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분야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고 문화예술인들에게 더 나은 창작여건을 제공하기 위한 청책 토론회가 지난 6월 12일 서울연극센터에서 열렸다. 문화예술인들의 창작의욕을 저하시키는 불공정 피해사례와 실태를 공유하고, 불공정 관행 근절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 사회 |
- 김남근_ 서울시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 발제 |
- 천명철_ 서울시 공정경제과장, 강신하_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토론 |
- 손아람_ 작가, 문화문제 대응모임 공동대표, 송창곤_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
- 김인영_ 작곡가, 연양갱(필명)_ 만화작가, 최00(익명)_ 캐릭터, 애니메이션 작가, 박소정_ 방송작가
- 이세영(예명)_ 웹소설 작가, 주용태_ 서울시 경제기획관, 김병욱_ 국회의원
- 일시 |
- 2017년 6월 12일 오후 2시
- 장소 |
- 서울연극센터 1층
- 주최 |
- 서울특별시 공정경제과, 국회의원 김병욱
[발제]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 결과
천명철 서울시 공정경제과장
2017년은 ‘경제민주화도시 서울’을 선포한 지 2년차 되는 해입니다. 그 일환으로 문화예술 분야 실태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불공정 관행들은 창작의욕을 저하시켜 대중문화산업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울시는 지자체 차원의 행정적, 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만화·웹툰, 일러스트 작가 834명을 대상으로 예술인 현황, 계약체결 현황, 불공정 경험 여부, 인권침해 경험 여부 등 4개 항목을 조사했습니다.
월 평균 수입은 만화·웹툰 작가의 경우 198만 원, 일러스트 작가의 경우 144만 원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예술인 복지법 개정으로 서면계약 체결이 의무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만화·웹툰 15%, 일러스트는 51.1%가 구두계약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정부에서 고시한 표준계약서를 모른다는 응답은 42.3%였고, 사용한다는 응답은 23.9%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일러스트 분야는 아직 표준계약서가 없어서 구두계약 비율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불공정한 계약 조건을 강요당한 경험에 대해 만화·웹툰 36.5%, 일러스트는 79%가 있다고 응답했고요. 창작활동에 참여했음에도 참여사실이 표시되지 않았던 경험은 만화·웹툰 16%, 일러스트는 34.5%가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창작활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급을 거부당하거나 지연된 경험에 대해 만화·웹툰은 33%, 일러스트는 28.2%가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불공정 행위로는 ‘불공정 계약 강요’가 32.4%로 가장 많았습니다.
전문변호사에게 의뢰해 실제 계약서 10여 부를 입수해 검토한 결과, 만화·웹툰 연재계약서의 경우 저작물에 대한 2차적 사용권을 포함해 일괄 계약하고 있는 상황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계약 자동연장, 연재조건, 대금지급, 계약해지와 관련해 작가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었고요. 일러스트 분야 외주계약서는 2차적 저작물에 대한 포괄적 양도, 수정 보완 요구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없는 점, 계약 종료시점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이 불공정한 조항이었습니다.
서울시는 법 위반이 의심되는 사례에 대한 조사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나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의뢰할 예정입니다. 지난 2월에는 서교예술실험센터에 문화예술 불공정피해상담센터를 개소해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7월부터는 문화예술 호민관을 선발해 관련 단체 4군데에 파견할 계획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을 건의하는 것입니다.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신고나 절차를 구체화하고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며, 국가와 지자체의 관련 책무를 강화해나가려고 합니다.
