람컴퍼니 창작자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강수정
서울환경영화제 사무국장

채민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백교희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

발제 1 에코프린지, 친환경 축제 정말 가능할까?
백교희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하 프린지)은 예술가 선정 심사가 없고, 누구나 자유로이 참가하는 특성상 매년 대표 주제를 정하기 어려운 축제이지만, 올해는 ‘에코프린지, 인류세에 대처하는 예술 가이드’라는 제목을 내걸고 진행했습니다. 연초 축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기후 위기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스태프가 상당수 있었고, 이제 마음 편하게 예술만 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는 위기감이 공유됐습니다. 저희는 홍보물을 덜 만들고, 현수막을 덜 사용하며 작지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지구에 최소한의 피해만 끼치는 축제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서울시의 ‘비영리 공익사업 지원’에 선정돼 1년에 걸친 계획을 세웠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먼저 축제에서 주요하게 발생하는 폐기물인 종이·현수막과 배너·쓰레기·음식물 4개의 주제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했어요. 올해는 굿즈를 위한 굿즈는 만들지 않기로 하고, 어쩔 수 없이 만든 현수막으로는 카드지갑을 제작하고요. 이전에 제작한 에코백으로 파우치를 만들었습니다. 굿즈를 당연하게 만들던 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축제성과 환경 안에서 타협점을 찾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축제를 만드는 예술가·자원활동가와 함께 실천하면 좋을 것 같아 아티스트 인터뷰를 하며 에코프린지의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요청했고요. ‘에코프린지 친환경 홍보물제작 가이드’를 만들어 홍보물 제작 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은 환경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할지 고민하고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축제 공간 주변에서 제로 웨이스트나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공간을 표기한 지도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최종 목표인 ‘인류세에 대처하는 예술 가이드’는 완성된 형태보다는 모두가 참여해서 발전하고 다 함께 실천해 나가는 가이드가 되면 좋겠습니다. 축제를 기획하다 보면 축제가 왜 친환경적일 수 없는지 깨닫게 돼요. 예전에는 도시락을 싸서 다녔는데 축제 직전에는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든지,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준비 과정에서 만드는 쓰레기 때문에 회의감이 컸어요. 올해 홍보물은 친환경 종이에 콩기름으로 인쇄하고 수량도 최소화하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굉장히 소극적인 성취였다고 생각합니다. 일정에 맞추기 힘들어 별도의 홍보물을 제작하거나 덜 친환경적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어요. 더욱 치밀하게 홍보물 제작을 계획하고 친환경을 우선순위에 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쁘고 지친 스태프에게 친환경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고 불편한 상황이기도 했고요. 이외에도 올해는 작품 발표를 10곳으로 나눠 진행하면서 공간마다 비치하기 위해 구매한 물품도 상당했습니다.
친환경 축제가 가능한지 물었을 때 내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이 나왔어요. 차라리 축제를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도 얘기했고요.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해야 하는 축제의 가치는 무엇인지도 얘기를 나눴어요. 보편적으로 누리는 삶의 방식과 속도를 포기하지 않으면 기후 위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시도를 했어요. 앞으로 이 시도를 되돌아보고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시도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앞에 당면한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프린지의 방식입니다.

