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무용센터는 국내외 컨템포러리 댄스와 퍼포먼스 아트 분야의 예술가들을 초청해 창작 과정을 공유하고 교류하며, 동시대 감각을 기반으로 최신 창작 담론을 생성하는 서울국제안무워크숍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2019 서울국제안무워크숍’에 강사로 참석한 4명의 안무가들이 ‘아티스트 토크’ 시간을 통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작품 활동을 소개한 후 국제 안무계의 동향을 공유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 일시
- 2019년 8월 11일(일) 오후 2시~4시
- 장소
- 서울무용센터 스튜디오 화이트
- 장혜진
- 크리스찬 두아르떼(Cristian Duarte)
- 이선아
- 조안 레이턴(Joanne Leighton)
- 정영두
크리스찬 두아르떼
(Cristian Duarte)
이선아
조안 레이턴
(Joanne Leighton)
정영두
장혜진
브라질 상파울로 출신이다. 2000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P.A.R.T.S.(Performing Arts Research and Training Studios)에서 춤을 공부한 후 브라질로 돌아와 활동하고 있다. 브라질에 와서 안무를 기초부터 다시 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유럽에서 공부했으니 유명한 학교 출신 아티스트의 동작을 보여줄 거라 기대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시 지원을 받기도 어려웠다. 브라질 무용계는 전통적인 시각의 순수무용이 아니면 춤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프로젝트
하와이의 해변에서 주워온 이 돌덩이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흘러나온 용암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자연 조형물이다. 지질학자와 비주얼 아티스트, 두 명이 고른 것이다. 이를 통해 아카이브에 접근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최근의 아카이브는 시간순과 파일명 등으로 정리가 잘되어 있다. 레퍼런스는 하나의 덩어리지만 이 안에 들어 있는 강렬한 시간이 보인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강조하는 레퍼런스가 좋았다면 이제는 사라지는 것에 더 관심이 간다. 현재 집중하는 영역 두 개는 무용사를 개인의 관점과 경험으로 바라보는 것과 유약하고 사라지는 것이 모여 있는 플라스틱 결합체로 보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선아당스’(SunadanSe)라는 단체로 활동 중이며,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의 무용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21살에 무용을 시작했다. 우연히 전문대 무용과에 입학한 것이 계기다.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솔로춤을 춰달라고 제안했다.
무용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무를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 예를 들어 ‘열정’이라는 주제가 주어지면, 내 춤을 보면서 그 주제가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춤을 췄다. 그 과정이 큰 공부가 되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한성대 3학년으로 편입했다. 김주자 교수님의 수업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느 날 수업 중에 밖으로 나가 벚꽃을 관찰하고 와서 몸으로 표현해보라고 하셨다. 눈을 감고 ‘나는 벚꽃이다’라고 생각하며 벚꽃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교수님께서 계속 공부를 하거나 이름을 건 무용단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혼란스러웠다. 당시 무용과를 다니며 선생님이 보여주는 동작을 빨리 잘 따라 하는 사람이 무용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용이 어렵게 느껴졌다. 졸업 후 교수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한예종 창작과 전문사 과정에 입학했다.
한예종 첫 학기에 안성수 교수님의 안무실습 수업이 있었다. 음악을 분석하고 움직임을 집요하게 연결시키는 공부였다.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다. 그 후 안무의 맛을 본 것 같다. 학교에서 만든 두 개의 작품을 엮어 <퍼포밍 드림>(Performing Dream)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으로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에서 프랑스 대사관상을 받았다. 이 상을 계기로 유럽에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초기 작업들은 신체 마디마디를 독립된 생명체라 생각하며 작업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많이 사용했고 머리카락도 신체의 일부라 생각했다. 작품 <Touch>는 처음으로 공, 테이블, 거울, 커튼 같은 오브제를 사용한 작품이다.
2014년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이 한예종에서 워크숍과 오디션을 진행했다. 일주일 동안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그의 작업 방식이 흥미로웠다. 오디션에 지원했고 <라이트 버드>(Light Bird)라는 작품의 무용수로 선정됐다. 뤽 페통과의 작업은 내게 첫 안무가와의 작업이자 첫 그룹 작업이었다. 페통은 내가 스스로 상상하고 춤을 출 수 있도록 기회를 줬다. 그러한 작업 방식이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2008년부터 야외 공연을 시작했다. 사실 이전에 야외 공연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프랑스 페리괴(Perigueux) 지역에 있는 미모스(Mimos) 축제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그 선입견이 깨졌다. 공연 후 사람들과 바로 접촉하고 피드백 받는 것이 좋았다. 그 이후 다양한 공간에서 야외 공연을 가졌다. 솔로 작품 <Waves>는 프랑스 안무가 죠셋 바이즈(Josette Baiz)의 그르나드(Grenade)무용단에 웰컴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전수되었다.
