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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4월호

청년예술가들이 말하는 생업으로서의 아티스트예술가의 ‘진짜 수입’ 그리고 ‘삶’

지난 2월 28일,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한 가수 이랑의 퍼포먼스가 화제를 모았다. “1월에 전체 수입이 42만 원이더라. 2월에는 감사하게 96만 원이었다. 어렵게 아티스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상금을 주면 감사하겠는데 상금이 없어서 이걸 팔아야 할 것 같다”며 자신의 트로피를 시상식 현장에서 경매에 부쳤다. 트로피를 현금 50만 원과 바꾼 그의 퍼포먼스를 통해 ‘배고픈 예술인의 삶’이 다시금 화두에 올랐다. 수상이나 다양한 활동이 반드시 수입으로 직결되지는 않는 아이러니한 구조에 놓인 예술인의 삶에 대해, 청년예술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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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최태섭_ 문화평론가
토론 |
김희천_ 시각예술작가, 안태운_ 시인, 이지혜_ 연극배우
일시 |
2017년 3월 11일 오전 10시
장소 |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로비

최태섭 저는 문화평론가라는 직함을 쓰고 있고, 글 쓰는 것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처음 썼던 책은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예요. ‘열정 노동’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다 감수하라”고 했던 새로운 노동 착취를 바라보려고 했어요. 지금 개선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문제제기는 계속 있었잖아요. 그런 문제의식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 자리가 생긴 건 이랑 씨의 퍼포먼스 때문인데요. 먼저 수상 소감을 어떻게 보셨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김희천 솔직히 다들 아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제가 되었다는 것에 놀랐어요.
이지혜 주변에서 말이 많잖아요. 퍼포먼스의 의도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사실 놀랐어요. 제가 이랑 씨 팬인데, 이랑 씨 정도의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가 실제 금액을 공개했잖아요. 생각보다 적게 버는 것 같아서 놀랐어요.
안태운 이랑 씨의 퍼포먼스를 뒤늦게 알아서 찾아봤는데요. 예술가의 생활이 어려운 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것을 표현한 방식이 재미있었습니다.
최태섭 제가 퍼포먼스를 보고 감명받은 이유 중 하나는, 최근 제 수입이랑 굉장히 비슷했어요. 한국에서는 자기가 얼마 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치명적인 정보처럼 생각하잖아요. 고용하는 사람들이 악용할 수 있는 정보라는 인식이 팽배해요. 결국 서로가 얼마나 버는지 모르고 사는데 공개적으로 ‘탁’하고 까준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일 많이 나온 반응은 ‘그렇게 배고프면 왜 음악을 하나, 때려치우고 돈 많이 버는 거 하지’인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음악의 가치가 트로피 가격 50만 원밖에 안 된다고 스스로 말한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거든요.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었나요?
이지혜 저는 주변이 다 연극인이기 때문에 ‘저 정도면 잘 버는 거 아닌가?’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있었어요.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배우들이 연극으로 버는 돈에 비해서는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50만 원에 팔아서 좋겠다’라는 반응이 씁쓸하지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안태운 보통 수입이 얼마나 되는데요?
이지혜 정말 천차만별이거든요. 못 받는 경우도 많고, 작업의 성격에 따라 달라요. 지금 하는 작업은 국립극단이라 돈을 그나마 제대로 받아서, 모두가 하고 싶어 하는 작업일지도 모르겠어요. 작년에 <권리장전2016-검열각하>라는,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연극으로 저항한 공연에 참여했는데요, 의미야 너무 좋고 취지에도 공감하지만 그런 성격의 공연은 아예 처음부터 인건비는 못 받겠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가는 거죠. 출연료는 보통 두 번에 나누어 줘서, 연습 중에 돈이 없어지는 상황이 오기도 해요. 수입이 들쑥날쑥해서 월별 수입을 이야기할 수조차 없어요.
안태운 그렇군요. 저는 ‘자기 음악의 가치가 겨우 50만 원이라고 말하는 꼴’이라며 비아냥거리는 반응을 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생활과 예술을 대립시키며, 생활을 버리고 예술을 택하는 삶을 높게 여기는, 이상하게 낭만화되고 신화화된 예술가 상에 빠져 있는 사람의 반응이라고 느꼈습니다. 제 또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먹고살기 어려운, 그야말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시궁창인 현실 속에 생활하고 있기도 하고요. 또 이미 자본주의에 익숙해 있으니 예술을 금전적으로 치환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없어서요. 오히려 인간이 예술을 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태섭 그나마 팔 수 있는 물건의 형태로 작품이 나오는 것이 시각예술인데요. ‘예술적 가치가 중요하지, 돈이 중요한가?’라는 이야기에 대해 시각예술 하는 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김희천 반반인 것 같아요. 우선 미술 시장이 그렇게 잘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팔릴 만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모호하기 때문에 예술적 가치, 금전적 가치를 저울질할 기회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최태섭 사실 가장 보장이 확실한 것이 공공기관이잖아요. 가끔 국가에서 하는 일인데도 돈을 안 주려고 하는 경우가 있어서 당황스러워요. 국가마저 주지 않으면 누가 우리에게 돈을 줄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저도 놀란 것이 이랑 씨가 음악 외에도 하는 일이 정말 많더라고요. 만화도 그리고, 영화도 찍고, 글도 쓰고. 모든 일을 다 해도 이렇다는 거잖아요. 예술가도 사람이고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에 너무 무심한 거 같아요. 생계를 유지하면서 활동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임금을 보장받아야 할까요?
