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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7월호

전환 사회의 예술인을 위한 상상력 2025서울예술인플랜 수립 1차 토론회

서울시는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불거진 이슈들과 변화의 흐름을 고려하며 ‘2025서울예술인플랜’ 수립에 착수했다. 2016년에 이어 새롭게 수립되는 계획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공유하고 향후 진행 과정에 많은 예술인이 참여해 주기를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자리로 1차 토론회가 열렸다. 이후에도 계획 수립 과정을 공개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를 여러 차례 만들면서 예술인들과 함께 계획을 완성해 나갈 예정이다. ‘전환’을 키워드로 진행된 1차 토론회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서울문화재단 페이스북 페이지와 유튜브 채널 ‘스팍TV’를 통해 생중계된 2025서울예술인플랜 수립 1차 토론회 현장

일시
2020년 6월 12일(금) 오후 3~6시
장소
서울문화재단 페이스북, Youtube 스팍TV 생중계
주관
  • 2025서울예술인플랜 기획단
공동주최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구원, 서울청년예술인회의, 영등포공유원탁회의, 공유성북원탁회의, 예술대학생네트워크,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사회
  • 최선영 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2025서울예술인플랜 기획단
발제
  • 양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정책연구실장
  • 홍기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25서울예술인플랜 기획단
  • 백선혜 서울연구원 도시사회연구실장
토론
  • 박현지 로맨틱용광로 대표(<예술인이 재난을 대하는 가지가지 비법> 참가 예술인)
  • 이도윤 영화감독(<예술인이 재난을 대하는 가지가지 비법> 참가 예술인)
  • 김상철 예술인소셜유니온
  • 김재상 서울청년예술인회의
  • 이소주 영등포공유원탁회의
  • 안태호 웹진 《예술경영》 편집장
토론회 영상
  • youtu.be/oL3f6lJOFCU

양혜원

홍기원

백선혜

최선영

박현지

이도윤

김상철

김재상

이소주

안태호

발제 1 예술 전환의 분기점, 코로나19: 코로나19가 예술 분야에 미친 영향과 전망
양혜원

코로나19가 문화예술 분야에 미친 영향은 대부분의 공연과 전시, 축제의 취소 및 연기, 문화시설이 휴관 또는 폐관하면서 예술 활동이 위축된 것 등이다. 동시에 예술인들의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고 소득 감소와 함께 영세한 예술 단체가 도산했다. 한편 위기를 계기로 예술인 고용보험제도가 국회를 통과했고, 예술인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부상했다. 온라인 비대면 콘텐츠의 제작·유통·향유가 증가하고 예술과 기술의 결합 요구가 확대되는 측면에는 긍정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긍정론에서는 관객 기반 확대와 수익 모델 창출을 기대하는 반면 비관론에서는 예술의 정체성 위기와 디지털 격차로 인한 접근성과 표현의 다양성 저해에 대한 우려를 표출한다. 아울러, 소외와 고립, 혐오와 갈등의 완화와 연대, 생태적인 감수성, 정서적 안정과 회복을 위한 예술 수요가 증가하고 새로운 예술 표현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예술에 내재된 혁신과 회복력에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구체적인 예술 분야의 피해를 보면, 한국예총의 3월 조사 결과 취소나 연기된 문화예술행사는 2,511건, 피해 금액은 523억 원이었다. 4월 문체부의 예술활동증명 예술인(응답자 24,330명) 대상 조사에 따르면 예술 활동이 취소되거나 연기된 예술인의 비율은 87.4%, 고용 피해 규모는 100만~500만 원이 49%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8.4%가 하락해 전체 산업(-5%)보다 피해 규모가 컸다. 공연과 전시 분야에 미친 피해는 2020년 1~5월 공연은 4,877건, 시각예술 전시는 3,561건이 취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액으로 환산하면 공연예술은 약 990억 원, 시각예술은 약 2,446억 원으로 총 약 3,437억 원이다. 한편 ‘창작, 예술 및 여가관련 서비스업’의 전체 종사자는 전년 대비 2월부터 4월까지 평균 6.9% 감소했으며, 공연 및 시각예술 분야 고용 피해 추정액(2020년 2~5월)은 최소 226억 원이다. 이렇게 심각한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도 대규모 정책 패키지로 대응하고 있다. 중간 평가를 해보면 초반 대응은 빨랐지만 팬데믹 선언 이후에는 피해 심각성에 적절히 부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예술계 지원에 대한 철학과 관점 제시에 취약했던 부분이 아쉬웠다.
향후 전환을 위한 모색으로 첫째, 범문화예술계 차원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논의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위기관리 매뉴얼과 가이드라인을 논의해야 하고, 예술재난보험·문화재난기금·예술인공제회·예술인 기본소득 같은 제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예술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 확보도 병행돼야 한다. 피해 규모 추정을 위한 데이터 확보나 통계 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하고, 보편적인 사회안전망에서 예술계의 특성을 반영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둘째, 온라인 비대면 콘텐츠 확산과 관련해 인프라 구축, 대관과 대여, 제작과 기술, 인력 양성과 지원이 같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저작권 제도의 정비나 유통 플랫폼의 구축과 지원, 수익 창출 사업화 지원, 디지털 격차 완화와 표현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혁신적 시도에 대한 지원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

