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
- 안태호부천문화재단 생활문화사업팀장
- 발제 |
- 이태호(미술비평, 경희대 미술대학 교수),
전쟁기념비와 함께 살펴본 ‘평화의 소녀상’ - 김준기(미술비평,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사회예술로서의 소녀상 현상 - 이택광(문화연구,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
소녀상은 무엇인가 - 토론 |
- 이나바 마이광운대 교수
- 장수희연구모임 아프꼼 연구원
- 최범디자인평론가
- 홍승희소셜아티스트
- 일시 |
- 2016. 3. 19
- 장소 |
- 서교예술실험센터
※ 본 토론회는 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위원회의 <현장+담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현장+담론>은 문화예술계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들이 다양한 정책담론으로 연결되는 것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 토론의 내용은 서울문화재단의 공식 의견이 아니며 주최 측의 독립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 발제자 ] 이태호 미술비평, 경희대 미술대학 교수
[ 발제1 ] 전쟁기념비와 함께 살펴본 ‘평화의 소녀상’
우리 주변의 수많은 기념비와 ‘평화의 소녀상’을 비교하면서 얘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조각 작품중에서 ‘평화의 소녀상’만큼 주목을 받은 사례가 없습니다. 소녀상이 화두가 되면서 식민주의와 군사문화, 자국중심주의, 지역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등 여러 문제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전쟁기념비를 성격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해보면 첫째는 ‘승리의 환호와 영웅의 활약 등 긍정적 측면의 시각’입니다. 이것을 작품화한 것은 대부분 한국에 있습니다. 한국의 전쟁기념비는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독특합니다. 인물상들이 거의 앞으로 나가고 있고, 환호하고 있고, 격렬한 축제의 분위기로 보입니다.
두 번째는 ‘전쟁을 재앙으로 보면서 만들어진 전쟁기념비’인데요. 중국이 작년 12월 난징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를 기념관으로 개관하면서 작품을 하나 만들었는데, 북한 피해자 박영심 할머니가 임신한 채 찍힌 사진을 모티프로 했습니다. 난징대학살기념관의 조각품들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현주의적으로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외국 작품들은 전쟁을 애도하고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세 번째는 기념비 자체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면서 전쟁에 대한 긍정이나 부정의 입장을 보여주지 않고 전쟁이 무엇인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과 명상을 이끌어내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들입니다. 최초의 작품이 마야 린(Maya Lin, 1959~)의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비(1980)입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두 번째 성격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디에 세워졌는지가 중요합니다. 그 위치에서는 표현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피가 심하게 흐르거나 속살이 드러나는 등의 표현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감동을 받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분들의 고통에 비해 너무 얌전하고 소극적인 표현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일본대사관이 움직이지 않는 한 ‘평화의 소녀상’은 그 어떤 협약이나 권력에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품은 ‘장소 특정적(site specific)’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위치를 떠나면 허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소녀상’을 설치할 기회가 있다면 지금의 소녀상을 그대로 재제작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찾아졌으면 합니다. 극한의 비인간적 ‘폭력’을 보다 더 감동적으로 폭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반성과 성찰을 촉구했으면 합니다.
[ 발제자 ] 김준기 미술비평,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 발제2 ] 사회예술로서의 소녀상 현상
저는 소녀상 현상을 하나의 사회예술로 재독해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좁은 의미의 사회적 예술을 넓은 의미의 공동체, 행동주의 예술로 본다면, 넓은 의미에서 비판예술과 공공예술까지 사회적 예술로 볼 수 있다는 프레임을 전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는 상투적인 어법이지만, 소녀상이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는 역사성과 장소성으로부터 나옵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앉아 있다는 점, 그것이 위안부 의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에 소녀상은 그냥 소녀가 아니라 상징투쟁의장으로 증폭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위안부 관련 합의 때문입니다. 상징투쟁의 장이 한국 대 일본의 국가주의 프레임에서 국가와 시민으로 전환된 겁니다. 이 대목에서 민족 정동(情動)으로부터 사회현상으로 이 작품에 대한 독해의 방향을 틀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예술의 프레임으로 보았을 때, 첫째, 소녀상은 크리티컬 아트입니다. 비판적 리얼리즘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 공공예술 작품이지요. 국가 주도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주문을 예술가가 창조적으로 잘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공동체 예술입니다. 예술가는 시민사회단체와 협업했습니다. 작가 부부도 협업하고 있고요. 네 번째로 행동주의 예술의 요소입니다. 위안부 여성의 상처를 다루는 과거사 문제, 의제를 쟁점화하는 데 성공한 예술입니다.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많은 사람과 나누고, 클라우드 펀딩으로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것은 소셜아트로서의 행동주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평화의 소녀상’ 철거 논란에 온 국민의 마음이 소녀상에게로 쏠리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국민과 시민,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을 가진 우리에게 이 소녀상은 공동체의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상징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직접적 피해 당사자는 물론 그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시민사회와 개인들에게 다가서는 사회적 소통으로서의 예술공론장인 것입니다.
