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품격을 더하는 공공디자인 2021 공공디자인 토론회 ‘공공가치를 디자인하다’
정부는 2016년에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고, 2018년 관계 부처가 협력해 ‘제1차 공공디자인 진흥종합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공공디자인을 다시 디자인해야 하는 전환기를 맞아 공공디자인의 가치를 생각해 보고, 처음으로 돌아가 공공디자인의 의미를 새롭게 확립해 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올해 15회를 맞이한 ‘공공디자인 토론회’에서는 ‘생활안전’과 ‘생활품격’ 두 개의 주제와, 특별 주제 ‘도시 품격’을 놓고 국내외 공공디자인 전문가들이 모여 코로나 일상 시대에 공공디자인의 가치와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11월 9일 하루 동안 진행된 토론회에서 환경부와 함께한 특별분과 ‘도시품격을 더하는 공공디자인’과 종합토론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 일시
- 2021년 11월 9일(화) 오후 2시 45분~4시 30분
- 이종혁 공공소통연구소장, 광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헨리 창Henry Tsang 아사바스카 대학교Athabasca University건축학부 교수
- 문은배 청운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 김태우 아모레퍼시픽 CRS팀 부장
- 매튜 마조타Matthew Mazzotta 공공미술가
- 이연숙 연세대학교 실내건축학과 명예특임교수
- 이현성 홍익대학교 공공디자인전공 부교수
-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헨리 창
아사바스카 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매튜 마조타
공공미술가
문은배
청운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김태우
아모레퍼시픽 CRS팀 부장
이종혁
공공소통연구소장
이연숙
연세대학교 실내건축학과
명예특임교수
이현성
홍익대학교
공공디자인전공 부교수
녹색 건물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에너지 사용량이 적은 건물을 말합니다. 기존 건물보다 탄소 배출을 적게 하고 유엔의 지속가능 발전목표 달성에도 기여합니다. 녹색 건물을 설계할 때는 에너지와 기후, 물 효율성, 지속 가능한 부지, 위치 및 연계성, 혁신과 디자인, 인식과 교육, 실내 환경 성능과 자재, 자원을 고려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2030년까지 모든 신규 건물의 탄소중립을 의무화하고 2050년까지 100%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최근 설계한 캐나다 캘거리의 일본인 커뮤니티센터로 주변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했습니다. 중앙의 안뜰은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에 휴식을 주는 정원 역할을 하며, 지역 토종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깨끗한 공기를 제공합니다. 태양열 패널을 설치한 지붕은 태양의 이동 경로에 맞춰 구부러진 형태이며, 지상층은 개방된 형태로 자연광이 실내 깊숙이 들어와 빛과 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건물 자재로 대형 목재를 사용해 생애 주기 동안 배출되는 탄소발자국을 줄였습니다. 자전거나 대중교통 이용을 편리하게 하고, 휠체어 사용자나 고령자의 접근성을 고려해 설계했습니다.
다음으로 재난 회복력을 갖춘 건축은 ‘대응-회복-준비-완화’라는 재난의 4단계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11년 설계한 인도네시아 대학교의 보건과학 캠퍼스는 대학의 교육시설과 병원을 설계하는 공공 프로젝트로 2004년 쓰나미로 피해를 본 인도네시아를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관계자 간 협업을 통해 인도네시아 최초의 1급 녹색 건물이자 자연재해 회복력을 갖춘 건물로 설계했습니다. 대형 녹화 지붕, 수직 녹화벽, 태양광 패널, 빗물 재사용 시스템 등을 설치하고, 회복력 확보를 위해 건물에 면진 구조 기법을 도입해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려도 원래 위치로 돌아가게 했고, 자체 발전기를 설치해 전력 공급 중단 시에도 건물이 기능할 수 있게 했습니다.
친환경적이고 회복력 있는 건축과 공공디자인을 위한 주요 전략은 첫째로 태양, 바람, 기후와 같은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주변 건물, 도로 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두 번째,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보존해 디자인에 녹여내야 합니다. 좋은 디자인은 주민들과의 충분한 논의와 이해, 시민 참여를 바탕으로 이를 보존하고 향상하는 디자인입니다. 세 번째, 안전하고 사생활이 보호되며 누구나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네 번째, 건물 이용자의 건강과 웰빙을 위해 무해한 건물을 설계해야 합니다. 유독성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좋은 공기와 실내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용자를 우선으로 하는 사람 중심의 건물을 설계해야 합니다.