김희천 생계를 보장받는다는 문제와는 별개로 생각하고 있어요. 미술에서는 공공기관에서 전시를 할 때 ‘아티스티 피’ 이야기를 먼저 안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아티스트 피를 바로 물어보거든요. 아티스트 피가 제가 하는 노동의 양에 충분할 리는 없겠지만 받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물어보면, 빙빙 돌리면서 이야기를 안 해줘요. 예산이 없으면 전시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돈은 없는데 전시는 열고 싶어 하니까 자꾸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전시 참여만으로 돈을 벌 수는 없으니까 큰 기대는 안 하고요. 차라리 작업이나 잘하고, 자아가 뭉개지지 않도록 어떻게 잘 버텨봐야지 하고 있죠.
이지혜 저도 금전적인 것을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면 자꾸 구획을 나누게 돼요. 돈은 못 벌지만 의미가 있고 예술적 성취를 기대하는 공연이 있고, 이런 제작자에게는 돈을 받을 수 있으니 돈을 좀 버는 공연,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안타깝고요. 그나마 돈을 받는 극장의 공연도 연습시간과 공연시간을 더하면 최저시급도 안돼요. 계약하는 날 ‘열심히 해야지’ 하다가도 출연료를 들으면 의욕이 확 떨어져요. 저도 노동자로서 돈을 받아야 먹고사는데요, 제 연기 활동에 대해 얼마만큼 가치를 매겨야 하는지는 생각조차 못하는 상황 같아요.
안태운 연극에서는 임금을 어떤 방식으로 산정하나요?
이지혜 작업마다 다르지만 보통 경력과 나이에 따라 전체 예산 규모에 맞춰서 줘요. 어르신들이 많으면 밑에 있는 배우들은 적게 받고요. 보통 상업 쪽으로 가야 공연회당으로 주고, 거의 그냥 통으로 계약해서 줍니다.
최태섭 시는 가난의 대명사와도 같은, 오랫동안 선입견이 있는 장르인데요. 등단도 하고 김수영문학상이라는 큰 상을 받아 시집도 내신 상태잖아요. 시를 써서 돈을 버는 일이 일상적으로 많지 않을 텐데, 예술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실 수 있나요?
안태운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이 시가 쓰인 지 20년은 지났는데요. 그런데 2017년인 지금도 시 한 편 원고료가 보통 3만 원에서 5만 원입니다. 물론 더 많이 주는 데도 있지만요. 아예 원고료를 주지 않는 문예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인이 원고료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죠.
최태섭 주로 어떤 일들을 하시나요?
안태운 제 또래를 보면 대학원에 다니거나 출판사에서 일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출판사에 다니는데, 다니기 시작한지는 얼마 안 됐어요. 그전에는 또 다른 직장을 다니기도 했고, 잡다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최태섭 저도 직장을 다니던 때가 있었거든요. 글에는 쓰기까지 필요한 예열 시간부터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했던 시간이 다 들어가 있잖아요. 직장 생활하면서 시를 쓰거나 창작 활동을 할 때의 고충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안태운 물론 일 안 하고 한가할 때 시에 더 집중할 수 있겠죠. 하지만 매일 쓰는 것도 아니니 일하면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안정이 되어야 무언가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도 하고요. 법정근로시간인 주 5일, 하루 8시간만 지켜진다면야 충분히 시 쓰기와 일을 병행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잘 안 되니까 문제겠지요.
최태섭 두 분은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하세요?
이지혜 아르바이트, 카페 서빙, 과외도 하고요.
김희천 저는 작년까지 서울문화재단에서 일을 했고요. 제 생활 패턴이 돈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라서, 1년간 번 돈 중 남은 거, 상금 받은 거, 작품 소장으로 받은 돈으로 버티고 있어요. 1년 정도 직장인으로 일을 해보니 저는 그나마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편이라 될 줄 알았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회사일 때문에 자아가 구겨지면 작업에 드러나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었는데요. 언젠가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직장을 또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예술의 가치가 공동체에 대해 직접 발언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작품을 통해서 미적인 실험이나 관점을 보여주는 것, 영감을 심어주는 것 자체가 예술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최태섭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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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임금과 기회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일이 많아요. 전반적으로 대가가 없어도 전시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국공립기관이라 해도 기준이 없거나, 대가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 대해 돈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 구는 태도가 있어요.”
김희천 시각예술작가