이후에도 다양한 공동 작업에 참여했다. 추경엽 감독이 만든 단편영화 <너의 춤>에 배우로 참여했다. 이 영화는 무용과 영화가 합쳐진 시네당스(Cine-Danse) 버전이다. 공연 형식으로 발전시켰고 <Dancing Dance for Me>라는 제목으로 작년 파리 L’Etoile du Nord 무대에 올랐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벨기에-호주 안무가이자 교육자로 대화와 교류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무용의 비전을 연구한다. 장소(site)와 정체성(identity)이라는 개념을 안무의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무대, 도시, 옥상, SNS 등을 통해 작품을 창작한다. 20여 년 동안 국제적인 행사에서 작품을 선보여왔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호주국립무용단원으로 활동한 후 런던으로 이주했다. 1992년에 브뤼셀로 이주하면서 안무가로서 경력을 다졌다. 2010년에 프랑스 벨포트에 있는 국립안무센터의 예술감독을 맡았고, 2015년 파리를 기반으로 하는 무용단 WLDN(월든)을 창립했다.
WLDN은 프로젝트이고, 철학이며, 안무 연구와 창작의 플랫폼이다. WLDN이라는 이름은 미국의 작가이자 철학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54년에 쓴 책에서 따왔다. 근본 가치와의 재연결을 추구하는 이 책에서 작가는 2년 넘게 자연에서 독립적으로 살았던 경험을 풀어놓는다. WLDN은 무용, 움직임, 장소에 대한 공연의 근본적인 본질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초월적인 스트립쇼”라고 할 수 있다.
안무작으로 <Corps Exquis>(2019), <i am Sitting in a Room>, 프랑스, 벨기에, 독일, 쿠바,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에서 진행된 <Made in…> 시리즈, <9000 Steps>, <Songlines>를 꼽을 수 있다.
2011년 9월에 시작된 <The Vigil>은 참가자가 매일 일출과 일몰 시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서 1시간 동안 시계를 들고 있는 것을 1년 동안 이어가는 작품으로 365일 동안 730명의 참가자와 함께한다. 이 공연은 프랑스, 독일 등 7개국에서 진행되었고, 현재 네덜란드에서 이어가고 있다. 2014년에는 걷기를 모티브로 한 안무와 작품을 시작했다. Walk#1 Belfort - Freiburg라는 걷기 프로젝트에서 4일 동안 벨포트에서 프라이부르크까지 수로를 따라 127km를 침묵 속에 걸었다.
교육자로도 활동하며 강연, 컨퍼런스,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존재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일하고, 만들고, 제안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면서 현대무용의 접근권, 소유권, 작가주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들을 포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신체의 움직임과 구조, 추상예술인 움직임을 시간 안에서 구성하는 것이 나의 일관된 고민이자 주제이다. <내려오지 않기>(2003)는 학교를 졸업한 후 신체의 기능을 탐구하면서 나온 작업이다. <텅 빈 흰 몸>(2006)은 솔로 작업으로 불필요한 것은 걷어내고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제7의 인간>(2010)은 이주노동자에 관한 작품으로 몇개의 클래식과 현대음악으로 만들었다. 무용은 몸을 움직이는 순간 결과물이 발생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거나 레퍼런스를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장점이지만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리서치에 익숙한 무용수가 있는가 하면 리서치를 하고 작업에 적용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무용수도 있다. 나는 연극을 먼저 시작했다. 1992년 극단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무위에서 특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자세는 어디에서 왔고 어떤 감정과 상황에 대한 반응인지, 신체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시간은 두 자매가 사는 서쪽 마을에서 멈추었다>(2011)에서는 라벨의 현악 4중주를 골랐다. 이야기는 이집트 신화 하토르 여신에서, 동선과 구성은 우리나라와 아시아의 제사, 장례, 생일 등 여러 의식에서 가져왔다. 음악, 건축, 의식처럼 오랜 시간을 두고 탄탄해진 구조를 안무로 어떻게 치환할지 질문하며 일관되게 작업하고 있다.
음악은 영감의 원천이고 몸을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교본이다. 예전에는 구조, 악기, 화성, 대위를 안무에 적용하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전체 음악 안에서 어떻게 강약이나 리듬이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강약과 빠르기를 디테일하게 구분하고 질감의 차이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무용수를 만나려고 애쓴다.