발제 2 전환 시대, 현장의 생각과 목소리
홍기원

‘2025서울예술인플랜 기획단’ 회의와 전문가 세미나에서 나온 내용을 12개의 주제로 정리해 보았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이 닥친 후 전환의 시점에서 논의해야 할 주제들이다. 먼저 ‘예술가의 자기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 예술가는 공적 지원을 통해 사회적 자아를 인식하고, 상품을 만들지, 창의적 작동성을 만들지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창의적 작동성을 만드는 예술가가 나와야 하고, 시민의 일상과 연결되는 예술가가 많아져야 한다. 두 번째, ‘예술가가 갖는 정책 인식’을 새롭게 생각해 봐야 한다. 공공지원만이 아닌 다원화된 지원정책을 인식하고 활용하는 예술가가 돼야 한다. 예술가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형성할 수 있는 지원도 많아져야 한다. ‘예술가 교육의 패러다임’은 기존 패러다임을 공고히 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예술가의 권리 개념을 깨달아 주장하고, 예술 교육의 분절성, 위계와 카르텔을 허무는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다음은 지속가능성의 개념에서 나온 ‘사회적 정의’ ‘환경적 정의’ ‘경제적 정의’이다. ‘환경적 정의’는 환경적 가치를 창출하고 생태적 가치나 기후 정의의 활동성에 대해 전환적으로 생각하는 예술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사회적 정의’는 성평등이나 반(反)차별 의식을 확장하는 예술가의 역량을 인식하는 정책,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말하는 예술의 가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적 정의’는 창작만이 아닌 소통 행위의 노동성 인식과 플랫폼 노동의 안전성 확보에 대한 내용이다. ‘정책의 예술가에 대한 인식’은 예술가를 서비스 생산자로 보고 행정 목표 달성의 도구로 인식하는 것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다음은 거버넌스의 작동을 위해 중간지원이나 ‘매개적 역할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표성과 윤리’는 결사체의 대리 역할을 하는 이들의 대표성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고, 일반인의 거버넌스 참여가 가능하도록 정보나 평론 등의 영역 형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회복탄성’은 개개인의 대응력보다는 사회 전반의 회복탄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행정철학(가치)’의 전환은 신뢰 기반의 활동이 강화돼야 하고, 실행 과정에서 지속적인 참여와 개입이 가능한 협치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예술의 본질적인 역할·기능·행위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결국 ‘과정과 방식의 중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근본적인 문제를 되짚어보고 바꿔나가는 시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 전환을 보는 중요한 관점이었다.

