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서울, 클래식, 그다음은?
여름이 클래식 음악을 듣기에 좋은 계절이었던가? 계절의 힘이 모든 걸 압도해서 일상을 멈추어야 하는 한여름. 소리가 만드는 정교한 환상을 떠올려야 하는 음악보다는, 내 손의 끈적한 감각이 무엇보다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 여름의 한복판. 내가 이해하기에 이 계절은 음악을 만나기 좋은 때라기보다는… 확실한 비수기였다. 클래식이든 현대음악이든 유럽 전통에 기반한 음악을 들으러 유럽의 대도시들을 찾았지만 바캉스 시즌이라 텅 빈 극장만
구경하고 돌아온 날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 여름엔 음악가도 관객도, 콘서트홀도 쉰다. 정규 시즌은 가을부터. 그것이 내가 그간 거듭된 실패 끝에 배운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휴양지에서 마가리타 한 잔 마시며 쉬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음악가들이 언젠가부터 여름의 서울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바캉스 시즌이 너무 긴 걸까? 유럽에서 나고 자라 유럽에서 활동하는 걸출한
음악가들의 이름, 세계 각지에서 맹활약하느라 서울에서 보기 어려운 한국 음악가들의 이름이 여러 포스터에 등장했다. 세종솔로이스츠의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에, 롯데콘서트홀의 클래식 레볼루션에, 고잉홈프로젝트에.
강원도에서 열리지만, 종종 서울에도 오는 평창대관령음악제에…. 페스티벌을 전부 쫓아다니다보면 매일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7월 한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을 여는 더하우스콘서트의 ‘줄라이페스티벌’도 물론
빼놓을 수 없었다.
처음엔 다들 더울 때 페스티벌을 여네,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가, 어쩌면 서울에 조금 특별한 여름 시즌이 생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고잉홈프로젝트’의 맥락을 살피면서였다. 그들의 소개문에는 “집을 떠난
이들이 음악이라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라는 문구가 있다. 그제야 유럽 음악계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잠시 집에 돌아올 수 있는 시기가 여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리하여 스멀스멀 시작된 서울의 음악 성수기(?)에는 각자의 성격을 지닌 페스티벌들이 다양하게도 공존하게 됐다. 고잉홈프로젝트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전 세계에 흩어진 한국 출신 음악가들과 한국을 제2의 집으로 삼은
음악가들을 초대해 고전 레퍼토리를 지휘자 없이 연주하거나, 서양음악사에서 간과된 음악가들의 작품을 꺼내 오는 등 과감한 도전을 선보여왔다. 올해는 라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여름과 겨울에 걸쳐, 마찬가지로 지휘자
없이 라벨의 관현악곡 전곡을 연주한다.
한 작곡가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더하우스콘서트의 줄라이페스티벌에서 올해 초점을 맞춘 건 스트라빈스키와 20세기 러시아 작곡가들. 스트라빈스키 ‘병사의 이야기’로 시작해 ‘봄의 제전’으로 마무리될 이 축제에는
7월을 스트라빈스키·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예프 등 다양한 러시아 작품들로 채운다.
ⓒGoing Home Project
그리스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예술감독으로 나선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의 주제는 ‘스펙트럼’인데, 프로그램은 묘하게도 바흐와 쇼스타코비치라는 두 작곡가의 작품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클래식 음악계가
상정하는 시대의 시작점과 끝점을 되짚는 듯한 이번 페스티벌이 정말로 추구하는 것은, 둘 사이를 횡단하는 와중에 우리의 뇌리에 떠오르게 될 어떤 상상의 스펙트럼인 것 같다. 세종솔로이스츠의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은
뉴욕이라는 입체적인 도시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음악가를 한국으로 데려온다. 클래식의 고전들,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잡은 곡들과 동시대 창작자의 곡들을 언제나 함께 소개해온 만큼 이번 페스티벌에서도 작곡가 아브너 도만,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야기와 맞물리는 김택수의 작품이 연주된다. 이 외에도 T.S. 엘리엇과 베토벤의 음악을 만나게 하기도 하는 등 이번 ‘힉엣눙크!’는 어떤 의미에서든 계속해서 서로 다른 ‘둘’의 만남을
꾸린다.
어느 한쪽에서는 집요하게 작곡가를 탐구하고, 어느 한쪽에서는 두 작곡가의 탐구로부터 음악사를 다시 상상하게 만드는 기획을, 다른 한쪽에서는 전통과 현대, 문학과 음악 등 서로 다른 두 축을 한자리에 모아본다. 모두
타협하지 않는 양질의 기획이고, 구심점도 또렷하다. 비수기의 틈새에 반짝 열리는 축제라기엔, 바캉스 시즌을 잠깐 채워주는 가벼운 축제라기엔, 대대적이고 본격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시즌이 좀 더
중요해지면 좋겠다고 기대하게 된다. 여름에 연주자들이 다 서울에 되돌아오고, 그들이 여기서 축제를 연다면, 이왕이면 반드시 서울이어야만 하는 공연이 열리면 좋겠다고.
관객을 봐도, 연주자를 봐도, 내한하는 음악단체를 봐도 이제는 유럽 음악 전통 중 ‘클래식’의 미래는 아시아에 있는 것 같다고 친구들과 종종 떠들곤 한다. 우리 이제 변방 아니고 조만간 1세계가 될 것 같은데, 라고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여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계의 주요 플레이어가 됐고 어디에서나 맹활약하는 덕이다. 한편 서울이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흥미로운 곳이 됐나? 글쎄, 잘 모르겠다. 언젠가 한
선배 연구자는 정말로 이곳에서 이 음악이 깊게 향유된다는 걸 증명하는 건 한국어로 된 뛰어난 음악극의 탄생일 거라고 말했다. 넓은 의미에서 동의한다. 클래식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관점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든 기획이든, 로컬에 대한 이해가 깊게 깃든 어떤 행위들이 모여야 한다고 나 역시 믿기 때문이다.
이 멋진 축제를 즐기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겠지만 거기서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건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무슨 일이 펼쳐질지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 축제가 클래식계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까?
서울에서만 가능한 음악적 상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세종문화회관의 ‘싱크넥스트’와 국립극장의 ‘여우락’이 선보이는 기획들, ‘지금’만이 아니라 ‘여기’까지 생각하는 그런 기획들은 이 도시의 음악적 상상력이 단정한
배움과 깊은 탐구를 넘어 창작과 충돌로 향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나는 거기서,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어떤 자신감을 느낀다. 그런 돌파력 있는 축제를 클래식 음악계도 시도해볼 수 있을까? 손끝을 굴리며
아직 오지 않은 어떤 페스티벌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다 같이 서울에 모여 있는 이 시기에 떠올릴 수 있는 어떤 폭발적인 상상이, 이곳을 새로운 중심으로 만들 수 있는 열쇠일 거라 생각하며.
글 신예슬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