자원회수시설은 원래 쓰레기처리장, 쓰레기소각장으로 불렸습니다. 서울시에서 공공디자인 시범사업을 시작한 2008년 당시 쓰레기소각장은 혐오시설이었기 때문에 냄새나고 더럽고 사람들이 안 가는 곳을 공공디자인으로 살리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늘진 숲속 춥고 어두운 곳에 위치한 자원회수시설 주변에는 동네 비행 청소년과 깡패 들이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건물을 예쁘게 꾸미려고 했는데 이런 위험 요소로부터 구하는 게 더 큰 문제였습니다. 따뜻하고 깨끗하고 밝 면 이들이 모여들지 않으니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주민설명회 과정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까다롭고 걱정이 많은 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시각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참여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한 이슈였고, 예술성을 가미해 접근해 보기로 했습니다.
노원자원회수시설은 3D로 시안을 만들어 구스타프 클림트, 몬드리안, 칸딘스키, 훈데르트바서 스타일 등을 제안해, 최종 ‘훈데르트바서’ 안이 채택됐고요. 중요한 것은 싸움장이 돼버린 숲의 나무를 다 베어서 잘 보이게 한 것입니다. 동네 아이들이 몰려오면 깡패들은 없어지고, 환한 데서 사람들이 도시락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안전이 확보됩니다. 숲을 밀었더니 가족 공간이 됐고, 주민들이 좋아하게 됐습니다. 강남자원회수시설은 하수처리장 옆에 있다 보니 냄새가 더 많이 나서, 소각장 옆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특히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아파트 색채 계획까지 했고, 두 번째로 하는 작업이라 예술적인 표현이 더 많아지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야간 경관도 아름답습니다. 조명 하나 없이 컴컴해서 사람들이 무서워하던 숲을 없애고 체육시설과 축구장을 만들었습니다. 노원자원회수시설은 12년 전이라 기술 부족으로 시트지를 붙였기 때문에 지금 앞면이 바래 있습니다. 강남은 몇 년 후 컬러아크릴 생산기술이 좋을 때 만들어서 지금도 거의 그대로입니다. 두 곳의 사례를 통해 오스트리아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일본 마이시마 소각장처럼 초기 단계부터 친환경적이고 예술을 가미하는 사례를 많이 대입하면 좀 더 완성도 높고 오래가는 시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사회공헌 활동인 그린사이클 캠페인의 일환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공공디자인으로 풀어낸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오랜 기간 화장품 공병을 수거해 왔고 많은 분이 동참해 주고 계셔서 1년에 유리와 플라스틱을 합쳐 200톤 이상 수거되고 있습니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의 유행과 코로나19로 인해 플라스틱 문제가 작년과 올해 크게 부각되면서, 이제 많은 기업과 국민이 플라스틱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린사이클 캠페인 담당자로서 반갑지만 놀라운 일입니다. 이전에는 플라스틱 얘기를 해도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고 홀대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국 매장에 공병이 모이면 파쇄·세척·탈수 후 재생이나 압출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플라스틱 재질이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공병의 재활용은 불가능합니다. 아직까지는 PP재질에 한해 펠릿Pellet이 되고 이 펠릿이 용도에 맞게 재활용되는 수준입니다. 작년 이맘때 포스코 사내벤처 1호인 이옴텍에서 철광석의 부산물 ‘슬래그’를 플라스틱과 결합해 ‘슬래스틱’으로 만들어 건축자재로 재활용한다는 발표를 듣고 이옴텍에 연락해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그 결과 이태원의 공중화 실을 ‘아리따운 화장방’으로 조성하면서 건물 외장을 플라스틱 공병 펠릿 3톤이 포함된 슬래스틱으로 마감했습니다. 두 번째는 종로구에서 시멘트 회사 삼표와 협업한 사례입니다. ‘OTHERS’에 해당하는 플라스틱은 재활용 방법이 없던 차에, UHPCUltra High Performance Concrete에 플라스틱 조각을 밀가루 반죽하듯 섞어내면 이탈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종로구에 벤치 기증을 약속한 김에 기왕이면 UHPC로 벤치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겉에만 몇 개 발라놓은 테라초Terrazzo기법 아니냐’고 오해할 수 있으나, 안전도를 테스트하며 최소 30%~최대 50%의 분쇄 플라스틱을 시멘트와 섞었기 때문에 시멘트 안 곳곳에도 플라스틱이 들어가 있습니다.