[ 발제자 ] 이택광 문화연구,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
[ 발제3 ] 소녀상은 무엇인가
소녀상은 고정된 조형성으로서의 미학, 비평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는데 갑자기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르게 되는 데는 소녀상으로 표상되어온 그 무엇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민족주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소녀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소녀상이 만들어내고 있는 증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라고 봅니다.
소녀상은 민족과 국가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국가는 합의해주었는데 국민은 동의하지 않는 것이면, 국가는 도대체 무엇인지 그 질문을 소녀상이 던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녀상의 미학적 효과로 등장한 것이라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 상황과 소녀상이라는 오브제가 만났기 때문이고 위안부 문제라는 정치적 상황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술이 파급력을 갖는 것은 정치와 만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작가가 맨 처음 빚어서 놓았던 그 소녀상이 아닙니다. 기존의 자리를 이동(relocation)해 있는 조형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동시킨 것이 민족주의라고 생각합
니다.
민족은 민족주의와 상당히 다릅니다. 소녀상은 민족이라는 실재의 자리를 건드린 것입니다. 민족은 재현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민족을 재현하기 위한 민족주의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가가 형성되면서 그 국가로 완벽하게 포섭되지 않은 정치가 민족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은 국가의 대체보충(supplement)인 것입니다. 민족은 국가로 재현되는 순간, 우리가 상실했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입니다. 식민지를 거친 모든 나라의 공통점입니다.
민족이라는 것은 일종의 숭고의 대상으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남아 있습니다. 민족이라는 것 자체가 완벽하게 형성되지 못한 것이죠. 이 지점에 소녀상이 놓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소녀상이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적 표상, 의미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소녀상을 붙들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실 위안부 협상에 있습니다. 쟁점을 쥐어버리는 협상을 해주었지요.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 논란의 핵심은 ‘국가적 범죄로 봐야 하는가, 개인의 범죄로 봐야 하는가’입니다. 저는 위안부 옆에 반드시 여공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지만 여기에 대한 연구가 거의 안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쟁점인데 국가가 덮어버리고 온 것입니다. 소녀상은 말 그대로 사실주의적 접근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고, 정치적 미학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술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라든지 미학적 정형성은 근대사회로 올수록 더 유동적으로 바뀌고,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소녀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안태호
- 작년 12월 28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하는,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 한가운데 소녀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소녀상의 예술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겠지만,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논지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나바 마이
- 국가 범죄인지 개인의 범죄인지에 대해 연구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요. 무엇보다 일본의 국가 범죄임을 한국에서 제대로 얘기해야 합니다. 개인 문제는 별도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이택광
- 이 문제를 계속 민족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국가 범죄인지 개인 범죄인지의 문제로 간다고 봅니다. 두 개를 선택해야 되는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식민지 지배 구조 내에서 여성의 차별 문제라든지 위안부 문제가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같이 논의해야, 국가와 개인이 결합되어 있는 체제적인 문제라는 것이밝혀진다고 봅니다.
이나바 마이 광운대 교수
대사관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은 큰 호소력을 갖고 있습니다.