발제 3 2025서울예술인플랜의 방향
백선혜

서울시가 2016년에 발표한 서울예술인플랜은 지자체 차원에서 예술인에 대한 종합지원 계획을 처음 수립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예술인의 주거와 창작 공간 지원, 활동 기회 제공, 창작 활동 촉진, 예술인의 성장과 발전, 지속 가능한 예술 환경, 5가지 분야 42개 사업이 지금까지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2025년까지를 목표로 하는 계획을 올해 다시 수립한다. 2016년 계획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하고 예술인과 예술을 둘러싼 급변한 환경을 고려해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게 됐다. 3가지 원칙은 계획의 당사자성·협치성·민주성이다. 당사자성은 예술인이 직접 참여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원칙, 협치성은 예술가와 행정 전문가가 협력해서 계획을 수립하는 체계를 말한다. 민주성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의견 수렴과 검증 등의 절차를 거쳐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먼저 기획단을 구성해 새로운 계획에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룰지 토의를 진행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재난 상황이 반복된다는 관점에서 근본적인 재난사회 대응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고, 이를 종합해 전환·지원·지역·생활·거버넌스·공간 6가지 의제를 도출했다. 심층 논의를 위해 예술인과 문화정책 및 행정 전문가를 초청, 의제별로 각 2회, 총 10회의 세미나를 완료했다(공간 의제는 향후 개최). 앞으로 예술인 포커스그룹 인터뷰(FGI), 설문조사 등의 과정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정리한 의제를 중심으로 큰 과제를 도출하고, 예술인의 참여를 통해 발굴되는 내용을 종합해 주요 과제와 사업을 설정한다. 하반기에는 토론회를 추가로 개최해 더욱 많은 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는 공론화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고 논의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로운 시도와 용기가 필요한 시기
최선영

‘2025서울예술인플랜’은 수립 과정을 공개하고 이후 운영에도 협력하는 구조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여섯 분의 토론을 들어볼 텐데요, 먼저 서울문화재단에서 기획한 <예술인이 재난을 대하는 가지가지 비법> 지원사업에 참여한 예술인 두 분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박현지

먼저 ‘2020 서울 데카메론’으로 지원하게 된 배경을 말씀드릴게요. 2020년 2월 예지 그로토프스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선정돼 이탈리아에 체류하다 코로나19가 발생했어요. 3주간 격리생활을 하면서 14세기 흑사병 시대를 다룬 《페스트》와 《데카메론》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다행히 전세기로 한국에 도착했고 다시 2주간 격리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해외의 친구들이 생각났어요. 심리적으로는 무력감, 고립감, 불안감이 컸어요. ‘어떻게 지내?’라는 한마디 안부를 바탕으로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흑사병을 피해 격리된 청춘남녀 10명이 하루에 1개씩 열흘 동안 한 100개의 이야기를 묶은 게 《데카메론》이에요. 여기에서 착안해 서울을 매개로 다른 친구들을 엮어보는 100편의 릴레이 영상 설화집을 제안했어요.
이번 토론회에 초대받았을 때 사실 놀랐어요. 저는 1988년생인데 예술인이 아이디어를 내고 반영돼서 정책이 바뀐 경험이 없거든요. 많은 친구가 알고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올해 지원사업은 계속 미뤄지는 상황이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짜내 다시 기관을 설득해야 하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이런 자리는 긍정적입니다. 과정에서의 작은 실천과 도전을 응원하는 구조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이도윤

저도 이탈리아와의 악연으로 총 한 달간 격리를 했는데요. 공모전을 알고 준비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실 영화판에서는 극장이 조만간 없어질 거라는 얘기가 많았지만, 어찌 됐건 영화를 제작하는 현장에는 사람이 모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많이 했어요. 20년 전쯤 대학에서 첫 단편영화를 찍어본 후에,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고민한 것을 구체화했어요. 말 그대로 ‘조립식 영화’인데요. 모든 출연자와 제작진이 각자의 위치에서 해놓은 것을 연출자가 잘 어루만져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에요. 제가 속한 회사가 CG를 하는 곳이라 이런 것에 익숙하거든요. 360도 모델링을 하면 배우들이 위험한 장면을 직접 연기하지 않아도 돼요. 이걸 확대한다는 생각으로 낸 기획안입니다. 결국 영화라는 예술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이런 공모전이 계속돼야 해요. 낙수가 아닌 직수로 예술인에게 지원해 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잘 나누고 상권도 살리고 열심히 할게요. 1~2명의 제작자, 연출자가 하나의 일을 따내면 여러 명이 나눌 수 있는 이런 공모전을 분기별로 하나씩만 해주신다면 굉장히 고마운 혜택이 될 것입니다.

최선영

이번 지원사업은 정산 없이 진행된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코로나19 상황에만 가능해진 것도 기존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서울예술인플랜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 어떤 방향성을 고민해야 하는지 들어보겠습니다.