두 프로젝트 모두 사내 디자이너가 재능기부로 참여했습니다. 회사에 사회문제나 공공디자인에 관심 있는 디자이너가 과거보다 많아졌지만 중간에서 담당자가 차단해 버리기 때문에 참여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모레퍼시픽에는 선뜻 참여하겠다는 디자이너가 많았습니다. 몇몇 지자체나 다른 기관에서 벤치를 기증해 달라거나 선물로 달라는 말씀을 하는데, 저희도 공공디자인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만든 것을 그냥 드릴 수는 없으니 체계를 갖춰서 요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중 하나가 기부 처리 절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 공공디자인에 참여할 명분이나 예산의 가용 범위가 줄어듭니다. 종로구는 그런 해법을 저희한테 먼저 제안해 주셔서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기업의 디자이너가 참여할 수 있게 하고, 기업 이 지역사회에 기부도 하고 성과를 가져갈 수 있는 체계를 갖춰 기업의 공공디자인 참여를 더 많이 유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역사회와 그 안의 공공장소를 다루는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 작품은 리서치에서 시작하는데요. ‘야외 거실’은 지역사회에 대한 의견과 생각을 나누는 장소를 만드는 작업으로 어느 지역에 가든 이 과정을 거칩니다. 실내에서 쓰는 가구를 공공장소에 두고 사람들이 모이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야외 거실’을 설치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들을 수 없는 주민의 목소리를 포착하고, 그곳의 상황을 파악합니다. 이렇게 주민들로부터 모은 정보가 작품에 어떻게 응용되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상점가 극장Storefront Theater>은 시내 중심가를 야외 영화관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로 미국 네브래스카주 리옹에 있습니다. 건물 전면을 열어 좌석을 꺼내고 스크린을 설치하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은 상점들이 인터넷으로 물건을 팔다 보니 시내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비슷한 의견이 모이면서 극장을 만들기로 하고 그 과정에 지역 주민들이 함께했습니다. 영화제작자에게 주민과 함께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해 준비하고 홍보했더니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주민들이 배우로 출연하고 시내에서 촬영해 만든 영화를 극장 최초 상영작으로 선보였습니다. 다음 프로젝트는 <구름 집Cloud House>으로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의 파머스 파크에 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양철 지붕에서 나는 빗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색을 즐기는 공간입니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 지하에 저장되고, 사람 이 흔들의자에 앉으면 펌프가 작동되면서 빗물이 위로 올라가 구름 모형에서 비가 내립니다. 창틀에 재배하는 식물 위로도 빗물이 떨어집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자연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파크 스파크Park Spark>는 개의 배설물을 공원 조명의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퍼시픽스트리트 공원에 설치했습니다. 개 배설물을 생분해 비닐에 담아 탱크에 넣고 핸들을 돌리면 내부에 있는 물과 배설물이 섞입니다. 배설물이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메탄을 에너지원으로 주전자의 물도 데울 수 있습니다. 반려견 공원에서 진행되었지만, 얼마든지 도시 전체에 확대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탬파 공항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진행 중인데, 공항 한가운데 커다란 플라밍고가 자리 잡고 있는 작품 <집Home>입니다.
