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은 변화하는 중이다. 자치구문화재단 등 자치구문화기구와의 협력은 큰 변화 중 하나이다. 지역문화진흥사업 ‘N개의 서울’ 등 재단의 자치구 관련 사업은 프로젝트 외에도 중간지원 역할 그 자체를 지원하기 위해 예산 사용 등 많은 부분에 지역 자율성을 높였다. 최근 5년간 9개 자치구문화재단이 설립되면서 서울에는 25개 자치구 중 16개에서 문화재단이 운영되고있다. 2019년에도 6개 자치구가 문화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고 3개 정도는 올해 안에 설립될 것으로 보인다. 자치구문화재단들은 설립 시기, 직원 수, 예산, 문예회관과 도서관과 같은 시설 포함 여부 등 지역에서의 상황과 조건이 각각 다르다. 변화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서울문화재단의 변화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치구문화재단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이 과정에서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자치구문화재단의 실무 담당자들을 만나 같이 점검해보는 자리를 가졌다.
- 일시
- 2019년 4월 8일(월) 오후 2시~4시
- 장소
- 남산예술센터 사무동 3층 회의실
- 진행
- 김진환 서울문화재단 문화기획팀 팀장
- 참석
- 문지은 광진문화재단(2015) 문화사업팀 대리
- 사영미 도봉문화재단(2017) 문화사업팀 팀장
- 박상용 동작문화재단(2019) 문화정책팀 팀장
- 임용택 성동문화재단(2015) 정책기획팀 팀장
- 박현진 성북문화재단(2012) 지역문화팀 팀장
박현진
성북문화재단(2012) 지역문화팀 팀장
김진환
서울문화재단 문화기획팀 팀장
문지은
광진문화재단(2015) 문화사업팀 대리
박상용
동작문화재단(2019) 문화정책팀 팀장
임용택
성동문화재단(2015) 정책기획팀 팀장
사영미
도봉문화재단(2017) 문화사업팀 팀장
서울문화재단 사업에 지역협력형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일 것 같습니다. 첫째는 지역분권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지역의 삶과 직접 연관되는 이슈는 지역의 주도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또 하나 문화, 예술 관련 서울이라는 도시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게 커진 상태에서, 서울문화재단이라는 조직 혼자 모든 지역에 세심하게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지역현장의 파트너, 중간지원조직과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서울 내 지역별로 문화예술 관련 불균형이 있습니다. 인위적인 해소는 불가능하더라도 자치구나 동 단위에서 불균형 완화에 도움이 되는 활동이 있다면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울문화재단이 변화하려는 부분을 체감하는지, 자치구문화재단에서는 어떻게 느끼고 지역현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변화를 체감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과 파트너로 같이할 수 있는 사업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인데요. 사업 담당자들의 고민은 많아졌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지원사업에 맞춰 자치구문화재단에서는 반응하게 되는데, 기존의 사업과 엮어내는 데에는 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조정 과정에서 사업계획을 수정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서울문화재단에서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신규 사업의 경우에는 적절한 선을 잡고 사전 소통을 하고 시간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여러 사업이 새로 시작되는 올해도 서울문화재단의 사업 일정에 따라 5월에 사업이 확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각 지역에서는 이러한 일정을 기다리고 대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변화가 체감이 안 되고, 변화의 방향을 조금 이해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변화는 사업을 같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겠지요. 사실 사업이 자꾸 변하면 힘이 듭니다. 광역문화재단에서 정책 방향을 잡으면 기초문화재단에서 사업을 수행하는데요. 수행하는 사람들의 역량도 사업에 맞게 배분되어야 하는데, 사업이 바뀌면 실무자 입장에서는 혼동이 올 수 있습니다. 