김상철

앞선 두 분의 사례가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의 코로나19 피해 예술인 긴급지원으로 진행된 점에서 착안하면 좋겠습니다. 서울예술인플랜은 이미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계로 진입한 상황에서 세운 계획임을 전제했으면 합니다. 첫째는 협치에 관한 내용인데요. 협치는 절충 과정이 아니라 기존의 행정 과정이 실패하는 곳에서 다른 행정 과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참여하는 시민과 행정 사이에 갈등이 수반되더라도 제3의 대안을 같이 모색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는 방식이면 좋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언서 방식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그때 대응할 수 있는 전략 매뉴얼처럼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둘째, 예술인에게 행정 자원이 공동의 것이라는 감각을 구체적으로 주면 좋겠습니다. 기존의 지원사업을 대하는 예술인의 속내는 ‘따온다’는 개념에 다 들어 있습니다. 제가 참여한 거버넌스 분과에서는 예술인 참여예산제 얘기가 나왔습니다. 예술가들이 서로의 사정을 고려해 적절히 분배하는 과정을 실험해 보면 좋겠고요. 행정이나 전문가들이 예술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방식보다는 예술인 당사자가 문제에 주목하고 해결할 수 있게 해주고 수행 과정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좋겠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 미진했던 시도를 할 때고 그런 면에서 서울예술인플랜이 용기를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재상

저는 청년예술인 혹은 청년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나 문화예술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그 관점으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기존 체제로의 복귀가 어렵다는 공감대에 바탕을 둔, 주체적으로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간다는 의지 표명으로서의 뉴 노멀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환’이라는 키워드와 맞닿아 있습니다. 기존 체제의 전환이나 뉴 노멀의 관점으로 2016년에 서울예술인플랜이 수립됐는데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기술과 형식에 대한 전환으로 본질적인 의미가 치환됐다는 생각에서, 현재 논의 중인 예술인 플랜에서는 다층적인 성격의 전환 개념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요. 두 번째는 전환 사회가 온라인과 비대면 콘텐츠 중심으로만 얘기되는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이미 온라인 플랫폼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정부가 시행하는 온라인 콘텐츠화가 어떤 차별성과 전략을 갖는지 의문입니다. 세 번째는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는 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전략입니다. 긴급 지원 성격의 사업이 공급형으로 뿌려지다 보니 쏠림 현상이 발생했는데요. 지원사업 밖에 존재하는 예술인들을 얼마만큼 고려했는지 의문도 들고요. 중요한 것은 예술인의 활동이 위축되지 않게 하고 예술인 또한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와 의무를 정부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2025서울예술인플랜은 문화예술계에 지속 가능한 토대를 마련하고, 예술인이 바라는 서울에 대한 계획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15년 유엔에서 결의한 ‘지속가능발전목표’의 내용은 앞선 문제 제기와 6개 의제와도 맞닿아 있으니 이를 기조로 두고 설계 방향을 고려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소주

저는 영등포의 문래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동해왔는지 말씀드릴게요. 2005년 전업 작가로 문래동에 입주해 청년 작가로 있다가 15년이 지나 지금은 중년인데요. 그동안 지역문화·교육·공공예술·사회공헌 사업을 하면서 현재 사회적 기업의 대표가 됐습니다. 저는 개인의 창작보다 예술인의 생태적 환경에 관심이 많았어요. 영등포의 문화적인 힘은 문래창작촌에 있고 예술인들이 마을만들기를 하면서 이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활동과 예술인플랜에서 하려던 일이 유사해서 흥미로웠어요. 임대료가 저렴한 공간을 찾아 예술가를 입주시키고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마켓 등을 통해 촉진하고 지속가능성을 생각한 것이 현재에 이르렀어요. 지금은 영등포 인근에서 상권 중심의 마을만들기를 다시 기획하면서 문화적인 것을 적용하고 있거든요. 예술 활동을 일상적인 형태로 만들어야 코로나19 같은 사태에서도 생존력이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문화적인 것이 지역에 잘 안착되려면 자치구 문화재단이 지역의 문화예술가와 긴밀하게 협조하는 구조여야 합니다. 결과물 전시나 공연 지원이 아닌 세부 과정을 지원하고 신뢰하는 지원 체계가 많아지면 예술가들이 행복한 도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태호

