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 익선동의 탄생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약 100년 전 이 일대가 시류에 따라 일본화할 운명을 뒤바꿔놓은 것은 부동산개발업자 정세권(鄭世權)의 결단 덕분이었다. 북촌이나 서촌과는 달리 이곳은 서민을 위한 한옥주택단지로 기획되었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수도와 전기를 한옥에 들이는 시도로 주거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또 기존 한옥의 불편한 구조와 동선을 개선하고 도로와 통행까지 고려한 ‘개량형 한옥단지’를 도입했다. 그가 ‘건양회’와 ‘조선물산 장려회’ 등의 활동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100여 년 전의 개발에는 민족의 얼을 지키고 독립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그의 진심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날것의 익선동
처음 이 거리를 지나던 초겨울의 단상이 지금도 선명하다. 소음
가득한 종로 빌딩 숲의 바로 옆 켠에서 우연히 마주한 낯선 곳. 쓸쓸해 보이는 골목 풍경, 빛을 잃어가는 가로등, 낡고 오래된 기와와 대문,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담벼락, 유난히 무심해 보이는
전신주와 거기에 얽혀 있는 전선까지 싸늘한 겨울바람과 함께 기억에 남았다. 시간이 멈춰 있는 듯, 간신히 힘을 내 숨을 쉬는 듯한 풍경이었다.
다시 한 번 높은 곳에 올라 이 한옥 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북동쪽으로는 비변사 옛터가, 북서쪽으로는 충훈부가, 남쪽으로는 육의전이 있던, 4대문의 중심부인 이곳은 왜 이런 모습으로 남겨졌을까? 이와 관련해 지역 어르신과 상인 분들로부터
흥미진진한 야설을 접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 후궁들이 거주하던 곳이라는 이야기, 병자들이 부락을 이루어 살던 곳이었다는
설, 근처에 근대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정과 방석집이 있었다는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이 싼 방을 얻기 위해 찾아온 곳이었다는 이야기 등과 함께 최근 10년 가까이 재개발 계획이 세워졌다가 무산되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것을 기준으로 할 때 (혹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이곳에 진한
마이너리티가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한(恨)’과 같은 맥락은 아닐지라도, 그 지류에서 파생되는 정서가 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100년 가까운 시간의 세파를 견디며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이곳은 현대인의 시각에서, 또 무분별한 도시 재개발에 대한 염증 섞인 자성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는 이
시점에서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답고 가치 있고 매력적인 거리다.
이곳은 수많은 이야기를 안은 채로, 개발의 난도질을 피해 가장
서울다운 모습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것이다.
이 구역에 수혈되는 젊은 피
이런 가치에 공감하는 두 사람이 익선동 거리로 들어왔다. 도시공간기획자인 박한아와 설치미술작가 박지현. 2014년 겨울, 그들은 익선동 166번지 골목에서 또 한 차례 골목을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스무 평 남짓한 ‘ㄱ’자 한옥을 얻어 문화협업공간인 동시에 차를 즐길 수 있는 카페를 열었다. 하루 매출 5만 원을 못 넘겨 임차료 걱정에 힘든 나날을 보냈으나, 생기를 잃어가는 이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마음으로 견뎠고 이들의 이야기는 점차 골목 밖으로 알려졌다. 찾아오는 손님의 격려에 힘입어 둘은
같은 골목 안에 다른 형태의 가게를 내게 되었다. 거리의 매력을
훼손하고 싶지 않아서 담을 허물지 않았고 튼튼한 대들보는 살려뒀으며 기존에 있던 벽 타일을 그대로 뒀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골목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 보금자리인 주민에 대한 배려나 원래의 상권을 지켜오던 어르신에 대한 공경은 이들이 이곳에서 더 긍정적으로 융화될 수 있던 비결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 공간에서 배운 점이 많다.
자본주의 개발 논리에 의해, 투자 가치와 공간의 효율적 배치에만 초점이 맞춰진 채로 자행되어온 도시 개발에 염증을 느낀 것이다. 낡은 것에서 신선함을 느끼고,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철학적 깊이를 이 공간을 통해 습득했다.
우리가 소망하는 익선동의 내일
최근 많은 매체가 인터뷰를 요청하며 ‘미래의 익선동’은 어떤 모습일지 질문해온다. 우리가 감히 대답에 힘을 줄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첫째, 불과 1년 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과 형태로 변했다는 점 때문이고 둘째, 우리는 원래 생각대로 ‘발전’보다는 ‘보존’에 힘을 싣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이 동네의 일을 다른 사회 현상에 빗대 우려하는 분이
많은 것으로 안다. 우리는 여전히 이곳이 변화의 주기가 빠른 상업적 공간 아닌, 문화가 숨 쉬는 공간으로서 더 길고 오래 심호흡하는 곳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런 진심과 재능을 지닌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공간을 기획하고 결과물을 창출해내며, 나아가
지역 주민과 상생해 도시의 기능을 되살리는, 일련의 크고 작은
의미를 ‘문화’라고 일컫는 것은 무리일까?
“620년이 넘는 수도 서울에 60년 된 소나무 한 그루 찾기가 힘들다”는 지인의 한탄처럼, 이 도시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너무 쉽게 잃어가고 있다. 도시 개발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이해가
필요한 시기에, 서울에 남은 최고(最古)의 한옥마을을 이루는 한
구성원으로서,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이 골목을 보존하겠다는 마음도 깊이 새긴다. 100여 년 전 일본식 건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지금의 모습을 만든 이가 그러했듯이.
- 글 이재성
- 익선다다 팀원. 익선동과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아 위에 소개한 두 사람을 도와 참여하게 되었다.
- 그림 M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