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우리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을 주제로 10월 5일부터 13일까지 DDP 전역에서 열렸다. 서울국제작가축제는 국내와 해외의 작가들이 문학 교류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자 지난 2006년부터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격년으로 개최해온 축제이다. 올해를 기점으로 매년 개최될 축제에 서울문화재단은 서울디자인재단과 공동 주최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작가들의 수다’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모여 ‘젠더’, ‘디아스포라’, ‘혐오와 분노’와 같은 사회적 현안이나, ‘미학’, ‘이야기’ 같은 개인의 관심사에 대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총 5회의 세션 중에서 챈드라하스 초우두리, 배수아, 전성태, 정영선 네 명의 작가가 참여한 ‘디아스포라적 상상력’ 세션을 소개한다.
- 일시
- 2019년 10월 9일(수) 오후 8시~9시 30분
- 장소
-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살림터 3층 디자인나눔관
- 강영숙
- 챈드라하스 초우두리(Chandrahas
Choudhury) - 배수아
- 전성태
- 정영선
강영숙
챈드라하스 초우두리
(Chandrahas
Choudhury)
배수아
전성태
정영선
‘작가들의 수다’의 두 번째 세션이었던 ‘디아스포라적 상상력’의 진행을 맡은 강영숙 소설가는 먼저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취지와 함께 참여 작가와 약력을 소개했다. 챈드라하스 초우두리는 인도 뉴델리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 소설가 겸 수필가로 첫 장편소설 <난쟁이 아르지>(Arzee the Dwarf)가 커먼웰스 퍼스트 도서상(Commonwealth First Book Prize) 최종 후보에 올랐다.
배수아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화학을 전공하고 1993년 단편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 이후 수 권의 장편과 단편소설, 에세이를 출간했으며 독일어 번역가로도 활동한다. 전성태 작가는 1994년 계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 <닭몰이>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 <늑대>, <두번의 자화상>,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등을 출간했다. 정영선 작가는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1997년 <문예중앙>에 발표한 <평행의 아름다움>으로 등단했으며 다양한 내력의 탈북이주민들이 등장하는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을 썼다.
토론에 앞서 4명의 작가들은 ‘디아스포라적 상상력’이라는 주제에 맞춰 선정한 작품의 한 부분을 낭독했다. 챈드라하스 작가는 올해 발간된 소설 <차이나 드래건: 중식당 경영기>의 일부를 읽었다. 그는 “몇 년 동안 뭄바이에 있는 중국 식당에서 공부했다. 식당에서는 굉장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음식을 누군가의 앞에 놓으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면서 작품 선정 배경을 밝혔다. 이어 배수아 작가는 단편 <뱀과 물>의 한 장면을 낭독했다. 이 장면을 고른 이유로 “작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어로 낭독회를 했는데 한국어로 소설의 한 부분을 읽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국어를 아는 청중이 한 명도 없는 낭독회에서 한국어로 낭독했다. 매우 경이롭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 낭독을 ‘좋았다’가 아니라 ‘이해했다’고 말했다.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해했다고 한 것은 매우 신비로운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전성태 작가는 “축제 책자에 실린 에세이의 제목 ‘스파이들의 무덤’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를 말한다. 분단된 후 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가 죽은 북한군들의 묘지”라고 설명하고 <성묘>는 어느 날 북한군의 묘지에 국화꽃이 놓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며 쓴 소설이라면서 마지막 부분을 낭독했다. 정영선 작가는 “주로 부산에서 활동하고 책도 부산의 출판사에서 펴냈다. 요즘은 모든 것이 중앙으로 집중되다 보니 지역에서 문학을 하는 일은 눈에 띄지 않는데 초대해주어서 감사하다”면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한 부분을 읽었다.
강영숙 사회자는 “낭독을 들을 때마다 한국어가 새롭게 들린다. 언어야말로 쓰는 것과 다르게 청중들이 들어주는 순간 의미가 되고 빛이 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로 낭독 시간을 마무리하고 수다를 이어갔다.