최태섭 저는 한 달에 조금씩 맞춰 쓰는 건 괜찮은데 갑자기 어디가 아파서 큰돈이 들어간다거나, 하다못해 컴퓨터에 이상이 생기면 글을 못 쓰니까 안 되잖아요. 그럴 때 당혹스러우면서 돈이 없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슬퍼졌던 일이 있거든요. 어떻게 이 생활고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시나요?
이지혜 평소에 문득문득 회의감이 들 때가 있어요. 저도 돈을 많이 못 버니까 되도록 안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는 편이에요. 옷을 안 사고, 안 사먹고, 그렇게 살고 있는데요. 삶의 질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도 좀 더 좋은 음식을 먹고, 좀 더 다양한 와인을 마셔보고 싶지만 마트에서 항상 제일 저렴한 물건을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욕구를 그냥 누르고 살아야 한다는 것에서 문득 비참함을 느껴요.
최태섭 이랑 씨의 퍼포먼스에 대해 ‘돈이 없으면 돈 많이 버는 일을 하지, 왜 굳이 예술 하겠다고 나서서 징징거리냐’라는 식의 댓글이 달렸는데요. 이 말을 만약 누군가가 본인에게 한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김희천 그 말이 저한테는 성립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진짜 돈이 없으면 돈 버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힘든 상황을 견디면서 한 작업이 좋을 수도 있지만, 힘든 상태의 저를 반영한 작업이 좋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돈 버는 일과 예술 중에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고요. 예술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의미있다기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좋은 작업이고 그 작업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동력이 있어야 하는 게 맞잖아요.
최태섭 그 댓글들이 의미하는 바는 예술 하는 사람들이 생산해내는 예술의 가치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이지혜 고민이 많은 지점 같아요. ‘예술은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밑거름이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정말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들거든요. 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극에 꽤 많이 참여했는데 이것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댓글들에 대해서는 이제 강해진 것 같아요. 이랑 씨가 제기했던 건 정당한 대가에 대한 이야기였고 사실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최태섭 사람들의 인심이 팍팍해져서 누가 조금만 지원받는다고 하면 ‘나도 힘든데’ 식의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 국가의 재원을 투입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영역과의 형평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는 사실 논쟁거리이긴 하거든요. 예술인복지법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근거가 되는 논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불쌍한 애들이니까 돈을 주자는 식의 시혜적인 형태의 복지 같은 느낌이거든요. 실질적으로 공통의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지원책이나 퍼포먼스에 대해서도 시비성 댓글이 나오고요.