<까마귀와 까치>(2014)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소문에 대해 두 나라의 무용수가 함께한 작업이다. 무용수 개인의 움직임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내가 만든 구성 안에 일관되게 섞는 것이 숙제이자 재미이다. <보복>(2014)은 가족 관련 텍스트, 영화, 신화, 나의 가족에 관한 자료를 리서치한 후 최소한의 공간에서 몇 개의 사인을 중심으로 만든 작품으로 음악 없이 작업했다. 즉흥춤을 좋아하지만 데이터를 얻기 어렵고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무용수와 작업할 때는 지양한다. <점에서 점으로>(2016)에서는 전통음악가와 무용수에게 세상 모든 움직임의 시초가 되는 움직임과 첫 프레이즈가 될 만한 소리가 무엇인지를 콘셉트로 던지고 진행했다. <푸가>(2015)는 4개의 성부가 독립적인 주제를 갖고 꼬리를 물고 진행되는데 지금 보는 장면은 5명의 무용수가 4개의 성부를 어떻게 주고받을지에 집중한 것이다. 나는 안무작업을 할 때 마음 가는 대로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움직임을 실어 보내 동선이나 구성 안에서 형식을 확정하는 과정을 즐긴다. 나는 현대무용, 한국무용, 발레 안무가, 이렇게 장르를 구분해서 안무가의 영역을 사고하지 않는다. 그냥 안무가라고 생각하고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검열하지 않고 어떤 움직임이든 작업하려는 구조 안에 들어오고 일관성이 있다면 사용한다.
짧은 시간 동안 다채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소개해주셨는데요. 먼저 안무 작업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하는지, ‘시작점’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제 작업의 시작은 진행하는 과정 중에 일어납니다. 새로운 콘셉트나 아이디어가 갑자기 나온다기보다는 안무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작품들 간에도 다시 연결되고 모든 것이 연결됩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극복하면서 몸이 특정 형태와 여러 방법으로 작업을 이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비슷합니다. 이전 프로젝트를 동력으로 삼아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가고 같은 방향을 추구하면서 작업합니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요. 기획서를 작성할 때나 의뢰 이메일에 답하는 순간부터 작업이 시작됩니다. 작업 자체보다 먼저 작업의 맥락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맥락을 만들고 살을 붙여가는 형식으로 작업합니다.
예전에는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감성을 적으면서 시작했어요. 현재 작업의 시작점은 다른 아티스트와의 만남이에요. 예를 들어 콜라주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몸으로 표현하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음악가와 드라마트루기와 함께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가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잘 모르던 것, 다루기 어려운 것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신뢰하지 않아요. 작업 과정 안에서 어제 만든 움직임과 내일 만들 움직임의 질감이나 색이 달라지지 않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알고 싶고 찾고 싶어 하는 것들을 맥락으로 두고, 떠올랐던 감정과 주변 장르에서 받은 영감을 포함시킵니다.
안무는 자신과의 협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시작점에는 그 당시 안무작과의 협업이 보일 것 같습니다. 다음은 ‘시급함’에 대한 질문입니다. 안무가, 예술가, 교육자, 움직이는 사람으로서 지금 시급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정말 시급한 건 ‘하나를 오랜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감각’입니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서 조금씩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보는 것이죠. 또 하나는 유연함을 유지하면서 목숨 걸고 일관성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회가 책임져주지 못하더라도 이것저것 여러 작업을 하거나 순간순간 변하지 않고 길게 기다리고 집중해서 본인이 하기로 한 작업에 좀 더 목숨을 거는 것이 시급합니다.
저는 시급함보다 ‘필요성’이나 ‘호기심’으로 표현하고 싶은데요. 모든 안무가가 시급함을 갖고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는 없는 길을 가야 하고 어둠 속에서 빛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문구를 좋아하는데요. 예술의 힘으로 사회나 개인에게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감각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계속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만 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요. 생산모드에서 휴식모드로 바뀔 수 있는 공간이 시급합니다. 브라질의 정치적인 사정 때문에 교육, 문화, 예술이 공격을 받으면서 이미 취약했던 분야가 더 취약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시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연속성’입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바뀌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이밍에 맞춰 발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프랑스에서는 평등을 이야기하고 예술계 안에서의 여성의 입장을 고민합니다. 발언은 시간의 문제이기도 한데요.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발언할지 고민해야 하고, 말을 했을 때 잘 들리고 반응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창작을 할 때 자기 작품에 몰입하면 결과물은 만족스럽지만 관객은 만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창작의 결과물이 자기 창작 위주인지 관객을 고려해서 소통하면서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관객 참여 작업을 할 때와 제 작업을 할 때는 다릅니다. 제 작업을 할 때 저는 제 가게를 연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하는 완성도의 음식이 나왔다는 판단이 들면 음식 맛을 잘 모르거나 다른 음식을 찾는 손님이 있어도 신경을 안 쓰는 편입니다. 대중이나 관객은 보이지 않는 그룹이라 판단하고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작업의 완성도를 유지했을 때 관객과의 소통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창작자가 얼마만큼 작품을 알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춤을 추는 사람이 무엇에 대해 춤추는지 모른다면 관객은 읽지 못합니다. 창작자가 분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고 무엇을 하는지 명확하다면 관객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할지언정 어떻게든 받아들입니다.