첫 번째 질문은 경계에 대한 것입니다. 이 질문과 관계있 는 에세이가 책자에 실린 챈드라하스 작가의 <봄베이와 델리: 내 삶의 두 도시>와 배수아 작가의 <어디로도 가지 않고, 멀리,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인데요. ‘디아스포라적 상상력’이라는 주제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얘기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에 대해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고 작가들도 잘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은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느낌으로 살고 글을 씁니다. 최근에는 디아스포라의 양상이 이전과 다르게 지속되는 흐름이 있습니다. 이것이 작가님들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작가가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하도록 요구받는 것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인사이더 역할을 해야 하고, 자신의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고요. 언어에 있어서는 들리는 부분에 대한 번역도 필요하지만 안 들리는 부분도 변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극명하게 보이는 것만 쓰는 것은 검증밖에 안 됩니다. 도시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글을 쓰다가, 어떤 터널을 지나가면서 완전히 아웃사이더 입장에서 전혀 다른 관점의 글을 쓰는 사람을 종종 봅니다. 예전에는 사랑했던 곳인데 더 이상 그 도시를 좋아하지 않게 된 감정의 변화를 글을 통해 드러냅니다. 문학은 굉장히 구체적인 것을 다루고 작가들은 구체적인 언어로 글을 쓰도록 요구받습니다.
과거에 인도는 내향적인 세계였습니다. 이제는 해외에 나가면 인도 여권을 들고 있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때로는 디아스포라를 통해 저보다 먼저 먼 세계로 떠난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돌아보면 저도 디아스포라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는 언제나 자신을 디아스포라를 통해 세계에 이산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왜 디아스포라 세션에 들어갔는지 이해를 못했어요. 처음부터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제가 쓰는 글은 한국이라는 환경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이상하게 경계를 넘어서는 글쓰기, 이질적이라는 말로 저의 글을 카테고리화하는 경향이 강했어요. 이것은 다른 한국 작가를 연상시키는데요. 대학시절에 우연히 흥미로운 여성 작가의 책을 읽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글을 썼기 때문에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평론가들이 그의 글을 이민문학이라는 장르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정주부로서의 체험이 글의 영감으로 작용했고 이민자로서 뉴욕에서의 삶을 그렸다고 그냥 이민문학이 된 것에 충격을 받았고요. 저는 굉장히 좋았지만 주변문학이 되어버렸어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초반의 일이에요. 디아스포라 문학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런 식의 제목 붙이기는 제 성향과 맞지 않습니다. 제가 번역을 하기 때문에 디아스포라와 관련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외국을 무대로 하면 디아스포라인가요. 지금은 지리적인 여건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주어진 정체성이 혼돈스러워 저를 디아스포라에 맞춰 설명하는 것을 포기했어요. 디아스포라라는 용어의 범주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제가 배 작가를 디아스포라에 넣은 이유를 답해야 할 것 같은데요. (웃음) 디아스포라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인 이유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말하는데 디아스포라에 대한 정의는 변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 중 사실 디아스포라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배 작가의 작품은 다른 관점과 시선을 풍부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아웃사이더의 관점을 잘 전달해줄 거라 상상했습니다. 멀리 여행을 떠나게 될 운명이나 예감도 이번 에세이에 나와 있어서 잘 맞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배수아 작가의 존재 자체가 디아스포라라고 생각했는데요.
저야말로 말은 잘 통하지만 문화가 낯설어서 어딘가에서 뚝 떨어져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많은 독자들이 모인 자리도, 서울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만난 것도 처음입니다. 제 소설은 탈북민에 대한 이야기인데 참고로 저는 탈북민이 아닙니다. 경기도 안성에 북한에서 온 분들의 적응을 돕는 기관인 ‘하나원’이 있는데요. 거기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굉장히 많은 북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이 무슨 이유로 고향을 버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곳으로 왔는지, 그 이유는 각각 다른데 그 얘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어쨌든 그 사람들을 보고 제가 변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히려 제가 경계 밖으로 나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경계를 넘어가는 누군가를 보면 약간의 감동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분들의 변화뿐 아니라 자신의 변화를 느끼는 것이 작가가 할 일 아닐까요. 모든 것에는 경계가 있고 누구나 경계를 넘어가거나 넘어선 자들을 봐야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벽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1990년대 학교를 다닌 386세대입니다. 2000년대가 되면서 ‘9·11’이 터지고, 다른 형태의 전쟁이 나고, 장밋빛이 아닌 세상을 목도하면서 벽이라는 이미지가 공고화되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정영선 작가의 벽에 관한 에세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마음의 벽에 대한 이미지가 있는데요. 