“시를 생활처럼 쓰는 것과 대가를 받는 것은 별개죠. 제가 시 쓰는 걸 노동이라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시는 육체 혹은 정신노동의 산물이니까 그 대가는 필요하죠. 대가가 적더라도 말이죠.”
안태운 시인

김희천 이랑 씨가 그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한 것은 아니잖아요. 예술인복지법에 의문이 들면 왜 예술인만 주느냐는 질문을 하기보다 자기 영역의 부족한 복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해요. 이랑 씨는 자기 영역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 퍼포먼스를 한 것이죠. 댓글을 단 사람들은 퍼포먼스의 맥락은 모르고 그냥 자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안태운 국가는 공적인 사업에 자금을 투입하죠.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그냥 내버려두면 없어질 것 같은 영역에 말이에요. 그 영역에 예술도 포함되어 있는 거고요. 전 세계적으로, 또 오래전부터 국가는 예술에 대해서 지원을 했습니다. 효과가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아니면 즉각적이든 점진적이든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합의한 건데, 이를 물고 늘어지는 건 억지라고 생각해요.
이지혜 예술의 가치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는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거꾸로 예술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압박을 받는 느낌이 있어요. 나는 공적 지원금을 받은 작업에서 인건비를 받아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데 내가 이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건가 하는.
최태섭 사실 저는 예술의 가치가 공동체에 대해 직접 발언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작품을 통해서 미적인 실험이나 관점을 보여주는 것, 영감을 심어주는 것 자체가 예술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김희천 대중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관계자들까지 ‘너희가 좋아서 하는 거 아니냐’라는 태도로 접근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시집이 팔려서 그 인세로 생계를 유지하면 좋고, 대중들이 연극을 돈을 내고 보러 가면 물론 좋겠죠.
최태섭 그게 한국에서 문화예술을 다루는 가장 일반적인 태도거든요. 관에서도 공짜로 일해달라고 하는 것이 너무 빈번해요. 굉장히 악질적으로 본 것 중 하나가 재능기부를 정부에서 받으려고 하잖아요. 그건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부에서 하는 것은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고, 받은 사람이 기부를 하든지 하는 것이죠.
김희천 관계자들이 예술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예술가들이 모여서 이야기해야 해요. 문학은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원고료가 낮아도 먼저 이야기는 한다고 들었어요.
안태운 문예지마다 다른데요. 청탁서에 원고료를 기재하지 않는 데도 많아요.
김희천 예술가들은 임금과 기회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일이 많아요. 전반적으로 대가가 없어도 전시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국공립기관이라 해도 기준이 없거나, 대가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 대해 돈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 구는 태도가 있어요. 대중은커녕 관계자들까지 그래버리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죠. 이랑 씨가 공연을 많이 해도 돈을 이것밖에 못 번다는 이야기를 한 건 그런 취지였던 것 같아요.
최태섭 비문학 분야의 한 유명 잡지에서 급하게 원고 청탁이 들어온 적이 있어요. 쓸 수는 있다, 그런데 얼마냐고 했더니 표준 단가의 절반인 거예요. 하지만 유명 잡지에 글을 기고할 수 있는 기회니까 쉽게 거절하기도 어려웠죠. 그래서 고민하다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해서 실은 적이 있어요.
김희천 그 이야기를 예술가들이 먼저 꺼내게 만든다는 게 정말 치사한 것 같아요. 그러면 ‘이게 너한테 기회 아니냐’라는 태도로 나와요. 저는 운이 좋아서인지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곳과는 전시를 안 했어요.
이지혜 연극 분야에서는 청년연극인들을 끌어주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발전시켜서 예술인으로 만든다는 관점이 팽배해요. 공공기관은 우리가 당신들을 가르쳐주면서 공연 기회까지 준다는 태도예요. 왜 많은 지원제도들이 청년예술가들을 계속 교육시키려드는지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어요.
안태운 저도 그런 걸 느꼈어요. 작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슈퍼스타K>와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포맷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면접을 보고, 멘토링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젊은 예술가들을 개개의 독립적인 예술가로 보는 게 아니라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김희천 공공기관에서는 멘토링과 인큐베이팅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문제는 ‘직업인으로 여기느냐’인 것 같아요. 직업으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보다는 ‘결국 직업인이긴 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돼요. 제 스스로 이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지점 같아요. 기본적인 인식 자체가 직업인으로 봐주는 건지 의문이 가요. 특히 공공기관이 도리어 더 안 그런 경우가 많고요.
최태섭 결국 청년 문제와 열정 노동 문제가 같이 얽혀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 이랑 씨가 ‘돈, 명예, 재미’ 중에 2개 이상 없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했는데요. 저는 이 말이 정말 좋았거든요. 사실 이 명예를 가지고 장난을 많이 치잖아요. 관계자들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예술가의 명예는 무엇일까요?
김희천 사실 명예와 재미만 있어도 웬만하면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안 주는 거예요. 저도 안 하고 모두가 안 해야 그런 것이 없어지는데 할 사람이 분명 있거든요. 적어도 나라도 돈이 없다면 안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안태운 저는 시 쓰는 데에 의무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일정 기간 시를 못 쓰면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해서 억지로라도 쓰는 편이에요. 그래야 마음이 놓여요. 그래서 시 쓰는 게 그냥 생활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고요. 그래서 명예나 재미, 돈에 대해서 별 고민을 안 해요.
김희천 작품을 만드는 것과 발표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원고 청탁이 있을 때 이미 써놓은 시가 있으면 원고료가 없다고 해도 시를 발표하세요?
안태운 원고료가 없다면 안 하겠죠. 시를 생활처럼 쓰는 것과 대가를 받는 것은 별개죠. 제가 시 쓰는 걸 노동이라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시는 육체 혹은 정신노동의 산물이니까 그 대가는 필요하죠. 대가가 적더라도 말이죠.