저는 관객을 늘 생각하지만 만족보다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질문을 끌어내고 자극을 줄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최근 두 작품을 올렸는데 관객에게서 제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이 왔습니다. 관객들에게는 무용으로 다가오지 않은 것입니다. 만드는 아티스트와 보는 사람의 입장이 충돌한 작품입니다. 두 사람이 바닥을 굴러다니기만 하는 작품이었는데 구르다가 벽에 부딪히거나 다른 사람의 발에 걸릴 때만 방향을 전환합니다. 관객은 피할지, 부딪힐지, 뛰어넘을지, 어떤 입장을 취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관객에게 이것이 춤공연으로 보이는지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많은 유형의 대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극장의 무대에 올리는 공연에는 관객이 돈을 내고 옵니다. 공공장소에서 열리는 공연에 작품의 일부로 참여하는 대중도 있습니다. 대중은 여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카테고리를 나누어야 합니다. 저는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하고 광장에서 하기도 하지만, 장소라는 콘셉트에 집중하기 때문에 특정 작품은 특정 장소를 위해 만듭니다.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합니다. 한 가지 반응을 기대하면서 작품을 구상하지 않습니다. 문화적 배경도 고려해야 합니다. 파리, 프랑스 교외, 호주, 한국, 가는 곳마다 반응이 다릅니다. 또 하나 저는 일반적인 피드백은 잘 듣지 않아요. 선택적으로 특정 배경의 사람들, 이유 있는 사람들의 코멘트를 선별해서 듣고 제 작업에 활용하고 참고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특별 무대에서 장애 무용수의 공연을 처음 보았는데요. 지하철에서 틱 장애가 있는 사람을 관찰하면서 무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도 예술가로 활동하면 대접받을 수 있고 일반인들도 다른 시각으로 볼 것 같은데요. 관련 경험이 있는지, 해외에는 어떤 사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롬 벨의 작품 중 스위스 지적장애 극단(호라)과 함께한 작품이 있어요. 한국에서도 무대에 올린 작품인데요. 주변 지인들이 그 공연을 보고 불편했다고 얘기한 기억이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분들을 이용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프랑스에서는 장애인들이 무대에 많이 서고, 공연이 끝나면 일반 무용수들과 똑같이 관객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 공연장에서 장애인들이 공연을 관람하러 온 경우를 본 적이 없는데요. 프랑스에서는 자주 봅니다. 소아마비, 치매 환자 등이 공연 중 소리를 내거나 움직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끝까지 공연을 보고 갈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다양성의 문제는 유럽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저는 무대에 서는 장애 무용수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장애인의 공연에 대해 복잡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관객으로서 창작자로서 장애인이 예술을 하는 것을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국에는 ‘칸두코 댄스 컴퍼니’가 있고, 장애인을 위한 안무가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더 늘어나야 합니다. 장애가 있는 몸 혹은 비만인 몸은 무용 훈련을 받을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은 미학에 대한 관점과도 연결됩니다.
영상 매체를 중심으로 시각예술 작업을 하는데 조안의 작업이 개념미술처럼 다가왔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스크린과 프레임 안에서 이야기를 잘 전달할지, 혹은 그것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안무가들은 무대를 벗어나기 위한, 몸이라는 플랫폼을 벗어나기 위한 고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작업은 점점 영상 매체로 가고 있습니다. 더 큰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하고 무대가 적합하지 않다면 무대를 떠나 다른 곳에서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몸을 초월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인간의 형태와 다른 형태의 몸을 껴안는 것이 제가 움직이고 싶은 예술의 방향입니다. 한 개인이 다른 시간의 프레임을 잇는 작업이 있었는데요. 한 명씩 존재하지만 결국 하나의 집합적인 작업이 되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제안무워크숍에도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 정리 전민정_객원 편집위원
-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