남북관계는 이전과 달라졌고 변화를 기대하게 하는 상황입니다. 인도도 세계대전의 상흔이 있는 상태인데 이것이 개인에게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너희 나라 안전하냐’는 얘기를 항상 듣습니다. 에세이에는 세대적인 감각과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볼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는데요. 이전과 비교해 어떤 형태로 변할지 이야기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이야기일 수 있고 지금 목도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분단 무렵에 태어난 세대가 아닙니다. 휴전선 근처에서 군 복무를 했지만 분단을 실감하면서 산 세대도 아닙니다. 20대에 국가와 민족을 고민하던 시절,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에 사는 우리가 감각하는 정체성은 대체 어떤 것일까. 한반도라는 중력에서 자유로울까. 북한을 다른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뭔가에 묶여 있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은 느낌이 공존했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묶여 있는 것도 벗어나고 싶은 것도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배 세대도 남북문제에 대한 희망고문이 큰데요.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에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땅이 된다면 다양한 상상력과 주장이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벽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다만 벽을 높게 쌓지 말아야 합니다.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벽이면 분단의 상황이 모두에게 덜 부담될 것입니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3만 명 정도입니다. 얼마 전에 굶어 죽기도 했고, 다른 나라로 가버렸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벽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가장 빨리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옆에 와 있는 사람들, 우리는 혜택을 준다고 하지만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소통이 가능한 벽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의 상황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인도는 과거에 더 큰 영토를 차치하고 있었고, 역사 중에 제대로 통일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했습니다. 우리는 역사 안에서 그들과의 대립적인 관계가 강화되는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1980년에 태어났는데요. 제가 성장할 때는 많은 매체가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파키스탄 사람은 악마로 생각했고요. 그런데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파키스탄 학생과 교류해보니 제 편견과는 달랐습니다. 우리는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강조해왔는데, 제3의 지역에서 만나보니 저희와 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인도 내에 살면서도 서로 굉장히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인도인 사이에도 문화적인 차이가 있는데요. 인도 사람이 미국에 이민 가면 문화적으로 달라지지만 결국 하나의 인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합니다. 우리를 나누는 것보다 연결하는 것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정치를 보면 현실적인 논의만 이뤄지고 벽을 쌓아야 한다는 논리만 생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문학을 통해, 문화를 통해 그 벽을 허물 수 있습니다.
다른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있나요?
제가 이 자리의 유일한 외국인인데요. 새로운 나라를 배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단어를 배우는 것이더라고요. 한국어 단어 중에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호감을 느끼는 단어 1위는 ‘사랑’이라고 하던데요. 어제 작가들의 수다 첫 번째 세션에서 침묵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침묵은 말하지 않는 것, 저항하지 않는 침묵, 지향하는 침묵이 있는데요. 소란 속에서도, 소리가 소거된 상태에서도 마음으로 맞이하는, 내면의 응시 같은 침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국문학 전공이 아니라 단어의 기원은 잘 알지 못하는데요. 제가 매우 사랑하는 단어는 땅거미예요. 땅거미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단어 자체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땅거미라는 말을 들으면 검은 거미가 긴 다리로 땅 위를 기어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흔히 말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 매직아워보다 조금 더 어둠이 많이 내려간 시간을 움직이는 거미의 다리로 표현했어요. 이 단어를 볼 때마다 이런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석양, 어두움, 어스름으로 번역하면 시각적인 힘이 살아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단어 하나하나가 또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구름>(Clouds)이라는 소설을 7년 동안 썼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떠 있는 구름을 보면서 글을 썼는데요. 소설의 10~15%는 마지막 단어가 ‘집’(home)으로 끝납니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장소에 대한 욕망, 안정을 주는 이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집’으로 끝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어는 ‘구름’, ‘집’입니다.