[발제 ]문화예술 분야 불공정 실태와 제도적 개선 방향
강신하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저는 주로 갑을 관계를 기초로 구조적인 면에서 왜 이런 불공정 사태가 생기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힘없는 업체와 힘 있는 업체 사이의 거래상의 지휘 불균형 때문에 계약서를 마음대로 작성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가수나 연주자들이 엔터테인먼트 회사보다 수익률이 낮고요. 조영남 사건에서도 실제 그림을 그린 사람은 몇 십만 원만 받고 조영남은 유명세로 그림을 몇 천만 원에 팔았습니다. <구름빵>은 매절계약을 해서 850만 원을 주고 팔았는데 나중에 대박을 터뜨리면서 총 4,400억 원의 부가가치를 올렸습니다. 작가는 보상금 1,000만 원만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국, 프랑스, 독일은 2배 이상 차이가 나면 계약변경권을 이행해서 바꿀 수 있습니다. 계약변경권을 인정해서 수익이 많이 생기면 거기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음악 저작물은 작곡가나 가수들이 음악사용료를 제대로 받아야 하는데요. 이것을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는 핑거프린팅 시스템(Fingerprinting System)1)이 있는데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채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시나 방통위에서 조사를 통해 충분히 시정할 수 있습니다. 중개업체가 저작물을 양도받아서 저작자 모르게 해외에 팔면서 수익을 모두 차지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난립해 있는 중개업체를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꿔서 규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작자가 작품 판매 여부를 알 수 있고 제대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저작권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영화·방송업계에는 수직계열화 문제가 있습니다.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시네마가 제작, 투자, 상영을 모두 다 하면서 제작업체가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불공정 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서울시는 예술인 복지법을 개정해 처벌을 강화하자고 하는데요. 예술인 복지법에 있는 불공정 조항을 분리해, 예술인들의 갑을 관계 해소를 위한 ‘문화예술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활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인데요. 창작활동에 대한 제작비를 산정해 평균 가격을 발표하면 최저임금 이하로 받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의 기금지원 기준을 독자적으로 다르게 할 필요가 있고 기재부가 간섭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 디지털 콘텐츠를 구매할 때 구매자의 정보를 삽입하여 불법 배포 발견 시 최초의 배포자를 추적할 수 있게 하는 기술.
최근 많은 젊은이들이 문화산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보여준 능력과 열정에 비해 불공정한 계약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생산하는 결과물들이 그들의 이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된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문화산업계를 떠나지 않을까 하는 인식이 있습니다. 뒤늦게나마 서울시에서 실태조사에 나서고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제도를 개선해나가고 있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문화예술 분야에 만연되어 있는 불공정 행위의 실태를 생생하게 들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보고 제시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한 분씩 피해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손아람 제가 직접 당한 사례는 아니고, 로이엔터테인먼트를 시작으로 문화 전반에서 일어난 피해사례를 범주화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크게는 창작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있고 거래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창작과정에서는 창작자와 창작자, 창작자와 산업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 2가지로 나눠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문제는 저작인격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침해당하기 때문에 당사자들도 눈치를 못 채는 경우가 많은데요. 요즘은 공동창작이 많은데 대표창작자 1명이 성명표시권과 저작인격권을 가져갈 경우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악용해서 대표창작자가 창작능력이 아예 없거나 창작의 대부분을 보조창작자에 의존하는 경우에도 저작인격권을 가져갑니다. 창작자의 이름과 평판은 다음 작품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자산인데 그 고리가 끊기는 거예요. 대표창작자는 더 큰 돈을 벌고 또다시 조수를 고용하고 반대로 조수는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계속 저임금의 조수를 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저작권법 제2조에서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규정하고 있어요. 물리적 실행 부분을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창작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대부분 조수가 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저작권법이 실질적인 창작자를 배제하는 법률이 되는 거예요. 저작권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용역을 제공하는 예술가를 보호할 수 있는, 노동보다는 조금 특수한 형태의 작업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이 필요합니다. 영화의 경우 크레딧에 부문별 창작자 이름이 다 올라가는 관행이 잡혀 있습니다. 그 결과 스태프들이 조금 적게 받더라도 훌륭한 연출자 아래 들어가서 일하고 싶어 해요. 경력 보상이 되기 때문에 선호하는 거죠.
거래과정에서는 주로 신인 창작자들이 산업화된 예술 단위에 진입할 때 체결하는 계약 문제입니다. 2차 판권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있는 분야에서는 판권을 완전히 양도해달라고 갑의 지위에 있는 제작자가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요. 조건이 불공정한 것을 인정하고도 창작자들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입장료라 생각하고 관행을 받아들입니다. 문화산업은 분야마다 수익분배율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규제하기 어렵습니다. 대형 플랫폼 사업자는 수수료율, 분배율을 공시하게 하고 통상의 수수료율보다 과하게 가져가는 사업자를 규제하는 방향, 저작권, 판권 등을 포괄적으로 양도하는 계약을 금지하는 것 등 여러 방법이 가능할 것입니다.