실무자나 조직을 감안한 변화이면 좋겠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이 전략과 미션을 조정했다면 구성원이 사업에 임하는 부분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치구문화재단마다 각각의 상황이나 이슈가 다를 텐데요. 자치구문화재단에서 하는 사업도 살아 있는 생물이라 하나의 틀로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옳은 방향으로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광진문화재단은 나루아트센터가 핵심 사업으로, 지역형 사업이 주는 아니었거든요. 2017년부터 지역문화사업을 하면서 담당자인 저는 그 중요성을 알지만 광진문화재단 조직 전반 차원에서는 서울문화재단의 사업이 또 하나 늘었다는 정도의 느낌인 것 같습니다. 자치구에 오는 돈이 늘어난다는 차원이 아닌 파트너십의 상을 잡아가려면 서울문화재단과 자치구문화재단 모두 시간이 더 걸리고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일부 변화를 체감합니다. 올해 지역문화진흥사업을 큰 틀에서 어떤 방향으로 갈지 논의하는 자리를 만든 것에서부터 자치구문화재단들이 서로 경쟁자 입장에 서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경쟁에 이겨서 따오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그룹과 오래 했던 그룹이 협력해서 갈 수 있는 구조로 열어두신 것 같습니다. 성북은 서울문화재단에 파트너로 인정해달라, 경쟁하게 하지 말고 지역문화사업의 경계도 없애달라고 계속 말씀드려왔거든요. 자치구문화재단이 목소리를 내는 자리를 만들고 논의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 것에서 변화의 시작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서울의 지역문화현장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인데요. 자치구문화재단의 사업이든, 지역의 예술가, 문화기획자, 시민문화, 지역 활동가, 조직이나 정책이든 주목하고 있는 현장의 변화를 얘기해주세요.
성북은 예술가들의 변화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서울괴담’이나 ‘공작소365’ 같은 팀은 전국구로 활동하는 팀이지만, 성북에 집중한 활동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공작소365’는 작년에 서울시민예술대학 사업으로 ‘거리예술학교’를 진행했는데요. 동네 할머니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작은 동네에서 이야기를 발굴하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연을 열었어요. 예술가들이 지역에 깊이 들어오고 그런 작업에 재미를 느끼고 관계를 맺고 지역에 안착해서 할 거리를 찾는 입장이 됩니다. 주민을 관객만이 아닌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보는 변화를 지역에서 체감할 수 있었고요. 예술가들이 변하니 참여하는 시민들도 생산하는 주체라는 인식의 변화가 생기고 스스로 모여서 커뮤니티와 미션을 만들어냅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지역문화정책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이 작업에 제한을 가하는 곳이 아니라, 더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느낄 수 있느냐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광진에서는 지난 2년간 지역 공간, 활동가 조사와 인터뷰를 많이 했죠.
광진은 예술가, 기획자, 시민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느낌이에요. 재단을 특별한 지원기관이 아니라 친구로 여긴다는 점도 특징인 것 같습니다. 재단에서 최근 2년간의 초대, 모임, 연결의 노력으로 이제는 연결만 해주어도 이후에는 알아서 잘 모이고요. 소상공인들도 골목에서 아는 예술가를 불러 파티를 여는 일이 많아지고 있어요. 재단에서 같이하자고 하면 ‘이미 우리가 만나고 있는데 재단도 끼워줄게’ 하는 느낌입니다. 재단이라고 해서 무언가 바라기보다는 같이하자는 느낌이 강해졌어요.
그런 변화가 언제부터 있었나요?
2017 년 말부터 2018년에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따로 지내다가 서로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모이고 보니 서로 신기해하면서 무언가 할 수 있겠다고 깨달은 것 같아요. 혼자 하기보다는 누구랑 같이했으면 좋겠다 싶을 때는 재단에 연락해서 소개해달라고 합니다.
성동도 비슷한데요. 문화민주주의와 지역분권 차원에서 개별 사업화되어 출발했던 지역문화사업도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적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생활문화는 동아리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네트워크나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지역을 기반으로 조금씩 공유되는 것 같습니다.
