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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7월호

예술로 빛나는 도시의 얼굴

“별들이 무리지어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가깝고 닿을 듯 생생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계속 걷기만 한다면 하늘로 걸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울 중구 장충동의 서울신라호텔. 이곳 로비에 들어설 때면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자전적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의 후반부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은하수의 한 무더기 별들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질 것만 같아서다. 힘껏 뛰어오르면 저 별들 중 하나를 움켜쥘 수 있을 듯하다. 2층 높이의 신라호텔 로비 입구에서 마주하는 5만여 개의 작은 별들. 7미터 너비의 천장에 가늘고 투명한 낚싯줄로 수정처럼 보이는 투명 아크릴 비즈를 하나하나 묶어 매달아 놓은 조각가 박선기의 설치 작품 <조합체An Aggregation 130121>이다.

조이스의 소설에서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는 종교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해안선을 따라 걷던 중 별무리를 만난다. 하늘이 어두워지자 ‘없는 줄 알았던’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선명해진 밤의 풍경이 각성과 삶의 전환을 이끌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신라호텔 로비의 이 샹들리에형 작품이 디덜러스의 별이 될지도 모른다. 은하수가 땅으로 땅으로 내려온 양, 새벽 기운 머금은 이슬처럼 작품이 반짝인다.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면 어른거리는 투명 낚싯줄이 마치 내리다 공중에서 멈춰버린 빗방울 같다. 시간이 정지된 영화 속 장면처럼 이곳에서의 순간을 영원토록 가슴에 새겨두라 속삭이는 듯. 작품은 2006년 이곳 로비에 설치된 후 단번에 신라호텔의 얼굴이 됐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수의 대형 호텔들이 앞다퉈 박선기 작품을 찾는 기폭제가 됐다. 2013년에는 호텔 리뉴얼에 맞춰 작가가 작품의 모양을 약간 바꿨다. 작품명 ‘130121’은 수정한 그 날짜를 기록한 것이다. 최근에는 투명 아크릴 외에 검은색 아크릴을 추가해 풍성함을 더했다.

박선기는 원래 ‘숯의 작가’였다. 그가 ‘변화한 나무의 형태’로서 숯을 작업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였다. 보통 조각가는 나무나 숯을 깎고 다듬지만, 그는 숯을 매달았다. 아기가 태어난 집에 숯을 매다는 ‘금줄’처럼 숯은 깨끗하게 만드는 정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투명한 줄에 새까만 숯을 매단 그의 작업은 공간에 펼쳐진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2006년 김종영조각상도 이 숯 작업으로 받았다. 이후 어두운 곳에서 숯이 잘 보이지 않는 점을 보완하며 아크릴 비즈를 매달기 시작했고, 그 첫 무대가 신라호텔이었다.

이곳 로비에서 또 한 명의 ‘숯의 화가’를 만날 수 있다. 숯덩어리를 화폭에 붙이고 갈아 만든 <불로부터> 연작으로 유명한 이배의 최근작 <붓질Stroke> 두 점이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통로 양쪽을 차지했다. 원래 이 자리는 존경받는 원로 화가 김홍주의 회색조 꽃그림이 차지하고 있었으나 2023년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작품을 교체했다. 그 바람에 박선기의 작품과 더 각별한 조화를 이루게 됐다. 이배의 작품은 두 점이 각각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의 대작이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가난한 화가 이배는 문득 싼 값에 두둑하게 살 수 있는 숯에 눈이 갔다.

“모든 것이 다 타버린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숯입니다. 일상성을 모두 벗어버리고 순수성을 지닌 존재가 숯이죠. 불 속에서 죽은 게 아니라 붙이면 다시 불붙는 생명의 에너지를 품은 것 또한 숯입니다. 자연의 마지막 모습인 동시에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생명 순환의 근본이죠.”

물감 대신 숯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의 숯은 빛이오, 숲이오, 혼이다. 백 가지 색깔을 머금고 있는 검은 숯은 결을 달리해 제각각의 빛으로 반짝인다. 쌓아놓은 숯은 숲을 이뤄 설치 작품이 됐고, 숯가루를 개어 만든 먹으로 일필휘지한 드로잉에는 혼이 담겼다. 수묵화에서 온 듯한 그의 <붓질> 연작도 근원은 숯이다.

장충동에 신라호텔이 들어선 배경에는 영빈관이 있다. 195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국빈용 숙소를 지시해 터를 다지기 시작했으나 공사와 중단을 반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단숨에 밀어붙여 1967년에 준공된 한옥 건물이 해외 귀빈을 위한 곳 ‘영빈관’이다. 국빈을 위해 사용되다 1973년 정부가 매각을 결정했다.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은 평소 “호텔은 도시의 얼굴이며 일국一國의 얼굴”이라 했다. 그는 “서울에는 한국의 얼굴이라고 내세울 만한 호텔이 없어서 찬란한 우리 고유의 문화를 꽃피운 신라 시대의 우아한 품격의 향기를 재현”하고자 영빈관 인수를 결심해 호텔신라 건설에 돌입했고, 1978년 준공해 지금에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예술을 통해 더욱 빛나는 곳이 됐다.

글 조상인 백상미술정책연구소장, 『살아남은 그림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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