- 이나바 마이
- 이태호 선생님께서 다른 곳에 있는 소녀상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는데요. 대사관이라는 권위적인 건물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은 큰 호소력을 갖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하고 있는, 나쁜 뜻이 아닌 대량 생산은 하나의 전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이태호
- 기념비에서 중요한 것은 주문자입니다. 작가들은 주문자의 요구에 저항하기 힘듭니다. 작가들도 바꿀 것은 바꿔가면서 해야 합니다. 다양한 스타일로 하지 못하는 원인은 따지고 보면 주문자의 문제라든지 시민의 요구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요구를 상승시키는 것도 미술가의 일이기 때문에 그런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장수희
- 중국 작품들은 감정을 격하게 드러낸 것이고, 한국의 소녀상은 감정을 좀 더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셨는데요. 중국 작품들에는 국가의 개입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념관 내부에서 민족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재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 작품과 비교하신 것이 저에게는 ‘너무 재미없는 조각상 아닌가’로 들렸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좀 더 재미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태호
- 표현이 안 되었다는 것은 장소를 얘기하려고 한 것입니다. 작가의 개인전에서 서 있는 소녀상 작품을 보고 북한의 어린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사관 앞은 굉장히 제약된 자리입니다. 거기에도 주문자의 입김이 상당히 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만들었다는 것, 그 장소를 선택해서 한 것만으로도 중요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정적인 부분이 다른 공간에서는 더욱 사람들을 울릴 수 있는 표현 방식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 장수희
- 이택광 선생님은 일본군 위안부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 있던 사람들을 소녀, 성인으로 분류하셨는데요. 이런 분류가 쟁점이 되는 것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사자의 기억을 역사에 어떻게 기록하고 잘 기억할 것인지가 쟁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택광
- 지금 <제국의 위안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쟁점이라는 것입니다. 국가 범죄냐 개인 범죄냐, 자발적으로 갔느냐, 돈을 받았느냐의 문제는 사실 중요하지 않은데, 그것이 문제가 되고 합의 사항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굳이 문제 삼으려고 한다면 제국주의와 식민지, 자본주의의 형성과 계급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부잣집 딸들이 위안부로 간 경우는 없어요. 거기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면 민족으로 계속 회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 장수희
- 김준기 선생님의 말씀에서는 소녀상이 당사자들을 고립시키지 않고 세대를 뛰어넘는 매체가 된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인 것 같은데요. 피해 당사자를 집어넣은 사회적 소통으로서의 예술공론장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 김준기
- ‘소녀상의 예술학’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예술 작품으로 읽어보자는 차원에서였습니다. 소녀상은 할머니들의 이해와 요구, 느낌을 충실히 수용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예술 작품은 생산자 주체, 할머니 당사자들과 관계없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습니다. 텍스트가 시공을 초월해서 새로운 컨텍스트 안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 예술 작품을 읽어보는 이유입니다. 예술 작품이 보편적 언어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소녀상이라고 하는 매우 장소 특정적이고 의제 특정적인 이 작품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보편성을 획득하고 다양한 층위에서 새로운 문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최범
- 저는 소녀상을 재현의 정치학 관점에서 보고 싶어요. 작품이 재현하는 사건의 내용이 어떤 정치적인 효과를 가져 오는가 하는 부분에서 읽어내고 싶습니다. 소녀상 재현의 정치학 효과는 위안부라는 피해자를 재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녀상의 맑고 깨끗한 이미지는 소녀상이 순수한 피해자라는 것을 재현하고 있지요. 피해자가 있다는 얘기는 반대편에 가해자가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소녀상은 순수한 피해자와 악마 같은 가해자 두 가지 표상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이런 표상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이분법적 세계관이거든요. 식민지를 겪은 우리가 피해자이고 일본이 가해자임은 분명하지요. 소녀상이 재현하는 방식은 아주 극단적인 이분법의 세계입니다. 이는 역사를 이해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분법적인 세계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위 공산주의와 일본에 대한 태도입니다.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이고 극복되어야 한다면, 우리가 재현하고 있는 예술 작품들도 이를 넘어서는 태도와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소녀상이 그러기는커녕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가치관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봅니다. 소녀상은 사회예술을 넘어서서 성격상 국가주의 예술이라고 봅니다. 이분법적인 세계는 필연적으로 폭력적인 세계입니다. 소녀상이 맑고 슬픈 모습이지만 사실 재현의 정치학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인문주의 예술이라는 것은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 모순된 것들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해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오히려 소녀상에서 한때 진보적인 역할을 했던 한국 민족미술의 지독한 역설을 봅니다.
홍승희 소셜아티스트
소녀상은 많은 질문과 확장이 가능하게 한 상징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홍승희
- 저는 예술인들이 처음 소녀상 앞에서 공연을 하고 대학생들이 농성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효녀연합’이라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여성이라는 상징이 예술 작품으로 나타나면서 의도치 않게 오독이 되는 맥락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어버이연합’은 소녀상을 지켜줘야 한다면서 그 앞에서 용서를 강요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거예요. 소녀상을 대상화된 존재로 보고, 평화라는 가치가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지만 지금 그런 것들을 얘기할 여유가 있냐면서, 소녀상과 여성적인 가치들을 뭉뚱그려서 부차적인 가치로 해석하시더라고요. 예술은 본질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계속 배제되었던 본질적 가치, 역사에서 누락된 것들을 인간의 언어로 드러나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어버이연합’과 대치할 때 사회에서는 좌파 대 우파, 이분법적으로 분류했잖아요. 예술가는 진실을 계속 드러내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소녀상은 인간이라는 가치, 그 상징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느꼈어요. 많은 질문과 확장이 가능하게 한 상징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안태호
-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작가님에게 할머니들의 반응, 토론을 들으면서 생각하신 부분, 작가로서 해명이 필요한 부분을 들어보겠습니다.