저는 2012년 예술인 복지 제도화 이후 2016년 서울시가 예술인플랜을 발표했을 때 전환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전에는 예술가를 돈을 투입하면 프로젝트를 토해내는 자판기처럼 봤다면, 예술가의 존재 자체를 지원하는 것으로 관점이 전환됐거든요. 이런 부분을 확장하는 고민이 계속돼야 하고요. 예술가들이 정책 설계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과정이 많아질수록 예술가의 인식이 바뀌고 수혜가 아니라 당연한 의무와 권리로 판단할 거라 생각합니다. 최근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문체부 발표 중에 공공미술 관련 내용이 분노를 자아냈는데요. 공무원이나 사업 담당자들의 인식 전환을 위한 모종의 절차나 정책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실제로 가능한데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관성으로 대응해 온 것을 팬데믹을 통해 알게 됐어요. 위기 이후 어떻게 바꿔낼 수 있을지 성찰이 필요합니다. 인프라 공유도 마찬가지인데요. 공공 영역은 인프라를 운영하는 데 보수적이에요. 공공기관 청사 1층처럼 비어 있는 공간에서 예술인들이 시민과 만나는 방식의 접근이 늘어났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술인들이 공모사업의 기금을 따내기 위해 프로젝트를 급조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데, 차분하게 활동을 점검하고 지역을 연구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아지면 지형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선영

남은 시간 동안 댓글로 주신 질문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전환을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예술의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 개발 계획이나 적용 방향을 물어보셨습니다. 2016년 계획과의 차이점도 궁금해하셨고요. 지속 가능한 예술 활동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백선혜

2016년에 발표한 서울예술인플랜은 도전적이고 참신했다는 평을 들었는데요. 그중 미흡했던 거버넌스 체계는 이번에는 실효성 있고 항상 유지될 수 있게 설정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예술인의 당사자성이고, 작은 성공의 경험이 축적되는 거예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예술인이 참여해 정책을 제안하고 실현하는 과정이 쌓이고, 행정과 예술인 간의 신뢰가 쌓이다 보면 거버넌스가 가능하다는 관점으로 계획을 짜보려고 합니다.

안태호

코로나19로 이전의 성과지표들도 완전히 다시 봐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몇 명 이상 와야 한다는 성과지표가 무력화됐는데 재편 얘기는 아직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기관 성과지표 문제도 심각해요. 경영평가 때면 전년도보다 숫자를 늘리기 위해 갖은 애를 씁니다. 정량에 맞추는 성과지표 개편에 대한 논의가 절실합니다.

홍기원

저는 서울예술인플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시도와 실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예술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처음, 새롭게 해보는 것이거든요. 알고는 있는데 실행해 보지 않은 제도가 예술인플랜에 들어가고, 어떤 과제는 새로운 행정 방식으로 해보자는 제안이 시도된다면 모든 사람이 벅찬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선영

영화는 특히 결과물로 사람들이 인식하는데요. 영화를 만들 때 많은 리서치가 필요할 텐데, 영화감독으로서 리서치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이도윤

주변에 영화를 준비하면서 청춘을 바친 친구들이 많아요. 뭐 하고 사나 보면 일종의 리서치를 하고 있어요. 예술은 뜬구름 잡는 자신의 철학을 남에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보니 활동으로 보여주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영화는 사전 준비 기간이 길어요. 하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예술인이라는 철모르는 존재들을 국가의 일원으로 안고 가주시면, 봉준호·박찬욱 감독이 언젠가 나올 수 있어요. 예술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서면 우리 일상이 바뀌거든요.

양혜원

김상철 선생님께 예술인에게 예산을 분배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질문이 올라와 있는데, 저도 어떤 기준이 바람직할지 의문을 가졌거든요.

김상철

서울시는 이미 매년 750억 원 정도를 시민참여예산제로 하고 있습니다. 분배의 원칙은 선정과 탈락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입니다. 재원의 규모를 공공이 만들어주면 사업의 내용이나 형식은 예술인 당사자가 제안하는데요. 행정에서 예술인을 감시하는 것보다 예술인 동료 집단이 건전하게 비평 기능을 하는 방식이 지속가능성 보장에 도움이 될 겁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무언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최선영

전환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 모두 불안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전환을 한다는 건 뭐가 있는지 모른 채로 땅을 깊게 파보는 것일 수 있는데, 팠을 때 아무것도 안 나올 수 있다는 불안감을 이겨내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리 전민정_객원 기자, 문화정책 연구·기획
사진 공간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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