제 일을 사과에 비유하면, 사과 안의 씨앗은 정보이고 사과는 매개체입니다. 동물은 사과뿐만 아니라 씨앗까지 먹은 채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 돌아갑니다. 저의 모든 작업은 반짝거리는 향긋한 사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흥미가 생기고 호기심을 느끼면 다가옵니다. 한번 경험한 후에는 본인의 것으로 소화해 집으로 가져가 식탁 위에 올려놓고 친구, 지역사회, 다른 공동체와 나눕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올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 직접 경험하고 돌아가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제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공공디자인 진흥 정책은 외국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습니다. 공공디자인의 영역이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 만큼 책임감과 이상이 중요해지고 있고요. 어느 정부 부처에서 하든 협력하는 체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교육부는 교육 관련 시설, 복지부는 복지 관련 시설, 행안부는 주민 관련 시설, 국토 교통부는 교통시설, 문체부는 문화시설이 있겠지만, 정부 부처를 총 망라해 근본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환경적인 지속가능성과 문화적인 본질임을 잊지 않으면 좋겠고요. 지속가능성에는 크게 자연생태계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생태계적 지속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 지금까지는 시간과 지식의 부족으로 얕은 디자인을 많이 해왔지만 이제는 사회적인 여건이 형성됐기 때문에 공공디자인이 물질적인 부만 아니라 생물학적, 문화적 부도 추구 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깊은 디자인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공공은 영향력이 크고 범위도 넓고 한번 조성되면 시간적으로도 길게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지속가능성을 증진시키려면 우선 머리와 꼬리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위에서 몸체만 내려주었다면, 이제는 지역에 맞는 제대로 된 방향에 대한 머리와 지속 가능하게 발전·유지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꼬리를 잘 만들어서 공공디자인을 제공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지식과 정보의 깊이입니다. 왜냐하면 초기의 구상과 점검을 철저히 할수록 지속가능성이 증진되기 때문입니다. 기존 공간과 사용자의 범위와 특성을 제대로 알고, 좋은 공간을 만드는 정보가 많을수록 지속 가능의 가치가 높아집니다. 하드웨어 안의 콘텐츠와 시민 역량에 관한 휴먼웨어까지 동시에 생각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공공디자인을 촉진할 수 있을 겁니다. 세 번째, 이전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이해관계자가 순차적으로 개입했는데, 이제는 처음부터 한자리에 앉아 총체적인 관점에서 역할의 비중은 달리하는 환형 계획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시민 참여와 협력, 공감에 의한 반응형 계획이 필요하고, 시대 변화에 맞게 유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문체부의 역할을 강화하면 좋겠습니다. 흔히 디자인 하면 보이는 것만 생각하는데, 앞으로 공생적인 삶의 문화를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보이지 않는 부분도 중요하므로 양방향으로 진작시켜야 합니다. 공공디자인 진흥정책에서는 자연생태적, 사회생태적인 역할이 중요한데 정부 부처와의 관계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고 있으니, 문체부가 좀 더 외형적으로 발전시키고 드러내는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이현성 교수님께는 앞선 이 교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공공디자인 진흥계획의 방향이나 요구되는 개념에 대한 추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발제 내용을 관통하는 용어는 협력과 융합입니다. 발제자들의 이력만 봐도 다양성과 확장을 이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005년 시작된 공공디자인의 흐름을 보면, 처음에는 공공환경 개선이 이루어졌고, 10년이 지난 2016년 초 공공디자인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유형적 대상의 개선에서 주제적 개선으로 진일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합계획을 통해 나타난 생활안전, 생활편의, 생활품격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2021년 우리의 공공디자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협력적 모델’이라고 보거든요. 앞서 무엇을 대상으로 할지와 ‘안전·편의·품격’이라는 주제는 이미 설정되어 있습니다. 비어 있는 것은 ‘만드는 방법’이죠. 공공기관에서 비용을 투자해 만드는 방식으로 갈지, 서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서 풀어나가는 ‘컬렉티브 임팩트’ 방식으로 갈지, 저는 당연히 후자라고 봅니다. 기업에서 공공의 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디자인이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국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분들을 잘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공공디자인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공공의 문제 해결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법론과 협력적·회복적 거버넌스 모델을 공공디자인에서 만들어준다면 공공의 가치가 향상되고 생활 곳곳에서 실현되는 이상적인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문은배 교수님 프로젝트에서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하면 좀 더 원활하게 소통하고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도 중요한 요소 같습니다. 현장에서 오랜 시간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으니 그 부분에 대해 제언해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드린 사례는 유난히 민원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소통의 문을 열기 어렵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학생을 한 명씩 붙여서 스토리텔러를 시켰습니다, 그냥 편하게 원하는 거 얘기하라고 하고 거의 자서전을 만들어줍니다. 