“연극 분야에서는 청년연극인들을 끌어주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발전시켜서 예술인으로 만든다는 관점이 팽배해요. 왜 많은 지원제도들이 청년예술가들을 계속 교육시키려드는지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지혜 연극배우

최태섭 연극은 대가 없는 작업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하셨잖아요. 문제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나요?
이지혜 연극은 워낙 개인 작업이 아니라 공동 작업이잖아요. 특히 저는 배우이기 때문에 캐스팅을 일방적으로 당하는 위치에 있어요. 연출은 저한테 권력자예요. 잘 보여야 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연극계 어른들과 작업을 많이 하는데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예요. 젊은 연극인 중에 스스럼없이 돈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선생님 세대들은 어떻게 돈 이야기를 먼저 하느냐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고요. 관계중심의 작업이고 그 관계를 잘 유지해야 좋은 기회를 얻는다고 생각해요. 분위기를 해치는 이야기는 작업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문제제기가 안 돼요.
최태섭 공통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는 오히려 파편화되고 개인의 문제에는 관계가 끼어들어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많은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해주시면 어떨까요?
안태운 저는 문학 쪽에 있으니까 다른 영역의 상황은 잘 모르는데요. 이렇게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고, 또 각 장르마다 특수한 게 있어서 처한 상황도 조금씩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지혜 오늘 ‘가난 경연 대회’를 펼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요. 다른 장르의 이야기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요. 기성세대 예술인들이 청년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주고, 그 전에 우리끼리 이야기를 많이 해서 서로 참고하고 연대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김희천 어려운 영역 같아요. 한 해에 전시를 끝없이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따져보면 전시도 돈을 많이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강요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천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인식이 조금 개선되면 좋겠고, 관계자분들이 신경 좀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최태섭 작업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문제들이 있는 것 같아요. 개별 장르에 갇혀서 싸우면 결국 전부 질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 장르에서는 젊고 힘 없는 소수자들이잖아요. 공통의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고요. 오늘 서로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으니, 이 자리가 시발점이 되면 좋겠습니다.

정리 전민정_ 객원 편집위원
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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