동작문화재단은 올해 1월 출범하여, 아직 사업을 해본 경험이 없는데요. ‘N개의 서울’은 표방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울문화재단의 미션과 비전을 찾아보니 ‘사회적 우정’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로 바라보면서 함께 일을 해나가는 것이 ‘사회적 우정’이고 서울문화재단은 그 방향대로 가려는 것 같아요. 지역에 문화재단이 생기고 나니 가장 먼저 대학에서 연락이 옵니다. 대학교도 지역사회와 결합하지 않으면 대형 공모사업에 선정이 안 되는 거예요. 그동안은 구심점이 없어서 소개를 받고 싶어도 물어볼 곳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다음으로 중요한 변화는 청년 예술인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구청의 공무원과는 얘기하기 힘들었다고 하는데,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사당동에는 연습실이 60개 이상 있는데 구청이나 그동안의 문화자원 조사에서 한 번도 주목해서 조사한 적이 없습니다. 발레, 재즈댄스, 밴드, 전통 예술, 클래식 등 일주일에 한 팀씩 만나면서 자원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동작에는 그동안 행정에서 포착된 적이 없을 뿐, 활동하는 단체가 꽤 많아서 올해는 구심점 역할만 하려고 합니다.
도봉은 지역 자체가 크게 변하고 있는 중입니다. 문화시설은 거의 없는 주거 밀집 지역이었는데, 최근에는 서울아레나라든지 문화도시사업처럼 형태는 협치에 기반해야 하지만, 관 주도적인 대규모 문화사업이 많아졌습니다. 대규모 재원이 풀렸음에도, 지역 내에서 기존 활동가들이나 중간지원조직에서 단순한 지원 창구가 아닌 새로운 방식의 문화환경으로 지역에 안착시키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도봉문화재단도 출범하면서 또 하나의 관, 재원 창구로 보는 경우가 많았을 거라 봅니다. 지역 입장에서는 (젊은 연령대의) 새로운 이방인인 도봉문화재단이 낯설고 관과는 다른 파트너로 바로 신뢰할 수는 없었습니다. 서로 탐색하는 기간을 거치며 3년차가 되었습니다. 대화를 하고 네트워크를 해보고 새로운 파트너 그룹을 만들기도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요, 특히 예술가들이 도봉이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활동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관계를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요. 재단이 지역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익어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익어가는 시간과 건강하게 싸우는 시간이 맞물려야 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엄청 많이 싸우거든요. ‘예술마을만들기’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40명이 모여서 8시간 동안 토론한 적도 있어요. 중간에 싸우고 울고, 재단의 입장을 묻기도 하고요. 다음 단계를 고민해보기도, 합의점을 찾기도 하고요. 건강한 갈등은 다음 단계를 만드는 힘이 생기게 합니다.
갈등을 푸는 것이 중요한 기술인 것 같아요. 도봉문화재단도 여러 면으로 변화 속에 있기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집단인 재단이 생기자 숨어 있던 청년집단이 나타나기도 하고요, 도봉에서의 예술 활동의 장르가 보다 다양해지는 흐름도 있고요. 또 재생, 청년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도봉문화재단의 성격 때문에 우선순위 설정의 고민까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네트워크 활용 등 예산 사용의 유연성이 있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역문화진흥사업을 통해 분산된 사업을 연결하는 등의 대처가 가능했습니다. 재단은 이제 3년이지만 공간, 시설은 10년 이상 된 경우도 있습니다. 공간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분들과의 관계를 잘 아우르는 구상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성북문화재단은 올해 지자체, 행정으로부터 보다 독립성을 갖출 수 있는 방향을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주민들과 파트너십을 만들고, 재단이 그 안에서 같이 활동하는 사람으로 머물려 하고, 또 ‘꿈의 오케스트라’ 등에 매달 140명이 후원 중인데 후원회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집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주민이 재단의 주인이고 재단은 공유지이다. 이 공유지를 잘 가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제 설정까지 연결되었으면 합니다.