송창곤 방송연기자 쪽의 가장 큰 불공정은 출연료 미지급입니다. 출연료 문제가 생기면 방송사는 제작비를 주었으니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방송연기자가 노동자인지를 묻는다면 방송사에서 직접 지휘 감독하고,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촬영에 임해야 하며 의상이나 분장을 지급받아 일하기 때문에 촬영하고 있을 때만큼은 노동자 성격이 강하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출연료 미지급액이 지상파 3사를 기준으로 31억 원이 조금 넘습니다. 노조에서는 표준계약서에 의해 방송사가 직접 지급하라고 하지만, 방송사는 권고조항이니 아무런 의무가 없다고 발을 빼고 있는 실정입니다. 새 정부 들어 공정위의 시정명령권을 문체부에 이관한다는 말도 있는데, 형식적인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권고조항이 아닌 강제조항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일드라마는 촬영을 6개월 이상 하거든요. 그동안 스케줄을 다 비워놓아야 하는데 방송사의 일방적인 편성 취소나 폐지로 인해 일을 못하게 되는 부당한 사례들도 많습니다. 아침 9시부터 대본 리딩을 하고 밤늦게까지 촬영을 해도 식비는 8,000원만 나와요. 연기자를 드라마에 소개해주는 캐스팅 디렉터가 출연료의 30%를 가져가고, 중간에서 착복해도 해결방법이 없고요. 구청에 신고해도 당신들은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적극적인 민원 신고와 문체부나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더해져서 불공정 관행이 최소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인 복지법에 관련 조항이 있는 것은 문체부의 관점이 불공정 문제를 해소해서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시혜적이라는 겁니다. 새 정부에서 극복해야 하는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인영 저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로이엔터테인먼트에서 일했습니다. 5년 동안 노동력과 저작권을 착취당했는데요. 첫 번째 문제는 방송에 작곡한 음악들이 나가면서 저희 이름이 표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희 이름으로 발표되지 않아서 경력단절이 심각했고요. 저와 일부 작곡가들은 1년 반 정도 급여를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했습니다. 회사가 커지면서 유명 드라마 작업도 하게 되었는데요. 회사는 저작권과 음원수익의 분배를 5:5에서 2:8로 바꾸는 계약서를 강요했어요. 저작물 2,000여 곡을 영원히 회사에 귀속시키는 계약서를 내밀었고 그것을 거부하니 2015년에 계약해지를 통보했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고발하게 되었고요. 작곡가들이 이런 일들을 당하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한 것은 저희가 처음이었고요. 저희가 거부하자 회사에서 도장을 임의로 만들어서 계약서에 몰래 찍는 사태까지 벌어졌는데요. 검찰과 경찰에 고소했는데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저희는 예술인이지 노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드라마 방영할 때 크레딧에 작곡가를 넣어주는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저희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 못하고 참고 지내는 작곡가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법률이 제정되어서 작곡가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저작권도 투명하게 분배되지 않고 큰 회사들과 담합해서 이익을 착취하는 관행이 긴 시간 진행되어왔기 때문에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저희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불공정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고 사회적으로도 당연시하는 풍토가 있었던 것 같아요. 문화산업 내 관행이 저작권법과 공정거래법 위반임을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 같습니다.
연양갱 웹툰 작가는 일주일에 한 편, 적게는 60~70컷, 많게는 100컷 이상을 완성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주변 작가들에게 “한 달에 두세 번 겨우 쉰다. 어시스턴트를 쓰면 생활비가 빠듯하다. 눈뜨면 출근이고 눈감으면 퇴근이다”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원고료와 계약서가 가장 대표적인 문제일 겁니다. 제 원고료는 달에 200만 원, 세금 떼면 190만 원 정도입니다. 작가는 프리랜서이고 전문직이기 때문에 이 금액을 단순히 회사원의 연봉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작품이 끝나면 백수가 되고, 받았던 금액을 모아서 차기작이 통과되어 연재할 때까지 버터야만 합니다. 중간에 잘렸다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1년 이상 일했다고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시스턴트라도 고용하면 내 수중에 남는 돈은 150만 원 정도이고 생활비와 공과금, 약간의 저금을 하면 금방 사라져버립니다. 다른 일을 하다보면 차기작 준비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말하자면 악순환인거죠.