- 김운성
- 저는 사회적 예술에 좀 더 다가가고 싶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저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찾아가서 만난 거예요. 적나라하게 표현하려는 욕구가 왜 없었겠습니까. 많았지만 참고 정제시키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부분들을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활동가들과의 끊임없는 토론 속에서 할머니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보기에 어떨지 하는 과정 속에서 정리된 것입니다. 최범 선생님은 지독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일본을 응징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온전히 우리의 아픔만 있어요. 소녀상 밑에 깔린 할머니의 그림자를 같이 봐야, 할머니가 소녀고 소녀가 할머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어떻게 보면 일본에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에게 얘기하는 것이고 한국 정부에 얘기하는 것입니다. 단지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면 계속 지독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게 됩니다. 사실 그것을 극복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한 작품입니다.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은 할머니들이 20년 동안 수요집회에서 앉아서 했기 때문이에요. 그 소녀가 분노해서도 두려워해서도 안 되는데, 시간과 날씨에 따라 마음에 따라 표정이 달리 보이게끔 굉장히 고민했고 그래서 그런 표현들이 나온 겁니다.
장수희 연구모임 아프꼼 연구원
당사자의 기억을 역사에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지가 쟁점이 되어야 합니다.
최범 디자인평론가
민족 모순으로는 위안부 문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으니, 다른 모순들과 함께 봐야 합니다.
- 이택광
- 저는 역설적으로 순수한 피해자는 순수한 적이 아니라 순수하지 않은 피해자를 만든다고 봅니다. 소녀상을 공격하는 많은 분은 순수하지 않은 피해자를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순수성은 적을 만들어내는 개념이 아니라 권력이 부여하는 자격의 개념입니다. ‘누가 권력일까’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민족 담론으로 회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안부 문제는 계속 순수한 피해자, 순수하지 않은 피해자의 문제로 갈리게 되고 가르는 당사자들은 숨어 있는 것이죠. 지금 일어나는 논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그래서 쟁점을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 최범
- 재현 이전에 어떤 종류의 모순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이전까지는 민족 모순으로 봤다면 최근의 논의들은 중첩적인 모순, 젠더 모순도 있고 계급 모순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에 의한 조선의 지배라는 관점에서만 봤기 때문에,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의 지배는 논외가 되는 것이고, 미국에 의한 한국 지배는 시야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민족 모순으로는 위안부 문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으니 다른 모순들과 함께 봐야 합니다. 모순에 대한 인식이 재현의 방식을 결정합니다.
저는 재현하기 위해서는 재현의 불가능성에 대해 처절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재현만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쉬운 재현이 문제인 거죠. 사실 위안부의 고통이라는 것은 재현할 수 없는 거예요. 전쟁의 고통도 재현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현할 수밖에 없다는것이 아이러니이지요. 재현할 수 없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태호
- 사실 재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계속 재현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감동의 힘이 가장 큰 것입니다. 어쨌거나 소녀상이 감동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소녀상이 상상력 자체를 어느 정도 제약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모든 작품이 갖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지요. 청소년들은 그 작품의 이미지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일단 인문학적인 전망을 가진 채 다양해지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홍승희
- 소녀상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이 기존의 예술은 만지지 말아야 하고, 무언가 하면 안 되잖아요. 사람들이 소녀상을 안아주고, 목도리도 둘러주는 것이 새로운 예술이고, 예술이 어떻게 사람들과 공존하고 관계 맺는지에 대한 변화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소녀상은 사회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재하는 작품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그 작품이 시민들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민사회의 장에 예술이 존재하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운성
- 소녀상 앞에서 계속 설명하고 있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저희가 하는 얘기와 겹치더라고요. 옷을 입혀주고 모자를 씌워주고 하는 사람들의 표현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소녀상 작가의 역할은 사실 거기까지이지요. 그 역할은 활용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가져가는데 그 얘기가 백 가지 천 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에 뿌듯함은 있습니다.
- 안태호
- ‘소녀상의 예술학’을 주제로, 소녀상의 예술적 의미로 시작해서 한국 미술의 스펙트럼 확장, 사회적 예술에 대한 논의, 민족인지 젠더인지의 쟁점, 재현의 정치학 등 다양한 논점이 풍부하게 나온 것 같습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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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녀상의 예술학’ 자료집에서 발췌. 본 토론회는 김준기 미술평론가가 기획하고, 자율공공실천회의 준비위원회가 주최했다.
- 정리 전민정
- 사진 최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