발제 2 친환경 페스티벌의 현재와 미래
강수정

서울환경영화제는 2004년 시작해 올해 18회 영화제를 진행했습니다. 영화제를 개최하는 환경재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 전문 공익 재단으로 문화적인 접근 방식으로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NGO입니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축제여서 홍보와 확산에 방점을 뒀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 영화제와 차별점이 있었는지를 놓고 계속 반성했어요. 소소한 시도를 해왔지만 ‘환경적 축제’ 부분에서는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7년 중국에서 쓰레기 수입 금지 조치를 발령하면서, 전국적으로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축제에 대한 반성이 생겼고요. 2019년 영화제에서는 쓰레기 없는 페스티벌을 목표로 ‘에코페스트 인 서울’을 진행했습니다. 에너지·제작물·폐기물·다회용품과 자원활동가·스태프의 권리와 노동에 관한 ‘지구와 우리의 약속’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작했습니다. 그 결과 쓰레기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많이 줄였습니다. 쓰레기 69kg이 발생해 1인 당 14g을 배출한 꼴이었고, 기존 페스티벌과 비교해 60~70%를 줄인 수준이었습니다.
2020~2021년은 영화제의 내실을 다지는 데 중점을 뒀어요. 올해는 MBC와 공동 주최하면서 홍보 부분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점이 대두했다는 생각에 ‘에코볼루션ecovolution’을 슬로건으로 정했어요. 팬데믹 이후 온라인 상영을 시작했고, 감독과의 대화도 온라인상에서 진행했어요. 사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운영을 조정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국제 영화제이고 모든 영화가 최초로 공개되다 보니 온라인 공개를 원치 않는 감독도 많아서 이틀은 극장에서 상영했습니다. 환경영화제는 선생님, 학부모 관객층이 두터워서 학교에서 단체 상영을 한다든지 소모임으로 교육을 한다든지 하는 요구는 계속 많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 시도한 세계 청소년 교육 포럼에서는 모든 연사를 청소년으로 모셨어요. 청소년들은 본인을 멸종위기종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어른들에 대한 원망, 환경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공포심,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불편한 축제’가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많은 사람, 특히 청소년은 그런 부분에 필요를 느끼고 심지어 검증하고 있어요. 친환경 페스티벌로 진행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걸러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영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삶에 다가가려고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계속 영화를 보여드리고 관객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발제 3 재난 시대, 춘천마임축제의 핵심 가치는 여전히 유효한가?
강영규

춘천마임축제는 2020년 춘천 중도에서 ‘치유의 숲’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중도는 남이섬의 4배 정도 되는 섬으로, 섬의 90% 이상을 레고랜드 개발을 위해 파헤쳐 놓은 상태입니다. 2020년 8월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약 100편의 작품 영상을 받아 50개의 모니터와 스크린을 설치해 송출하고 10인의 지역 무용수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축제를 개최했습니다. 중도의 자연이 10%는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한 번도 가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자연한테 우리의 아픔을 묻어달라고 하는 형식이 창피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도에는 어떤 교통편도 없기 때문에 대절한 버스를 타고 파헤쳐진 공사 현장을 지나서 들어가야 해요. 시민들이 이 과정에서 인간이 파헤친 공간과 자연 그대로의 자연 중 어떤 것이 필요한지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질 거라고 예상했는데요. 대부분 그런 시각을 못 가지고 가는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자연에서 작업하다 보니 스태프들 마음속에 자연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밥도 다 나가서 먹고, 일회용품도 안 쓰고, 조명이나 음향기기를 설치할 때도 자연을 안 건드리게 되더라고요.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1년에는 코로나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축제의 개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축제의 핵심 가치인 공공성·예술성·축제성이 재난 시대에도 유효한지’ ‘축제는 도시의 생태와 인간소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는지’ ‘온라인 무대는 대체재로 작용될 수 있는지’ 세 가지 핵심 문제를 꺼내놓고 토론했습니다. 올해 첫 번째 키워드는 ‘지구의 봄’이었습니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의 마음은 굳어져 가고 새의 지저귐이 사라진 ‘침묵의 봄’을 깨우는 것을 축제의 미션으로 설정했습니다. 환경에 축제는 가해자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죄를 덜 짓는 방식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과 현실성에 주목했고요. 몇만 명이 한꺼번에 즐기는 축제가 불가능하다면 세분화해서 영유아를 등원시킨 엄마, 청각장애인, 버려져 있지만 예쁜 도시의 폐역 등 구체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원래 5월에 열리는 축제인데 올해는 봄·여름·가을로 분산해 진행합니다. ‘나쁜 짓’을 덜 하기 위해 올해 축제에서는 종이 인쇄물을 일절 만들지 않았습니다. QR코드로 정보값을 제공하고, 모니터를 활용해 축제 정보를 영상으로 내보냈고요. 수작업으로 입간판을 만들고 폐현수막에 직접 사이트맵을 그렸습니다. 2018년부터는 전기 공사 감독님과 전기선을 규격화하고 장치를 만들어서 축제에서 계속 재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막연했고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쇄물이 없으면 그로 인한 불편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많은 먹을거리는 어떻게 할까, 솔직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아닐까, 다들 버리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무기력해졌는데요. 축제를 하면서 우리가 10개의 잘못을 하고 있다면 올해 2개, 내년에 2개를 안 하면 5년 뒤에는 진짜 ‘에코’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고, 축제에 참여하는 분들이 ‘에코’를 기본 인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이나 이후의 고민은 전기와 물입니다. 전기는 발전차를 쓰거나 기름을 태워서 사용하는데, 한 개라도 ‘그린 스테이지’로 만들기 위해 축전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환경을 위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더 많은 예산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축제 예산은 한정적입니다. 지금 기업에서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개념을 많이 고민하고 있어서 내년에는 기업들과 함께 축제를 만들어가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채민

