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남산 케이블카.
요금 왕복 40원으로 서울을 한눈에
개통 당시 요금은 편도 25원, 왕복 40원이었습니다. 초등학생과 단체손님은 한 번에 20원을 받았고요. 서울시는 그해 6월에 요금을 20원으로 내리라고 지시했습니다. 지금은 편도 6000원(소인 3500원), 왕복 8500원(소인 5500원)이니 당시와의 물가 차이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평일 하루 평균 2700여 명이 이 케이블카를 타고 N서울타워로 향한다고 합니다. 주말과 휴일에는 평균 이용객이 5600여 명으로 늘어나고요. 내국인 이용객이 더 많지만 외국인 관광객의 서울 관광 필수 코스가 돼 외국 손님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사진>은 1970년대 중반 남산 케이블카의 모습입니다. 승객을 태우는 기구를 캐빈이라고 하는데 사진 속 캐빈은 개장 후 두 번째 교체된 것입니다. 당시에는 탑승 인원이 31명이었고, 편도 소요시간이 4분이었지만 지금은 48명을 3분 만에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케이블카 뒤로 서울 도심 전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전에는 평면적으로만 시행돼오던 서울 시내 도시계획이 1973년 건물을 중심으로 한 ‘입체형’으로 바뀌어 고층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네요. 물론 지금보다는 적지만요. 케이블카 뒤로 내려다보이는 회현동 일대에 단독주택들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습니다. 그 사이로 작은 골목들이 이어져 있고요. 지금은 정겨운 골목이 많이 사라져 아쉽습니다.
도시, 발전, 새로움의 상징 케이블카… 위생 문제 지적도
1963년 한 신문에 광주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쓴 ‘서울구경’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남산 케이블카도 언급된 이 글을 보면 당시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서울이란 넓은 곳이다. 시골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다. (중략) 전차, 버스, 택시 등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로 흘러가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이 길거리를 오가고 있다. 길도 굉장히 넓다. (중략) 길가에는 3층 이상의 높은 건물들이 우뚝우뚝 마치 바위처럼 솟아 있다. 네거리마다 가시오, 서시오라고 쓰인 푯말이 붙어 있어서 나 같은 시골뜨기도 어리둥절하지 않고 길을 건널 수 있었다. 광주에도 하루빨리 그런 시설이 준비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창경원, 덕수궁, 남산 케이블카, 뚝섬 등 놀이터가 많아서 어디를 가든지 하루 종일 심심치 않게 즐길 수가 있었다. (중략)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시없는 좋은 곳이지만 먹고살기가 풍부하지 못한 어린이들에게는 오히려 원수같이 미운 곳이기도 할 것이다.’
1964년에는 케이블카에서 첫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이 결혼식에서 신랑은 대지에서 흙을 파며 굳세게 살자는 의미로 신부에게 호미를 예물로 줬고, 신부도 신랑에게 삽을 줬다고 합니다. 신랑이 홍보회사에 다녔다고 하는데 정말 기발한 발상입니다.
하지만 개장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위생환경 문제로 언론의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1966년 한 신문에는 ‘남산 케이블카 시발점 주변은 변소와 오물수거소 등이 없어서 인분과 오물이 도처에 산재돼 악취는 물론 모기, 파리 등 곤충들이 번식해 인근 주민들의 위생을 막심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신문은 “김 시장(제14대 김현옥 서울시장)이 새로 부임(1966년 3월)한 이래 도처에 지하도와 육교를 만들고 하수도 공사를 하느라 거리 곳곳을 파헤치고 있다”며 “전시효과를 거둘 수 있는 건설 계획만 세운 것을 크게 반성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요즘은 정류소에 화장실 시설이 잘돼 있고, 환경도 깨끗하니 마음 놓고 가도 됩니다.
시민의 휴식처 남산, 얄궂은 풍경도 있어
케이블카 정류소에서 남산스포츠센터를 잇는 1.5km 길이의 남산순환도로는 1968년 계획을 수립해 1970년에 개통됐습니다. 당시 시민들은 녹지대 속으로 남산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이 도로를 좋아해 개통 초기에 많은 차량이 몰렸다고 합니다.
남산순환도로가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를 끌며 케이블카 손님이 뚝 끊겼다고 합니다. 1970년에는 케이블카 편도 요금이 90원으로 올랐고, 왕복 요금은 130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산 팔각정 상인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는 손님을 ‘100원 손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오는 손님은 ‘1000원 손님’으로 부르며 반겼다고 합니다.
그때 남산에 불량배가 많았나 봅니다. 그해에 남산공원관리소에서 붙잡아 경찰에 넘긴 불량배가 2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으슥한 곳에서 은밀한 데이트를 즐기는 아베크족의 돈을 빼앗고, 폭행도 일삼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남산은 참 좋아졌습니다. 걷기 좋은 쾌적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마주치는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니 말입니다.
- 사진 김천길
-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 글 김구철
-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