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 <300/30> <이호선> 서울, 설움, 어쩌면 소울
집밥처럼 정겨운, 서울살이를 그린 노래들
‘서울 사람들은 나를 부산 사람이라고 한다. 부산 사람들은 나를
서울 사람이라고 부른다.’
인터넷의 어느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본 글이다. 서울에서
산 지 수년이 되었지만 ‘서울 사람’이라는 말은 여전히 어색하다.
태어나서 10대까지 경상남도에서 살았고, 20대가 되어서 서울에 왔다. 하지만 여전히 사투리가 남아 있고 서울의 지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역시 이방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주로
명절이다. 매일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직업의 특성상 본가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취방에 홀로 있는 건 조금은 서러운 일이었다. 이때만큼은 ‘설움’이 많은 곳이라 ‘서울’인가 보다 하고 툴툴거리기도 해본다. 따뜻한 집밥은 아니지만 이럴 때 위로가 되는 것은 노래였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서울 사람>이라는 곡은 구수한 베이스 기타와 흥겨운 장단에도 불구하고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울컥하고 이방인의 여린 속내를 건드려버린다.
그 좋은 데서 뭐 하러 올라왔어? / 그땐 뭐 돈 좀 벌러 온 거지 / 그래서 돈은 좀 버셨어? /
어떻게 된 게 벌어도 벌어도 모잘라 서울 사는 노총각의 고향은 경주 / 서울 사는 대학생의 고향은 대전 /
나이 차고 너도 나도 올라오는 통에 / 그 유명한 서울 맛 좀 보러 왔는데 / 장가도 못 가, 취직도 안 돼, 재미도 못 봐,
내 집에도 못 가 서울 와서 꿈은 이뤘소? / 꿈은커녕 죄만 짓고 사는 것 같아 다 잊고 고향으로 가는 게 어떤가 /
아쉬움 없이 내려가야 되는데
-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서울 사람> 중에서
조웅과 임병학의 능청스러운 메김 소리와 받는 소리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는 이제 정말 ‘서울 사람’이 다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꿈을 찾아 고향을 버리고 올라와 이제 더 이상은 어디론가 갈 곳도 없는 서울 사람 말이다.
이 노래 외에도 서울살이에 대한 노래가 꽤 많다. 아마도 서울에 사는 사람도 많고 얽힌 이야기도 많기 때문일 테다. 내가 처음 서울에 와서 정착한 곳은 구로디지털단지역 부근이었다. 지하방부터 옥탑방까지 인터넷 카페를 뒤져가며 조금이라도 싸고
괜찮은 방을 구하기 위해 부단히 돌아다녔다.
삼백에 삼십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 동네 옥상 위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 이것은 연탄창고 아닌가.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만 같아요 / 평양냉면 먹고 싶네
삼백에 삼십으로 녹번동에 가보니 / 동네 지하실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
이것은 방공호가 아닌가. 핵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할 것 같아요 / 평양냉면 먹고 싶네
-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의 <300/30> 중에서
제목부터 ‘300(보증금)에 30(월세)’인 이 노래는 자취방을 구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다. 어쩌면 요즘 방세는 저렇게 싸지 않다고 손사래를 칠지도 모른다. 서울은 복잡하고 사람도 많지만 집의 형태도 다양했다. 손을 뻗으면 옆집 창문에 손이 닿을 듯한 집, 사람들의 다리만 보이는 해가 짧은 집,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부터 하늘을 찌르는 고층 아파트까지. 다행히 발품을 열심히 판 덕분에 지하철도 코앞이고 저렴한 원룸을 얻었다. 한동안은 집 앞에 ‘강남슈퍼’가 있어 이곳이 그 유명한 강남이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구로디지털단지역은 일단 위치적으로 한강의 남쪽이기는 하니까.
이방인의 순환선을 타고
진짜 강남에 위치한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줄곧 지하철 2호선을 타게 되었다. 출퇴근을 위해 땅굴로 들어가니 서울의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연극 세트처럼 작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지하철. 빽빽하게 머릿수는 많은데 눈의 초점은 모두 흐렸다. 피곤한 몸을 싣고 손잡이 대신 음악을 꼭 붙잡곤 했다. 지하철 2호선은-서울대입구부터 교대, 건대입구, 한양대, 이대, 홍대입구까지-대학교가 많아 둥지를 틀기 좋았고 순환선이라 생활 속의 편리한 쳇바퀴가 되었다. 30대에도 2호선 근처를 크게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여전히 역세권이다. 하지만 점점 다른 호선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고 이제 역마다 사람들과 구역의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여기에 있어 / 여기에 없어 / 누군가 있어 / 아무도 없어 빙글빙글 도네 /
빙글빙글 돌아 / 그것은 마치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어
- 아침의 노래 <이호선>
어린 시절의 서울은 그저 우리나라 수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서울로 주소지를 옮기면서는 가끔은 서울과 설움이란 말을 헷갈려 하며 서울 이방인이 되었다. 이제는 서울 사람인지 서울 사람이 아닌가지 무엇이 중요한가 싶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말이 조금쯤은 ‘나의 소울’과도 닮았다는 생각도 한다. 뭔가 복잡하고 바빠 보인다. 가끔은 똑같은 모습이 갑갑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을 들이면 다양한 풍경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다행히도 서울 탐험은 여전히 흥미롭다.
- 글 김반야
- 대중음악평론가, SBS라디오 작가
- 그림 M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