발제 잘 들었습니다. ‘축제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과, ‘조금 불편한 축제가 답이 아닐까’라는 화두를 주셨습니다. 축제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나온 딜레마가 ‘덜 가해자’라는 단어를 만들었는데요. 앞으로의 축제는 예술가나 관객에게 조금 불편하자고 설득하는 과정일 것 같습니다. 토론자 분들께서 궁금한 점이나 소감을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민수

2020~2021년은 축제 운영 방식의 변화를 이끄는 분기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후 위기 시대에 맞는 운영 방식을 고민하면서 참조한 롤 모델이나 해외 사례가 있는지, 혹은 반면교사 삼은 사례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백교희

해외에는 예술이 환경이나 사회 이슈에 미치는 영향과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가이드가 있더라고요. 2011년에 ‘아름다운가게’와 에코프린지를 진행했을 때는 축제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했더라고요. 환경 전문가인 협업 파트너가 있어서 가능했지만, 올해는 자체적으로 진행하면서 직접 적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강수정

저희도 2019년에 에코페스트를 시도하면서 계속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요. 후원사에서 사업 중단을 결정하는 바람에 일회성으로 끝났어요. 그때는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했던 활동가가 합류해서 사업을 책임지고 진행하다 보니 훨씬 활동가적인 마인드로 진행될 수 있었고, 저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영규

인천 연수구에서 준비하는 축제에는 ‘지속 가능 감독’이 있더라고요. 일회성으로 가면 안 되니 감독을 배치하고 명확한 역할을 주고 수치화해서 결과를 내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한윤미

프린지는 참여하는 예술가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동참하는 방법을 제시했고, 춘천은 지역 기반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이런 일은 지역 커뮤니티 안에서 많은 것이 소비되고 제안되는 것이 중요한데요. 축제에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과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강영규

인쇄물을 만들지 않았는데 이는 예산을 지원한 기관에서 동의해 주셔서 가능했어요. 올해 축제 담당자, 안전과 보건 담당자, 시청, 재단과 두 번 정도 회의를 진행했는데요. 주무관님이 첫 번째 회의를 시작하면서 ‘마임축제의 내용과 현장 기록을 봤을 때 방역 지침에 위반되는 것은 없다’는 얘기를 먼저 하는 거예요. 그 뒤부터는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문제를 개선하는 방안이 모이고 축제는 당연히 개최하는 걸로 결정되더라고요. 행정이 현장에 간섭하지 않고 행정의 영역에서 멈춰주니 회의가 잘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문화도시 축제나 야외 공연을 계속 진행하는 춘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김민수

저는 이번 프린지에 참여한 아티스트이기도 한데요. 친환경 홍보물 제작 가이드를 받아보고는 기분이 좋았어요. 예술가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에서 이런 얘기가 확산되고 있는 게 느껴졌거든요. 예술가 외에 자원활동가들과는 어떻게 나눴는지, 서울환경영화제에 여쭤보고 싶어요.