구름이 있을 때 상상력이 발동한다고 에세이에 쓰셨더라고요. 3개의 도시를 축으로 문학 여정을 설명한 것이 감동적이었어요. 태생지를 한 번 떠났다가 돌아가는 것이 이전 세대의 삶이라면 작가님의 에세이를 보면서 삼각형의 구도가 사각형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작가 여정에 다른 도시를 생각하고 있다면 어디인가요? 다른 작가님도 어떤 도시에 있을 때 글이 잘 써지고 많은 영감을 얻는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의 경험과 제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18살부터 25살까지는 대도시에 매혹됐습니다. 다들 대도시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데요. 나이가 들면서 대도시는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대안적인 방향을 추구하게 되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면서 고유성을 가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대도시와 지역 간의 균형을 잡으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게 되는 곳은 상상 속의 도시입니다. 여행을 가본 여러 도시들의 속성을 집합해 상상의 도시를 만들고 그곳에 사는 것 같습니다. 물리적으로는 델리, 태어난 뭄바이, 어머니의 고향인 부바네스와르를 삼각형으로 여행하지만 네 번째 도시는 제 상상 속의 도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에세이가 도시에 관한 것이었어요. 오스트리아의 여성 시인인데 빈에서 오래 살고 있습니다. 빈에 대해 믿을 수 있고 빈에서만 마음의 안정과 안전함을 느끼고 자신이 있을 곳이며 매우 의존하고 매달리고 있는 도시이지만, 빈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역겹고 사람들도 지긋지긋하다고 했어요. 이것은 한 인간과 지역과의 관련성, 작가로서의 느낌이었는데요. 저는 이에 너무나 공감했습니다. 인간은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멀리 떠나 외국에서 지내거나 태어난 지역에만 머물면 정신세계가 어떠할 것이라는 정형도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저 또한 태어나고 자란 서울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서울에 있으면 단어의 뜻을 생각하거나 알아듣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고 서울의 시스템과 서울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모든 것이 편하고 집에 있는 것처럼 안정감이 들고 긴장이 덜 되고 분명 서울에 의존하고 매달리고 있지만 서울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치환해도 하나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아스포라라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얘기했는데요. 작가님들이 쓰고 싶은 사회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디아스포라는 현대인들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정주하는 곳이 없고, 떠나와서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디아스포라가 이런 식으로 해석되면 좋겠고, 제 과거의 시간으로 이주해보고 싶습니다.
배수아 작가님은 본인의 문학이 카테고리화되는 것을 얘기했고, 정영선 작가님은 지방에서의 작가 경험을 얘기했는데요. 개인의 문학이 인도문학, 역사문학, 지방문학 등으로 규정된 경험이 있는지, 그 경험이 본인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농촌작가라는 말을 듣고 시작했어요. (웃음) 책이 나오면 독자들은 다양하게 읽어냅니다. 밖에서의 규정이 작가에게 스트레스는 아니고요. 책이 읽히듯 작가도 읽힌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를 분류하는 기준은 많지만 이를 경계하거나 지나친 분류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 분류했을 때 거기에 매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서 탈피할 방법은 많습니다.
장소 기반의 디아스포라가 의미를 상실했다 해도 문학은 결국 언어이고 배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작가 입장에서 장소 기반의 디아스포라를 넘어서는 디아스포라를 어떻게 보시나요?
단어로만 듣던 디아스포라를 몇 년 전에 구체화한 경험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일본에 가서 재일조선인을 만났는데요. 나이는 저보다 어렸는데 한국말을 너무 잘해 놀랐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조선학교를 나왔고, 살면서 한국 이름 외에 일본 이름을 써본 적이 없다고 해요.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런 문화를 갖고 사는 사람을 보면서 이상한 감동이 북받쳤습니다. 그분들을 소설로 불러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아스포라도 그 지역에 가서 보면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고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디아스포라는 굉장히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포함합니다. 좁은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데요. 디아스포라 자체가 중요한 경험이고 비유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흥미롭고 다양하게 쓸 수 있는 단어라 생각합니다.
배수아 작가님은 디아스포라 작가로 불리기 싫다고 했는데 어떤 작가로 보이고 싶은지 이야기해주세요.
불리기 싫다기보다 왜 그렇게 불리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지리적 이동이나 차이가 희박해진 상태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은 당연하게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글을 쓴다고 해서 더 이상 이민문학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굳이 디아스포라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과도한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디아스포라가 민족의 문제에 머물러 있는데요. 사실 벽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민족의 벽이 사라지면 국경의 벽이 남고 계급의 벽이 남습니다. 그것만이 절대 악이라고, 저의 문학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쪽으로 몰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취지에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작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책으로 나타나야지요. 저는 낭독하는 작가, 욕심을 하나 부리자면 소리로 텍스트를 전달하는 작가로 보였으면 하는 소망은 있습니다.
디아스포라의 경험은 결국 한 개인에게, 사회에게, 민족에게 사유를 남깁니다. 정체성에 대한 사유, 민족에 대한 사유 체계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 정리 전민정_객원 편집위원
-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