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말들
― 어칠비칠과
물덤벙술덤벙
어떤 날에는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출근할
필요가 없는데도 몸이 기억하듯 절로 눈이
떠진다. 아침 일찍 소화해야 할 일정도
없는데 괜히 조바심이 난다. 머릿속으로
시시각각 펼쳐지는 동선에 얼른 벽을
세워야 한다. 5분만 더 자고 싶다고
떼쓰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부지런함을
관장하는 유전자가 몸속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하루의 움직임을 시작한다. 몸을
일으키고 침대에 걸터앉아 기지개를 켠다.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신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안과 양치질을 하고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연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봄바람이 두 뺨을 적시듯
파고드는 아침이다. 아침은 마침 움직일
시간이라는 듯이.
내가 옴짝달싹하지 않고 있어도 사방에
움직임이 있다. 자세나 자리가 바뀌지
않아도 생각과 느낌은 분초 단위로 달라질
수 있다. 빛 속에서 활짝, 때때로 어둠을
헤치고 가까스로 피어나는 희망은 보이지
않아도 가장 근사한 움직임이다. 움직이는
일은 기본적으로 변화하는 일이다.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또 거기로 이동하는 일이다.
다시 여기로 돌아올 적에도 움직임이
필요하다. 가만있어도 생각이 땅속 깊이,
바다 끝까지, 우주 한복판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치지 않으려는 움직임의 속성
덕분이다. 움직임에는 관성이 있다. 멈추고
나서야 쉬지 않고 움직였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기도 한다. 흔히 우리는 시간을
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시간에 장악당하기 일쑤다.
움직임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속도와
기세, 리듬이 다 다르다. 전속력의 빠름이
있고 쫓기듯 죽자사자 뛸 때의 빠름이
있다. 등 떠밀려 억지로 만들어진 기운이
있고, 신난 나머지 콧노래까지 동반하는
기운이 있다. 리듬은 또 어떤가.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움직임은 안정적이되
어딘가 단조롭다. 새로운 상황이 들어설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 리듬이 깨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두렵지만, 이 안온함이
언제까지고 계속된다고 생각하니 하품이
날 것만 같다. 졸졸 흐르는 시내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다. 일정한
리듬에 또다시 변화가 깃들기를 바라면서
평소에 하던 일을 조금 다르게 해 본다.
이렇게 걷다가 저렇게 걸어 보고, 한결같이
이 모양으로 묶던 것을 저 모양으로 비틀어
매어 본다.
움직임을 가리키는 말들은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동하게 만든다. ‘동動하다’라는
단어에 이미 움직임이 담겨 있는 것처럼,
마음이, 기운이, 병이 동하는 일은
삶을 다른 국면으로 이끈다. 마음이
동하면 원하는 대상을 얻기까지 시종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그(것)가 없으면
삶이 뭉개지거나 급기야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때때로 장난기가 동해서
서슴없이 짓궂은 일을 벌이기도 한다.
동하는 것은 선한 마음뿐만이 아니다.
심술도 동하고 욕심도 동한다. 호기심이
동해서 낯선 곳에 발 들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과욕으로 부풀면 삶의 바탕을
뒤흔들기도 한다. 한편, 평소보다 무리하면
나았던 지병이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한번 동한 병은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들이닥친다. 동하는 사람에게
바람 잘 날은 없다.
‘걷다’는 언뜻 천천히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앞을 향하여 힘차게 걷다”를
뜻하는 ‘내걷다’는 절로 ‘성큼성큼’이라는
부사를 떠올리게 한다. 내걷는 사람은
자신만만한 사람이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러 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한편 ‘걷다’ 대신 종종
쓰이는 ‘거닐다’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움을
담고 있는 단어다. “가까운 거리를
이리저리 한가로이 걷다”라는 뜻을 품고
있는 이 단어는 산책자에 맞춤한 단어처럼
느껴진다. ‘달리다’와 ‘달음박질하다’,
‘뛰다’와 ‘뜀박질하다’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속력이 붙는다. 달음박질과
뜀박질에 다급함이 달라붙는 것은
물론이다. 옷소매를 부르걷고 돌진하는
세찬 기세는 덤이다. 다급함이 지나치면
달음박질과 뜀박질이 곤두박질로
마무리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어떤 날에는 들뜸에서 출발한다. 어디
갈 데가 있거나 기분 좋은 만남이 예정되어
있을 때 그렇다. ‘어디 갈 데’가 마치
‘운명적인 그곳’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심신이 같이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가만가만’ 걸어 나와도 ‘살금살금’
다가가도 표정에서부터 움직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꼬리 흔들듯
‘살랑살랑’ 가볍게 걷다가 자세를 바꾸어
‘팔랑팔랑’ 재바르게 이동하기도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길 위를 ‘절벅절벅’ 물소리를
내며 걸어야 하고, 눈이 오는 날이면 눈길
위를 ‘뽀득뽀득’ 야무지게 걸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움직이는 이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은 이미 기쁜 날이자 끝내
기쁠 날이기 때문이다.
상념에 깊게 잠겨 ‘어기적어기적’ 걷다가는
애먼 곳에 접어들지도 모른다. 키가 큰
사람의 걸음은 ‘어치렁어치렁’처럼 보일
것이다. 기분 좋게 취한 사람은 ‘어칠비칠’
걷기도 할 텐데, 이리 기우뚱 저리 갸우뚱
위태위태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걸
보면 신통할 정도다. 어칠비칠은 “쓰러질
듯이 자꾸 비틀거리는 모양”을 뜻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틀거리다’가 아니라
‘자꾸’다.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끊임없이 나아가는 의지다. 그러다가
늦었다 싶으면 ‘허둥지둥’과 ‘허겁지겁’과
‘헐레벌떡’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달음박질과 뜀박질이 요긴할 것이다.
도착하기 전까지 움직임은 끝나지 않는다.
걷다, 달리다, 뛰다로도 부족할 때는
‘날뛰다’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날뛰다는
“날 듯이 껑충껑충 뛰다”, “함부로
덤비거나 거칠게 행동하다”, “어떤 일에
골몰하여 몹시 바쁘게 돌아다니다” 등의
뜻을 갖는데, 개중 어떤 뜻으로 쓰여도
긴박한 상황임이 잘 드러난다. 흔히
날뛰다와 함께 쓰이는 ‘길길이’ 또한 펄펄
뛴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뛰고 또
뛰면 흡사 나는 듯 보일 수 있음을 짐작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물덤벙술덤벙’
나서서는 안 된다. 물덤벙술덤벙은
“아무 일에나 대중없이 날뛰는 모양”을
가리키는데, 이는 물 위와 술 위를 덤벙덤벙
뛰어다니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물불 가리지 않고’보다 한 수 위가 ‘물술
가리지 않고’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 일이
아니라 ‘이 일’에 날뛸 때에야 움직임은
고유의 의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몸을 움직이고, 몸의 움직임이
마침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때 움직이는
말들은 비로소 멈출 수 있다. 걷던 발과
뛰던 마음은 그제야 진정된다.
어쩌면 우리가 시종 움직이고자 하는
이유는 잘 멈추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잠들기 직전 찾아오는 안락함처럼,
잘 멈추고 차분히 숨을 고르고 제대로
쉬기 위해 오늘도 이토록 빨빨거리며
움직인 것이다.
글 오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