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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3월호

‘푹’에서 ‘풋’으로
― 덜 익었기에 더 익을 수 있다는 희망

겨울이 ‘푹’과 가까운 계절이라면 봄은 ‘풋’과 친밀한 계절이다. 겨울에 바깥을 나가면 매서운 바람을 조금이라도 피하고자 고개를 푹 숙이고 걷게 된다. 푹푹 내리는 함박눈과 그것을 나르는 칼바람이 옷소매와 옷자락 사이를 파고들 때면 얼른 집에 가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오른다.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오면 기다렸다는 듯 노곤함이 몰려든다. 이불로 온몸을 푹 감싼 채 누워 있다가 어느새 푹 잠들어버리기 일쑤다.

호기롭게 이한치한 以寒治寒을 외치며 한겨울에 아이스크림을 푹 떠먹는 사람을 보면 추위를 이길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용기인가 싶기도 하다. 뜨거운 국밥을 한 숟갈 가득 푹 떠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면 아까 내쉰 한숨이 뚝배기로 옮겨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눈밭에 푹푹 빠지는 날들 한가운데서 기운이 푹푹 떨어지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장군의 무서운 기세에 눌려 푹 쓰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날이 어서 푹해지기를 속절없이 기다린다.

그렇게 어렵게 맞이한 봄이다. 주변에 보이는 온갖 것들이 풋풋하다. 사방이 연두로, 연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다 자란 몸이 더 자랄 수 있을 것만 같다. 거리에서 봄기운을 감지했을 때 풋! 하고 튀어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길이 없다. 다들 종종거리며 잘도 걸어 다닌다. ‘풋’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영어단어 ‘put’과 ‘foot’이 떠오른다. ‘put’은 주로 놓는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사람 앞에 놓여 어떤 감정을 겪게 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봄이 가져다주는 여러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면, 또 주변에 봄을 타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봄이 우리를 어딘가로 이끄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봄에 부지런히 봄나들이와 꽃구경을 갈 때 우리에겐 발을 뜻하는 ‘foot’이 필요하다. 길에 두는 마음처럼 풋풋한 게 또 없다. 풋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먹을 때처럼 ‘풋’과 ‘푹’이 만나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 ‘푹’과 ‘풋’의 사이는 꼭 겨울과 봄 사이에 찾아오는 환절기 같다.

‘풋’은 흔히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처음 나온’, 또는 ‘덜 익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쓰인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완전히 익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목이다. “봄철에 새로 난 나무나 풀의 연한 싹으로 만든 나물”을 가리켜 ‘풋나물’이라고 하고 “덜 익은 과실”을 가리켜 ‘풋과일’ 혹은 ‘풋과실’이라고 부른다. 풋나물과 풋과일에서는 으레 “싱그럽고 짙지 아니한 향기”인 ‘풋향기’가 나게 마련이다. 풋향기는 싱그럽고 짙지 않기에 자꾸만 코를 킁킁거리게 한다. ‘풋’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의 상태를 염원하게 하고 종종걸음으로 상대에게 다가가게 만드는 말이다.

“깍지 속에 들어 있어 아직 덜 익은 콩”은 ‘풋콩’이고 “덜 익은 곡식”은 ‘풋곡’이나 ‘풋곡식’이라고 일컫는다. “그해에 새로 익은 곡식, 과실, 나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은 ‘풋것’이다. 풋것은 “생풀이나 생잎으로 만든, 충분히 썩지 않은 거름”인 ‘풋거름’의 힘으로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한편, “어른이 되면서 처음으로 나는 수염”은 ‘풋수염’이고 “바둑이나 장기 따위에서 서투른 수”를 일컬어 ‘풋수’라고 한다. 실력이 무르익게 되면 풋수를 두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풋’은 일부 명사 앞에서 “‘미숙한’, ‘깊지 않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쓰이기도 한다. 과일이나 곡물처럼, 감정이나 솜씨 또한 익는 것이니 말이다. “어설프게 내는 힘”은 ‘풋심’이라고 하고 “익숙하지 못한 솜씨”는 ‘풋솜씨’라고 불린다. “아직 깊지 못한 정”을 가리켜 ‘풋정’이라고 하는데, 호감과 사랑 사이의 어떤 감정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다는 게 놀랍다. “서로 낯이나 익힐 정도로 앎. 또는 그 정도의 낯”은 ‘풋낯’ 혹은 ‘풋면목’이라고 하며, 이들이 나누는 인사는 아무래도 겸연쩍음을 동반한 ‘풋인사’일 가능성이 크다. 처음의 어색함을 극복하고 친해지게 되면 언젠가 상대의 민낯이나 진면목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풋사랑’이 있다. 풋사랑은 흔히 “어려서 깊이를 모르는 사랑”이란 뜻으로 쓰이지만, 이 단어는 “정이 덜 들고 안정성이 없는 들뜬 사랑”을 가리키기도 한다. 풋사랑의 두 번째 뜻은 거의 모든 사랑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될 때 처음에는 서로의 차이 때문에 불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차이는 불안뿐 아니라 동시에 설렘도 선사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사랑에 빠진 사람이 늘 약간은 들떠 있는 까닭이다. 처음에 상대에게 끌리는 데에는 나와 다르다는 점이 깊이 작용한다. 다른 덕분에 매력적이고, 다름 때문에 두렵다. 그 불안을 기꺼이 떠안고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사랑은 점차 무르익을 것이다.

‘풋’의 반대말은 무엇일지 곰곰 생각한다. 아마도 ‘농’이 아닐까 싶다. ‘농’은 명사 앞에 붙어 “‘진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짙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쓰이고 동사 앞에 붙어 “‘푹’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기능한다. 농염산, 농적색, 농익다 등으로 활용되는데, 이는 덜 익음의 반대편에는 푹 익음이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앞서 보았듯 ‘풋’과 ‘푹’은 때때로 만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반대쪽에 서 있는 셈이다. ‘농’의 상태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풋’의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때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새삼 깨닫기도 하면서, 익는 일이야말로 평생에 걸쳐 달성해야 하는 과업임을 생생하게 느끼기도 하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은 늘 ‘풋’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 ‘풋’이라는 말 속에는 처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서툴고 미숙하지만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덜 익었기에 더 익을 수 있다는 희망이 다 담겨 있다.

글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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