강수정

서울환경영화제 자원활동가는 그린티어라고 부르는데요. 오리엔테이션에서 환경적인 부분과 가이드라인을 알려드리는 데 부담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았어요. 물과 음료를 마실 때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죠. 그런데 작년부터는 적극적으로 먼저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올해는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수월했습니다.

채민

환경영화제를 18년 동안 하면서 환경에 대한 담론이 쌓였을 것 같은데요. 어떤 식으로 변해 왔고 발전이라는 말을 붙일 만한지, 출품되는 영화에도 변화가 있는지 궁금해요.

김명철

저는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여행과 일상이 융합되는 게 아니라 여행을 잃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행은 특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데 여행이 일상이 된다는 것은 특별함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여행을 가서도 도저히 일상에서 탈출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일상과 다른 여행을 할 수 있고, 자신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여행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강수정

환경영화제에 발전이라는 용어가 적절한지는 고민입니다. 사실 팬데믹·폭염·산불·해수면 상승 등의 이상 현상은 영화에서 예견한 부분인데요. 영화에서 경고했지만 이렇게 빨리 실제 상황으로 다가올지 몰랐던 거죠. 환경이 나아진다는 기대로 축제를 이끌어왔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더 암울해지고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특히 기업 참여는 딜레마입니다. 기업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은 늘었는데 사실 저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돈을 쓰지는 않아요. 그러다 보니 같이 할 기업을 걸러내는 데 시간이 소요되고요. 환경 이슈가 있으니 지원을 많이 받지 않느냐고 하지만 여전히 영세합니다. 저희에게는 발전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책임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백교희

저희도 친환경 종이를 많이 취급하는 업체에 물어봤더니, 기후 위기 시대라서가 아니라 기업이나 공기관에서 친환경 종이인지 확인하는 규정이 생겨서 수요가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시스템이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시적으로 가짜 수요와 공급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그린워싱GreenWashing, 위장환경주의이라는 말이 나왔고요. 저희도 어떤 것이 더 친환경적이고 어떤 것이 덜 가해자가 될 수 있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덜 가해자, 덜 죄짓기
채민

축제의 관성은 사실 가치판단의 문제 같은데요. 포기하기 힘든 축제의 관성은 어떤 것이었는지 공유해 주세요.

강수정

텀블러와 다회용기 사용에서 우려했던 부분은 자원활동가와 스태프들의 노동력이었어요. 축제 기간에 바쁘기도 하고 담당 인력을 두면 본인들은 가욋일로 판단하고 소모된다고 여길 수 있거든요. 막내로서 일을 맡았을 때 불편한 감정을 느낀 경험이 있어서 되도록이면 그런 부분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일하고 싶었거든요.

강영규

모두 안 할 수는 없고 현실적으로 인쇄물 만들지 않기는 가능할것 같았어요. 올해 한번 해 보니 인쇄물이 1개는 있어야겠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만들어야 한다면 다시 쓰거나 오래 쓰는 방법은 무엇인지, 앞으로는 어떤 것을 시도할 수 있을지 단계별로 설정하고 매년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과정 단계임을 인정하고 덜 죄짓는 방법으로 가자는 설정이었어요.

백교희

프린지에서 극복하기 힘들었던 관성은 홍보물이었어요. QR코드로 안내하려다 보니 접근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프로그램북을 만들되 1,000원이라도 유료로 판매하고, 최소량만 인쇄해 기념품으로 갖고 싶은 분이나 정보가 반드시 필요한 분에게만 드리자고 했어요. 그래서 축제가 양적으로 커졌음에도 인쇄량은 많이 줄였어요.