그 정도로 다가가도 그분들이 한마디 꺼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지속 가능하다는 것은 단지 시설물이 오래가고 자연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들의 생활 패턴에 자연스럽게 녹으려면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설득이 어려웠을 때 문제를 푼 방법은 다가가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면서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리 디자인을 잘 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만났을 때 ‘앞으로 이것을 계속 사용할 분들을 위해 귀를 열고 무슨 얘기를 들을까, 나는 디자이너이니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기본적인 접근 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태우 부장님께도 질문드리겠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재활용한 것임을 홍보용으로 활용함에도 불구하고, 아모레퍼시픽 벤치는 친환경임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끔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이와 같은 방식을 채택한 이유를 질문해 주셨습니다. 공공디자인이 기업과 민간의 영역까지 확산되어 한 단계 더 진화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벤치를 친환경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UHPC가 기존 시멘트에 비해 친환경이라는 주장은 시멘트 업계에서 하는 건데요. 콘크리트에 섞인 플라스틱이 영원할지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안전성 같은 부분을 완벽하게 검증하지 못했고, UHPC와 플라스틱을 섞는 시도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버려질 것을 재활용했다고 친환경 벤치라고 홍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취지에도 맞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앉는 데 불편하거나 안전을 위해하는 요소가 있으면 안 된다는 측면에서 공공디자인의 본질에 충실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공공디자인이 시설로만 얘기되는 것 같은데요. 아동학대 관련 업무를 하는 분이 그간 노란 리본을 심벌로 사용해 왔는데 새로운 상징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해 와서, 용산에 있는 기업·학생들 (용산 드래곤즈)과 서울시의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에 참여해 함께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시설뿐만 아니라 캠페인, 상징물이 필요한 영역도 있으니 이것도 공공디자인에 포함된다면 기업들이 재능을 살려 참여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런 협업이 앞으로도 더 많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이연숙 교수님께 추가로 질문드리겠습니다. 기업, 지자체와의 협력 외에 개인이 공공디자인 영역에 참여할 기회라고 할까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공공디자인에 대한 사고의 전환과 감각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혜안을 구하고 싶습니다.
이현성 교수님께는 앞선 이 교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공공디자인 진흥계획의 방향이나 요구되는 개념에 대한 추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건 공공디자인 영역만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에 필요한 영역인데요. 공공디자인의 효과가 잘 드러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켜 공감한 다음 합의를 도모하는 기술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공공디자인은 저 멀리 밖에 있는 전문가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시민 사회에 있는 문제를 발굴하고, 좋은 디자인을 옹호하는 역할에 개인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요즘 지자체들이 공공디자인 발전을 위해 시민참여단을 운영하고 있어요. 개별로 혹은 ‘단’에 들어가 지역사회 문제를 둘러보고 필요한 것을 발굴해 내는 공공디자인의 초기 단계에 공헌할 수 있고요. 평가할 때도 제대로 된 관점으로 비판하고 좋은 것은 옹호해 주면 공공디자인과 개인이 더불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공디자인은 주로 대도시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지방 아니면 소단위 공동체에서 공공디자인 활성화에 대한 질문도 많았습니다. 지역 중소도시에서 공공디자인 문화 확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표준화와 글로벌화가 좋은 것으로 교육받아 왔는데, 돌려 생각하면 로컬리티Locality의 반대말이거든요. 표준화의 맹점은 각각의 사람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표준형에 모두를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 모든 디자인의 방향은 휴먼스케일로 가고 있고 로컬리티는 공공디자인에서 좋은 말이 되고 있어요. 택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이라는 도시 공간의 문제를 실험적, 임시적으로 해결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습니다. 공공디자인 사업 유형도 마스터플랜 단위가 아닌 수복형 단위로 가야 합니다. 대도시보다 로컬 단위에서 소규모 공공디자인 과정이 더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고요. 공공디자인의 제 해결에는 옛날 두레나 품앗이 문화를 기초로 하는 일상 문화의 적용, 밑으로부터 올라가는 수복형의 실험적 방안이 효과적입니다.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서 많은 것을 담지 못했을 수 있지만 나머지는 오늘 이후 나머지 정책들을 통해 더 많은 토론의 장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리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 사진 제공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