서울문화재단은 자치구문화재단을 협력 파트너로 삼고 있는데요. 효율적인 정부 문화정책 전달 체계 외에 문화재단에 어떤 가능성과 장점이 있을까요? 자치구문화재단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지역현장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요?
행정의 효율성은 있지만 실제 문화예술 활동은 자치구의 경계와 무관한 경우가 많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서울은요. 또한 문화재단이 예술지원, 생활문화, 문화재생, 문화도시, 문화관광, 축제, 도서관·공연장 시설 위탁까지,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에 더 큰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방향성이 다를 수 있고요. 자치구마다 특성이 상이하니 서울문화재단에서 자치구문화재단의 특성과 역할을 한 번 짚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광역문화재단과 기초문화재단의 역할을 구분해야 합니다. 특히 서울의 기초문화재단은 생활권역이라는 관점을 더 중요하게 봐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교육이나 문화향유에 보다 비중을 두는 게 낫지 싶습니다. 각 자치구 모두 서울 안에 있기에, 광역-기초의 역할을 서로 다른 사업, 공간의 개념보다는 같은 지역을 공유하는 다른 기능 차원으로 접근하면 좋겠어요. 무작정 광역이 기초를 지원하고 평가하겠다기보다는, 기초에서는 이런 것을 하고, 광역에서는 저런 것을 하겠다는 파트너십 방향으로, 그 논의부터 함께하는 과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작년 팀 워크숍에서 처음 한 얘기가 성동문화재단 직원들은 재단이 왜 존재하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명확한 답은 찾지 못하고 있죠. 최근에 생긴 재단들과 달리 성동 등 오래된 재단들은 지역문화진흥법이 아닌 민법과 조례에 근거해 설립되었습니다. 구에서 출자한 기관이니 설립 근거에 명시된 목적사업을 수행하고 예산에 맞춰 공공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공모사업을 따와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사서 고생’이 아닌지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존 행정의 틀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유연한 문화예술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충돌도 발생합니다. 문화재단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확장되고 변화하고 있는데 쉽게 고칠 수 없는 법적 근거가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현장 실무자 입장에서는 서울문화재단의 변화를 최대한 따라가려고 하는데요. 이런 변화를 구청이나 자치구문화재단 조직 전반에서도 잘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톱니바퀴처럼 같이 변화가 이뤄지면 좋을 것 같아요.
구청이나 자치구문화재단, 현장에도 서울문화재단에서 신호를 보내고 방향을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어야죠. 앞으로 각각의 지역에서 자치구문화재단들이 역할을 잘 잡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재단이 행정의 틀에 갇히지 않는 힘을 가져야 해요. 저희는 ‘우리는 활동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자치구문화재단이 ‘나도 파트너고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지역에서 뛸 수 있는 이들과의 접점을 넓힐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계속하는 것 같아요. 저도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행정 직원인지, 공연장 직원인지, 활동가인지, 기획자인지, 지역주민인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고 가족들도 잘 몰라요. 현장에서 만나는 예술가들도 처음에는 의문스러워하다가 3개월 정도 만나보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계속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직원들이 디렉터인지, 큐레이터인지, 예술가인지 고민하는 것 같아요. 국내 문화재단 초창기에 선배들에게 배운 것은 예술가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크니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지금은 재단이 많이 생기면서 직원이 자신을 기획자, 매개자, 혹은 예술가 등 무엇으로 생각하는지에 따라 사업의 결과물이 다르게 나와서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재단마다 설립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역할에 대해 추가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서울문화재단은 자치구문화재단과의 협력관계, 파트너십을 이야기하는데요. 동반자와 사이좋게 손잡고 가면 좋겠지만, 서로 역할 구분을 분명히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치구문화재단에서는 못하는 것들이 분명 있는데요. LH공사에서 공기업 최초로 사회적 가치를 정량적으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는 문화적 가치에 대한 정량적 평가 지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의원, 구청장, 공무원, 파트너들이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수치니까요. 정성적 파악이 보편적으로 이해되기는 어렵잖아요. 정량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지표를 구청, 구의회 등에 보여주면서 광역문화재단에서 이렇게 가치평가를 해주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협력 파트너로서 서울문화재단의 또 다른 역할 아닐까요.