악순환은 다음 문제인 계약서로 이어집니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작가들은 계약서를 받고 사인을 합니다. 만약 오랫동안 데뷔를 하고 싶었던 지망생이거나, 차기작에 들어가지 못한 작가라면 눈앞에 있는 계약서가 부당해 보여도 사인을 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더 문제인 것은 업체가 200만 원을 주고 작가에게서 2차 판권에 대한 우선 협상권 등 많은 권리를 가져간다는 겁니다. 계약서가 부당하다고 이야기해도 “너 말고 작가는 많다. 다른 작가들은 이미 받아들였다”는 입장의 업체가 많습니다. 작가는 계약서상에서 철저히 을일 수밖에 없는 거죠. 더 큰 문제는 계약서 내용이 굉장히 어려운데 작가들을 앉혀놓고 그 자리에서 사인을 강요하는 업체가 많다는 거예요.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있는 권리조차 갖지 못한다는 거죠. 그렇게 악순환은 반복됩니다. 작가와 업체 모두를 위해서라도 이 2가지 문제만큼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고, 그래야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00 저는 지금 캐릭터 저작권 문제, 작업비 체불 관련해서 1년 2개월째 소송 중입니다. 17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후배들 볼 면목이 없다고 할까. 저도 제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데, 콘텐츠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미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연봉 재계약을 하는 중에 잘렸습니다. 그래서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요. 회사에서는 ‘노동을 한 게 아니라 캐릭터 디자이너는 예술가’라고 해서,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3~4개월 정도 투쟁을 했습니다. 부당해고 인정을 받고 나서 체불임금 관련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요. 더 큰 문제는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제가 회사일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창작했던 캐릭터들을 빼앗기게 되었어요. 제 이름으로 저작권 등록해놓은 것을 회사가 93, 제가 7이라는 말도 안 되는 비율로 서류 조작까지 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해외 출장 가 있는 동안 제 도장을 만들어서 저작권위원회에 신청했더라고요. 이렇게 열악합니다. 다른 캐릭터 작가 후배, 글 쓰시는 분들, 음악 하시는 분들도 대동소이할 것 같아요.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고,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야 하지 않나 해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데요. 서울시 공정경제과에 피해사례를 이야기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불공정 행위 시정명령과 문제해결 권한은 공정위에 있는데 너무 멀게 느껴지고요. 지방자치단체에는 권한이 없습니다. 공정위, 문체부,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서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박소정 저는 방송작가로 11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는 복지혜택을 못 받는다는 단점이 있거든요. 이런 걸 모르고 꿈에 부풀어서 방송작가를 하고 싶다는 친구나 친척이 주변에 많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 힘든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처음 방송작가를 시작하면 막내작가로 불리는데요. 대본을 쓰는 서브작가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요. 1~2년 하다 보면 메인작가가 서브작가로 입봉을 시켜줍니다. 서브작가에서 연차가 쌓이면 관리직에 가까운 메인작가 타이틀을 달게 됩니다.
처음에는 방송작가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이렇게 대우를 못 받고 일하면 내 후배들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2016년 7월 즈음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8월에 촬영과 녹화를 진행한 후 25일에 첫 방송이 나가게 되었는데요. 7월에는 무보수로 일했고 8월 25일부터 월급을 조금 받았기 때문에, 2개월간 거의 수입이 없었다고 볼 수 있어요. 기획료 없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도 다반사고요. 저희도 계약서를 쓰지 않거든요. 구두계약으로 어떻게 보면 을조차 될 수 없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막내작가들은 욕설을 듣기도 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해요. 아파도 이야기를 못해요. 자르고 다른 작가 뽑는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요즘 막내작가 구하기가 힘들어요. 박봉에 쉬는 날도 없고 불합리한 일을 겪으면서 방송 분야에서 누가 계속 일을 할까, 방송 바닥을 떠나고 싶어 하는 후배들 마음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섰는데요. 환경이 바뀌면 좋겠습니다.
