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문화+서울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SOUL OF SEOUL

11월호

설렘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우리 집

공항은 설렘이다. 여행이어도 들뜨고 출장이어도 벅차다. 연간 7천만 명 이상(2024년 기준)이 오가는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을 들를 때마다 교차하는 감정이다.

지하철이나 공항철도를 이용하든, 공항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든 누구나 지나게 마련인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의 교통센터. 공항이 건네는 첫인사는 ‘집’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바람에 날려간 도로시의 집처럼 휘영청 높이 매달린 서도호의 <집 속의 집>2020이다. 태양을 업은 듯 밝게 빛나는 노랑과 주홍색의 집, 바다를 안은 듯 짙푸른 파란 집이 위아래로 걸렸다. 육중한 집이 가볍게, 단단한 집이 투명하게 다시 태어났다.

국제적 활동이 가장 왕성한 한국 미술가 중 한 사람인 서도호는 밥 짓듯 옷 짓듯, 집을 짓는다. 작품이 된 집은 작가가 어려서부터 살았던 서울 성북동 본가다. 그의 부친이자 동양화의 거장인 서세옥1929~2020 화백이 창덕궁 연경당을 본떠 만든 맞배지붕의 한옥 집이다. 순조 때 대리청정하던 효명 세자가 부모에 대한 효심과 어진 군주의 철학을 담아 지은 연경당은 궁궐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단청을 하지 않은 사대부집 형식의 건축물이다. 이를 똑같이 본 따 지은 집에서 서도호는 19세기의 공간과 20세기의 시간을 넘나들며 성장했다.

훗날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 대학원에서 유학하던 작가는 한옥의 경험과 아파트 일상 사이의 낯섦과 불편함을 더듬어 ‘집’ 작업을 시작했다. 소재는 옷 만드는 천이었다. 손바느질로 집을 그리기도 했다. 서 작가는 인터뷰에서 “집은 개인적 공간인 동시에 문화의 결정판이고 옷은 몸을 보호하는 것이되 신체에 대한 해석이자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며, “한옥은 반쯤 열린 공간인 반면 서양식 아파트는 외부와 단절된 세계 같았다. 작품 속 건축은 이 같은 동서양의 시선 차이를 보여주는데, 충돌의 장면이 갈등과 대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강조하고자 한 것은 ‘연착륙’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서도호는 외국에서 활동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인 한옥을 소환해 낯선 곳에 떨어뜨린다.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Liverpool Biennial of Contemporary Art에서는 좁은 두 건물 사이에 비스듬히 한옥(<Bridging Home>2010)을 끼워넣었고, 미국 UC샌디에이고 공대 건물 옥상 끄트머리에 오두막 하나를 내리꽂고는 <별똥별>2011이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서 집은 이질적인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낯선 곳에서도 잃지 않는 고유한 정체성이 된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교통센터에 설치된 <집 속의 집> 설치 모습 ⓒ조상인

공항에 설치된 <집 속의 집>은 넓은 세상을 바람처럼 돌아다니더라도 뿌리가 이곳에 있음을 잊지 말라는 당부와도 같다. 어디를 가건 집처럼 편히 지내다 무사히 돌아오라는 기원 같기도 하다. 노란색의 큰 집은 실제 건물과 똑같은 크기이고, 파란 집은 60퍼센트 크기로 좀 작다. 공항 내 작품 안내판에는 “큰 집 속에 작은 집이 들어가 있는 형태를 통해 다음 세대로 계승 발전되는 한국성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서도호의 아버지 서세옥의 수묵 작품 중 큰 집이 작은 집을 품고 감싼 형태로 그린 <어머니와 아들>2000s(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을 떠올린다면 이해가 더 쉽다.

서도호의 ‘집’ 연작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됐고, 그가 살았던 곳을 따라 뉴욕 아파트, 런던 집 등이 작품으로 태어났다. 작가가 평소 즐겨 쓰는 집의 색상은 빨강과 초록 계열로, 이곳 공항처럼 노랑과 파랑으로 지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유리 천장 너머로 태양광이 곧장 드는 공간에 영구 설치되는 작품인지라 색이 바래지 않는 실을 찾고자 애썼다고 한다. 궁여지책이 뜻밖의 희소성을 만들었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이 작품을 눈에 담는다면, 이제부터는 공항을 지나칠 때마다 항상 작품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오가는 시간대에 따라 짙푸른 집과 그 위의 노란 큰 집이 바다 위로 태양이 솟아오르는 여명으로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해가 바다로 숨어 들어가는 석양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날 때 고개를 들면 한옥의 기둥과 그 안의 나뭇결, 창호지와 기왓장의 섬세함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공항을 문화 홍보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는 것, 그리하여 공항 전체를 거대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국가유산청·국립중앙박물관과 협력해 각 터미널 탑승동에 유물 대여 전시, 문화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4년 11월에는 이곳 <집 속의 집> 아래쪽에 대형 미디어월과 함께 K-컬처 뮤지엄이 개관했다. 어쨌거나 공항은 출발지이자 도착지다. 여행의 끝, 설렘의 마무리는 우리 집이 있는 내 땅에서 느끼는 안도감이다.

조상인 백상미술정책연구소장, 『살아남은 그림들』 저자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