저희도 서울문화재단에 성과지표와 이에 대한 대중적 시각화 연구를 제안했습니다. 2014년부터 ‘예술마을만들기’를 하고 있는데 지표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우리 스스로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서울문화재단은 자치구문화재단이 어떤 역할을 하고 독립성을 가질 수 있는지 기준을 만들어서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자치구들에게 자치구 자체에서 할 수 없는 것을 문화재단이 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의 그러한 역할에 대해서도 이제 대화와 관심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지금 청년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사업을 많이 하잖아요. 이들을 계속 지원할 수는 없단 말이죠. 캐나다에는 예술인적자원센터가 있어서 시든 자치구든 그들이 원하는 프로젝트가 항상 올라와 있어요. 공무원들은 문화재단에 전화해서 자치구 행사에 예술가를 추천해달라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시스템화되면 좋겠습니다. 올해 새롭게 시작하는 지역형 청년예술단 사업(서울청년예술단×OO구)을 하면서 쌓인 데이터를 활용해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서울형’으로 먼저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문화재단에서 일하면서 최근에 발견한 희망의 씨앗이 있을까요?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공유하면서 희망적으로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지역 안에서는 커뮤니티 간의 관계 맺기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끼리의 관계가 깊어지고 네트워크를 시작하는 것이 변화의 씨앗이라는 생각입니다.
만날 씨만 심죠. 태반은 움도 못 트고 죽지만요. 지금 모든 사업이 변화의 씨앗인 것 같고요. 결국 사람 같아요. 같이 일하는 팀원, 직원, 기초문화재단이 16개가 되면서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 사람들이 희망이 됩니다. 서로 좋은 기운을 만들기 위해 만나는 것이 씨앗 아닐까요. 뿌린 씨가 잘 움트기 위해서도 노력해야겠습니다.
씨앗은 이미 많이 뿌려졌습니다. 문화재단은 이 씨앗 안에서 드러내고 관계 맺는 작업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문화재단 직원 만족도 조사를 보면 대부분 커뮤니케이션, 예산, 인력 부족 등 환경 탓은 하지만 문화재단에 근무한다는 자부심은 대단해요. 그 자부심을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게 스스로 희망의 씨앗을 찾아야 합니다. 문화재단의 가장 큰 자원은 예산이 아니고 일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입니다. 환경은 열악하지만 현재 유지할 수 있는 힘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 상황을 인식하고 변화하려는 것 자체가 희망의 씨앗 같아요. 광진구의 많은 분들이 나루아트센터는 알지만 광진문화재단은 잘 몰랐어요. 공연장 중심의 활동 외에 지역에 다가가는 재단의 노력, 재단 자체에서 팀 업무를 나누려는 시도도 큰 변화고요. 현장에서 재단의 역할도 조금 인식하고 변하는 것 자체도 희망의 씨앗입니다. 이 모든 역할을 하려면 역시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도 동의하고요. 각자가 하는 일, 사는 지역에 애정을 갖고 활동하는 것이 결국 지역문화를 활성화합니다. 뿌려진 씨앗이 잘 자라날 수 있게, 씨앗을 가꿔나가고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재단이 하고요. 재단이 힘들 때도 있고 자리 잡는 시기도 있지만 굳건하게 가치를 공유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변화의 씨앗일 것 같습니다.
- 정리 전민정_객원 편집위원
- 사진 조현우
※ 지역문화진흥사업 ‘N개의 서울’의 2018년 사업 정보는 사업 누리집(http://localtoseoul.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