이세영 저는 웹소설 작가로 일한 지 1년 조금 넘었는데요. 정산 구조에 의문을 느껴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에게 판매되는 웹소설에 대해 유통사들이 일괄적으로 수수료를 떼는데요. 보통 권당 30%입니다. 이 수수료 비율도 적당하다고 보기 어려워요. 그 밖에 심각한 문제는 선인세, 즉 MG(Minimum Guarantee)입니다. 선인세는 작품이 팔리기 전에 출판사에서 관행적으로 주는 계약금이에요. 만약 200만 원을 먼저 주면 200만 원어치를 팔기 전에는 정산을 못 받는 형태가 되는 거죠. 선인세를 작가가 아닌 출판사에게 주는 것을 브랜드 MG라고 해요. 예를 들어 유통사는 작품 10편을 묶어서 브랜드 MG를 주고 출판사는 프로모션을 받는 대신 수수료를 45%까지 올려요. 회당 결제 100원에서 45%를 떼면 55원, 다시 출판사랑 나누면 작가가 받는 최종 금액은 33원이라고 보시면 되요.
출판사들도 좋아서 선인세를 받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유통사 플랫폼에 연재를 하려면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반 년 넘게 걸리는 경우가 많아요. 브랜드 MG를 하면 심사기간이 대폭 줄어들거나 프로모션을 받을 수 있어요. 출판사에서도 브랜드 MG를 안 하면 작가가 불이익을 받는데 괜찮겠냐고 하니 작가들은 보통 브랜드 MG에 들어갑니다. 선인세가 200만 원이면 이후에는 수수료가 30%로 올라가야 하는데 보통 브랜드 MG를 갱신해요. 기간이 지나면 푸시를 안 주기 때문에 작가는 계속 45%의 수수료를 내면서 회당 33원을 받는 거예요. 유통사는 무조건 갑이고 출판사도 작가도 을의 입장이거든요. 이런 상황이 많이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주용태 현재 서울시에 조사 권한이라든지 시정 조치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없습니다. 광역자치단체에 권한이 부여될 수 있도록 적극 협의해나갈 계획입니다. 법령개정이 선행되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있고 사전예방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있고 사회적 인식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도 많다고 봅니다.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불공정 관행이 없어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김병욱 모든 분야에 공통적인 불공정 관행이 있을 수 있고 장르별로 특수한 관행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재 예술인 복지법이 불공정 관행을 제어할 수 있는 법인데요. 오늘 나눈 이야기들을 제대로 반영해서 예술인 복지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예술인들의 삶의 조건과 근로 환경에 좀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회에서 전반적인 점검을 해주고 서울시에서도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각시켜 대안을 만드는 작업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송창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은 1988년부터 30여 년 동안 지상파 3사와 단체 협약을 하고 출연료 미지급과 같은 민원 발생 시에는 항의 방문, 촬영 거부 등 민원 해결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요. 다른 장르별 협회는 재정이 열악하거나 민원처리 방법에 한계가 있습니다. 민원을 받는다거나 민원을 처리할 수 있도록 각 장르별 협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손아람 불공정 문제는 예술인 복지법 안에 넣기에는 덩치가 크고 더 심각한 시장 차원의 문제입니다. 공정위에서 문화예술 파트를 떼어서 별도로 관리하는 조직, 조금 더 큰 단위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쇄적인 하청 구조의 문제는 책임소재가 증발해버린다는 거예요. 시작이 어디든 중간에 낀 하청업체는 마지막에 있는 창작자를 배제하고 진행해도 불이익이 없어요. 산업화된 예술에서도 결국 자본이 시작되는 부분에는 공공기관이나 정부가 있습니다. 정부가 투자하거나 지원금에 의존하거든요. 그러면 정부가 이 하청구조를 통제할 수 있어요. 심사과정에서 수익성, 공익성만 보는 게 아니라 하청업체가 어느 정도 노동법을 준수했는지가 심사기준이 되면 입법 전에도 효과적인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정위나 문체부, 서울시가 협업해서 할 것도 있고요. 문화산업의 주체인 여러 단체, 노조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업체들과 상생협약을 맺어나가면서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공공이 발주하는 것은 창작자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지 발주 단계에서부터 얼마든지 감독할 수 있었는데 손을 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부에서 공청회나 간담회 자리를 통해 이 문제를 확산해나가면서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 정리 전민정_ 객원 편집위원
-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