강영규

작년과 올해는 인원 제한이 있다 보니 공연을 꼭 보고 싶은 분들만 와요. 이분들은 인쇄물 대신 QR코드를 사용하고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환경을 위해 인쇄물을 안 만든다는 것에 동의해 주십니다. 무작위 대중을 대상으로 한 축제였으면 불만이 많았을 텐데, 코로나 상황이라 올해는 인쇄물을 안 만들어도 가능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채민

저는 친환경 축제가 축제 관계자들의 노동력으로 치환되는 것은 아닌지, 손글씨를 쓰거나 설거지하는 걸 보면서 우리가 만들어온 축제가 서비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영규

축제를 만들고 있는 우리의 노동환경은 어떤지 생각하고, 여유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인지, 최소한 도시락은 쌀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고 있는지 반성도 하고 내년에는 이러한 근무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에도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윤미

프린지에서 어떤 음식과 음료가 가능한지 고민하고 지도를 만든 게 인상 깊었는데요. 근처에서 이용할 수 있는 비건 메뉴, 레스토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면서 지역과의 상생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김민수

어쨌든 시장으로 들어가는 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비건 메뉴를 추가했더니 주목을 받는다는 경험치가 쌓이고 시장에서 관심이 생기면 어느 정도 기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백교희

올해 지역 식당이나 카페를 섭외하면서 스태프나 자원활동가에게 선택지를 주기 위해 채식 식사가 가능한지를 우선순위에 두고 알아봤어요. 가격대가 조금 높아도 채식 메뉴가 있는 곳과 협업하고 그런 식당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노력도 했습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 조약
채민

이제 토론을 시작할 때 써보기로 한 축제 조약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저는 ‘축제 물품 공유하기’입니다. 이제는 축제의 정체성 혹은 축제성을 물리적인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 했을 때 ‘축제 물품 공유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민수

저는 두 가지를 적었는데요. 하나는 상호 모니터링 혹은 지속 가능 감독 같은 관리감독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속 가능 감독 혹은 감시를 위한 시스템을 지원 기관이 가지고 있거나, 지원금 필수 항목으로 편성한다면 가능할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이번에 수원연극 축제를 준비하면서 아티스트들과 계약서를 썼는데요. 계약서에 없던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노력한다는 조항을 참가 팀인 바람컴퍼니에서 제안했어요. 계약서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 예술가·자원활동가와 의제 나누기를 추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윤미

한국거리예술협회에서 만든 ‘거리예술 표준계약서’ 0.9 버전에 관련 조항을 보고 협조할 의향이 있어서 제안했습니다. 축제 조약은 ‘공연에 사용되는 음향·조명 등 불필요한 전기 사용 줄이기 혹은 체크 해보기’와 ‘친환경 파트너 식당, 비건 옵션 가능 식당, 비건 식당 혹은 카페 등의 네트워크 적극 활용하기’ 입니다.

강수정

저는 함께 쓰는 축제 조약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서 조약을 제대로 만들어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존에 만든 가이드라인, 갖고 있는 가이드라인 사례 등 여러 시도를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립니다.

강영규

올해는 인쇄물을 없앴다면 해마다 안 좋은 것을 하나씩 없애고 싶어요. 축제에 참여하는 아티스트·회사·자원봉사자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도 의미 있고, 지역 후원 가게들과 같이 실현하는 축제 생태계도 구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포기 않고, 작지만 꾸준한 실천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지구가 우리를 먼저 포기할 것 같으니까요.

백교희

저는 축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금의 위기가 인간종이 아닌 비 인간 생명체나 자연을 후순위로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인간 생명체가 덜 배제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축제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채민

오늘 쓴 축제 조약은 정리해서 공유하겠습니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 사진 제공 서울프린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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